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을 위한 육아휴직 본격 2개월차.

(그런데 사실 진짜 휴직자로서 온전히 시간을 보낸건 3주차에 접어드는 것 같다. ㅠㅠ)


휴직 1-2주차엔 토실군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겠단 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해 집에 와서 장기도 두고 오목도 두고 했지만... 매번 짜증으로 마무리됐다.

내가 그렸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ㅠㅠ

3-4주차엔 그 짜증의 근원이 뭘까 고민했고 몸이 힘들어 짜증을 내는 것 같아 일찍 재웠다.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자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듯 했으나 다시 시작된 짜증.

그럼 이건 뮈지...


내가 이러려고 육아휴직을 냈나 자괴감이 들 무렵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매주 수요일 방과후로 배드민턴을 하고 오는데 그 날은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온다. 그리고 돌봄교실에서 운동하고 온 날도 신나게 집에 온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집에 오는 길 뛰어 놀기.

나는 할 일이 거의 없고 넓은 공터나 놀이터에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물론 엄마아빠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쉬운 일)

단 10분이라도 놀고 들어온 날은 훨씬 더 평온하고, 뛰어놀고 들어온 시간이 길 수록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다는 4-5주차의 교훈을 얻고 남은 육아휴직 기간 되도록 조금 일찍 가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재밌고 신기한 새로운 것을 배워도 여덟살 아이들이 좀이 쑤시는 걸 참고 한 자리에 앉아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시간,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에게 내가 힘이 되는 선에서 충분히 놀 수 있게 도움을 주는게 지금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충분히 놀고 쉬어야 인생이 즐겁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도 충분히 놀고 쉬어야지!

오늘 최고로 게으를테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휴직 2개월차에 얻은 깨달음  (0) 2018.04.04
엄마의 치킨집  (0) 2017.05.30
그 사람의 본질  (4) 2017.04.30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언제였더라.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부터였을 것 같다.
엄마가 홀로 경제활동을 하며 가장노릇을 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치킨집.

나는 엄마가 치킨집을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본인 친구들에게도 (당연히) 전혀 알리지 않았고, 내게도 친구들에게 그런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도 이해는 했고, 지금도 이해한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
날 때 부터 부자집 큰딸로 자라 결혼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뭔지 모르고 살았던, '사모님' 소리만 듣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치킨집 사장이라니.

아무튼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자존심을 나라도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낮에... 참으로 힘들고 끝이 없을 것 같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 길을 지나는데 재밌게도 그 자리엔 아직도 치킨집이 있었다.
치킨이 잘 팔릴 것 같은 위치는 정해져있는건가. ㅋㅋㅋ
근데... 나름 '청담동' 치킨집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뭐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심지어 결혼하고나서도 남편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던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ㅋ
나에게도 그때가 어찌나 즐겁지 않은 시절이었는지... 삼성동에 살던 시절 내가, 내 생활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와 만나 마주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휴직 2개월차에 얻은 깨달음  (0) 2018.04.04
엄마의 치킨집  (0) 2017.05.30
그 사람의 본질  (4) 2017.04.30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어제(날짜가 지나서 그제이긴 하지만) 이명수 선생님의 북콘서트 - 제목은 이명수/정혜신/김제동의 삼색토크 - 를 다녀왔다.

업무 반 자의 반으로 간 행사였는데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 제목과 당일 이야기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크게 깨우친 대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을 보라. 이 사람의 개별성에 집중하라."

사실 정혜신 선생님이 들었던 예는 딸이 클럽가서 놀다가 아침에 들어와도 꼭 데리러 나간다... 는 얘기였다.

그게 자식일 때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으나(우리집 애들은 7세 5세...) 남편으로 치환해보면 진짜 말이 안되는 얘기다.

상상만으로도 빡치는데 본질이라니.

그 사람의 개별성이라니.


아무튼 (때마침) 오늘 그는 술을 마셨고...

얘기를 한참 하다가 내가 싫어하는 대화패턴에 들어섰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그 때 대체 저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너의 개별성에 내가 집중해주마 마음먹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더 해봐야지.


그리고 어제 얘기중에 크게(?) 반성했던 대목은.

이명수 선생님이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10년째 주말마다 냉면집에 같이 가준다는 대목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짝꿍은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가자면 늘 간다.

반대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자발적 자상함과 표현하는 따뜻함이 없는 그가 나는 늘 불만이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 줄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늘 메뉴를 정할때 의견을 내지 않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걸 맞춰준거였다.

그는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는 취향도 없고 귀찮아서 그런거지'라고 나의 잣대로 평가했다.

아... 깊이 미안해진다.


10년간 살아보니 괜찮은 구석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의 본질인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휴직 2개월차에 얻은 깨달음  (0) 2018.04.04
엄마의 치킨집  (0) 2017.05.30
그 사람의 본질  (4) 2017.04.30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1. BlogIcon 갈매나무 2017.05.01 15:42 신고

    (형부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결혼한지 10년쯤 된 시점에서 이런 반성을 할 수 있다면 언닌 상당히 괜찮은 반려자라는 생각이.. ㅎ

    • BlogIcon 갈매나무 2017.05.01 15:43 신고

      아니, 마지막 문장을 다시 보니까 드는 생각인데, 애초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ㅋㅋ

    • BlogIcon 달님  2017.05.04 00:41 신고

      그는 10년이나 되어서 알았냐며 타박하겠지 ㅋㅋㅋ

    • BlogIcon 달님  2017.05.04 00:43 신고

      애초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던거 같은데 어떤 점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10년이란 시간 동안 안괜찮은 놈을 골랐구나 하는 후회가 더 커졌다가, 10년을 기점으로 알고보니 괜찮았네? 하는 중인듯... ㅋㅋ

얼마 전 첫째의 영유아검진이 있었다.

양쪽 눈 시력차가 꽤 커서 안과검진을 받아보라고 해서... 어제 안과에 갔다.


1.

시력검사.

생각한 것 보다 시력 차가 더 커서 한쪽눈이 약시가 생겼다고 한다.

한쪽 눈이 덜 보이니 잘 보이는 눈 시신경이 더욱 발달하고, 덜 보이는 눈의 시신경은 점점 일을 안하는 것.

사람의 몸은 참 대단해.


아무튼 그래서 시력교정(그 차이를 줄이는 것)을 위해 안경을 써야 하고, 가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안경은 덜 보이는 눈을 잘 보이게 해서 그 눈을 더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가림치료는 잘 보이는 쪽 눈을 가려서 덜 보이는 눈을 한동안 많이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안경을 쓰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야 한다.


일곱살에 안경이라니.

그리고 안경을 앞으로 평생 써야 하다니.

30년 넘게 안경을 쓰고 싶었지만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쓸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모두 시력이 좋아서 우리 아이가 눈이 나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들이 다칠거나 불편해질 리스트에 다리나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다든지, 어디가 찢어진다든지, 치아 교정을 해야한다든지 이런 경우의 수는 있었지만 정말 한 번도 안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림치료라니.

눈 한쪽에 계속 뭘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애들이 놀리지는 않을지, 불편해서 온갖 짜증을 남들에게 부리지는 않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

색각검사.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갈색, 회색을 비슷하게 본다는 것은 이미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 질문에 표현력 좋은 우리 아들은 그 색들이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 설명했고, 그 설명을 통해 '아, 이 아이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하는 바로 그 검사 카드.

동글동글 버블무늬의 바탕에 버블무늬로 이어진 숫자를 읽는 그 카드를 같이 봤다.

나와 같은 숫자로 읽는 카드가... 단 한 장도 없었다.


아이가 색각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내 눈 앞에서 전혀 다른 숫자를 읽고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없다고 말하고 내 눈에 빈 카드에서 숫자를 읽어내는 것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이상의 아픔이었다.

'네가 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네 눈에 보이는 색은 온통 회색이기도 하고 그 회색 안에서 차이를 느끼기도 하는구나...'


3.

내가 지금 너무 속상한 것은 시력 자체가 낮아서도 아니고, 특정 색을 감지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을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경을 쓰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1도 알지 못하고, 색 인지능력이 남들보다 높은 나는 일부 무채색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가진 너에게 내가 어떤 것을 해줘야 할지, 그걸 모르겠다.

그게 가장 나를 아프게 한다.


더 큰 불편함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고작 이 두개가 뭐라고...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치킨집  (0) 2017.05.30
그 사람의 본질  (4) 2017.04.30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200만 촛불집회, 차벽  (0) 2016.12.05
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지 몇주째...
마음에 들지 않는 몇개의 집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세시쯤 왔는데 애들이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고 놀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니 이 시간이 되도록 애들이 점심도 안먹고 있는게 말이나 돼?"라고 버럭 말했다.
(사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물론 애들은 늦은 오전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진 않았겠으나 점심은 언제 먹고 낮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화가 났다.

그렇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애들은 낮잠을 잤고 엄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곤 엄마는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서운했노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길 "보임이도 집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예요. 집도 잘 안구해지고 속상하니까 그랬죠.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화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

2년마다 반복되는 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실 그것은 '집'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집을 얻을 경제력의 부재'에 대한 스트레스다.
2년에 7~8천만원씩 오르는 전세를 당연히 부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그런 사이클을 살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왜 그런지도 잘 파악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좋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
잘 알아주지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차라리 둔한 남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10년만에 깨달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구나.'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사람의 본질  (4) 2017.04.30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200만 촛불집회, 차벽  (0) 2016.12.05
87년 이후 처음이라는 지금  (0) 2016.11.27
  1. 지영 2017.03.28 18:38 신고

    일상기록을 하는 티스토리네요~!
    달님 님 혹시,
    초대장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
    huayss@daum.net 개인 일상글을 끄적일 공간이 필요해서
    조심스레 부탁드려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가 어른이 되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젠 내가 산타'라는 사실이다.

이제 더이상 나를 위한 산타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줘야 하는 것.

그런데 올해는 그게 진짜 어른이라는 걸 깊게 실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둘째 녀석은 '아기'에 불과해서 '선물'이란게 뭔지도 몰라서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첫째 녀석은 엄마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서 필요해서 사려고 했던 것 혹은 엄마가 평소에 사주고 싶었던 것을 선물로 받고싶어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간 우리집 첫째가 받고 싶다고 했던 수많은 선물 리스트 중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본다.

(정말이지 한달동안 매일 다른 품목을 얘기함)

- 사람 몸에 닿기만 해도 그 사람은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마법지팡이 (호그와트냐)

- 광산 (광산으로 이사를 사야하나)

- 광산에서 캔 금은보화

- 해치 뿔로 만든 요술지팡이 (호그와트 가야겠네)

- 우주로 갈 수 있는 로케트 (우리집 NASA)

- 온 세상 모든 걸 벨 수 있는 큰 칼 (무섭게 이런걸 왜)

-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리즈 (뭐든지 뚫는 창 등등)


뭐 이런 것들...

듣다 듣다 기가차서 "산타할아버지도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만 선물로 주실 수 있어"했더니 "산타할아버지는 이런거쯤은 다 만들어~"라며 자신있어한다.

열심히 설득해보았으나 최종 선택지는 크리스마스 전전날 정해졌는데 '광산에서 캔 다이아몬드' -_-

결혼반지에서 빼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럴순 없었고... 아무튼 최선을 다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된 보석 모양을 사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2월 23일에 무려 반차를 내고 코엑스몰을 뒤졌다.

인테리어 소품파는 무지, 자라홈, 코즈니 등을 뒤졌지만 실패.

12월 24일 애들 낮잠시간을 이용해 혼자 아이파크몰을 갔다.

주차하는데 한시간...(우리집에서 걸어가도 20분이면 가는 곳을 이게 무슨 개삽질...)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5~6층 인테리어 관련 매장을 또 샅샅이 뒤졌다.

없다.................


결국 둘째가 (엄마의 계략에 의해) 받고 싶은 컵을 두 개 사가지고 귀가.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남편과 나는 머리를 싸맸다.

'산타가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았다'며 실망할까봐 전전긍긍.


집에 있는 수경재배용 플라스틱 투명 돌멩이를 둘이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 식물을 키우려고 고이 간직한 예쁜 유리병도 꺼냈다.

그런데 우리 지안이가 어떤 아이인가... 관찰력의 왕, 기억력의 왕.

이게 우리집 어딘가에 있었던 물건이라는 걸 눈치챌 것 같았다.

알아채면 또 이걸 어쩌나 우리부부는 다시 전전긍긍.


새벽1시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을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를 쓰면서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의 선물을 준비하며 이렇게 정성을 들여본 적이 있던가.

값비싼 것을 주기 위해 하는 노력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노력.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받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이렇게 기쁜일이라니.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아이의 불편함  (0) 2017.04.22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200만 촛불집회, 차벽  (0) 2016.12.05
87년 이후 처음이라는 지금  (0) 2016.11.27
2016 건강검진 최종 결과  (0) 2016.10.10

지난 토요일(12/3)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200만이었다고 한다.

매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엄마집에 갔다가 나오는게 늦어져서 (이날 나는 집회장소와 집과의 거리가 집회 참여동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음) 10시 조금 넘어 시청역에 내려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본대회는 이미 종료.

아주 편하게 - 처음으로 - 사람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광화문 광장을 지나 청와대쪽으로 향했다.

차벽 한 번 보고 올 요량으로.


광화문 사거리, 광화문, 영추문을 지나 저 멀리 차벽의 끝이 보인다.

그동안 맨날 사람에 치여 만나길 포기했던 차벽이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데... 막상 차벽 앞 열걸음 정도까지 다가가자 나는 긴장했다.

정확히는 내 몸이 긴장했다는 것을 내가 알아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차벽 근처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소리도 지르고 구경도 하고 다시 돌아가는 시민들.

해맑고 즐거워 보이는 그 사람들은 나랑 뭐가 다르지?


아, 저 차벽이 물대포를 쏘는 바로 그 장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의 차이인가?

물대포를 맞아보거나 눈앞에서 보지 못한 것의 차이인가?

아무튼 나는... 금방이라도 물을 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이다.


이상야릇한 마음을 안고 뒤돌아 오는데 경찰에서 해산 방송을 한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데모하며 그렇게 다정한 해산 방송은 처음 본다.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시민 여러분. 신고된 집회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런데 내가 듣던 말투는 강하고 명령조의, 빈정거리거나 협박하는 말투였는데... 이 날 내가 들은 말투는 애인인 줄... -_-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편과 나는 깔깔 웃으며 경복궁 길을 돌아서 나왔다.


경찰이 무섭지 않은 200만의 시민들.

이것은 평화집회의 힘인가, 쪽수의 힘인가, (경찰에 맞아본 적 없는)경험의 부재인가.

매주 집회에 참가할 수록 의문은 늘어난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마음을 알아주는 힘  (2) 2017.02.14
산타의 마음  (0) 2016.12.25
200만 촛불집회, 차벽  (0) 2016.12.05
87년 이후 처음이라는 지금  (0) 2016.11.27
2016 건강검진 최종 결과  (0) 2016.10.10
증명사진의 기술은 이제 빛이 아니라 포토샵  (0) 2016.09.07

100만, 150만 집회에 다녀왔다.

처음 100만이 모였다고 할 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이라고 하기엔 넓지만)에 모인 것이 신기하기만 했고 그저 신이 났다.

그런데 150만이 모인 집회에서는 마음이 달랐다.


시청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온통 가족들이었다.

중학생 쯤 되어보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

눈시울이 뜨거웠다.

토요일 저녁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밥을 먹고 있어야 할 시간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프레스센터 앞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프레스센터 앞마당을 보니 언론조노 깃발이 보인다.

그래, 내가 저런 조직에 있었지... 괜히 실실 웃으며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이슬' 노래가 들린다.

'누군가 만든 영상을 보고 있나 보군'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광장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광판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이럴수가, 양희은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훌쩍,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음원으로만 함께 부르던 노래를 진짜 사람이 부르고 있다니.


너무 많은 사람에 지쳐갈 때 쯤... 행진이 시작됐다.

광화문사거리-종각-안국동-경복궁 쪽으로 걸어갔는데... 종각역을 지날 때 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2008년에도 참 세상 달라졌다고 느꼈는데, 이건 정말 뭔가 싶었다.

집회에서 소녀시대 노래도 나오고,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도 나왔다.

신기하다. 이게 뭐지.


집회 때 마다 전경 앞에서 후덜덜하고 1001, 1002, 1003을 만나면 쫄던 시절도 생각났다.

워낙 달리기가 느려 동뜨는 집회 때마다 긴장하고, 뛰다뛰다 안되면 '지나가던 시민' 코스프레하던 것도 생각났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부시 방한 반대 투쟁... 2001년인지 2002년인지 겨울... 동대문까지 뛰어갔네.)

글 쓰다보니 99년 학교 정문앞에서 날아오던 돌을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때는 정말 그냥 지나가던 학생시절...)

언론노조 있던 시절에도 우리가 금속처럼 피터지게 싸우고 옥쇄투쟁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언론스럽게 문화제하고 집회하고 그렇게 살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들었던 생각.

그래봐야 내가 데모했던 건 2000대로 접어들어서 였으니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물론 대추리에서 야밤 담벼락에 쪼그리고 숨었던 살벌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꽃병도 파이도 모르는 세대다.

80년대 가투했던 선배들을 생각하면 명함은 커녕 이름 꺼내기도 민망하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도로를 걷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런 세상은 정말 우리가 조금씩 싸워서 얻어낸 세상일까?

투쟁했던 선배들, 그리고 우리세대가 만들어낸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그래서 이제 누가 대통령 하는거야?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운동권 저 변두리에서도 잔챙이, 잠깐 발 담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는 모르겠다.


누구의 프레임대로 가고 있다느니, 지금 저들은 뒤에서 거래를 한다느니, 100만명은 휘둘리고 있다느니 참 말 많다.

민중에게 답이 있다? 그것도 나는 모른다.


되게 상투적인 표현인데 격변의 시대.

모두들 처음 겪는 이 시대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만큼이나 도무지 모르겠는 글이 되어 버렸다.

내 마음 같구만.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타의 마음  (0) 2016.12.25
200만 촛불집회, 차벽  (0) 2016.12.05
87년 이후 처음이라는 지금  (0) 2016.11.27
2016 건강검진 최종 결과  (0) 2016.10.10
증명사진의 기술은 이제 빛이 아니라 포토샵  (0) 2016.09.07
외할머니의 솜이불  (0) 2016.06.07
9월초에... 운전면허증 적성검사기간 만료를 코앞에 두고 부랴부랴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기초적이기 이를데 없는 그 검진. 
그런데 경력단절 관계로 그 기초검진조차 6년만에 받았다. 

그 검진의 특징은 다들 알다시피 학창시절 신체검사의 느낌이어서 너도나도 다 정상인 결과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의사가 흉부엑스레이에서 폐 쪽에 결절이 보인다며 CT를 권했다. 
"분명히 아무 이상 없을 가능성이 95%인데요 그래도 이럴 경우 진찰을 받아보시길 권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게 지금 뭐래는건지...

돈을 주고 건강함을 확인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세브란스에 진료예약을 하고 뒹굴거리던 어느날 저녁. 
사람인지라 걱정이라는게 시작됐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였다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실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건강함을 확인해야하는 이유가 더욱 생긴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싫어하는(가족 중 큰 병 앓아본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싫어하는) 종합병원의 지난한 과정 수납-대기-수납-대기-촬영-대기-문진-대기-진료의 과정을 거쳐 돈을 주고 건강함을 확인했다. 
걱정할 상태가 전혀 아니며 흔한 증상이지만 추적관찰 하자는 아주 평범한 진단을 받고 6개월 후 다시 이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러 와야한다. 

그래서 결론은 건강하다. 
종합병원에서 대기하느라 소모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우롱밀크티와 크로아상을 먹어야겠다. 



위의 글을 쓸 때만 해도 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으나, 병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내가 차를 몇층에 주차했는지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어느 위치에 주차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방향감각은 정상작동) 지하 3~6층 중 대체 몇층이었더라.
내차 위치 확인하는 시설이 되어있어 차 번호를 입력했는데 하필... 첫번째 주차했던 장소만 뜬다.
(본관에 주차했다가 너무 멀어서 진료받는 건물로 이동해서 다시 주차함)
차를 찾지 못할거라는 두려움 보다(지하 3~6층 어딘가 있겠지) 내가 차를 찾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고 무서웠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는 자의 몸은 무의식의 세계에선 이미 내 것이 아닌가보다.
두 녀석들을 두고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꽤나 힘들고 긴장했던 모양이다.
이제 편히 쉬어보자...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다.


대학생 시절 찍었던 사진들을 생각해보면, 물론 보정은 하지만 그래도 원판 자체도 성의있게 찍어줬던 것 같다.

사진에 대해 잘 아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는 빛을 이용한 뽀샤시 효과였던 느낌.


작년에도 급하게 증명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이른바 '뽀샵'을 너무 많이 해서 누군지 모르겠는 지경인 사진이 완성됐다.

그래서 새롭게 찍으러 간건데 오늘 갔던 사진관은 무슨 자신감인지 보정과정을 바로 옆에 앉아서 볼 수 있게 했다.

'오호. 잘됐다. 뭘로 보정하는지 구경이나 하자'


그런데 포토샵이 한글버전이다.

'이런. 쪼렙인데.'


사실 사용한 툴은 뻔했다.

힐패치로 잡티를 겁나 없앤다.

그리고 리퀴드 툴로 윤곽선 보정, 눈 크기 보정, 코 보정, 이목구비 좌우대칭 보정.

그리고 클론 툴을 이용한 머리카락 채우기.

번 툴을 이용한 눈썹 다듬기, 입술 다듬기.

전체 피부톤 보정.


그런데 손의 속도가... 빛의 속도다.

단축키+마우스 조합이 프로게이머인줄.


아무튼... 그 사진관을 나오며 든 생각은...

포토그래퍼 한명 섭외해서 사진관을 차릴까...


증명사진은 더 이상 빛을 이용한 기술이 아닌듯 하여 씁쓸했다.

진짜 내 얼굴을 잘 나오게 찍어줄 곳은 어디인가...

(아... 비싼 곳은 가능하겠지...)

우리 외할머니는 솜이불을 좋아하셨다.
물론 옛날에야 목화솜밖에 없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화학솜이 많이 나오고 나서도 외할머니는 목화솜요, 목화솜이불을 좋아하셨다.

어릴적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 늘 하는 집안일이 있었는데, 이불 홑창을 다 뜯어 빨고 다시 꿰매놓는 것과 장독 뚜껑 열어놓기.
그러고보면 우리 엄마는 이 분야에선 부지런하진 않았던 것 같다. ㅋㅋㅋ

그 이불 홑창을 꿰매려면 목화솜과 홑창이 따로 놀지 않도록 잡아줘야 하는데 외할머니는 항상 나보고 이불 가운데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가운데 앉아있다가 뒹굴다가, 이불에 수놓아져 있는 새가 진짜 99마리인지, 물고기가 정말 99마리인지를 세고 또 세었다.

외할머니집에 가도 할머니는 이불을 그렇게 뜯어서 빨고 꿰매셨다.
우리집에서와 다른 것은, 외가집에선 이불 홑창에 빳빳하게 풀도 먹였다는 것.

늘 빳빳하고 햇볕냄새가 나는 이불을 깔고 덮을 수 있어서 외갓집에 가는게 나는 엄청 좋았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평소 혈압이 높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젊은 나이에 쓰러지신거다.

신여성으로 늘 양장투피스를 즐겨입고 유치원에 할머니 초청하는 날에도 신식 구두를 신고 파마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오시던 우리 멋쟁이 할머니는 그 이후 거동이 불편해지고 밥도 늘 흘리고 먹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더이상 풀먹인 이불도 만날 수 없었다.


그런 우리 외할머니의 이불이... 약 7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를 거쳐 우리집에 왔다.

우리 애들도 깔고, 손님도 깔고 자던 목화솜요.


오래되어 솜을 틀어 새 이불처럼 깔려고 솜틀집을 찾고 또 찾았다.

인터넷에 많은 업체들이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외할머니의 소중한 이불을 아무데나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미연언니가 명랑솜틀집을 알려줬다.

네이버, 구글을 검색해도 후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블로그를 하는 요즘 세대들은 솜이불을 쓰지 않고, 솜도 틀지 않는다.

그래도 오래된 동네의 솜틀집이고 공장에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가져가려고 한다.


그 이불을 보내려고 주말에 요 커버를 뜯는데...

커버가 겉돌지 않게 한땀한땀 꿰매놓은 외할머니의 솜씨가 보였다.

첫 실을 뜯는데 망설였다.

이걸 뜯어야 하나...

뜯고 또 뜯는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이불이 겉돌지 않을 정도의 실밥.

그리고 외할머니가 즐겨하던 +모양의 중간중간 실매듭.

이불 가운데서 뒹굴던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기억났다.


실을 뜯다 주책맞게 눈물을 글썽거리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깔깔 웃으며 외할머니의 꼼꼼함과 엄마가 지겨워할만큼의 깔끔함에 대해 흉을 봤다.

엄마도, 나도 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엄마와 외할머니를 그리워 하는지.


우리 엄마는 나중에 죽으면 우리 애들에게 어떤 것으로 기억될까.

우리 애들은 무엇을 추억삼아 외할머니를 떠올릴까.


우리 외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다.






라은이는 외모는 나를 닮았지만 성격은 남편을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라은이를 보고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나의 그런 성격은 후천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굉장히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추고, 불편해도 참고, 이래도 저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편한게 내가 편한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불편하고 싫지만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맞다고 생각하면 싫어도 참는.

지안이의 성격이 나를 닮았다.

(조직의 논리로 나를 누를 때 상당히 많은 경우 나는 수긍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 일인데.)


아무튼,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둥근외모에 둥근성격으로 살다보니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는 일도 있었고 관계에서도 자꾸 치였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일이 많았던 가정사에 나는 더이상 둥근 성격을 가질 수 없었다.


사춘기 이후 나는 내 주장을 강하게 하고, 겉으로도 강해보이는 말투와 행동을 일부러 했던 것 같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고, 손해보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아무튼 그 이후에 대학에 입학해서도 계속 나는 모나게 살아왔다.
그게 내가 나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5년간 육아에 집중하면서 원래의 기질과 후천적 성격 사이에 내가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순간순간 고민한다.
어떤 마음이 진짜 나의 것인가.
어떤 판단이 진짜 내 생각인가.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이 더 가까운 나이에 뒤늦게 자아성찰을 하고 있는건...
오늘이 일요일 밤(혹은 월요일 새벽)이어서 그런거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명사진의 기술은 이제 빛이 아니라 포토샵  (0) 2016.09.07
외할머니의 솜이불  (0) 2016.06.07
사람의 성격은 변한다. 기질은 어떨까?  (0) 2016.02.22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인가.  (0) 2015.11.09
명절전야  (0) 2015.09.26
어른으로 살기  (0) 2015.08.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