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둘째를 임신한 후 진심으로 깨달은 사실.
'나도 엄마였구나.'

갑작스런 임신에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약간 우울하기도 했으나 마음을 고쳐먹은 뒤 가장 걱정됐던 것은 놀랍게도 '벌이가 적은데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혹은 '내 자아는 어떻게 실현해야 하나'가 아니라 (물론 이 두가지는 매우 걱정스러운 항목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안이를 더 이상 가장 먼저 챙길 수 없는데 어쩌나'였다.

어린이집 보내기 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키우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기에 (물론 어린이집 가고 학교가면 나도 내 인생 찾으러 갈꺼지만 ㅋㅋ) 1~2년이 나와 지안이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TV도 지안이랑 안보고, 조금 불편해도 꼭 일찍 재우고, 내 끼니는 비록 불어터진 라면으로 때울 지언정 지안이 밥은 생협 식재료로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고, 남들 안쓰는 천기저귀를 신생아때부터 18개월까지 쓰고 있고, 서울 한복판에 살아 조금 미안한 마음에 가능한 유해한 것은 멀리해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하루종일 사운드북 뺨치게 책을 읽어야 했지만 지안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가가 되었고, 나는 비록 살이 빠졌지만(아니 이건 좋은거잖아!? ㅋㅋ) 지안이는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키도 크고 잔병치레도 적은 튼튼한 아가가 되었다.
그 뿐이랴.
엄마와의 애착도 적절히 형성되고 (내가 보기엔) 정서적으로도 안정되서 심하게 떼를 쓰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하지 않고 말귀를 알아듣게 된 이후에는 아주 조금이나마 설득이 가능하게 됐다.

그런데...
요 며칠 지안이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둘째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진 소중한 '나의 첫아기'를 변함없이 돌보리라 마음먹었으나, 이 엄마는 워낙 저질체력인지라 하루종일 사부작거리는 아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전오후 1시간 가량 책 읽어달라거나 빠방이로 놀아달라는 지안이에게 '엄마 코 잘께'라며 방치...
(첫날엔 정말 계속 와서 뭘 요구했는데 이틀째부터 조금씩 받아들여 혼자 노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게 더 안쓰러움...)
그리고 밥반찬(이래봐야 두부나 야채 삶은거지만)은 늘 3가지 챙겨줬는데 드디어 2가지로 축소...

몸이 안따라줘서 어쩔수가 없는 상황인데 이게 되게 미안하더라.
지안이가 아니라 다른사람(음...남편씨? ㅋㅋ)이었다면 "아, 내가 몸이 안좋다고! 좀 알아서 하라고!"하며 당당했을텐데.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고 나는 정말 많이 철이 들었다.
인내심과 끈기라고는 한점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안이 덕분에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고,
내 기분이 먼저 내 몸이 먼저였던 생활방식은 상대를 배려할 수 있게 변했다.
(물론 아직 멀었다 ㅋㅋㅋ)

여튼 요새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지안이에게 나는 하루하루 고마워하고 있다.
"지안아, 엄마가 우리 지안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하면 우리 불불여우 아들은 특유의 의기양양 미소를 띄며 씨익 웃는다.
아이구 예쁜 내새끼. ㅋㅋ
둘쨰를 낳으면 나는 좀 더 엄마가 되고 좀 더 사람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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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나는 무척(지나치게) 계획적인 인간(이라기 보다는 계획을 세우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해두자)이라 예상에 없던 갑작스런 일이 싫다.

예를 들어 누가 갑자기 "야, 지금 나와" 이런 약속. 싫다.

그와 반대로 나와 함께 사는 남자는 이런 일 너무 좋아한다.

아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생활패턴.

(그래서 같이 사나;;;)

 

여튼 계획치 않았던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기뻐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기뻐하질 못했다.

처음엔 그저 당황스럽기만...

 

뭐 이쯤되면 눈치 챌 사람들은 눈치 챘겠지만...

둘째가 생겼다.

(쿨럭;;;)

 

내년 3월 지안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3월 한달 푹 쉰뒤 4월 부터 새인생 찾아 신나게 달릴 예정이던 내 인생은...

흑... 안드로메다로...

내 길 찾기는 2년이 또 미뤄지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러다 내 자아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건 아닌지 걱정이다.

 

남편씨는 둘째 생각이 없었고 나는 둘째를 낳더라도 내후년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실로 '사고'에 가까운 일이다.

마치 불조심 표어처럼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지안이 가질 때는 그렇게 날짜를 맞춰도 잘 안되던 일이...(심지어 임신 가능일 아닌 날에 임신됐다 -_-)

이번에는 정말 '에이 설마' 했는데 덜컥.

이쯤되면 생명은 정말 하늘에서 주신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하여간 심란하고 뒤숭숭한 마음은 접고 이미 벌어진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생각을 하던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 정신건강에도 이롭고 뱃속 아가에게도 이롭게 좋은 쪽으로...

 

아마 지금 6주 안팎이 됐을 것이고(어짜피 병원에선 8주에 다시 오라고 하기 때문에 8주에 방문할 예정) 가벼운 입덧이 시작됐다.

속이 비면 울렁거리고 기름진 음식이 싫다.

일단 출발은 지안이 때 보다 나은데 어찌될런지.

 

이쯤으로 중대발표를 마치며...

그간 우리집에서 빌려간 장난감, 카시트, 옷 기타등등 각종 육아용품은 내년에 다들 반납준비하시라.

더불어... 각종 육아용품 우리집에 보내주시면 마치 새것처럼. 안쓴물건처럼 고이 보관했다 돌려드릴테니 기쁜마음으로 빌려주시길. ㅋㅋㅋ

(특히 옥선양. 내가 노리고 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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