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지 몇주째...
마음에 들지 않는 몇개의 집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세시쯤 왔는데 애들이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고 놀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니 이 시간이 되도록 애들이 점심도 안먹고 있는게 말이나 돼?"라고 버럭 말했다.
(사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물론 애들은 늦은 오전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진 않았겠으나 점심은 언제 먹고 낮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화가 났다.

그렇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애들은 낮잠을 잤고 엄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곤 엄마는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서운했노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길 "보임이도 집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예요. 집도 잘 안구해지고 속상하니까 그랬죠.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화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

2년마다 반복되는 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실 그것은 '집'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집을 얻을 경제력의 부재'에 대한 스트레스다.
2년에 7~8천만원씩 오르는 전세를 당연히 부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그런 사이클을 살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왜 그런지도 잘 파악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좋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
잘 알아주지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차라리 둔한 남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10년만에 깨달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구나.'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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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라니. 
정말 세월 빠르다.

아직도 결혼한지 2-3년 밖에 안된 것 같은데 어느새 6년.
하긴 지안이가 우리나이로 3살이니 6년이 되었을 법도 한데... 체감세월은 그렇지가 않다.

6년쯤 되니 어느새 결혼기념일 날짜는 나보다 남편씨가 더 잘 기억하게 되었고(난 까맣게 잊고 사람들이랑 놀러갈 계획만 짜고 있었는데 그날이 결혼기념일인거 말해줌 ㅋㅋ)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이던 우리는 삼십대 중후반이 되었다.

TV에 나오는 누군가는 아직도 배우자를 보면 설레고 떨린다던데 사실 그런 감정은 이제 거의 없고 '가족'이 주는 편안함과 일상이란 단어가 우리사이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상태가 됐다.
각종 고마운 행동과 서로에 대한 배려는 이제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감동하는 일은 적고, 오히려 미운짓과 거슬리는 행동들이 더 잘 보이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가장 편하고 솔직한 사이일 것이다.
(남편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믿고 살란다. ㅋㅋㅋ)

어느새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이제 '나'보다 '엄마' 혹은 '아빠'로서의 역할과 고민이 더 많아졌지만 아이들이 더 크고 독립적인 개체가 되면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겠지.

애 둘에 치여 제대로 얼굴 마주보고 '우리의 삶'을 얘기할 시간조차 갖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라은이 좀 더 크면 얘기도 더 많이 합시다 여보.
지난 6년이 그랬듯 앞으로도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비록 당신은 내 블로그 글도 찾아보지 않을테고 페이스북도 안하니 이 글의 존재를 모를테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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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렇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공통점은 B형이라는 것과 그래서 둘다 화르륵 탄다는 점 밖엔 없다.
(허나 남편씨는 뒷끝 작렬 ㅋㅋㅋ)

여행을 갈때도 나는 1부터 100까지 시간단위로 계획을 짜고 경우의 수에 따라 대비책도 마련해야 마음이 편한데 남편씨는 정반대다.
어짜피 가보면 상황은 어찌될지 모르니 그냥 일단 가고 그때그때 판단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순발력이 있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이게 싫다. -_-)

그리고 난 예상되는 상황이 마음이 편하고 익숙한게 좋은데 남편씨는 늘 예측불가능하고 처음 겪는 일을 좋아한다.

난 운동신경이 없고 논리적인 것에 강한데 그는 스포츠맨이고 감정적인 것에 강하다.
난 군것질과 밀가루,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는 맵고 담백한 한식위주의 식성이다.

아니 여튼... 뭐가 다른지 말하자면 입이 아플정도고...(손이 아프다)
어쨌든 오늘은 '다르다'는 그 점이 바로 장점으로 발휘된 날.

이사갈 집을 한달째 고르고 있는데 둘다 좀 까탈스러워서(앗. 공통점? ㅋㅋ) 당최 맘에 드는 물건이 없는게다.
성향상 나는 이런 상황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인데 남편씨는 어떻게든 되겠지 주의. ㅠㅠ
근데 그런 사고방식이 오늘 결국 나에게 다른 해결책(?)을 주었고 나도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ㅋㅋ

달라진건 하나도 없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니 이렇게 여유로울수가!!
(물론... 평소에 그가 늘 이래서 난 속이 터진다;;;)
성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둘이 마주앉아 피말리고 있었겠지. ㅋㅋ

둘이 다르다는 것.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양날의 검이 맞으려나...) 점이지만 오늘만은 무척 좋구나!
이제 간만에 집걱정 없이 편히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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