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긴 꿈을 꾼 기분이다. 분명 어제까지 현실이었는데. 아무튼 남겨보는 여행기.

나는 일상에 시달리면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그건 요즘 유행하는 MBTI 분류법에 따르면 I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혼자 떠난 여행. 정확히는 출장에 붙여서 좀 더 쉬어보는 여행. 중간중간 일행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욕구나 상태(특히 어린이)를 고려하지 않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짐이 아주 적어지고(내가 원래 짐이 많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대처해야할 비상 상황 경우의 수도 매우 줄어든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화장실 다녀왔냐는 질문도 하지않고…(이게 은근 스트레스) 메뉴도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된다는 게, 기본 욕구를 해결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으로 많은 걸 간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닌 삶에 익숙해진 걸 확인한 시간이기도 하다. 편한데 허전한 시간. 이건 짝꿍이랑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여긴 어린이들이 좋아했던 곳이지. 그리고 세번째 밤 잠자리에 들며 생각했다. ‘아, 이제 내 이불로 가고 싶다.’

혼자 떠나고 싶었고, 적당히 잘 다녔고, 집에 돌아왔다.
내가 뭘 하고 다녔나 사진으로 정리해본다.

출발합니다
뭉게뭉게뭉게구름
루시드폴은 못만났지만 폴부엌은 가봄(같은 폴 아님)
산양큰엉곶
책방 소리소문
판포리
이런 창이 있는 제주집에 살고파
진짜 날씨 좋던 금능해변
신난 발
각재기국
멜튀김
춘식이콘
한밤중 달 뜬 중문색달해변(해 아님 주의)
골프공 파는 중문 하나로마트
제주 체험학습 귤나무
깨발랄 스누피
무사레코즈
내가 좋아하는 하도리
소면이 짱인 돌문어볶음
분위기 있는 게하 조식
소심한 책방
스누피가든 스탬프 투어와 기념품
비오는 칠분의 오
진짜 고기 같았던 비건버거 플레이트
바다뷰 카페
추억이 잔뜩인 김녕 바다
전복솥밥
육지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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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1-5일차도 없는데 난데없는 6일차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6일차여서 제목을 그렇게 붙여봤다.)

인류는 COVID-19라는 녀석을 만나 전례 없는 전 세계적 고생을 하고 있다. 아무리 지구인이 모두 위험하다해도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면 무탈할 줄 알았는데 졸지에 자가격리자가 된 썰을 풀어보자.



D-day
어린이의 학교에서 오전10:17에 전화가 왔다. 난 10:00에 출근했는데. 이런 시각의 전화는 대체로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어린이 학급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모두 귀가조치+코로나 검사를 해야한단다. 하루종일 회의가 잡혀있던 날이라 급히 동거인에게 전화해 귀가시켰다.

그리고 그날 저녁6시반 무렵. 평온하게 저녁밥 준비를 하려는데 카톡이 하나 왔다. 역학조사 결과 어린이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즉시 자가격리에 들어가며, 보호자 1인도 함께 자가격리라고. (아 뭐라고 이것드라????)

저녁밥이고 뭐고 영혼이 나간채로 덩그러니 30분을 앉아있었다. 영혼은 나갔지만 극j형 인간답게 당장 일주일간의 일정을 머리속에서 다 조율하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D+1
보건소에서 오전10시경 전화가 왔다.
자가격리 통지서와 키트가 집으로 비대면 배송될거고, 담당 공무원이 배정되면 연락이 올거고 지침을 다시 알려줄거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아무 연락도 안온다. 나보다 며칠 먼저 자가격리 체험을 하고 있는 친구 얘기에 따르면 앱을 깔고 매일 체온 측정을 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데 그냥 방치되고 있는 우리.

보건소에 오후5시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한시간 뒤 퇴근할테니.

우리구에 자가격리자가 많아져 처리가 늦어지고 있고 연휴라 다음주 화요일에 해준다고… 아니 지금 자가격리 시킨게 우리를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그런거 아냐? 감시 안해? 국민을 겁나 신뢰하는구만?

D+5(6일차,오늘)
키트 왔고(키트래봐야 진짜 뭐 별거 없음) 앱 깔라는 문자도 왔다. 생각보다 시시해서 실망.

우리는 착실하게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잘 살고 있다. 나야 워낙 집에 있는게 좋으니 괜찮은데 어린이는 그네가 너무 타고 싶다고… 그리고 동거 어린이는 등교를 위해 이틀에 한 번씩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아야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 그래도 어린이 입장에서 감금보단 코찔림이 낫지…

직장도 리모트워크 가능한 직장이라 괜찮은데, 모니터와 키보드가 너무 불편해 죽을맛이다. 모니터 사고 싶고 키보드 사고 싶은데 매일 참는 중. 왜냐면 나는 비싼거 사고 싶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자가격리 당해도 괜찮을 줄 알고는 있었는데 예상보다 더 괜찮아서 나 스스로도 ‘이 정도로 집순이었다니!’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배달시스템에 박수를 보낸다. 안오는게 없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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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족들을 서울에 버리고 두고 제주로 여행 온 이유를 말해보려한다. 제주에서 난생 처음으로 “술을 제법 마신다”는 칭찬(!)을 듣고 맛있는 맥주를 마신, 여행의 둘째날 밤이자 마지막 밤인 지금이야말로 그 얘기를 하기에 적절한 때다.

고기지글지글 얘기를 친구와 하다가 고기먹으러 제주 가잔 말을 친구가 던졌고 나는 진심으로 받았다. 먹는거엔 늘 진심인 사람들이니까.

일상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내가 힘들어지고 있는 걸. 여러 시그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엔 다른 이의 불평 혹은 비판 혹은 부정적 얘기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나를 향한 얘기도 아니고, 그게 나를 향한 얘기로 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누군가를(혹은 물건을) 향한 그 어떤 부정적 얘기도 듣기가 힘들어지는 날들이었다.

보통의 나(보통이란 무엇인가... 쓰고 보니 무엇이 보통인지 모르겠다),  평온한 마음의 나였더라면 ‘아 너는 지금 그때 화가 난 것을 표현하고 싶구나’, ‘아 당신은 지금 무척 애쓴 걸 인정받고 싶군요’ 이렇게 알아듣고 그에 맞는 반응을 했을텐데 요즈음의 나는 그냥 듣기가 싫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복잡해지고 책임이 무거워지는 조직에서의 역할, 학년이 올라갈 수록 신경써야하는 것이 많아지는 엄마로서의 역할 모두 양은 많아지는데 완벽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나는 달라지지 않고... 나는 내 자아실현도 해야하는데 내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체력마저 모든게 나의 욕심인데 안내려놔진다. 뭐... 이번생은 글렀어.

제주에 내가 뭘 원해서 왔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냥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가, 나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가, 자연에 있고 싶었던 것인가... 이틀째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뭘 정말 좋아하는지 정확히 확인했는데 조용한 바닷가에서 캠핑의자에 앉아 책을 실컷 읽고 싶다. 다음엔 제주에 꼭 캠핑의자를 들고와야지. 차 없이 와서 바닷가에서 캔맥주 먹어야지. 소심한책방에서 책 더 많이 사야지.

내 비록 서울에 두고 왔지만 여행 다녀오라고 해준 가족들 고마워. 잘 놀고 오라고 공항철도역까지 데려다준 동거인 고마워, ‘잘 있어?’라고 물어봐주고 ‘엄마 잘 있어~’라고 말해준 우리 귀여운 딸 고마워, 엄마 대신 꼼꼼히 달팽이 돌봐주고 뭐했는지 자세히 말해준 우리 아들 고마워. 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자라서 갈게. 너희들도 모두 한뼘씩 자라있길.🙂

그리고 무계획으로 온 나를 이끌어주고 지나치게 많이 먹이고(이틀 내내 하루종일 배부름...) 까다로운 나를 견뎌준 내 친구 고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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