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둘이 되면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이렇게 빨리(라은이 50일도 되기 전에;;;) 올 줄 몰랐다.
혼자서 28개월 지안이와 1개월 라은이 돌보기.
아아... 이게 대체 가능한 일이긴 한건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외갓집 휴가에 따라갔다가 지안이는 남고 남편씨만 집으로 돌아오는 구상이었으나...
감기에 걸린 지안이가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집에 오겠다고 해서 같이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집에 가자고 해도 남겠다고 할 녀석이;;;)
어제 나는 잠시 패닉상태가 되었으나 내가 분명 내입으로
"지안이한테 물어보고 집에 오고 싶으면 데려와. 지안이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지"
라고 말했기에 모든 것을 감내하기로 마음을 비웠다.
게다가 일요일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쓸쓸하게 보낸지라 지안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할 때 였다는 것이 함정;;;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
여느때와 다름 없는 평화로운(은 개뿔. 라은이도 배고프다 지안이도 배고프다 우리 부부는 정신이 없음) 아침을 보내고 한숨 돌릴까 하는데 남편씨가 지안이를 놓고 혼자 출근한다.
그렇다.
어린이집 방학. ㅠ_ㅠ
그리하여 오전9시 부터 나는 '라은이 먹이기, 지안이 먹이기, 라은이 먹이기, 나 밥먹기'를 기본코스로 운영하면서...
틈틈이 라은이 기저귀를 갈며 지안이 변기를 비워주고, 우는 라은이를 안았다가 내려놓고 재우고 안고 놀아주면서 지안이를 낮잠 재우고 나는 10분 쪽잠자고, 설거지와 젖병세척도 마치고 빨래를 널고 개고 택배를 받았으며, 라은이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내내 지안이 책을 읽어줬다.
(아니다. 라은이를 먹이면서도 책을 읽고 라은이를 달래면서도 책을 읽었으며 라은이를 재우면서도 책을 읽었다.)
오후2시쯤 지안이도 자고 라은이도 잘 때 느꼈다.
그렇다.
할 만 하다.
사람이 못 할 일이란 없는 것이다.
단, 오늘 하루만 한다는 전제하에. -_-;
오후4시경이 되자 허리가 끊어질 듯 했고(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애를 안았다 내려놨다 무한반복...)
손목이 시큰거렸다. -_-
어깨도 결리고 목도 뻐근했다.
다행히 휴가를 끝낸 울엄마가 5시쯤 들러 지안이를 데려간다고 했기에 '그래 오늘 하루 너희에게 최고로 봉사하마'라는 마음으로 2시간을 더 근무했다.
그리고 5시가 되어 지안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침부터 언제오냐고 물었음) 함과 하부가 지안이를 데리러 왔고 엄마 보고 싶으면 전화하기로 하고 엄마를 꼭 안아준 지안이는 6시에 밝고 명랑하게 발걸음도 가볍게 "엄마 안녕~"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지안이가 집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또 집이 텅 비고 허전한 느낌.
'아, 사랑하는 우리 아들 보고싶다...'
오늘 하루 그야말로 전쟁같은 시간이었지만 지안이와 나에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라은이는 '엄마 오늘 나 왜이리 홀대해?'라고 생각했겠지만. ㅋㅋㅋ
물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산욕기라 하는 6주가 지나긴 했으나 정말 딱 6주가 지난 몸이었기에 힘들기도 했지만 원래도 저질체력이라 평상시였어도 아마 비슷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마음은 참 따뜻하고 좋았다.
아침 저녁에만 엄마를 접할 수 밖에 없던 지안이가 오랜만에 엄마를 거의 독차지하며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고...
아침 저녁에 동생 맘마 챙기거나 동생 안아주는 모습만 봐서 많이 섭섭했던 지안이가 하루를 함께하며 엄마가 동생을 (사실 지안이 때문에;;) 홀대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지안이는 요즘 말 안듣는 미운 3살 꼬맹이가 아니라 예전의 착하고 귀엽던 우리 지안이로 60%쯤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생 분유타면 젖병 가져오고 갖다놓는 것은 꼭 자기가 챙겼다.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편했다.)
기저귀도 가져다주고 손수건도 챙겨주고 울면 (비록 안달래질지라도) 달래주고 졸리면 (더 울게 만들지라도) 재워주고.
엄마가 설거지 하는 동안 라은이가 깨서 울자 "엄마 아가 울어~"라며 쪼르르 달려가 달래주다가 잘 안되니까 (당연히 안되지 ㅋㅋ) "엄마~ 라은이 안아줘~ 울어~"라더라. ㅋㅋㅋㅋ
쉬하면 쉬한 것도 같이 보고 응가한 것도 같이 봐주고 배고프냐고 물어보고 ㅋㅋㅋ
그리고 정말 여러번 시행착오 끝에...
아가가 잘 때 자기가 떠들거나 큰소리를 내면 동생이 깨서 울고 깨서 울게 되면 엄마와 자기가 불편하게 된다는 것을 아주 조금 깨달았다.
(오전엔 아무리 소곤소곤 말하자고 해도 크게 말하더니 오후엔 작게 말했다. ㅋㅋㅋ)
가장 감동스런 장면은 지안이가 정말 아끼는 기차그림 옷을 동생에게 입혀주겠다고 한 모습이었다.
"지안이 동생~ 기차 옷 입어~"
"지안아, 기차 옷 동생 줄꺼야?"
"응. (동생을 보며)지안이 동생 입어라~"
"지안아, 동생은 너무 작아서 아직은 기차 옷 못입어. 고마워~"
(이 훈훈한 장면의 슬픈 사실은... 자고 있던 라은이 몸에 지안이가 기차옷을 대주자 라은이가 깼다는 것. ㅠ_ㅠ)
하여간 오늘의 근무는 해피엔딩.
오늘의 교훈도 '육아는 역시 체력'이라는 것.
지금 나는 완전히 방전상태...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 된다면 이렇게 키우는 것도 가능하고 재밌겠구나 싶다.
지안이가 많이 도와줄 것 같다. ㅎㅎ
그리고 남편씨에게도 해피엔딩.
이번주는 비교적 자유로우시겠구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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