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실천연대 후원주점으로 후배를 만나러 가기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한양대역을 나와 파닥파닥 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는데 형남언니에게 문자메세지가 하나 도착했다.
'윤정이 갔어'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주변이 먹먹해졌다.

결핵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2008년에 무슨 결핵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요?"라며 철없이 낙관하던 나였다.
많이 안좋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의사들은 원래 겁 많이 주잖아요"라며 배시시 웃었던 나였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더 믿을 수 없었다.

언니의 나이 32살.
학생운동 10년, 노동운동 3년차였다.
그리고 1월 11일로 예정된 결혼식날짜.

눈물이 많은 내가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이 되기까지 그리 슬프게 울지 않았던 것은 머리는 알면서도 믿어지지 않아서였을게다.
장례식장 로비에 빼곡히 서있는 운동권들을 보면서, '동지여 고이가소서'라는 현수막을 보면서도 운동권들의 뻔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흘깃 보고 빈소를 찾았는데...
빈소에 들어가 사진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절하는 손 위로 툭툭 떨궈지는 눈물이 어찌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던지.

사람. 정말 많더라.
화환. 정말 많더라.
내가 갔던 장례식장 중 가장 많은 사람과 화환을 봤던 날이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서럽더라.
눈물이 나는 것을 애써 참느라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배도 안고팠는데 배고픈듯이 한참을 밥을 먹었다.

별별 명의의 노동조합에서 온 화환이 왜그리 짜증나던지.
죽어서 대접받는 민주노총 활동가.
지영언니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죽어서나 밝힐 수 있는 조직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명의의 화환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얽혀졌다.

친하지도 않던 시절 그저 "예쁜 간부언니"라는 이유로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할만큼 예쁜 언니의 모습과, 경상도 억양이 섞인 언니의 말투가 떠오르면서.
왜 진작에 더 살갑게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됐다.

빈소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과 많은 화환을 보며 언니 어머니께서 윤정이 가는길 쓸쓸하지 않겠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10년, 3년을 데모한다고 떠돌아다니는 걱정거리였을 딸이, 뒤늦게 뿌듯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말 많은 동지들, 사람들이 있었던 언니의 빈소.
너무도 환하게 웃던 '색깔있는' 언니의 영정사진.

언니의 표정이 너무도 밝아 차마 빈소를 나와서는 더 울 수 없었다.
더 울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그저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들어와 넋이 나간사람처럼 서럽게 울었다.
언니의 아름다운 젊음이 서러워서.
가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 삶이 서러워서.






언니.
언니가 바라던, 혹은 우리가 바라던 그런 세상은 참 멀었는데...
언니는 너무 빨리... 예쁘게 갔네요.
지금은 이렇게 슬퍼도...이 구질구질한 세상을 우리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겠지요.
그리고 가끔씩 마음속으로 눈물 흘리겠지요.
'열사의 뜻 이어 받아', '열사 정신 계승하여'라는 거창한 말은 하지 않을께요.
지금처럼 그냥 꿋꿋이 살아갈께요.
윤정언니, 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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