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에게 자주 화가 나는 것이 온전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모자식도 사람관계의 하나일 뿐. 아이들도 나에게 잦은 짜증을 냈다. 역시 낮잠이 답인건가. 하지만 서울을 떠나 이 먼곳에 살러 온 것은 후회 없도록 활활태워 놀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닌가. 무얼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가. 아무튼 오늘의 안녕을 위해 나는 또 하루를 되돌아보고 기록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고 실외, 실내 모두 아이들과 가기에 좋다기에 산책하고 싶어 갔다. 아침에 날이 좀 흐렸는데 그래서 아주 쾌적하고 적당한 일조량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은 좀 오랜 코스가 될 것 같아 각자 간식(과자, 귤, 물 등)과 모자를 배낭에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많은 블로그 후기에 도착하면 작은 숲길을 지나 너른 잔디밭을 만나는데 애들이 뛰기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이들은 잔디밭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잔디밭을 보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짜증은 발견됐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첫째가 나이도 많고 남자아이여서 빠르다보니 출발시간에 5초 핸디캡을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자 자꾸 동생이 이겼다. 자신이 제안한 규칙인데 지게 되니 속상하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서 달리는 거리를 길게 늘렸더니 둘째가 졌고, 이 녀석도 졌다고 짜증을 낸다. 아놔. 이것들이... "이렇게 달리기를 하니까 둘 다 속상하다. 둘 다 속상한 놀이는 그만하고 그럼 박물관 들어가자!"라고 신나게 제안을 했더니 둘째가 "그냥 달리기 할래..."란다. 하지만 곧 둘 다 또 짜증을 내고... 일단 참고 박물관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엄마, 5초를 너무 늦게 셌잖아~(짜증)"
"(일단 참는다)엄마는 시계보고 셌어."
"아니이~ 하나아, 두울, 세엣 이렇게 했잖아. 하나, 둘, 셋, 넷 해야되는데."
"(인내심 끝)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뭐가 아니야? 시계보고 했다잖아. 시계가 내 맘대로 가? 전세계 공통으로 모든 사람이 시계로 시간을 재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아아~~"
"그러니까 뭐가 아니냐고."

그렇다. 인내심의 바닥을 만났고 나는 아이들에게 "너(첫째)는 엄마가 시간 재는게 맘에 안들고, 너(둘째)는 박물관 가는게 맘에 안드니까 너희 둘이 하고 싶은거 여기서 실컷 해. 엄마는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 돌에 앉아서 쉬고 풍경 보다가 집에 갈거니까. 하고 싶은거 다 하면 다시 여기로 와. 아무데도 안가고 있을게."라고 선언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박물관 가자..."
"아니 엄마는 지금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들을게. 난 그냥 쉴거야. 말도 안걸면 좋겠어."

내가 가자고 할땐 싫다더니 막상 알아서 놀라고 했더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다. 대체 왜... 일단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다른 돌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내 할일을 했다. 등 뒤 돌에 있던 녀석들은 발로 바닥을 차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거리기도 하고 부스럭거린다. 한참을 쉬고 기분이 좀 나아져서 나는 일어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들은 슬그머니 따라와 옆에서 걷는다.

"엄마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지금 안듣고싶어."
"엄마 기분 풀렸어?"
"아니 아직."

그렇게 약간은 서먹한 사이로 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은 주로 화산지형의 돌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주의 생성부터 시작해 지구의 내부(멘틀, 외핵, 내핵) 구조 설명, 그리고 화산폭발의 과정, 제주도가 어떻게 생겨난 섬인지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사랑하는 지구과학 얘기를 이렇게 애들과 사이 안좋은 채로 와서 보다니. 아깝다. 원래 지구의 역사나 지층에 대해 더 신나게 내가 설명할거였는데. 아 슬퍼...

박물관은 주로 돌을 전시해두었고 마그마가 식으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돌들은 정말 예뻤다. 간간히 무서워 보이는 애들고 있었고, 귀여운 고래를 닮은 애들도 있었다. 자연의 신비... 그리고 이걸 찾아낸 사람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애들은 그저 신나서 이건 곰을 닮았느니, 이건 뱀을 닮았느니 뭘 닮았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어서 일부 구간은 숲길인데 그 숲길이 정말 좋았다. 예전에 절물휴양림을 아주 기분좋게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제주의 다른 숲도 가봐야겠다. 아이들도 숲길을 좋아했고 한껏 수다도 떨고 첫째는 제주도 책에서 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뽐냈다.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3시간은 있어야 한댔는데... 우리는 중간에 싸우기도 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3시간을 둘러봐도 다 보지 못했다. 막판엔 셋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가고싶다고 하소연 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장봐서 집에 온 소박한 오후. 2시간이 넘게 앞마당에서 다른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어쩜 이렇게 매일 물총놀이만 하고 싶어할까...) 장볼때 사온 빵을 간단히 먹고 하루를 마무리. 내일은 우리 서로 짜증내지 말자. 사이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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