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난 이유가 없는 건 아니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건데 오늘이 그렇다.

 

일어난 일은 이렇다.

오늘 원래 저녁에 세희씨랑 미나를 만나기로 했었다.

언론노조에서 이래저래 정이 들었던 언니동생들.

지금은 미나만 남았지만 간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5시 50분 걸려온 남편씨 전화.

갑자기 본사에서 보자고 해서 늦을거 같다며 정말 미안하다는 얘기.

여기까지가 벌어진 일.

 

그런데... 오늘은 다른날과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다른때 같으면 "아 뭐야!!!"라며 화를 내거나 "웃겨 진짜"라며 뭔가 다른 조건을 제안했겠으나...

오늘은 갑자기 진심으로 속상했다.

그 이유가 뭘까...

 

1.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싫다.

7시반 약속이어서 7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6시가 다되서 통보받은 것이니 '계획적인' 나는 돌발 상황 자체가 싫다.

2.

저녁약속이 있을 때 마다 스스로 왠지 모를 미안함에(약속 있는게 무슨 죄라고...) 시달려서 오늘은 특별히 동태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한참 음식을 만들고 있던 상황이라 더 울컥했을지도 모르겠다.

3.

나 자체는 독립적인 인간인데,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를 기르는 처지가 됐다고 해서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 역시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가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인가?

4.

다 키운 21개월 아가 한명인데도 이런데 하나 더 낳으면 나는 과연 내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을 것이다.

5.

외출이 없는 날이라면 하루 24시간 중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4~5시간 가량.

그 시간 내내 대화를 나누진 않으니 실제로는 1~2시간.

그래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기에 누군가 외부인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중요한 일인데 그게 무산된 데에 따른 좌절감 일지도.

6.

한달에 두세번이라도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것 조차 내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니...

대체 나는 뭐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뭐... 저게 다 이유일 수도 있고...

눈물까지 뚝뚝 흘린걸 보면 그냥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 보면 수잔이 임신했을때 별별 일에 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때 마다 주변사람들이 당황해하자 매번 그녀는 '호르몬 때문'이라며 안심시킨다. -_-;; 실제로 임신기간엔 감정기복이 크고 조절이 안될 때가 좀 있다.)

 

여튼 나는 저녁내내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다.

내 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뀔 수 있다니...

 

그나저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 외로움이 덜어진다는데 글 써도 하나도 안덜어지잖아!!!!

페이스북이 아니라 블로그라 그런거냐? -_-

아 무슨 소릴 지껄인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좀 나아질까 해서 썼는데 이게 뭐꼬.

이 야밤에 지안이 깨워서 "엄마 이뽀" 해달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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