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와서 나의 정체성을 자꾸만 확인한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집에 있기로 마음 먹은 날. 오전에 빨래도 두 번 돌리고 애들 광장에서 놀 동안 잠시 장도 봐오고(맛있는 빵과 반찬, 그리고 복숭아를 왕창샀더니 기분이 매우 좋아짐) 집에서 점심 먹고 낮잠자고 저녁도 집에서 먹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더니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그렇다. 
나는 집순이였다.
밖에 나가 지치고 힘든 몸을 끌고 들어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콕 박혀 먹고 자고(때론 귀찮아서 먹지도 않고) 책보고 영화보고 음악듣고 뒹굴뒹굴뒹굴뒹굴하면 충전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너무 신난 나머지 나도 잊고 내 체력도 잊고 칠렐레팔렐레 놀러다녔더니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질뻔한 상황까지 온 거다. 정확히는 사이가 나빠지는게 아니라 방치겠구나...

원랜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빌려오고 하려고 했는데 마침(?) 낮잠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주룩주룩. 비예보가 전혀 없던 날인데 비가 오는걸 보니 역시 제주날씨는 일기예보가 무의미하다.

둘째녀석이 아침부터 눈이 가렵다고 해서 보니 다래끼가 나려고 했었던지라 안과에 다녀왔다. 6시반까지 진료하는 병원이라 6시에 접수 마감일테니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는데(병원까지 8킬로) 6시5분... 매정한 간호사에게 최대한 불쌍해보이도록 사정해본다. 서울에선 이런 일엔 자존심도 있고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쿨하게 돌아섰을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 진료시간이 6시반이라 마감인건 알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지금 20분 넘게 걸려서 겨우 왔거든요. 조천읍에서 온거라... 한번만 안될까요?" 
오늘 나의 의상도 한몫했는데 다리에 일광화상을 입어 너무 화끈거리고 아팠기에 인견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바지의 비주얼은 고쟁이에 가까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어필이었는지, 사연 어필이었는지, 패션 어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간호사가 접수를 해주는데 주민등록상 주소를 적어야 한다. 음... '서울시 XX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서울사람이라고 물르진 않겠지. 에라 모르겠다.

약을 한봉다리 타서 집에 도착. 호박, 양파, 버섯, 두부 잔뜩 넣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에 슥슥 비벼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하루를 마무리. 애들도 흡족 나도 흡족. 별거 아닌 된장찌개에 이토록 찬사를 보내는 우리 셋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집밥이 주는 매력이, 힘이 있지. 

충전 잘 했으니 내일은 제주오일장 가야지! 신난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서 사진도 없는 포스팅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김녕성세기 해변에서 바지가 홀랑 젖는 바람에 아쉽게 집에 돌아온 둘째는 눈을 뜨자마자 바닷가 타령이다. 그런데 아침에 날씨가 너무 쌀쌀했다. 마을 광장에 아무도 나와 놀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오후에 날이 따뜻해지면 가자고 달래놓았는데... 그래도 입이 댓발 나왔다.

그러던 중 날이 점점 미지근해진다. '오, 이런 기세면 오후엔 덥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자!"를 외치고 이것저것 채비해서 나선다. 두번째 바다행이지만 역시 어른 혼자는 버겁다. 짝꿍과 있을 때는 나는 짐을 싸며 여러가지를 지시하고 그는 몸을 움직이면 됐다. 하지만... 내가 짐도 싸고 내가 몸도 움직이고 내가 잔소리도 해야하는 삼중고. "바다 가고 싶어? 그럼 이거 해야해."를 백번쯤 말한 뒤에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나도 수영복을 입고, 새로산 팝업 텐트를 개시하는 날이었다!(무려 제주로 배송!) 차 출발 직전 어젯밤 검색해두었던 김밥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넣고 김밥집으로 출발.(깁밥 싸는 시간과 출발시간을 맞춘 이 피곤한 인생...) 김밥집에 정차 3분만에 수령, 김녕성세기해변으로!

도착한 김녕은 역시 한산했다. 함덕에서 느낀 돗데기 시장 느낌도 없었고 매점도 달랑 하나, 해변가에 무수한 상업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캬... 파라솔은 낡았고 대여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아이 좋아... 당당하게 텐트를 펴고 자리를 잡고 김밥부터 와구와구. 마음이 급한 첫째는 거의 쑤셔넣다시피 먹어서 체할까봐 걱정될 정도였고 밥먹기 느리기로 소문이 자자한 둘째도 빨리빨리 오물오물 먹고 모래로 가버렸다. 돗자리 하나 안깔린 해변에 혼자 당당히 텐트를 꺼내 앉아있노라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살짝 걱정이 됐었는데 역시 첫댓글의 중요성... 옆에 나란히나란히 텐트가 펼쳐지고 돗자리도 쭉쭉 깔린다.

녀석들은 제주 해변의 모래질 연구에 나선 사람들처럼 모래를 파고파고 또 판다. 함덕에서는 사람들 기세에 눌려 쭈구리처럼 잘 못파더니 김녕에 오자 아주 자신있고 대범하게 토목공사에 나선다. 이것이야말로 대운하...

토목공사를 마치자 슬슬 물로 들어가본다. 수심이 얕아서 가도가도 다리가 다 잠기지 않을 정도의 바다. 첨벙첨벙 거리다가 첫째 녀석은 소라게 발견!!! 그때부터 시작된 해양생물 탐구는 두시간도 넘게 이어졌다. (지질학에서 생물학으로 옮겨감)

나는 텐트로 돌아왔는데 왔다갔다한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돌아오지 않는다. 텐트에서 너무 지겨워서 잠깐 졸기도 하다가 '내가 여기서 읽으려고 책을 가져왔었지...'하고 후회를 했으나... 애 둘과 이 많은 짐(옷, 신발, 수건, 모자, 썬크림, 먹을거)을 챙겨나오면서 책을 빠뜨린건 어쩌면 당연하단 생각도 들었다.

너무 지루해서 바다로 나갔다. 둘째도 따라오고 우리 둘이 재미나게 노는 것 같아보이니 첫째도 따라온다. 수영복을 입고 나서긴 했지만 해수욕 마무리를 시킬 생각을 하니 아득해져서 나는 허벅지까지만 담갔다. 그런데 이 대범한 녀석들... 엄마를 떠나 멀리멀리 다른 아저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간다. 깊이로 따지면 어린이들 허리 정도의 깊이지만 거리로는 아주 멀었는데... 본인들의 모험과 성공이 그렇게 재밌고 신났는지 몇번이고 나한테 왔다가, 멀리 갔다가를 반복한다. '아 아쉽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 지금만 사는 사람이었으면 내 삶이 더 즐거웠을까...'등을 생각하며 고뇌에 잠겼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멀리서 손을 흔들어줬다. (이때는 몰랐는데 고뇌에 잠기는 동안 내 뒷다리는 일광화상...)

점점 쌀쌀해지는 4시 언저리. 철수할 시간. 사실 이 과정이 하기 싫어 바다에 오기 싫다. 모래덩어리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래를 털고 신발을 씻고 옷을 벗기고 모래를 털고 옷을 입히고 젖은 옷을 챙기고 닦았던 수건을 챙기고 젖은 신발을 챙겨서... 집에 오기. 몇번 욱하는 고비가 있었지만 오늘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지. 몸은 고된데 뿌듯하긴 했다. 돌아오는 길 해안도로에 있는 멋진 카페에서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고 싶었지만... 참자. 너네랑 가봤자 시끄럽고 돈 아깝다. 나중에 혼자 와야지.

집에 돌아와 간식먹고 목욕하고 보니... 나도 첫째도 다리에 일광화상을 입었다. 둘째만 긴바지 래쉬가드. 그리고 셋 다 발등에도 화상. 잠시 집에서 놀고 있으라 하고 후딱 함덕 올리브영에 가서 알로에겔을 사왔다.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사실 제주 도착 첫날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하루종일 내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다. 아이들과의 시간, 나만의 시간이 확실히 분리되는 것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제주에 한달 살러 와보니 아이들과의 시간은 서울보다 몇 배 더 즐거운데 내 시간이 없다. 아이들끼리 잠시 노는 시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근무 중 대기시간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근무시간이란 얘기다. 지금 몸이 쉬고 있어서 휴게시간 같지만 언제 고객이 올지 모르는 마트 계산대의 캐셔같은 위치. 잠자는 시간 빼고 내 시간이 없는 5일이 너무 힘들었다.

이걸 왜 갑자기 오늘 깨달았냐고?
올리브영에 혼자 출입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문에 치이지 않게 잡아줘야 하는 동행인이 없고, 주차장에 차가 올까 두리번 거리며 "손잡아!"외치지 않을 때도 깨달았다. '아... 좋다...' 서울이 널리고 널려 발에 채일 것 같은 올리브영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뒷자리가 고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오는데 귀가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내가 필요한건 이거였구나.

무계획으로 살아보는 숙제에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되 완벽히 분리되어 나만의 시공간을 구축하는 방법 만들기.
제주에 온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분명 아니었다. 닷새를 아이들을 위해 살았더니 삶의 질이 하락했다. 이제 나를 위해 움직이겠다!!!!!


아는 사람은 아는데... 나는 아주 계획적이다. 그 이유는... 계획이 있는 것이 나를 마음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계획이 안지켜져서 때론 괴롭기도 하지만 계획이 없어서 느끼는 괴로움보다 어그러지는 괴로움이 작다. 게다가 어그러질 것에 대비해여 계획을 여러개 세우기 때문에 보통은 예상범위 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된다.

그런데... 제주에 오면서 세웠던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었거니와... 무계획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다음날 오전 일정과 밥먹을 장소를 검색하고 있다. 그게 내 마음의 안정을 주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살아봤다. 물론 큰 동선과 일정은 존재했지만, 네비게이션의 목적지 없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거나(애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할 수 있었다) 가다가 궁금한데에 정차해서 충분히 둘러본다거나(이것도 만족도 높음) 이런 일들. 아주 조그만 변화였지만 즐거웠다. 한달을 이런 순간들로 채워나가야지.


한달 사는 동안 이 마을에서 요가 클래스가 있다기에 신청했다. 요가라니 대체 몇년만인지...
필라테스도 하는 몸이니 요가쯤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아주 난이도 있는 동작들을 시키는 바람에 온몸이 당기고 쑤셨다. 엄마가 요가하는걸 창문너머로 본 꼬맹이들은 신기해했고 이런 모습을 보는게 참 좋구나 싶었다. 엄마 역할 말고 엄마의 (너희들이 없는) 일상.

집에서 점심을 차려먹었다. 반찬은 소시지였는데 난 귀찮아서 택한 메뉴, 애들은 너무 좋아하는 메뉴여서 윈윈.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조기구이... 짐을 싸면서 생선용 밀폐용기을 챙겼다. ‘내가 무슨 생선을 거기까지 가서...’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보내놓고 후회했는데 도착 첫날 마을 할머니께서 애들이랑 튀겨먹느라며 세마리 주고 가셨다. 통 없었으면 어쩔뻔... 선견지명인가.

제주 와서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활동량이 서울의 2-3배인데 잠을 안자니 둘째는 확실히 짜증과 슬픔이 늘었다. 첫째는 피곤하니 동생을 놀린다. (무슨 마음이냐 이놈아) 2시간 가량 자니 둘다 온순해져서 나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 이제 낮잠 자주 자야지!!!

오후 일정은 동문시장. 구경도 하고 반찬거리 등등을 사러갔는데... 좀 실망. 군것질꺼리도 애들이랑 먹기엔 적절하지 않았고 반찬가게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깻순나물, 달걀말이를 샀다.) 오메기떡과 천혜향쥬스, 귤, 백설기 등을 사서 마무리. 둘째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시내에 나간김에 한살림도 들렀다. 꼭 사려던건 씨리얼이었는데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곰국도 사고 뭘 많이ㅜ샀다. 근데 한살림 있는 동네... 되게 비싸보이더라.

아무튼 귀가하여 고기가 먹고싶다던 둘째의 소원을 들어주려했으나... 애들은 물총놀이에 홀려 저녁은 대충 옥수수랑 떡으로 때우겠다며 앞마당에서 놀기 시작했다. 체력이 고갈된 나도 뭐 나쁘지 않았다. 밤산책까지 하고 긴긴 하루는 마무리.

함덕에 내가 몇번째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첫째 녀석 18개월에 함덕 잔디밭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던 기억, 둘째 네살/첫째 여섯살에 캠핑카라반에서 하루 잔 기억이 있는 곳이다. 다행히 두 녀석 모두 캠핑카에서 잔 기억은 가지고 있어서 해변을 기억하는 것 같진 않지만 왠지 반가워해줬다.

둘째날이라 아침에 나는 아주 뭉기적 거리고 있었고(첫날 너무 힘들었어...) 애들은 새 집과 마을 구석구석을 익히고 노는 중이었다. 물론 둘만의 놀이도 제주집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그래서 느즈막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함덕해변 앞 해녀김밥집에서 전복김밥을 먹고(맛있었는데 가성비는 좀...) 해변에 나갔는데 글쎄... 6월 말인데 해수욕장 개장! 게다가 사람도 많아!!!!

사람들과 파라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돗자리를 주섬주섬 깔았고, 애들은 모래 삽을 들고 모래로... 터전에서 갈고 닦은 삽질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땅파기에 돌입. 열심히 파고파고 또 팠는데 안타깝게도 밀물이어서 나중에는 물에서 놀았다. 둘째는 용감하게 튜브타고 싶다고 했고, 내가 수영복을 입지 않아 다음에 수영복 입고 같이 튜브타고 놀기로 했다. 내가 수영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까지 본격 해수욕 시즌인지 몰랐지;;;

그렇게 낮에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왔더니 저녁차리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3분짜장을 데워 먹었다. 저녁을 먹다 문득, 평소보다 두세배는 움직이는 우리가 평소보다 절반 정도만 먹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야 괜찮지만 애들은 영양실조 되는게 아닌지... 노는 에너지를 조금 아껴 먹는데 사용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은 둘째날이었다.

(글의 제목을 쓰고 도착한 날의 비를 떠올리다 보니 도착하자 마자 벌어졌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건 마지막에 쓰겠다. 기록의 중요성...)

결혼 후 제주도에 올 때마다 비오는 날이 늘 있었고(아닌 사람도 많던데...) 6월말이 장마 시작이라 비가 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비오는 것 자체가 불편하거나 하진 않았다. 예측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애들 둘과 어른은 나 혼자인 상태로 비오는 제주에 도착하는건 부담스러웠다. 당일 가져갈 짐을 최소화 하느라 최대한 짐을 미리 차에 실어 보냈지만 그래도 짐은 있었고, 짐이 가득 실려있는 차를 빗길+초행운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한달 살 집에 도착했고 팔 힘이 없는 내가 혼자 한달치 짐을 비를 맞으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서 짐을 다 옮겼다. 아이들은 엄마를 열심히 도왔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가벼운 짐 몇 개였고 큰 상자와 큰 캐리어는 내가 다 옮겼다. 내가 이렇게 힘이 센 사람이었나 의아할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며 '이런게 엄마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짐을 반 정도 옮겼을까... "엄마, 나도 물총놀이 해도 돼?"
앞마당을 보니 아이 두 명이 물총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걸 보니 새로 산 물총을 가져온 아홉살 녀석은 마음이 동했던 것. ㅋㅋㅋㅋ "그래~ 몸 다 젖을텐데 그 옷 입고 해도 되고 수영복 입고 해도 돼~"라고 하니 깔끔한 이 녀석 수영복 위치를 묻고 주섬주섬 갈아입는다. 중간에 엄마랑 오빠를 잠시 놓쳐 울고 있던 일곱살 녀석도 눈물을 훔치며 슬슬 수영복을 찾는다. 그래그래, 이렇게 비와도 잘 놀려고 여기 온건데. 나도 신난다.

 

+ 잊고 있었던 우여곡절 1

우여곡절이라고 하기에도 어이없는 대사건이었는데... 차량을 탁송으로 보냈다. 한달 전기차 렌트를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한달은 렌트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고 장기렌트(리스)를 알아봤는데 거긴 전기차가 없고... 아무튼 전기차의 메리트(기름값 없음)를 느끼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일반차 렌트도 거의 탁송가격이랑 맞먹는지라 그렇다면 우리집 차로. 특히 렌트는 완전자차로 하면 가격이 아주 높이 뛰어버려서... 아이들과 맘편히 다니려고 차를 배편으로 보냈다. 짐도 가득 채워 보내니 택배 보낼 일도 없고.

그런데.... 추적추적 비내리는 제주공항에서 애 둘과 짐을 데리고 차를 받으러 갔는데 우리차가 아니다?
간만에 성격나옴.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50분 더 기다려 내 차를 만났다.
열받은 상세한 얘기는 생략하겠다. (감정이 살아나는거 원하지 않음...)

 

+ 잊고 있었던 우여곡절2

1에 비하면 아주 별거 아닌 얘기.

가려고 봐뒀던 식당을 헤매헤매 찾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점심영업 마감...
비가 오니 식당 찾기도 어렵고 애들이랑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어서 고생 좀 했네.

제주한달살이의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기록은 남기면서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아주 오래 뒤 잊었던 당시의 생생한 느낌을 떠올릴 수 있게 하니까. 내 생애 다시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시점마다 되도록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편이다. 에버노트에만 올려놓고 마무리 되지 않아 올리지 못한 남미여행기가 있긴 하지만.... ㅠㅠ

그래도 제주의 기록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이라 더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라...

 

시간 순서대로 올리려다가 때를 놓칠 수 있으므로 그때그때 그냥 생각나는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여행계획을 plan B, plan B', plan B''까지 세우는 내가 무계획으로 한 달 살아보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있고, 아이들도 팽글팽글 신나게 놀아보는 경험을 하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초등 1학년을 위한 육아휴직 본격 2개월차.

(그런데 사실 진짜 휴직자로서 온전히 시간을 보낸건 3주차에 접어드는 것 같다. ㅠㅠ)


휴직 1-2주차엔 토실군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겠단 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해 집에 와서 장기도 두고 오목도 두고 했지만... 매번 짜증으로 마무리됐다.

내가 그렸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ㅠㅠ

3-4주차엔 그 짜증의 근원이 뭘까 고민했고 몸이 힘들어 짜증을 내는 것 같아 일찍 재웠다.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자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듯 했으나 다시 시작된 짜증.

그럼 이건 뮈지...


내가 이러려고 육아휴직을 냈나 자괴감이 들 무렵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매주 수요일 방과후로 배드민턴을 하고 오는데 그 날은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온다. 그리고 돌봄교실에서 운동하고 온 날도 신나게 집에 온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집에 오는 길 뛰어 놀기.

나는 할 일이 거의 없고 넓은 공터나 놀이터에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물론 엄마아빠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쉬운 일)

단 10분이라도 놀고 들어온 날은 훨씬 더 평온하고, 뛰어놀고 들어온 시간이 길 수록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다는 4-5주차의 교훈을 얻고 남은 육아휴직 기간 되도록 조금 일찍 가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재밌고 신기한 새로운 것을 배워도 여덟살 아이들이 좀이 쑤시는 걸 참고 한 자리에 앉아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시간,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에게 내가 힘이 되는 선에서 충분히 놀 수 있게 도움을 주는게 지금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충분히 놀고 쉬어야 인생이 즐겁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도 충분히 놀고 쉬어야지!

오늘 최고로 게으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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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부터였을 것 같다.
엄마가 홀로 경제활동을 하며 가장노릇을 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치킨집.

나는 엄마가 치킨집을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본인 친구들에게도 (당연히) 전혀 알리지 않았고, 내게도 친구들에게 그런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도 이해는 했고, 지금도 이해한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
날 때 부터 부자집 큰딸로 자라 결혼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뭔지 모르고 살았던, '사모님' 소리만 듣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치킨집 사장이라니.

아무튼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자존심을 나라도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낮에... 참으로 힘들고 끝이 없을 것 같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 길을 지나는데 재밌게도 그 자리엔 아직도 치킨집이 있었다.
치킨이 잘 팔릴 것 같은 위치는 정해져있는건가. ㅋㅋㅋ
근데... 나름 '청담동' 치킨집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뭐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심지어 결혼하고나서도 남편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던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ㅋ
나에게도 그때가 어찌나 즐겁지 않은 시절이었는지... 삼성동에 살던 시절 내가, 내 생활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와 만나 마주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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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날짜가 지나서 그제이긴 하지만) 이명수 선생님의 북콘서트 - 제목은 이명수/정혜신/김제동의 삼색토크 - 를 다녀왔다.

업무 반 자의 반으로 간 행사였는데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 제목과 당일 이야기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크게 깨우친 대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을 보라. 이 사람의 개별성에 집중하라."

사실 정혜신 선생님이 들었던 예는 딸이 클럽가서 놀다가 아침에 들어와도 꼭 데리러 나간다... 는 얘기였다.

그게 자식일 때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으나(우리집 애들은 7세 5세...) 남편으로 치환해보면 진짜 말이 안되는 얘기다.

상상만으로도 빡치는데 본질이라니.

그 사람의 개별성이라니.


아무튼 (때마침) 오늘 그는 술을 마셨고...

얘기를 한참 하다가 내가 싫어하는 대화패턴에 들어섰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그 때 대체 저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너의 개별성에 내가 집중해주마 마음먹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더 해봐야지.


그리고 어제 얘기중에 크게(?) 반성했던 대목은.

이명수 선생님이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10년째 주말마다 냉면집에 같이 가준다는 대목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짝꿍은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가자면 늘 간다.

반대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자발적 자상함과 표현하는 따뜻함이 없는 그가 나는 늘 불만이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 줄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늘 메뉴를 정할때 의견을 내지 않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걸 맞춰준거였다.

그는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는 취향도 없고 귀찮아서 그런거지'라고 나의 잣대로 평가했다.

아... 깊이 미안해진다.


10년간 살아보니 괜찮은 구석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의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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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첫째의 영유아검진이 있었다.

양쪽 눈 시력차가 꽤 커서 안과검진을 받아보라고 해서... 어제 안과에 갔다.


1.

시력검사.

생각한 것 보다 시력 차가 더 커서 한쪽눈이 약시가 생겼다고 한다.

한쪽 눈이 덜 보이니 잘 보이는 눈 시신경이 더욱 발달하고, 덜 보이는 눈의 시신경은 점점 일을 안하는 것.

사람의 몸은 참 대단해.


아무튼 그래서 시력교정(그 차이를 줄이는 것)을 위해 안경을 써야 하고, 가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안경은 덜 보이는 눈을 잘 보이게 해서 그 눈을 더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가림치료는 잘 보이는 쪽 눈을 가려서 덜 보이는 눈을 한동안 많이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안경을 쓰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야 한다.


일곱살에 안경이라니.

그리고 안경을 앞으로 평생 써야 하다니.

30년 넘게 안경을 쓰고 싶었지만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쓸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모두 시력이 좋아서 우리 아이가 눈이 나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들이 다칠거나 불편해질 리스트에 다리나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다든지, 어디가 찢어진다든지, 치아 교정을 해야한다든지 이런 경우의 수는 있었지만 정말 한 번도 안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림치료라니.

눈 한쪽에 계속 뭘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애들이 놀리지는 않을지, 불편해서 온갖 짜증을 남들에게 부리지는 않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

색각검사.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갈색, 회색을 비슷하게 본다는 것은 이미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 질문에 표현력 좋은 우리 아들은 그 색들이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 설명했고, 그 설명을 통해 '아, 이 아이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하는 바로 그 검사 카드.

동글동글 버블무늬의 바탕에 버블무늬로 이어진 숫자를 읽는 그 카드를 같이 봤다.

나와 같은 숫자로 읽는 카드가... 단 한 장도 없었다.


아이가 색각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내 눈 앞에서 전혀 다른 숫자를 읽고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없다고 말하고 내 눈에 빈 카드에서 숫자를 읽어내는 것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이상의 아픔이었다.

'네가 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네 눈에 보이는 색은 온통 회색이기도 하고 그 회색 안에서 차이를 느끼기도 하는구나...'


3.

내가 지금 너무 속상한 것은 시력 자체가 낮아서도 아니고, 특정 색을 감지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을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경을 쓰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1도 알지 못하고, 색 인지능력이 남들보다 높은 나는 일부 무채색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가진 너에게 내가 어떤 것을 해줘야 할지, 그걸 모르겠다.

그게 가장 나를 아프게 한다.


더 큰 불편함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고작 이 두개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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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지 몇주째...
마음에 들지 않는 몇개의 집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세시쯤 왔는데 애들이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고 놀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니 이 시간이 되도록 애들이 점심도 안먹고 있는게 말이나 돼?"라고 버럭 말했다.
(사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물론 애들은 늦은 오전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진 않았겠으나 점심은 언제 먹고 낮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화가 났다.

그렇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애들은 낮잠을 잤고 엄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곤 엄마는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서운했노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길 "보임이도 집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예요. 집도 잘 안구해지고 속상하니까 그랬죠.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화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

2년마다 반복되는 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실 그것은 '집'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집을 얻을 경제력의 부재'에 대한 스트레스다.
2년에 7~8천만원씩 오르는 전세를 당연히 부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그런 사이클을 살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왜 그런지도 잘 파악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좋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
잘 알아주지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차라리 둔한 남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10년만에 깨달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구나.'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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