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이 오는 날이다. 저녁에 도착하는 비행기라서 하루종일 집 근처에서 놀다가 저녁에 데리러 갈까, 제주시내에 나가서 놀까 고민하다가 제주시내로 정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걸 찾던 중 옛 대통령 제주공관을 이용해 만들었다던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에 가는 것으로 큰 일정을 잡는다.

세부일정은 아침나절 적절한 게으름을 부리다가 점심먹고 선흘분교 근처에서 봉숭아도 따야하고, 시내에 나가 도서관에서 놀다가 머리에 실도 감아야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한살림에서 시리얼과 된장국 등을 사서 공항에 가면 아주 적절한 8시30분 도착 계획. 갈 곳들의 서로의 소요시간을 검색해서 순서대로 잘 배치했다.

꿈바당어린이도서관은 출입문부터 청와대스러웠다. 대통령 공관이었으니까... 들어서마자 이 터의 역사를 알려주는 돌이 나오는데 84년에 전두환이 착공한 건물이란다. 햐... 이것 봐라... 뭘 얼마나 해쳐먹으려고 제주에 집을 지어? 이용 횟수는 전두환 2회, 노태우 5회, 김영삼 4회. 그 이후에는 도지사 관사로 쓰이다가 게스트하우스를 거쳐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시설은 참 좋았다. 전체가 산책하기에 좋게 꾸며져 있었고 건물 안도 청와대스러운 마감이 되어 있다. 책의 배치나 청결도도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흥미진진 팝업북이 많았다. 물론 팝업북의 특성상 훼손이 꽤 되어 있었지만 색감이 좋은 외국 팝업북을 펼쳐보는건 참 재밌는 일이다. 

이후 계획된 일정은 아주 착착 진행됐고 저녁밥으로는 간짜장이 유명한 유일반점으로 낙찰. 주문이 밀려 20분 정도 기다려서 먹었는데 용산 신성각과 비슷한 맛이었다. 달지않고 담백한 짜장의 맛. 그리고 면도 아주 보들보들하고 쫄깃한 면. 군만두에 짬뽕까지 시켜서 깔끔하게(?) 마무리.

그런데 음식의 맛과 별개로 큰 깨달음이 있었다. 그간 나는 아이들과 식당에 가는 일이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건 우리 아이들이 잘 기다려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떠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주위를 분산시킬 무언가를 찾아 적절히 해소시켜줬다. 그런데... 비오는 날 제주의 현지 인기 중국집에 앉아 생짜로 20분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애들은 좀이 쑤셨고 떠들었고 나는 그들을 말릴 에너지가 없었다. (4시 무렵 부터 비가 와서 시내 길도 막히고 운전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너희들... 옥토넛 탐험대 볼래?"라고 물었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15분 가량 평화가 찾아왔다. 아... 영상물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나는 왜 3주간 그렇게 고생을 했던가... 그동안 엄마말을 비교적 잘 들어주어 고맙다 얘들아.

진짜 고난(?)은 사실 식사를 하던 중간에 일어났다. 김포에서 비행기 출발지연. 헐... 내가 오늘 어떻게 짠 동선이고 어떻게 맞춘 시간인데 지금 장난하나... 집으로 돌아가서 쉬면 30분 정도 쉬었나 나올 수 있는데 집에 갈까 열번쯤 고민했지만 비오는 밤이었다. 아... 그냥 공항으로 가자... 공항에 도착한 시간 정확히 8시 30분. 이런 망할 대한항공... 완벽한 동선이 너 때문에 무의미해졌다고!!!!!!!!!!!!!!!!

아무튼 공항에서 1시간 10분을 더 기다려서 이산가족 상봉. 3주만에 만나는 당신 반가워!

청와대스러운 대문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치적 중립 서가
진짜 배가 튀어나오는 느낌!
"아빠 발 보여?" "아빠 대체 언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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