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제주에서 날이 좋으면 뭐다? 바다다.
하지만 오늘도 피로를 누적할 순 없기에... 그렇다면 오늘은 일찌감치 바다에 놀러나갔다가 오후에 낮잠을 자기로 마음먹고 무려 10시반부터 가까운 함덕으로.

시간이 이르고 날이 추웠는데도 놀랍게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쨍한 햇볕을 보고 다들 밖으로 나왔나보다. 바위 옆에 짐을 놓고 튜브를 빌렸다. 오늘은 두개. 그동안 모래만 파고 소라게만 잡으며 물놀이에 소극적이던 첫째가 자기도 물놀이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 뭐 쿨하게 두개 빌리자.

그리고 바로 바닷물로 풍덩! 그런데 둘째가 돌을 밟아서 발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따라 나도 돌이 많이 밟힌다. 아직 만조에 가까워서 수심이 깊어서 오래 놀지 못하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발이 계속 아프다고 하기에 봤더니 아이고... 발바닥이 돌에 꽤 많이 찍혔다. 물놀이 시작 10분 만이다. 첫째는 열심히 모래를 파기 시작했고 나는 망연자실... 보호자는 나 혼자 뿐인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우리 집에 가야겠어."

모래 파던 첫째도, 다친 당사자인 둘째도 거의 울먹이다시피 "왜?"라고 묻는다.
"동생이 많이 다쳤어. 이 발로는 물놀이를 할 수 없어..."
청천벽력 날벼락에 첫째가 속상한 건 알겠는데 다친 니가 왜 울려고 하니 이놈아... 심지어 자기는 다쳐도 놀 수 있다며 안된다고 하는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바닥에 박혀있는 모래를 쳐다봤다. '이 발로는 안돼...'

일단 모래라도 빼야했기에 해수욕장 상황실로 데려갔다. 응급처치를 해주신 분들이 정말 친절했다. 무서워하지 않도록 어쩐 처치를 할 지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아프지 않게 모래를 잘 제거했다. 그리고 약을 발라주시는데 내가 물었다. "이제 이 어린이는 물놀이는 못하겠죠?" 그런데 왠걸. "방수밴드 붙여드릴게요" 둘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ㅋㅋㅋㅋ 나도 덩달아 안심이 된다. 10분만에 집에 가야하는 상황을 이 녀석들에게 설명하고 슬픔을 함께하자니 엄두가 안났었는데 천만 다행이다. 방수밴드에, 자가점착식 붕대로 한 번 더 보호해서 밴드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양말을 씌두면 더 좋다기에 근처 편의점에서 판타롱 스타킹을 사서 신겼다. 모래가 들어갈 틈이 없는 철벽방어! 룰루랄라 다시 바다로 향했다.

사실 물놀이 신발이 있었다. 발을 보호하긴 하지만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매번 모래를 씻어내느라 더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애들이 신기 싫어했다. 물론 모래를 맨발로 밟는 촉감이 좋았던 이유가 더 크고. 하지만 바다에선 꼭 신발을 신기로... 이만했기에 망정이지 찢어지기라도 했으면... 아... 끔찍...

12시반쯤 되었을까? 햇볕은 여전히 쨍한데 바람이 계속 불어 추웠다. 파도도 엄청 타고 셋다 정말 재밌게 놀긴 했지만 아이들 몸이 슬슬 떨려서 집으로 들어왔다. 씻고 밥먹고 낮잠모드... 오전에 마신 홍차+커피티라미수로 인해 나는 20분 밖에 잠을 못잤는데 이녀석들은 3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더 자면 저녁을 먹을 수 없기에 깨웠는데 더 자고 싶다고... ㅋㅋㅋㅋ

집 근처로 나가 저녁을 먹고 마트에 들러 집에 온 훈훈한 하루. 이제 한밤만 자면 아이들에겐 아빠가, 나에겐 짝꿍이 온다. 벌써 3주가 지났구나.

곱게 물든 봉숭아물
먹기 너무 귀여웠던 저녁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첫째의 몸상태를 체크해본다. 다행히 열은 없고 아직 배는 안아프다고 한다. 아침밥으로는 다시 흰죽을 먹였다. 오늘은 오전까지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중간중간 둘째는 집과 광장을 들락날락했고 오빠는 부러웠지만 어제 아팠던걸 알기에 자기도 몸을 조심한다. 

소소하게 집에서 밥을 했다. 흰쌀밥을 좀 질게 하고 한살림에서 사두었던 아욱된장국을 아주 제대로 된 타이밍에 꺼내어 데웠다. 배탈에는 된장국이지. 뱃속이 편해지는 건강한 밥상을 먹으며 우리가 그간 노느라 김밥으로 때우고 대충 먹었던 몇몇 날을 반성한다.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고작 며칠이었는데!!!!) 그리고 혹시 몰라 매실액을 한 번 더 먹였다. 

오후에는 마을 아이들의 물총놀이가 약속된 시간이다. 물총놀이를 이주전부터 기다리던 녀석들이라 아침부터 들떠 있었고, 첫째 녀석은 특히 '아프면 못한다'는 말에 자기 몸을 잘 챙겼던 것이다. ㅋㅋㅋ아이들이 앞마당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몇몇 엄마들은 물총놀이에 동참했다. 나는 애들에게 미리 말해두었던 대로 마을 안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여기서 나는 난데 없는 자기성찰을 하게 됐는데, 물총놀이에 합류한 사람들과 카페에 둘둘씩 도란도란 얘기를 하던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물을 맞으며 노는 것에도 흥미가 없고 한달살이 하며 만나는 이웃과 소소한 사는 얘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가 없다. 서울에서 넘치는 관계와 넘치는 대화에 질려서 제주로 한달살이하러 왔으며, 워낙에 좁은 사람들과 깊게 만나는 성향이라 누가 말을 걸까봐 피하는 사람... 이었다. 카페에 혼자 앉아 내가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오랜 벗에게 편지를 쓰는게 내가 시간을 소중히 쓰는 방법이다. 아이와 한달살이를 하면 어른들과의 대화에 목마르다고 하는데 나는 귀가 고요한 시간에 목마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있으니 물리적으로 귀가 힘들다. 아침에 새소리 들으며 보사노바 음악을 잔뜩 듣고 싶다.

아무튼... 녀석들은 두시간 동안 물총놀이 삼매경(심지어 우리집 남매가 제일 마지막 멤버)이었고, 나는 집안일을 마치고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책을 읽고 편지를 썼다. 서로 흡족한 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우체국에 들러 서울로 등기우편을 하나 보내고(둘째의 편지) 나는 캐나다로 국제우편을 하나 보낸다. 등기우편이 국제우편 가격의 3배다. 음... 비행기값도 그러면 좋을텐데.

장보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가 동네 초등학교로 축구하러 간단 정보를 입수한 첫째녀석이 은근 자기도 축구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날 닮은 이녀석이 친구를 먼저 사귀고자 하는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단 학교로 향했다. "너 오늘 살살 놀아야해. 힘들면 또 배탈날거 같아서 엄마 너무 걱정돼..."라고 무의미한 다짐을 받고 학교에 도착. 녀석은 축구공처럼 튀어나간다. 나는 나름 흥미진진한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싶었지만 지루해하는 둘째와 그네도 타고 동네산책도 했다.

동네산책을 하다 깨달았는데 모든 돌담 아래 봉숭아가 피었다. 생각해보면 나 어렸을 적엔 아파트라도 골목골목 들꽃처럼 봉숭아가 자라서 여름마다 물들였는데. 이제 서울에선 보기 힘든 꽃이됐다. 제주에선 흔하디흔한 봉숭아를 우리는 신이나서 구경하고 예쁜 잎과 예쁜 꽃을 골라 잘 따서 소중히 가져왔다. 얼마만의 봉숭아 물들이기인지... 두근두근하다. 옛날엔 백반으로 했는데 몸에 안좋단 얘기가 있어서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소금으로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김에 서울로 올라갈 때 봉숭아를 잔뜩 따다주기로 약속도 했다.

축구는 1부 리그가 끝나고 2부 리그가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이 녀석이 또 아프면 큰일이기에 잘 어르고 달래서 철수. 같이 놀던 친구들이 왜 가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어서 "어제 배탈이 나서 아팠어. 열도 나도 약도 먹고. 그래서 오늘은 이제 쉬러 갈게~"라고 쐐기를 박고 퇴장... 미안하다. 나도 얘가 더 놀아서 실컷 놀았단 생각이 들면 좋겠어... ㅠㅠ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쇠한 기력도 보충하고 배탈난 사람에게 어울릴 전복죽을 먹기로 결정. 지도에 별표해둔 집을 찾아갔는데 세상에... 그 유명한 구좌리 전복집보다 훨씬 맛있었다. 양념맛이 아니라 재료고유의 맛을 살린 적절한 간이 되어 있었다. 전복도 더 크고 싱싱하고 쫄깃... 게다가 가격도 몇천원 저렴... 아픈 녀석을 위해 전복죽을 포장해가고 싶었는데 포장용기가 없단다. 그래서 다음에 냄비를 가져와 사가기로 사장님과 협의... 내일 아침에 당장 가고 싶다.

일찌감치 집에 와서 쉬려고 했는데 아뿔싸. 아까 봉숭아를 따왔지... 얼른 돌을 주워다가 잎과 꽃을 빻아서 준비. 20~30분이면 할 줄 알았던 봉숭아 물들이기는 무려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아이들의 손이 이렇게 작은 줄 몰랐다. 삐질삐질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애들 손에 봉숭아를 올리고 랩을 감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너희들이 응가도 혼자 닦고 목욕도 혼자 해서 이제 다 컸구나~ 했는데 손을 보니 아직 아기네..."
"(둘째)우리가 다 큰 줄 알았어?"
"응... 그런 줄 알았는데 손이 정말 작구나..."
깜깜한 밤에 제주에서 너희들 손에 꽃잎을 올리고 비닐을 감고 실로 동여매고 있노라니 왠지 코끝이 찡해온다. 아기들이였는데... 내가 몰랐네...

나의 아기들아. 내일 아침엔 아프지 말고 일어나자.
그리고 손끝엔 예쁜 봉숭아물이 들어있길. :)

매일 이 카페에서 우아한 시간을 보낼 줄 았았는데...
물총놀이 삼매경
캐나다로 간 고래
정글짐 꼭대기에 오르기
전복 먹고 힘내라!
"이 밑엔 뭐가 있지?" "따개비!"
하루의 마무리는 봉숭아 물들이기

즐거운 날이었다. 친구가 놀러왔고, 그 친구와 맛있기로 소문난 고기집에 점심으로 자투리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고, 예쁜 카페도 가기로 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김녕성세기해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첫째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냥 응가가 마려워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은 응가를 두번이나 하고 묽은변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얼굴이 퀭해진 아이. 아침엔 분명 평소와 같았는데 한두시간만에 눈이 푹 꺼지고 기운이 없다. 일단 서울집에서 가져온 매실액을 두숟갈 먹이고 길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보였는데 고기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 수가 확연히 적다. 동생이 말을 걸고 장난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오빠 *** 놀이하자!" 
"......오빠는 안할래......"
헉... 처음 들어보는 대화다. 정말 심상치 않다. (우리집 첫째는 먹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 빼고는 계속 떠드는 아이다.)

고기집에 내려 앞마당도 둘러보고 할 때는 또 좀 쌩쌩해서 안심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시켰는데... 밥을 못먹는다!!!! 그리고 눈이 더 푹 꺼졌다. 고기를 못먹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1인분도 넘게 먹는 녀석인데. 일단 친구와 나와 둘째는 아주 잘 먹었다. 나머지 사람이라도 잘 먹고 건강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 너무 더웠는데 이 녀석은 춥다고 했다. 비치타올을 차에서 꺼내 둘러줬다. 한참 기운없이 앉아있더니 밥을 먹겠다고하고 먹는데 1/4그릇 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먹으니 에너지가 다시 생겨 벌레도 잡고 동생이랑 까르르 웃기도 한다. 계속 머리를 짚어보는데 다행히 열은 없다. 카페를 가서도 키즈코코아를 다 마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 논다. 아침에 설사한 것이 힘들어 잠시 기운이 없었나보다 싶어 안심이 됐다.

그리고 김녕. 
이날은 정말이지 물놀이를 위한 날씨같았다. 바람 잠잠, 햇볕 쨍쨍. 튜브를 빌렸고 우리는 모래도 파고 파도도 타고 정말정말 잘 놀았다. 제주살이 3주차에 이렇게 물놀이를 재밌게 한 날은 처음이었다. 김녕에 물때도 좋아서 멀리멀리 걸어도 얕았고 중간에 땅이 또 생겨서 거기서도 모래를 팠다. 24시간 제주에 놀러온 내 친구는 돌고래처럼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보는 내가 뿌듯할 정도로 물에서 둥둥 잘 놀았다. ㅋㅋㅋㅋ 나와 아이들은 달리기도 하고 높은 파도(지만 수심은 내 엉덩이 정도)에 맞서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4시쯤 집으로 가려는데 멘도롱장이 열렸다. 제주와서 날씨 때문에 한번도 못만난 멘도롱장이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스치듯 안녕. 엉엉.

집에 왔는데 아까 아프던 녀석이 다시 아프다. 배도 아프고 덜덜 떤다. 열을 재보니 38.2도. 열이 나니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 끙끙 소리를 낸다. 얼른 씻겨 눕혀 해열제를 먹였다. 원래 공항까지 데려다주려 했던 친구는 저녁까지만 먹고 헤어졌고, 나는 집에 와 쌀죽을 끓였다. 아플땐 흰죽이지. 축 쳐져 있던 녀석은 열이 내리니 조금 살아났고 죽을 먹자 조금 더 에너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꾸룩꾸룩했고 응가도 한 번 더 했다. 밤에 열이 더 오르진 않을런지, 장염인지, 단순배탈인지, 감기인지 모르겠지만 잘 자고 괜찮아지길 빌었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아이가 아프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짚어보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아니야 내탓이 아니야'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제주에 와서 평소 잘 안먹던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었나? 어제 낮잠을 더 잤어야 하나? 아침마다 빵을 먹여서인가? 어제 먹은 해물칼국수가 별로였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얻은 결론은 피로누적이다. 이 녀석은 서울에서 밤9:00~9:30에 잠이 들고 아침7:30~8:00에 일어난다. 그러던 녀석이 운동량은 세배 이상이 됐고 매일 아침 6:30~7:30에 일어난다. 기본 수면부족이고 정말 쉬지 않고 놀아댄다. 3주내내. 피로누적은 결국 배탈을 불러왔다.

적당히 놀아야겠다. 나도 아이들도. 하지만 우린 열흘밖에 안남았는데... 흑흑...

자꾸 파보니 재밌다는걸 나도 깨달았다.
이제 호흡이 척척
바다를 온몸으로 즐기는 아이

 

카페도 즐길 줄 아는 아이(면 좋겠다)
뷰가 좋았던 고기집
내 친구와 아이들(너네 잘 어울린다)

이틀 연속 물놀이에, 낮잠 없이 산 날이 며칠째인지... 오늘은 쉬는 날로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한참을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집에서 점심먹고 낮잠. 낮잠 자고 일어나 이른 저녁으로 동네에서 유명한 해물칼국수(무려 칼국수 팔아서 빌딩을 지은 집)를 먹고 도서관, 마트, 빵집을 들러 귀가. 마치 육지에서의 평범한 토요일처럼 보냈다.

하지만 저녁 일정이 좀 독특했는데, 공항으로 친구를 데리러 갔다가 함덕 바닷가에서 수제버거집으로... 밤9-10시에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콜라를 와구와구 먹고 들어왔다.

내일은 제주에 24시간 체류하는 친구와 놀아야지!


공항가는 길. 해질녘 하늘이 예뻐서 신호대기에 찰칵.

저녁에 지인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라 낮에 과하게 놀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는 날씨였다. 누가 봐도 바다에 가야하는 그런 날씨. 아이참 어쩌지...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함덕으로 갔다. 바다에 가기 전 첫째는 이웃집 아이들과 얼음땡을 한참 하고 있었는데 더 놀고 싶다고 하던 와중 그 집도 함덕에 간다고! 그래서 아이들끼리 만날 장소를 튜브 대여소 옆으로 정하고 각자 출발.

바닷가에 가서 튜브대여소로 가니 이웃집 형제 중 동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바로 합류해서 그집 형제들과 거대한 모래구덩이를 파기 시작했고, 둘째는 날씨가 맑으면 튜브 빌려주기로 한 약속을 기억해내서 튜브를 빌렸다. 캐릭터 그림을 싫어하는 따님이 고른 것은 성인용 심플한 노란색 튜브.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몸이 쏙 빠질것이 분명하므로... 잘 달래어 공주그림의 튜브를 빌렸다. (왜 튜브에 여아 남아 구분이 있는것이며 여아는 왜 공주란 말이냐.)

둘째와 나는 오붓하게(?) 바다로 들어갔고 함덕 바다는 워낙 얕아서 걸어가고 또 걸어가도 물이 무릎밖에 오지 않았다. 이쯤되니 너무 얕은게 좀 원망스럽고... 어쨌든 더 걸어들어가 튜브를 탔다! 처음에 바닷물에 넘실대는게 좀 무서웠던지 가까이 잘 붙어있으라고 신신당부하던 녀석은 슬슬 즐기기 시작했고 꺅꺅거리며 잘 놀았다. 빠져봐야 자기 허리정도의 물이지만 그래도 조금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게 바다의 재미지. ㅋㅋㅋㅋ

코빼기도 보기 어려운 첫째를 넓은 바닷가에서 찾아내어 다시 집으로 출발. 한참 놀고 있는데 집에 가자고 하니 나도 좀 아쉬웠지만 이웃집 형제들에게 다음에 또 같이 오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왔다. 이제 바닷가에 가는 요령이 점점 생겨서 짐은 줄었는데 왜 모래 털어내는 시간은 줄지를 않는가... 아우 이래서 바다 물놀이는 귀찮아...

집에 돌아와 씻고 옷 갈아입고 애월로 출발. 무려 1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했는데 참 신기한게... 3박4일 여행오고 할 때는 제주도를 한바퀴 돌기도 하고 가로지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한달살이 하는 동안은 30분 넘어가면 너무 멀다. 실제 거리로는 정말 멀기도 하고. 암튼 멀리멀리 애월에 도착했는데 직접 지은 한옥에 살고 계신 분이다. 도착해서 대문에 들어서니 상상했던 것 보다 더더더더 부러웠다. 집도 예쁘고 마당도 예쁘고... 이런 집에 살면 한달간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을 수 있겠더라. 그게 내가 꿈꾸는 삶인데. 게다가 내 손으로 지은 집이라니...

차려주신 고기와 회와 한치물회를 신나게 먹고(놀랍게도 나 제주와서 회 처음 먹었다...엉엉), 아이들은 뒷마당에서 쪽염색도 해보고 잡초도 뽑고(잡초뽑기를 산삼캐기만큼이나 재밌어하던 아이들 ㅋㅋㅋㅋ) 매우 즐거운 시간... 둘째녀석이 "엄마, 나 제주에서 마당있는 집에 살고 싶어."라는데 나도 그래 얘야. 나도 너무 이런집에 살고 싶어... 너무 잘 놀았던 우리 어린이들은 그 집에서 나와 차 출발하자마자 "그 아저씨 보고 싶어"와 "또 놀러오고 싶어"라고 말했다. ㅋㅋㅋㅋㅋ 분명 어른 둘이 사는 집인데 어린이 맞춤형 프로그램 같았던, 마치 친정집 방문 같았던 날이었다.

그나저나 엄청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제 만난것 같은 느낌은 페이스북 덕인걸까, 각종 메신저 덕인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걸까. ㅋㅋㅋㅋㅋㅋ

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날씨에 민감하다. 왜냐면 아이는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나가기 때문에. 출근하고 나서 날이 생각보다 더워도 미안하고 추워도 미안하다. 그래서 매일 일기예보를 챙겨듣고 보고 앱으로도 확인하는 편인데 제주에 오고 나서 예보를 확인하되 신뢰하지 않는다.

오늘도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잔뜩 흐리기에 (다행히 비는 안옴) 뭘 하나... 고민하다가 오름에 가기로 결정했다. 근데 아침에 돌린 빨래가 좀 늦어지고 여기 마을안에 있는 코인세탁소의 건조기가 이게 건조기인지 찜기인지 모를 성능을 보이는 바람에 더 늦어져서 애초 예상시간보다 한시간반 가까이 늦어졌다. 그러는 사이 구름사이로 해가 나고 기온이 올라간다. 이럴수가. 날씨가 이러면 바다에 가야지!!!! 제주살며 터득한건 계획이고 뭐고간에 날이 맑을때 바다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오늘은 간단히 짐을 싸서 출발. 가는길에 있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도 포장. 신난다. 행선지는 소박한 김녕성세기해변. 김녕의 가장 큰 메리트는 해변과 수돗가가 가깝고 수돗가와 주차장이 가까워서 마지막에 짐을 나르기에 쉽다는 것.

해는 나는데 바람은 정말 세다. 김녕 해안가에 설치된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선풍기인양 뱅글뱅글 돌아가는 날씨였다. 언제나처럼 애들은 구덩이를 파고 모래언덕을 만들었다. 첫째는 옆 바위에서(이것도 김녕의 장점) 소라게와 고동을 잔뜩 잡아왔고 둘째는 오빠의 작업지시에 따라 착착 움직였다. 오늘은 나도 모래를 좀 팠다. 아니 근데 이거 재밌잖아! 파고파고 또 파고. 애들이 왜 제주에서 내내 모래만 팠는지 알겠다. 그리고 바다에도 풍덩... 춥지 않았더라면 더 들어갔겠지만 조금 놀다보니 너무 춥고, 물 밖으로 나와도 바람이 세서 추웠다. 해가 쨍쨍할때가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햇볕을 맞았다. 몸 좀 말리려고...ㅋㅋㅋ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세상 좋더라. 해수욕 뒷마무리에 대한 생각은 애써 잊었다. (그동안 이 걱정에 항상 심란...) 

오늘의 깨달음은, 사진을 찍으면 바다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 사진찍기 위해선 손을 더럽힐 수 없는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어떻게 바다에서 논단 말인가... 사진을 포기하고 놀고 있으니 참 좋더라. 중간중간 애들이 자기작품(모래성)을 사진찍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내 손을 보여주며 "찍을수가 없어"라고 설명하느라 좀 귀찮았지만. 그리고 모래놀이도 자꾸 하니 실력이 늘더라는 것. 요령도 생기고 모래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도 점점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는지 아주 그럴싸한 것들을 빨리 만들어내더라. 물에 휩쓸려가도 슬퍼하지 않고 잽싸게 새로 구덩이를 판다.

3시가 넘어가니 추워서 놀기 힘들지경이 되고 얼른 수돗가에서 몸을 헹구고 다시 집으로 출발. 주차장에서 데워진 차가 따뜻하니 좋을 지경이었다. 

몸은 힘들지만 역시 바다놀이가 재밌어.
그나저나 사진을 보니 맨날 똑같아 보이네 ㅋㅋㅋㅋㅋ

오밤중에 컵 닦다가 문득 깨달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1. 흔한 바다
아직까지 바닷가에 가면 신나게 놀지만 이제 해안도로쯤은 애들에겐 심드렁한 존재. 서울에선 한강다리만 지나도, 강변북로만 달려도 한강이라며 서로 보겠다고 다투더니 배가 불렀구만.

​2. 집밥의 소중함
서울서는 주말에만 한두번 외식을 하다보니 외식하자면 환호성을 지르더니 제주와서 잦은 외식에 어떤 메뉴를 말해도 감흥이 없고 집에서 맨밥에 프랑크소시지 구워주니 너무 맛있다고 신난 아이들.
그러길래 엄마가 밥해줄때 고마운줄 알아.

​3. 알쓰
원래 술을 잘 못마시지만... 그래도 맥주 500 두잔은 마셨는데, 보름간 퓨어하게 살았더니 300에도 취한다.
아놔.
서울가면 이제 치맥 못하겠네.

​4. 섬사람 운전
아무데나 정차, 아무데서나 유턴, 1차선으로 주행... 제주 살며 익힌 운전방식이다. 다른건 시골길이라 그렇다쳐도 이 섬은 왜 모두 1차선으로 달리고 2차선은 비워두는 걸까.
아무튼 입도 첫날은 차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렌트카 운전하는거 보면 속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섬사람들은 모두 나를 추월해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밤새 비가 왔는데 아침에도 비가 왔다. 그리고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날씨 앱을 열어보니 시간당 40mm의 비가 온다고 한다. 서울에서 비가 많이 온다고 느낄때 18-20mm 정도다.

어젯밤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비자숲힐링센터에 점심밥과 실내놀이터를 예약해두었다. 후기들을 검색해보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몸을 쓰고 싶은 마음과 우리집 책벌레의 책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코스다. 비자림 바로 옆이어서 공기도 좋고, 아이들 놀이터도 목재로 되어 있고 식사도 한살림 쌀을 쓴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

비 오는 걸 감안해서 좀 일찍 집을 나섰는데 산간도로를 올라서니 비가 더 온다. 차 사고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본 적이 없는데(일단 비가 많이 오면 겁나서 차를 안타기도 하니까...) 최대 속도로 올리니 적당한 정도다. 차 속도는 시속 40km. 슬슬슬 기어간다. 급하지 않으니까. (비자숲힐링센터의 원래 이름은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다. 아토피, 천식 등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같다. 아... 여기로 취직하고 싶었다. 너무 좋은 곳...)

점심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름은 문화공간이던가? 강화마루가 깔려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하고 창 밖을 바라 볼 수 있는 자리도 있고(카페처럼) 피아노도 있더라. 어린이들을 위한 좌식 공간도 있는데 그곳엔 보드게임이나 퍼즐도 있었다. 책도 출판사에서 기증한 듯한 모두 새책들이었고, 간행물도 꽤 있었다. 아... 너무 만족!!! 마음이 급해진 우리집 책벌레는 빨리 읽고 새로 고르고를 반복했고, 둘째는 나랑 피아노도 치고 구경하다가 책을 여러권 읽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시간.
점심시간... 많은 블로그에서 밥 맛있다는 얘길 읽었는데... 정말 맛있다. 급식 식판 같은 곳에 밥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밥 먹으러 또 오고 싶은 곳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애들도 다들 와구와구. 밥 먹는 곳 이름이 '냠냠뇸뇸식당'이었는데 이름대로였다.
그리고 1시가 되어 기다렸던 실내놀이터로 갔는데 우리 애들은 7세 이상이어서 다랑이놀이터로. 그물로 짜여져있는 몸을 쓸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거기서 매달리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2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놀았다. 아무래도 이런 실내놀이터는 유아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6세 이하가 노는 방엔 사람이 빼곡하던데 여긴 널널... 그 큰 공간을 다른 아이 한명 보태서 세명이서 놀았다. 나는 들고간 김연수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어서 뿌듯! 아이들은 알차게 놀고 다시 책읽는 공간으로 올라가 책 읽고 마무리. 

비가 좀 잦아들면 집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잦아들지 않아 집으로 왔는데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에 신발과 바지 모두 젖어버렸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서 그 많은 물방울이 옆으로 날리는데 피할 길이 없다. 다 젖었다며 징징 거리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서 탑승 완료.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만만치 않게 왔고 시야확보가 되는 속도로 슬슬 왔다.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지날 때 마다 뒷자리의 녀석들은 신이 났고 나는 차 하부청소가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던 집에 오는 길.

내일은 비가 좀 안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뭐하지...

나도 어린이면 놀고 싶었던 놀이터.

비가 온다.
생각해보면 비가 안오는 날이 더 적었던 것 같다. 이 섬에 도착했을때도 비가 왔다. 

오늘 아침엔 사실 비가 안왔다. 어젯밤에 부슬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엔 해가 나려해서 신이 나서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점심에 동네로 고기국수를 먹으러 나갔는데 국수를 먹는 사이 비가 쏟아진다. 아... 빨래건조대를 얼른 집으로 들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 일정도 꼬인다. 사실 바닷가 카페에 가서 나는 책을 읽고 애들은 놀면 되겠다 싶었는데 비라니... 국수를 후루룩 먹고 들어와서 빨래를 구출하고(하지만 이미 꽤 젖었더라. 엉엉) 뭐할지 애들에게 물으니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집에서 그림그리고 색종이 접고 싶다 한다. 둘이 정해보라고 했더니 둘째가 얼른 의견을 바꾼다. 대체로 뭐하고 놀지에 대해서는 둘째가 접는 편이고, 뭘 먹을지에 대해선 첫째가 접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비가 오면 가야겠다고 염두에 둔 곳이다.

돌문화공원에서도 화산에 대한 설명과 제주도가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해서 나오는데 영상이 좀 올드하고 관리가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돌문화공원은 박물관보다도 주변 환경이 더 좋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잘 관리되고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적절한 수준이었다. 영상도 깔끔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4D 영화관이었는데 20분 길이의 짧은 영화였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와 제주의 오백장군 설화가 함께 나오는 이야기인데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지만 4D체험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어릴적 좋아했던 롯데월드의 다이나믹씨어터가 생각났는데 우리집 애들은 의자가 덜덜 거릴때 마다 때로는 무서워 하면서 아주 스릴있게 봤다. 마지막 코스에서 VR체험도 있었는데 애들은 신기방기... ㅎㅎㅎ 세계자연유산을 보러 갔다가 첨단 과학을 체험하고 왔다. 비가 안왔더라면 둘러보기 좋게 산책코스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하지만 비가 안왔더라면 여길 안왔겠지. ㅋㅋㅋ

오후에 밖으로 나오니 비가 좀 잦아든다. 그렇다면 포기했던 바닷가 카페를 좀 다시 가볼까? 구름속을 헤치고 안개등과 라이트를 모두 켜고 슬슬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구름지대를 지나고 나니 삼나무길이 나온다. 아... 여기로구나... 베어지고 있는 비자림로... 즐비하던 삼나무가 어느순간 뚝 끊어지며 한쪽이 휑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휑하다. 때마침 밖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첫째가 묻는다.

"엄마, 제2공항보다 삼나무라는데 무슨 말이야?" 
"제2공항을 지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잖아. 그런데 여기는 좁은 길이지. 그래서 차가 더 많이 다닐 수 있도록 이 키크고 멋진 오래된 삼나무를 베어버리고 있어."
"그 공사하는 사람을 내가 다 베어버릴게!"
"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그럼 공항을 사람도 없고 나무도 없는데에 지으면 되잖아."
"공항을 짓는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건데,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이 많은데 공항을 짓는게 좋겠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면 되지."
"대통령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나중에 국회의원 되서 이거 공사한 사람들 다 나무 다시 심으라고 할거야."
밑도끝도 없이 국회의원이라니....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바닷가로 향했다.

이 카페는 자그마치... '제주 아이와 카페'로 검색해서 찾은 카페다. 그 중 카페에서 바다가 보이면서도 해변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어서 어른은 쉬고 아이는 지겹지 않은 그런 곳!!! 다행히(?) 비가 와서 사람이 붐비지 않았고 육지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허니버터브레드와 차와 사과쥬스를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나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혹시 문에 손이 끼이지 않을까, 돌에서 넘어지지 않을까 등등 계속 조마조마.......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피곤한 사람인건가. 이렇게 또 자기성찰의 섬에서 하나를 깨닫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다와 카페를 몇번씩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바다 보며 차 마시고 바람을 실컷 쐬니 마음이 좋다. 바다가 피곤한 줄 알았는데 나는 모래사장이 피곤했던 거였구나. ㅋㅋㅋㅋㅋㅋ 모래사장은 모래가 묻어서 싫으니까... (으앙 피곤한 나 자신...) 잠깐의 바다구경으로 허한 마음을 충전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그리고 차린건 별거 없지만 두 녀석 다 잘 먹는 양배추찜과 함께 집밥으로 마무리.

그래. 오늘도 즐거웠다. :)

손님이 다녀가고 나서 제주엔 다시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비는 불규칙적으로 오다 그치다를 반복했는데 신기하게 지인이 방문한 기간동안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 더 신기하게 그가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간 순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도 했고, 4일간 빠듯하게 관광객 모드로 놀았던 우리는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늦잠을 잤다. 아무래도 옆방으로 바로 달려가 놀자고 조를 사람이 없으니 깊이 잔 것 같았다. 6시반이면 일어나던 첫째는 7시반에 일어났고 둘째는 심지어 8시반이 되도록 쿨쿨 잤다. 나도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챙겼다.

오늘은 집순이모드로 동네 우체국에 들러 둘째가 단짝친구에게 쓴 엽서를 서울로 보내고, 조천읍도서관에 갔다. 블로그 검색해보니 육지에서 쓰던 대출카드로 가능하다기에 방문했는데 너른 주차장을 보니 제주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자체는 아담했고 창이 많은 도서관이라 표지색이 바랜 책들이 꽤 있었다. 서울의 도서관은 창이 너무 없어서 답답할 지경인데 창이 많으니 이런 단점도 있구나 싶었다. 유아동 책은 따로 모여있어서 초등학생인 첫째는 스스로 책을 골라와서 읽었고, 아직 글을 술술 읽진 못하는 둘째는 제목을 보고 책을 골라와 내가 읽어줬다. 나는 신간코너에가서 책을 골랐고 김연수 장편소설과 이슬아의 책을 득템. 대출은 1인당 5권까지 되고, 육지에서 쓰던 대출카드를 가져오면 제주로 이관해준다. 다시 육지로 돌아가서는 육지로 이관하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찬가게와 하나로마트를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가기 전 예약취사, 빨래는 예약세탁 해놓으니 모든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면 나는 무척 기쁘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뭔지 새삼 또 깨닫게 된다.

오늘은 집에 있기로 마음먹은 날이기에 둘째는 낮잠을 자고 첫째는 수학공부를 좀 했다. 학교에서 곱셈을 배우고 있을텐데 우리도 조금 해봤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면서 어렵다고 한 적이 없는데 배우지 않고 혼자 풀어보려니 어려웠던 모양이다. 몸을 배배꼬고 책 좀 보고 다시풀면 안되겠냐고 한다. 처음엔 나도 엄마모드로 '조금 더 해봐'라고 하다가 20여년전 경험을 살려 과외선생님 모드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첫째가 수학문제를 푸는 사이 나는 빌려온 책을 후루룩 읽었다. 그래, 나 제주에 와서 책 좀 읽고 싶었어.

낮잠 자는 둘째 옆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두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도 많이 피곤했구나. 낮잠 자고 일어나서 보기로 약속한 토이스토리3를 틀었다. (이걸 보려고 서울집에서 hdmi케이블을 챙겨왔다...) 극장에서 아이들과 4편을 보기 위한 준비...ㅋㅋㅋ 소문처럼 후반부에 눈물이 주루룩... 엉엉 고마웠어 나의 장난감들.

저녁을 먹고 세수하고 자려는데 씻을 준비를 하던 둘째 녀석이 오빠랑 웃긴 얘기를 하다가 바닥에 쉬를 했다. 화가 났다. 이 녀석은 깔깔 거리다 자주 오줌을 지리곤 하는데 제주에 와서는 그게 너무 심했다. 차에서도 찔끔, 집에서도 찔끔. 집에서는 그나마 나은데 차에서 그러면 대책이 없어진다. 가까운 10분 이내 거리면 집에 돌아오면 되지만 30분 넘는 거리에 나가서 그러면 나는 패닉과 카오스의 상태가 되어 분노가 휘몰아친다.

이런 일이 일주일째 반복이 되니 더더욱 화가 났다. 두 녀석이 차에 떠들다 웃기 시작하면 나는 긴장이 되기 시작하고 왠지 이쯤이면 오줌을 쌀 것 같은 단계가 되면 경고한다. "이제 웃기는 얘기는 그만하자. 쉬 쌀거 같은데?" 이런 나의 부드러운 경고를 들을 턱이 있나.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계속 낄낄 거린다. 두번 세번 더 얘기하지만 내 얘기는 귓등으로 듣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둘 중 하나인데 ①화를 내며 둘의 대화를 중지시키고 다행히 참사는 막는다. ②결국 참사가 벌어지고 나는 화를 낸다. 뭐든 나는 화를 내는 엄마가 된다.

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왜 나는 화가 나는가, 왜 나는 뭐든 화내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보니 너무 슬펐다. 이러려고 온게 아닌데. 나는 잘 놀고 싶은데. 나도 웃기만 하고 싶은데. 나는 왜 애들이 깔깔거리기 시작하면 긴장하고 화를 내야 하는가. 두 녀석을 다 씻기고 나서 결국 나는 눈물이 났고 "엄마도 웃는 엄마 좋은 엄마 하고 싶어. 그런데 화를 내야 쉬를 안싸거나, 쉬를 싸서 화를 내게 돼. 맨날 화내는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엉엉엉" 고백했다. 내가 울자 첫째는 엄마가 속상해서 자기도 속상하다며 울었고, 둘째는 엄마가 화를 내서 속상하고 화를 내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며 울었다. 셋이 모두 엉엉 울게 된 제주의 밤.

나는 왜 화가 나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오줌을 싼 후 내가 맡아야 하는 노동의 양이 많아져서인지, '예측되지 않은' 불상사가 싫은지, 일곱살이 되었음에도 쉬를 싸는 자식이 못마땅해서인지, 여러번 주의를 줬으나 내 말을 허투루 듣는 녀석들 태도가 맘에 안드는건지, 매일 반복되는게 지겨워서인지, 이 상황에 출구가 없어서인지... 모두 다 인지. 모르겠다 나도. 확실한건 난 이 상황이 싫다. 그리고 벗어나고 싶다. 대체 왜 나는 이 문제로 매일 화내는 엄마로 변신해야 하는가. 

내일은 바닷가 카페로 가야지. 나는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마음의 평온을 찾아야지. 내 마음의 소용돌이는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따라가봐야지.

목요일에 놀러왔던 지인이 서울 가는 날이다. 어제 저녁부터 이모가 간다고 서운해하던 아이들은 마지막 날인지라 더 많이 놀고 싶다.

오늘 첫번째 코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흘분교. 이모랑 꼭 가고싶다고 해서 시소도 타고 정글짐도 오르고 그네도 타고 축구도 했다. 바람이 엄청 불고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첫째는 축구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교문이 하루종일 열려있는 학교. (사실 '문'이 없다) 시간만 되면 닫히고 드나들 때 마다 출입기록을 쓰고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 서울의 학교는 얼마나 삭막한가. 두번째 왔지만 여전히 선흘분교는 매력있다.

함덕에서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멘도롱장이 이번주는 김녕에서 열린다고 해서 오늘 물놀이는 급하게 김녕으로 수정. 난 워낙 김녕이 좋으니까 괜찮아! 점심무렵 물놀이를 시작해 놀다가 멘도롱장에서 구경하고 집에 들어오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잔뜩 흐리던 하늘이 개고 햇볕이 쨍 나는게 물놀이하기 진짜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김녕에 도착하자 바람이바람이... 텐트를 치는 것도 어렵고 무사히 텐트를 치고 줄로 매어놓았지만 놀아도놀아도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모래를 파고 또 파고. 추우니 물에 못들어가서 정말 모래만 계속 파서 한라산 모양의 모래성을 완성했다. ㅋㅋㅋㅋㅋㅋ 부산이 고향이어서 어릴적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아주아주 많이 했다는 지인 덕에 아이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성을 만들었다. 아무리 땅을 파고 놀아도 너무 한적한 바닷가가 수상해서 인스타를 살펴보니 강풍으로 멘도롱장은 취소. 아놔. -_- 멘도롱장 날짜에 맞춰 바다에 가느라 맑은날 못놀았는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금요일에 바다에 갈걸!!! 

얼른 집에 돌아와 씻고 월정리 구경. 월정리는... 성수동 같았다. 골목골목 가정집들은 거의 음식점이나 커피숍, 소품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해안도로에는 쇼핑몰도 생겼다. 상업의 손길은 얼마나 뻗어나가려나... 덕분에(?) 예쁜것도 꽤 사고 많은걸 구경해서 신났지만, 삼청동이나 연남동처럼 변하지말기를. 변해도 조금 천천히 변하기를. 근데 그것도 그냥 내 욕심이겠지.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 날이 맑았더라면 해질녘 하늘이 진짜 예뻤을텐데 아쉽다. 이모와의 마지막 한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퀴즈를 내던 우리집 녀석들. 그치. 나도 이모랑 삼촌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헤어질 때 마다 가지말라고 울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 자는 사이에 몰래 집에 가기도 했었지. ㅎㅎㅎ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 역시 있던 사람이 가는건 누구라도 허전한 일이다. 그것도 나흘을 거의 함께 했더니 더더욱. 찾아왔던 이가 서울로 떠나자 비로소 내가 여기 살고 있구나 싶다. 비록 한달살이지만 여행자와 사는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다르구나. 나는 내일부터 다시 제주에서의 삶을 살아야지.

공항가는 길. 야자수가 있는 저녁 길을 보고 있노라니 괌인지 제주인지.

절물휴양림은 내가 제주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좋아해서 가고 또 가도 좋은 그런 곳. 지인이 한 번도 안가봤다기에 아이들과 또 방문. 삼나무 숲은 여전했고 제주 특유의 식물들이 주는 남도의 느낌도 여전히 좋았다. 데크가 잘 깔려서 애들과 다니기에 좋고(어른이 걷기엔 좀 아쉬움이 있지만) 중간중간 평상도 많아서 간식 먹기도 좋고. 두세시간 숲에서 놀고 걷고 했는데 날씨도 선선하고(선선해서 오히려 움직이지 않으면 추울 정도) 공기도 워낙 좋아서 숲에서 나오는데 몸이 가뿐했다. 애들이 좀 커서 3시간반짜리 코스도 함께 다녀오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까마귀가 많아서 둘째의 장기인 까마귀소리 따라하기도 하고(정말 똑같다), 숲 한가운데 그네도 타고, 질경이를 따서 풀씨름도 하고, 고사리가 진짜 많다고 감탄도 했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오늘의 수확(?)은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숲에서 풀 먹는 녀석을 만난 것! 숲길을 한참 걷는데 풀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길래 걸음을 멈추고 뚫어져라 쳐다보니 갈색 털의 몽실몽실한 녀석이 오물오물거리고 있다. 그녀석은 사람에 대해 적절한 긴장과 친근감을 가지며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걸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지만, 무리하게 걷다 지쳐 본 어제의 경험을 떠올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우린 반짝 놀고 집에 돌아갈 관광객모드는 지양하자. 들어오는 길에 함덕에 잠시 들렀는데 상시적으로 있는 해변의 가게들 중 헤나를 하는 곳이 있어서 모두 헤나 한개씩. 모두 인생 첫 헤나였는데 7세, 9세에 인생 첫 헤나라니 아이들이 부러웠다. 너희들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