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한동안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연말을 연말인지 모르고 연초를 연초인지 모르고 지나갔다.

(물론 육아에 치여 실감하지 못한 것도 있다. 달력의 날짜가 아가들에겐 무의미 하니까.)


그렇게 한달즈음을 보내고 있는데 어제오늘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몇 년 전과 맞닥뜨렸다.

모든 것의 출구가 보이지 않던 시절.

평생 그렇게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낼 것 같이 나를 감싸고 있던 무거운 기운들.


탈출하는 방법은 한방에 문을 닫고 모든 것을 끝내는 것과, 출구가 어디일지 모르지만 문을 찾아 조금씩 움직여 보는 것 두가지.

당시에는 내가 무슨 힘으로 움직였는지 깨닫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다 스스로 깨달았다.

책임감.

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힘들게 짓눌렀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빌어먹을 책임감이다.

내가 캄캄한 터널을 지나게 된 이유는 나의 먼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지만, 내 삶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건 책임감과 정당성 뭐 그런 도덕적인 것들 이었다.

(실제 도덕적인 인간도 아니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 삶을 돌아보고 내 과거를 떠올리게 되다니.

이상한 행운이기도, 기회이기도 하다.


여튼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엄청난 책임을 가진 자리에 있으니.

향후 십여년 간은...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듯 살아보는 걸로.

사실 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도를 닦아보는 걸로.

(이미 박지안에 의해 꽤 도를 닦았다...)


어둡고 긴 시간을 지낸 기억은 이제 곱씹을 때마다 나를 다시 살게끔한다.

힘든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슬퍼하고 잘 털고 잘 돌아오길.

그 시기가 추후 인생에 도움되는 시기가 될 터이니.



*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 그 말 진짜 싫었는데 나이 먹을 수록 그 말 만큼 변치 않는 진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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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의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한편으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의 무게가 느껴지는 일이다.

예전에 블로그에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도, 며칠전에도 내가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참내...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준단 말인가.

(요새 자존감 떨어짐)

 

내 비록 요즘은 육아일기가 쓰는 글의 전부이고 머리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쉽게 애를 재울까, 어떻게 애를 배불리 먹일까, 저녁엔 뭐 해먹을까 따위로 가득차있지만.

10여년 전의 나는 넘치는 에너지로 떠들고 다녔었나보다.

 

여튼...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아, 잘 살아야지.'

아주 대단하게 살진 못해도(대단하다는 것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찌질하게 혹은 그럭저럭 어쩔수 없이 삶을 살고 있진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영향을 받은 것 처럼 당연히 나 역시 영향을 받았다.

또한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선배들이 요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면서 끊임없이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왜 선배들은 졸업 후 가는 길이 딱 두가지인가'라며 불만을 가졌었다.

당시에는 학생운동 조직에 남거나 그냥 취직하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노동쪽으로 가고 보니 사회에 나와서 할 일이 얼마나 많고, 운동하고자 마음먹으면 갈 단체가 얼마나 다양하던지.

내가 졸업할 땐 그걸 보여준 선배가 없었다.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고)

 

요즘은 선배들이 어찌다 다양하게 살고 있는지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있는데 참으로 다양해서 '이렇게 살아야지' 싶기도 하고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모두들 소시민으로 사는 듯 하지만 마음속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저런 고민도 들고.

 

하여간 지금 생각해보면...

2001년에 애문연 생활을 시작하면서 형남언니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언니가 엄청나게 달변가이거나 마성의 매력을 갖고 있다거나 천재이거나 했던 것은 아니지만(ㅋㅋㅋ) 충분히 사람을 변화시켰고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어린 직선 후배가 길을 잃지 않고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깐.

그리고 언니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어서 나를 끊임없이 정신줄 놓지 않게 하고 있다.

(아마도 언니 바빠서 이 글 까지 읽진 않을듯. ㅋㅋㅋ)

 

잘 살아야지.

운동에 투신하거나 조직에 몸담아야만 잘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스스로 내 삶 자체가 당당하고 의미있다면 잘 사는 것이겠지.

지금 당장은 2달 된 아가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내 삶을 잘 사는 것이고, 28개월 된 지안이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겠지.

(요즘 박지안을 보듬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_-)

 

그래서 나는 오늘도...

2013년, 2014년까지 생명체 하나를 비교적 온전한 사람꼴로 만들어 놓고 2015년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나저나...

이 별거 아닌 글 하나 쓰는데 왜 이렇게 중구난방이며, 왜이리 비문 투성이냐...

일부러 정기적으로 글을 써줘야 하나... -_-;;

뭔가 딱 떨어지는 글이 아니라 쓰고 나서도 꺼림직한 글일세.

출산 후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이라고 치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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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자다 깬 지안이를 달래서 재우다가 든 생각들...

분명 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허나 그러기 위해선 분명 부모(주로 우리나라에선 엄마)는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가치있는 일인데... 쩝.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 사람을 만드는 엄마로서의 나 중에 어느 한쪽이 더 의미있다 할순 없는 것.
아마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겠지...

현재는 엄마에 충실하되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누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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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뭘 경험해봐야 그것에 대한 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험은 중요하다.
특히 육아와 생활 등 아주 일상적인 것일 수록 더욱.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눈으로만 보고 '힘들겠어요'하고 말하는 것과 내가 당해보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저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일엔 부모의 무한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내가 직접 기르는 것이든 기르기 위한 돈을 버는 것이든.
그래서 난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 말하는 육아, 교육정책은 믿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이 결혼해서 서울시내에 집을 구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특히 '내집장만'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이 나올리가 없다.

그 뿐이랴.
주머니에 만원짜리 몇장 찔러넣고 장보러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도 전혀 와닿지 않는다.
빚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서민들의 부채를 해결할리도 없으며, 돈 때문에 병원에 못가본 일 없는 사람이 무상의료가 왜 중요한지 알 턱이 없다.

미혼남녀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결혼하지 않아 평범한 가정을 꾸려본 적도 없고, 그에 따라 집에서 생기는 보이지 않는 남녀불평등이 뭔지도 모르며, 자식이 없으니 사람 만드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물론, 박근혜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늘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생활고가 뭔지,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나.
같이 사는 남자가 어제는 갖다 버리고 싶을 만큼 얄밉다가도 오늘은 너무 예뻐죽겠는(그러다가 내일은 정말 죽이고 싶을지도 -_-) 평범한 기혼여성들의 마음을 어찌 알겠느냔 말이다.
그게 아니면 미혼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불편함이나 외로움이라도 겪어봤던가...-_-

여성대통령같은 소리 한다.
여성으로서의 억울함을 당해 볼 경험도 없었던 주제에.
(가장 쉽게 밤에 택시 타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면서!!!!!)

삶을 살아봐야 사람 구실을 한다.
사람구실도 못하는데 대통령 구실을 할리가 없잖은가.

 

근데... 생각해보니 지난 5년간 우린 안해본 것 없는 대통령 때문에 피곤했구나...

역시 사람은 적당히 해봐야 하는 것인가. -_-;;

사찰당한다는 것이 아니라...ㅋㅋ(시국이 시국인지라...)

2004년도에(맞나? 2003년도인가? 아...어쩌다 내 기억력이 ㅠ_ㅠ) 내가 정말 예뻐하던 한 새내기가 나에게 글을 남겼다.
언니가 멋있고 언니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그 친구는 자연대 새내기였는데 율동패를 조금하고 한학기를 다니다가 재수를 마음먹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잘키워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ㅋㅋ)

그리고 오늘 내 방명록에 남겨진 비밀글.
그당시 들었던 얘기들(지금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졌을, 아마 아주 허접했을 교양들 ㅋㅋ)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본인은 아주 달랐을 거란 말.
그래서 고맙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2000년이나 2004년이나 내가 부족하고 허접하기는 매한가지였으며 지금도 그리 많이 발전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그들이 최근 나의 삶을 보며 '아, 저 선배는 역시 이런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라며 좋게 생각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다시금 긴장하게 한다.

대학시절 운동한답시고 뛰어다닐 무렵.
정말 멋진 선배들도 많았고 존경하는 선배도 있었다.
(물론 '뭐 저런게 운동판에 있냐'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졸업하고 세월이 지나 지금 그들을 보니... 학교때 말했던 것들이 다 뻥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돈벌기'가 목표인 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이름을 알리진 못했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사는 것.
그게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닐까?
지켜보고 있다.
후배들이, 벗들이.
어디에선가, 언제라도.

시간을 공유했던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삶을 똑바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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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밤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

내가 실려가보기도, 다른 이를 데려가기도 했었지만 오늘처럼 생생하게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곳'이란 너무 뻔한 말이, 왜 그런 뻔한 말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지 알게 됐달까.

분명 우리가 응급실을 갔을때 의식이 있던 그 아저씨.
심지어 가족들과 대화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고 오셨던 그 아저씨는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섞여 나오더니 급기야 핏물로 그르륵 소리를 내며 "아빠 왜그래"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별별 약물이 다 투여되다가 의료진들 사이에 석션, 삽관 등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단어들이 난무하더니 응급실하면 딱 떠오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심장마사지를 하며 땀을 흘리는 의사.
그리고 뉴하트에 나왔던가...김민정이 서울에서 목포까지 손으로 호흡기를 눌러주며 호흡시키던 장면.
그런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아저씨의 부인은 오늘따라 처량해 보이던 루이비통 가방을 내팽개친채... 꽤나 놀아서 부모 속 좀 썩였을 것 같은 아들의 품에 안겨 울음을 토했다.
눈시울이 붉어진채 엄마를 안아주던 아들은 아마 철들고 난생 처음으로 엄마를 안아봤으리라.

그때까지 환자의 아픔을 호소해도 시큰둥하며 반응조차 없던 의사들 사이에 무표정함 너머로 긴장감이 비쳤다.
그래, 그들이라고 감정이 없을수 있으랴.
환자의 목숨이 손끝에 걸린 심장마사지를 하던 의사의 표정.
사람이 이렇게 단시간에 집중하는 표정을 지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간호사들의 표정과 손놀림.

문득 하루전날 밤 "이제 싸우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거든..."이라 말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삶과 죽음을 수없이 체험하는 그들은 얼만큼의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갈까.
그 무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옆침대 아저씨의 어린 딸은 이미 의식이 없는 아빠에게 자기가 보이냐고 물으며 울음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고, 그의 친지들은 한달음에 검은옷을 입고 달려왔다.
내과전문의 허준 선생은 그의 가족들에게 혈액내 염도가 너무 높아 이미 위험하고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며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얘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결국 그 아저씨는 중환자실로 옮겼고 응급실에는 긴박함 대신 왠지 모를 허탈함이 감돌았다.

3월 30일 새벽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
나는 그곳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두고 시어머니와 함께 용산을 거쳐 공덕동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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