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쩌면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건... 

2004년 가을, 나의 진로를 고민하며 토익점수와 학점을 평균으로만 맞추면 당시 우리학교 우리과 학생이면 눈감고도 들어갈 수 있다던 S전자 LCD공장을 포기하고 특이한 선택(돈벌이는 되지 않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일)을 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일런지도 모른다.


무슨얘기냐 하면... 결국 가치관의 문제인데.


지난 일주일간 나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북아현동에 있는 공동육아위탁 구립 어린이집에서 지안, 라은 모두 입소순서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2. 집주인이 처음엔 전세를 올려달란 자세를 살짝 취하더니 집을 내놓기로 결정했단다.


그리고 내가 처한 객관적 상황은 이러하다.

1. 지금 이 집으로 들어오며 이미 대출은 더이상 안된다.

2. 용산 아파트 전세가 2년차이 7~8천이 올랐다.

3. 3월에 라은이가 등원하기 시작하면 (공동육아어린이집이므로...) 조합비를 한달 대략 7~80만원 내야 한다. 현재는 3~40만원.

4. 나는 지금 구직 중이다. 이제 내가 안벌면 생활이 어렵다.

5. 공부한답시고 사이버대학에 등록금도 냈다.


한마디로...

이미 돈이 없고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저렴하고 교육관도 우리집과 맞는 구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고 때마침 이사도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미쳤는지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왜 가기 싫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 내가 찾은 답은...

1. 지금 우리 조합에 불만이 없다. -> 옮겨도 불만은 없을거다.

2.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다. -> 떠날땐 아쉽지만 거기 가도 좋은 사람은 생기겠지.

3. 많은 것을 개선하고 만들어 놓았는데 마무리하고 싶다. -> 나 말고도 능력자 많다.

4. 지안, 라은이에게 좋은 곳이다. -> 나들이는 북아현동이 훨씬 좋을거다. 모래놀이장도 있고 시설도 더 안전하고 깨끗하다.

5. 북아현동 동네가 맘에 들지 않는다. -> 마당딸린 주택에 가면 만족스러울거다.


아 뭐지?

나름 분석해서 찾은 답인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다 아닌거...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 몇에게 물었다.

내가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근데 왜 이 사람들... 왜 남는게 더 좋은거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지... -_-;;;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어려워서 답을 못냈으니까.

내가 여기 남는 것이, 이 조합에서 사는 것이 80만원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인지. 그걸 누가 답할 수 있겠나.

그래도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냥 마음가는대로만 선택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험해서... 나중에 현실의 어려움이 나를 덮쳤을 때 내 선택을 후회하거나 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외면하고 팽개치게 될까봐.


공동육아어린이집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만난 것 처럼 보여도 천차만별이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만났지만 아이를 위한 것이 먹거리인지, 학대당하지 않는 것인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인지, 생태교육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속에서 내가 '저는 이 공동체가 우리 아이들과 저에게 정말 소중해서 월80만원을 포기했어요.'라고 한다면 분명 정신나간 짓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밖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그런 얘길 하겠지만.

(아, 내 성격 때문에 직접 말해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일주일간 밤잠 설쳐가며, 그런데 중간중간 회의도 하며, 낮이고 밤이고 사람을 계속 만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의 이 행동을 두고 같이 사는 박씨는 '적당히 해라'라고 표현했다. 나도 안다. 내가 미쳤나보다.)

그러니까 나의 행동들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덜 후회하기 위해' 내 선택의 이유와 근거를 구축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얻은 답은 이렇다.

1.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2. 그렇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맞다.

3. 어차피 돈 때문에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돈 때문에 흔들리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은 남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내 삶에서 부의 축적이 목적은 아니므로... 그랬다면 공동육아 따위 기웃거리지 않았겠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안이와 라은이를 어떤 학교에 보낼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더불어... 생활고에 쪼들리지 않게 3월 적응기간이 끝나면 바로 취직을 하도록 애써야겠다.


긴 고민의 시간은 정말 괴로웠지만... (이사장 노릇 하는 것 보다 열배는 힘들었다... 정말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니 아주 홀가분하다.

이제 다시 의욕넘치는 나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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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의 블로그에서 완전 공감가는 글을 봤다.
http://kimso.tistory.com/entry/생활습관-혼란기

나도 김소따라 결혼전 생활을 보자면...

일단 집에오는 긴긴 길에 책이나 문건이나...텍스트를 읽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어서 재미있는 책은 하루에 한권 읽기도 한다.
(편도 한시간반 동안 반권씩 아침, 저녁으로 한권)
집에오면 가방놓고 씻고 나와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옷을 입었다.
그리곤 그 앞에 앉아 이런저런 글도 읽고, 글도 쓰고 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때론 누군가에게 메일도 보내고 하면서.
그리고 누워서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든다.
(아침 6시에 방에 불이켜진걸 발견하는 기분이라니...)

결혼하고 나선.
집에 오자마자 쌀을 씻어 앉힌다.
그동안 옷갈아입고 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를 들으며 찌개나 국을 끓이고 반찬 준비.
이미 결혼 1년 지난 나름 주부이므로 30분이면 대체로 밥은 다 차려진다.
쿠쿠의 밥짓는 속도와 동일하다. ㅋㅋ
남편씨와 밥을 다 먹고나면 남편씨가 설거지 하는 동안 난 TV를 켠다.
무심코 켠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덥잖은 예능프로를 보거나 아주 재밌는 다큐를 보거나 등등 십수개의 채널을 빛과 같은 속도로 돌리며 본다.
(아는 사람은 알거다. 남편씨의 리모콘 돌리는 속도를. 근데 이젠 내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느리지 않더라. ;;;)
그렇게 밍기적, 부비적 대다가 씻으러 간다.
(가끔 미리 씻고 부비적 대기도 한다.)
그리곤 침대로...가서 한 1-2분 수다떨다 잠든다.
(남편씨와 그 이상 수다떠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머리만 닿으면 잔다.)

얼마전에...결혼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고 좋지만 어쩐지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리고 남편씨가 좀 늦는 날에 예전엔 마냥 허전하고 심심하고 해서 몸둘바를 몰랐는데 이젠 책읽고 음악들으며 시간을 즐긴다.
지난 1년이 정신없는 삶이었다면 이제 나와, 공동의 삶을 둘 다 즐기는 삶이랄까.

근데 확실히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줄었다.
남편씨랑 둘이 사는데도 이런데... 나중에 애를 낳으면 어찌될지 두렵다. -_-;




아, 그리고 귀가시간...
여러사람에게 말한적 있는데.
오이도 살때는 숙대입구 11시45분(동대문운동장 11시36분, 사당역 12시00분) 막차를 타면 오이도 도착 1시.
그리고 집에가서 씻고 바로 자면 2시엔 누웠는데...
이젠 2시에 귀가하기도 힘들다 -_-
집은 무지무지 가까워졌는데 꼭 더 많이 자게되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다.
특히 모임날엔 3시에 자면 빨리 자는거고 5시반에도 자봤다. -_-
청년회 근처로 집을 얻은 것이 즐겁지만 괴로운이유다.
사람들이 놀러오는 것은 매우 기쁜데, 늦게 잠드는건 너무 힘들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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