오밤중에 컵 닦다가 문득 깨달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1. 흔한 바다
아직까지 바닷가에 가면 신나게 놀지만 이제 해안도로쯤은 애들에겐 심드렁한 존재. 서울에선 한강다리만 지나도, 강변북로만 달려도 한강이라며 서로 보겠다고 다투더니 배가 불렀구만.

​2. 집밥의 소중함
서울서는 주말에만 한두번 외식을 하다보니 외식하자면 환호성을 지르더니 제주와서 잦은 외식에 어떤 메뉴를 말해도 감흥이 없고 집에서 맨밥에 프랑크소시지 구워주니 너무 맛있다고 신난 아이들.
그러길래 엄마가 밥해줄때 고마운줄 알아.

​3. 알쓰
원래 술을 잘 못마시지만... 그래도 맥주 500 두잔은 마셨는데, 보름간 퓨어하게 살았더니 300에도 취한다.
아놔.
서울가면 이제 치맥 못하겠네.

​4. 섬사람 운전
아무데나 정차, 아무데서나 유턴, 1차선으로 주행... 제주 살며 익힌 운전방식이다. 다른건 시골길이라 그렇다쳐도 이 섬은 왜 모두 1차선으로 달리고 2차선은 비워두는 걸까.
아무튼 입도 첫날은 차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렌트카 운전하는거 보면 속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섬사람들은 모두 나를 추월해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밤새 비가 왔는데 아침에도 비가 왔다. 그리고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날씨 앱을 열어보니 시간당 40mm의 비가 온다고 한다. 서울에서 비가 많이 온다고 느낄때 18-20mm 정도다.

어젯밤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비자숲힐링센터에 점심밥과 실내놀이터를 예약해두었다. 후기들을 검색해보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몸을 쓰고 싶은 마음과 우리집 책벌레의 책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코스다. 비자림 바로 옆이어서 공기도 좋고, 아이들 놀이터도 목재로 되어 있고 식사도 한살림 쌀을 쓴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

비 오는 걸 감안해서 좀 일찍 집을 나섰는데 산간도로를 올라서니 비가 더 온다. 차 사고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본 적이 없는데(일단 비가 많이 오면 겁나서 차를 안타기도 하니까...) 최대 속도로 올리니 적당한 정도다. 차 속도는 시속 40km. 슬슬슬 기어간다. 급하지 않으니까. (비자숲힐링센터의 원래 이름은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다. 아토피, 천식 등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같다. 아... 여기로 취직하고 싶었다. 너무 좋은 곳...)

점심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름은 문화공간이던가? 강화마루가 깔려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하고 창 밖을 바라 볼 수 있는 자리도 있고(카페처럼) 피아노도 있더라. 어린이들을 위한 좌식 공간도 있는데 그곳엔 보드게임이나 퍼즐도 있었다. 책도 출판사에서 기증한 듯한 모두 새책들이었고, 간행물도 꽤 있었다. 아... 너무 만족!!! 마음이 급해진 우리집 책벌레는 빨리 읽고 새로 고르고를 반복했고, 둘째는 나랑 피아노도 치고 구경하다가 책을 여러권 읽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시간.
점심시간... 많은 블로그에서 밥 맛있다는 얘길 읽었는데... 정말 맛있다. 급식 식판 같은 곳에 밥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밥 먹으러 또 오고 싶은 곳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애들도 다들 와구와구. 밥 먹는 곳 이름이 '냠냠뇸뇸식당'이었는데 이름대로였다.
그리고 1시가 되어 기다렸던 실내놀이터로 갔는데 우리 애들은 7세 이상이어서 다랑이놀이터로. 그물로 짜여져있는 몸을 쓸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거기서 매달리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2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놀았다. 아무래도 이런 실내놀이터는 유아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6세 이하가 노는 방엔 사람이 빼곡하던데 여긴 널널... 그 큰 공간을 다른 아이 한명 보태서 세명이서 놀았다. 나는 들고간 김연수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어서 뿌듯! 아이들은 알차게 놀고 다시 책읽는 공간으로 올라가 책 읽고 마무리. 

비가 좀 잦아들면 집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잦아들지 않아 집으로 왔는데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에 신발과 바지 모두 젖어버렸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서 그 많은 물방울이 옆으로 날리는데 피할 길이 없다. 다 젖었다며 징징 거리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서 탑승 완료.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만만치 않게 왔고 시야확보가 되는 속도로 슬슬 왔다.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지날 때 마다 뒷자리의 녀석들은 신이 났고 나는 차 하부청소가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던 집에 오는 길.

내일은 비가 좀 안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뭐하지...

나도 어린이면 놀고 싶었던 놀이터.

비가 온다.
생각해보면 비가 안오는 날이 더 적었던 것 같다. 이 섬에 도착했을때도 비가 왔다. 

오늘 아침엔 사실 비가 안왔다. 어젯밤에 부슬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엔 해가 나려해서 신이 나서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점심에 동네로 고기국수를 먹으러 나갔는데 국수를 먹는 사이 비가 쏟아진다. 아... 빨래건조대를 얼른 집으로 들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 일정도 꼬인다. 사실 바닷가 카페에 가서 나는 책을 읽고 애들은 놀면 되겠다 싶었는데 비라니... 국수를 후루룩 먹고 들어와서 빨래를 구출하고(하지만 이미 꽤 젖었더라. 엉엉) 뭐할지 애들에게 물으니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집에서 그림그리고 색종이 접고 싶다 한다. 둘이 정해보라고 했더니 둘째가 얼른 의견을 바꾼다. 대체로 뭐하고 놀지에 대해서는 둘째가 접는 편이고, 뭘 먹을지에 대해선 첫째가 접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비가 오면 가야겠다고 염두에 둔 곳이다.

돌문화공원에서도 화산에 대한 설명과 제주도가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해서 나오는데 영상이 좀 올드하고 관리가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돌문화공원은 박물관보다도 주변 환경이 더 좋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잘 관리되고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적절한 수준이었다. 영상도 깔끔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4D 영화관이었는데 20분 길이의 짧은 영화였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와 제주의 오백장군 설화가 함께 나오는 이야기인데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지만 4D체험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어릴적 좋아했던 롯데월드의 다이나믹씨어터가 생각났는데 우리집 애들은 의자가 덜덜 거릴때 마다 때로는 무서워 하면서 아주 스릴있게 봤다. 마지막 코스에서 VR체험도 있었는데 애들은 신기방기... ㅎㅎㅎ 세계자연유산을 보러 갔다가 첨단 과학을 체험하고 왔다. 비가 안왔더라면 둘러보기 좋게 산책코스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하지만 비가 안왔더라면 여길 안왔겠지. ㅋㅋㅋ

오후에 밖으로 나오니 비가 좀 잦아든다. 그렇다면 포기했던 바닷가 카페를 좀 다시 가볼까? 구름속을 헤치고 안개등과 라이트를 모두 켜고 슬슬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구름지대를 지나고 나니 삼나무길이 나온다. 아... 여기로구나... 베어지고 있는 비자림로... 즐비하던 삼나무가 어느순간 뚝 끊어지며 한쪽이 휑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휑하다. 때마침 밖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첫째가 묻는다.

"엄마, 제2공항보다 삼나무라는데 무슨 말이야?" 
"제2공항을 지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잖아. 그런데 여기는 좁은 길이지. 그래서 차가 더 많이 다닐 수 있도록 이 키크고 멋진 오래된 삼나무를 베어버리고 있어."
"그 공사하는 사람을 내가 다 베어버릴게!"
"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그럼 공항을 사람도 없고 나무도 없는데에 지으면 되잖아."
"공항을 짓는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건데,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이 많은데 공항을 짓는게 좋겠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면 되지."
"대통령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나중에 국회의원 되서 이거 공사한 사람들 다 나무 다시 심으라고 할거야."
밑도끝도 없이 국회의원이라니....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바닷가로 향했다.

이 카페는 자그마치... '제주 아이와 카페'로 검색해서 찾은 카페다. 그 중 카페에서 바다가 보이면서도 해변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어서 어른은 쉬고 아이는 지겹지 않은 그런 곳!!! 다행히(?) 비가 와서 사람이 붐비지 않았고 육지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허니버터브레드와 차와 사과쥬스를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나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혹시 문에 손이 끼이지 않을까, 돌에서 넘어지지 않을까 등등 계속 조마조마.......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피곤한 사람인건가. 이렇게 또 자기성찰의 섬에서 하나를 깨닫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다와 카페를 몇번씩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바다 보며 차 마시고 바람을 실컷 쐬니 마음이 좋다. 바다가 피곤한 줄 알았는데 나는 모래사장이 피곤했던 거였구나. ㅋㅋㅋㅋㅋㅋ 모래사장은 모래가 묻어서 싫으니까... (으앙 피곤한 나 자신...) 잠깐의 바다구경으로 허한 마음을 충전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그리고 차린건 별거 없지만 두 녀석 다 잘 먹는 양배추찜과 함께 집밥으로 마무리.

그래. 오늘도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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