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카세트테잎은 015B 4집이었다.

당시에는 휴대용 플레이어가 없어서 엄마가 사준 AIWA 라디오 겸용 플레이어로 테잎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즈음에 휴대용 플레이어가 생기긴 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아마도 중 2.


Apple | iPhone 5 | Normal program | Pattern | 1/15sec | F/2.4 | 0.00 EV | 4.1mm | ISO-640 | Off Compulsory | 2014:12:16 00:48:33


중학교 1학년 때 우리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됐고 나는 엄마랑 언니랑 삼성동으로 이사를 가게됐다.

지금 생각해도 삼성동에서 구반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우리 엄마는 나를 전학시키지 않았고(지금 생각해보면 달라진 가정환경에 전학까지 가면 내가 적응하기 힘들까봐 그런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됐다.


학교 정문 앞에 살다가 30~40분 거리를 버스타고 통학하는 것은 너무도 적응이 안되는 일이었다.(그나마 당시엔 차가 막히는 일은 적었으니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나는 특별히 더 놀았던 것도 아닌데 성적이 뚝 떨어졌다.

성적이 떨어진 것은 전혀 슬프지 않았지만 달라진 내 처지는 힘들어 매일매일 펑펑 울었던 것 같은 그 시절.

뭐든 다 자신없고 소극적이게 했던... 그래서 밖으로는 더 아무렇지도 않은듯 살았던 시절.


그 시기에 정말 많이 들었던 015B 4집.

같이 샀던 앨범이 아마도 신승훈 3집이었을텐데, 그리고 가요톱텐 차트는 늘 신승훈이 휩쓸었을텐데 평생 남는 음악은 공일오비.

그런거 보면 유행이란게 무색하기도 하다.


이 앨범은 '신인류의 사랑'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앨범이다.

당시에는 없었던 직설적인 가사로 엄청 인기가 있었고 얼굴없는 가수니 어쩌니 하는 말도 나왔던 것 같다.

아직도 015B 하면 이 노래가 거론되고 이 노래만 부르고 반짝 사라진 가수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그야말로 전형적인 015B식 발라드.

(신인류의 사랑은 너무 가벼워서 이 앨범 중 가장 안좋아하는 노래였다. -_-;;)

이때부터 나의 이장우 앓이는 시작되고... ㅋㅋ


그리고 이 앨범에 수록된 '第四府'라는 노래는 권력을 가진 3부(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넘어 언론이 4부라며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로 93년에 나온 노래인데... 어찌된게 20년이 지난 2014년에도 상황이 딱 맞다.

세상 참 안변한다.

(역사가 발전하고 있는게 맞냐? 진짜?)


암튼 그 옆은 015B 5집.

6집은 CD로 사서 테잎은 5집이 끝.


'생각정리함 >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나리꽃  (0) 2017.01.07
나의 카세트테잎_1. 015B  (0) 2014.12.16

친정집이 이사한다.

2004년인가? 이사간 지금 집.

이사간 이후 그 동네에서 살았다는게 무색할 정도로 잠만 잤던 공간이어서 아무런 정이 없었는데 막상 이사한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다.


2004년에 갈 때에도 하던 일이 잘 안되서 있는 돈에 맞춰 멀리 간건데...

이번에도 일이 잘 안되면서 작은 집으로 가는 거라서 마음이 좋지 않다.


어쨌거나 짐정리를 좀 돕고... (사실상 나 말고 남편씨가 거의 다;;;) 마지막 남아있던 내 짐인... 카세트 테잎을 정리했다.

친정집이 이사가지 않고 천년만년 살았다면 계속 거기 두었겠지만 이사가며 버림당하게 될 내 추억들이기에... 사진을 찍어두고 꼭 가져와야할 녀석들만 챙겼다.


정말 아끼는 앨범들만 꽂은 1면.

그리고 중간중간 내 손조차 오그라드는 앨범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들었던 나머지 면들.

고이 가져온 녀석들에 대한 설명은 이번주 내내 조금씩 해야지.

반갑다, 내 추억들.



Apple | iPhone 5 | Normal program | Pattern | 1/15sec | F/2.4 | 0.00 EV | 4.1mm | ISO-2000 | Off Compulsory | 2014:12:14 19:52:24


Apple | iPhone 5 | Normal program | Pattern | 1/15sec | F/2.4 | 0.00 EV | 4.1mm | ISO-2500 | Off Compulsory | 2014:12:14 19:53:04


Apple | iPhone 5 | Normal program | Pattern | 1/15sec | F/2.4 | 0.00 EV | 4.1mm | ISO-2500 | Off Compulsory | 2014:12:14 19:53:15


Apple | iPhone 5 | Normal program | Pattern | 1/15sec | F/2.4 | 0.00 EV | 4.1mm | ISO-2000 | Off Compulsory | 2014:12:14 19:53:26


  1. 2015.03.01 16:04

    비밀댓글입니다

난 매우 정치적인 성향이 뚜렷하고 사람을 정치적인 성향으로 판단하는 등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나... 내 아이들에게 그것을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규정하고 싶진 않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는 일은 도둑을 잡고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에게 '경찰은 사실 정당한 집회를 보장하지 않고 불법채증을 일삼는 등정권의 하수인일 뿐이다'라고 설명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훌륭한 경찰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집단이 훌륭하지는 않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지안이에게 따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 우리집은 아이들과 TV를 보지 않기에 더더욱 얘기를 꺼낼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언젠가 한 번 촛불집회 장소 앞을 지나가면서 집회자리에 잠깐 앉아있긴 했지만 촛불이랑 놀다 온 것이 다였다.
4~5월에 한참 수시로 눈물을 후두둑 흘릴때 왜냐고 물으면 "엄마가 좀 슬퍼서"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노란리본모양 브로치(무슨 의미인지 알고 단 것은 아니고 그냥 아침에 내 화장대에 있는 걸 보고 달아달라고 하기에 달아줬다)를 달고 간 지안이가 저녁에 하원하며 담임선생님에게 "나 이거 달았어~"하고 자랑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지안이에게 "지안이 그거 무슨 뭔지 알아?"라고 물었고 지안이는 "뭔데?"라고 되물었다.


"얼마전에 큰 배가 사고가 나서 바다에서 가라앉았어. 근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해서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왜 죽었어?"
"배가 뒤집어졌는데 너무 빨리 가라앉았어"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에 다~ 빠졌어?"
"응. 그래서 그 사람들을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뜻에서 다는 리본이야."
"그런데 왜 사고가 났어?"
"음... 배가 너무 낡아서..."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데 머리속이 엉키고 마음이 일렁였다.
네살배기 아들에게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지 않은 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죽은 사람들이 꽃다운 고등학생이었다고, 그들은 어른들이 만든 통제와 획일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그냥 그렇게 물속에서 죽어갔다고 얘기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길거리에서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조금 살만해 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뒤숭숭한 마음을 주섬주섬 수습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묻는다.
"엄마. 바다에 배가 뒤집어져서 사람들이 빠졌는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했어?"
"어...어? 어... 그랬대..."
한 번 들은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쿵...

문장구사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엄청 좋은 이 네살짜리 아들에게...
나는 이 세상의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살며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날 때, 아이들에게 얼만큼을 알려줘야 하는 걸까.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알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시간도 늦었고해서 그냥 잘까 하다가...

오늘은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뭘 쓰기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지나치게 계획적인 나는 일상도 늘 계획을 세운다.

일주일 단위로 잘라서 매주 일요일 저녁즈음 요일별로 집안일과 다른일들을 분류하고

매일 저녁에는 그 다음날 일을 오전, 오후, 저녁, 밤으로 배치한다.


오늘 몸도 마음도 무척 힘이 들었다.
힘들다고 느낀건 5시무렵.
내가 오늘 계획했던 일을 대부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미 시간이 늦어서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종일 일을 했다.)
주말을 자기 좋을대로 즐기고 허비한 사람에 대한 짜증과 분노였을 수도 있겠다.
오늘 내 계획대로 하지 못한 것엔 내 잘못이 전혀 없었으니까.

모르겠다.
그냥 내일 걱정 안하며 지금 당장이 즐거운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건지.
늘 내일에 대비하며 살아서 기복없이 사는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아, 어찌됐건...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
내가 화가 난 것은 너의 즐거움 때문에 늘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보름가까이 너무 힘들었다. 
워낙에 유리멘탈이기도 하지만 특히 남의 슬픔에 쉽게 감정이입하는 사람이라(진짜 유치한 드라마나 애니도 주인공이 울면 같이 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게 버거웠다. 

그래서 5월에 들어서면서는 뉴스를 끊었다. 
사랑하던(!) 손석희씨도 끊었다. 
페이스북에 걸린 링크기사들도 왠만하면 누르지 않았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부던히 노력했다. 
내가 살 수가 없어서. 

근 한 달이 걸렸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어떤 일에도 집중이 안되고 중간중간 감정이 널을 뛰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사람에겐 그게 가장 위험하다. 
내 감정을 아이들이 받아야 하니까. 

어쨌건 나는 돌아왔다. 
나는 뻘소리도 할 것이고, 맛있는 거 먹은거 자랑도 할 것이고, 가끔 다른 사람 흉도 볼 것이고, 자주 애들 사진을 방출할 것이다. 
늘 그랬듯 끊임없이 떠들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모든걸 잊은 것은 아니다.
더이상 분노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운운하며 나의 일상을 말하는데 죄책감 느끼게 하지 마라.
(온라인 공간이 늘 주장만 하고 늘 엄숙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지칠지 생각해보라.)

나는 수다도 떨고 때로는 주장도 하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것이다.
내가 당신과 같이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쟤 이제 별로야’라고 생각한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냥 날 앞으로 안만나면 된다.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냐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한 달 동안 나름의 자기검열 때문에 짜증이 났으니까.
내가 이런 얘길 떠들면 저사람이 날 변했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이런거 했다고 하면 저들은 날 철없다 생각하겠지?
등등.

다른 사람 시선이나 평가따위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남의 이목이 걱정됐다.
다 내 멘탈이 불안정한 탓이었겠지만.
남이 날 어떻게 보면 어떤가.
난 그냥 난데.
언제부터 내가 남들 시선 의식하며 살았다고.

여튼 난 내 방식대로 내 삶을 살아야지.
한 달.
길었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란리본과 지안이  (0) 2014.12.04
2014.11.16의 감정  (0) 2014.11.17
2014년 5월.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 한 달.  (0) 2014.05.27
활동가들이 수시로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꾼다.  (2) 2014.03.10
나 요새 뭐 하나  (0) 2014.03.01
아빠  (0) 2014.01.27

라은이 모유수유를 2014년 3월로 마감했다.

6월생이니 10개월 가량 얻어먹었다.


지안이는 이가 빨리 났을 뿐 아니라(6개월에 이미 이 네개) 뒤집기와 배밀이도 빨리 시작해서 진득하게 먹질 않고 맨날 도망가서 훨씬 더 빨리 끝냈었는데 라은이는 이도 평균속도로 나고 도망가지 않고 잘 찰싹 붙어서 먹어줘서 좀 더 얻어먹었다.

완모였더라면 돌까지 먹였겠지만 어차피 혼합수유였기에... 양도 줄었고 더이상 잘때 먹으며 잠들지 않았기에 서로 기분좋게 마감.


근데 지안이도 라은이도... 10개월 전에 뭘 모를때 중단해서 그런지 정말 젖먹는 걸 금세 잊었다.

엄마 마음 서운하게시리.

몇 달을 품에 끼고(여름엔 땀 범벅이 되어가면서도) 내몸에서 나오는 영양을 주었는데... 딱 일주일 안먹었는데 다시 물려주려하자 먹는 법을 잊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살짝 깨물어 보더라.

(지안이는 아가 때 만지작 거리기만 함;;;)


힘들지 않게 - 울고불고 하거나 잠을 못자거나 하지 않고 - 젖을 뗀다는 것은 엄마나 아가나 좋은 일이지만 너무 이렇게 무자르듯 끝나니 섭섭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게 자식 키우는 이치겠지.

어느날 훌쩍 내 품을 떠나버리는.


여튼 나는 이제 각종 유해물질을 먹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카페인은 심장 두근거리고 체력딸려서 먹을 수가 없고.

술은 2년이나 쉬어서 아마 한잔만 마셔도 기절한듯 잠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담배? ㅋㅋㅋ


슬슬 몸이나 만들어서 밤에 술마시러 나다녀야겠다.

(라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어차피 내 주량 소주2~3잔. 와인이나 사케는 좀 더 먹지만 보잘것 없는 주량임.)



감기처럼 옮는 활동가들의 우울증.

꼭 활동가들이라 우울증이 감기처럼 옮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감기처럼 옮기 마련인데 활동가들은 대개 삶이 비슷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장시간 한 공간에서 사니까 그런 일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하고.


몇년 전 노조에 있을 때...

공개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남들이 보기엔 100% 우울증인데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감정이 널을 뛰고 늘 인생이 어둡고 칙칙해 보이고 실제로 가정생활도 원만치 않고 대인관계도 별로인.

그래서 같이 일하면 내가 다 짜증이 치밀고 복장이 터지는.


근데 그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조금씩 분명 우울증을 앓고 있다.

나 또한 옮았는지 자생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분노를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고, 어느 순간 혼자 있을 때면 정말 그 무엇도 하고 싶지않은 무기력의 끝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퍼뜩 정신이 들었던 계기는...

건강검진에 정신건강 관련 항목 질문에 답을 할 때 였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삶은 여기서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등의 항목에 '예'라고 체크했을 때다.

분명 그 항목은 작년엔 "아니 뭘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묻고 그래?" 하며 비웃었던 항목이다.

그 외에도 내가 '예'라고 대답했던 것에는 '강이나 호수를 보면 들어가보고 싶다' 따위의 질문도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당시에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도 깨닫지 못했으니까.

매일 얼굴보는 사람도 물론 몰랐고.


여튼 몇년을 집에서 보내면서 내가 과연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많이 고민했다.

애초에 일을 그만둔 이유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했던거니까.

(미술사 공부도 정말 하고 싶지만 그건 더 나이들어서 해도 되고...)

내가 찾은 것 중에 하나는 활동가들을 상대로 수시로 상담을 하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결국 모든걸 등지겠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을 마음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신경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분명 있었고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런데 이게 활동가들에겐 정말 필요한건데.

매일 일상이 '싸움'인 것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수시로 상담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하지만 비용이 문제.

정말 해보려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조금 알아봤는데...

공부하는데 경제적 비용도 엄청 들고 시간도 엄청 들고.

우리집은 내가 벌어야 하는 구조이지 더 쓸 수 있는 구조는 아니고.

애가 둘이 되었으니 시간도 한정적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사무실에서 전화라도 받아줄텐데.

뭐... 가장 최고는 이런 사업을 벌일 후원자를 만나는 것인데...

(나도 공부 좀 시켜주고 ㅋㅋ)


이런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갖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당이나, 민주노총이나...

(그럴리가 있겠냐마는...)


하여간 노동당 부대표의 부고를 접하고 작년부터 내가 꿈꾸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어디 학비 지원해 줄 키다리 아저씨 없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1.16의 감정  (0) 2014.11.17
2014년 5월.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 한 달.  (0) 2014.05.27
활동가들이 수시로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꾼다.  (2) 2014.03.10
나 요새 뭐 하나  (0) 2014.03.01
아빠  (0) 2014.01.27
완벽에 대한 강박  (0) 2014.01.22
  1. Ma 2014.03.10 10:25 신고

    공감해요...사람 피폐해지는건 오롯이 그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예요..심리상태나 상담에 대한 경험마저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활동가의 죽음이 남일같지만은 않네요..그걸 개인의 문제로만 몰아가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고, 평소 외치던 신념과 이상이 있기에 본인의 상태에 대해 더 큰 자괴감에 빠지는거같아요..활동가라는 이들 이 사람 저사람에게서 종종 봐왔고 저한테서도 그런걸 느낄때 비용문제나 조직적문제를 알고 접근해줄수 있는 상담가가 참 필요한거같슴다...
    페북에서 댓글달긴 좀 그렇고..언니 글에 처음으로 댓글달아보네요^^

    • BlogIcon 달님  2014.03.10 12:04 신고

      깜짝놀랐네 풍선양 ㅋㅋ
      반가워 자주보자 ㅋㅋ

      상담받을때 상대가 조직의 특성(?)이나 이쪽 업계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 답답한 면이 있더라구.
      스트레스는 조직적으로 받는데 이로인한 개인의 아픔은 오롯이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가 아쉬워서... 모든 활동가들이 삶이 참 팍팍한데 말이지.

기분이 별로다.

내가 부당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 구조조정으로 누군가를 그만두게 만드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산다'와 비슷하게 '조합이 살아야 모두 산다'고 주장해야 하다 뭔가 계속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기분.


게다가 오늘은...

혹시 우리 내부에 누군가 정보를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면서 나의 과거를 미워하게 됐다.

편 가르고, 그는 어느 그룹인가 계산하고.

마치 정파가 뭔지 뒤를 캐는 것 처럼.

사람사는 세상은 다 이런건가 아님 내가 유독 그런 바닥에서 살아왔던 걸까.


예전엔, 항상 내(혹은 우리) 주장을 할 때 상대방은 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맞는' 것을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에는 그저 의견이 다른 우리편만 있을 뿐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늘 듣는이의 감정을 보살펴야 한다.

이게...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인가 대체.


날 아는 사람은 알텐데... 난 저런 사람이 아니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선 감정을 살피지만 일에 있어선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때론 사적인 관계에서도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말한다.)

여지를 두지 않는 편이며 상대의 감정은 내 알 바 아니다.

난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아.

어렵다.

차라리 싸우는 편이 낫겠다.

싸우는게 지긋지긋해서 도망쳐온 나인데.

싸우지 않는 건 더 어렵다.

고작 14가구 모여있는 조합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며칠 전 술 취한 친구놈의 "아는 사람이 왜이래?"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내가 요새 뭐 하나 싶다. 


이놈의 드라마스페셜.

남의 기억과 추억과 마음을 헤집어 놓고 난리...


유년기 내내 나에게 아빠란 항상 보고싶은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릴적 한참 건설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아빠는 포크레인을 몇 대 운영하는 사장이었고 현장마다 나가 기사들을 체크하느라 늘 지방출장이었다.

(물론 집에 잘 오지 않는 것이 꼭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건 좀 더 커서였다.)

건설업을 접은 다음에도 아빠의 직장은 지방이었고 그래서 집에는 주말에나 오셨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이후, 나는 아빠를 몇년에 한번씩 볼 수 있었고 결혼한 후에야 겨우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빠는 평생 '보고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설명하기 좀 어려운 감정인데... 정말 사랑해서라거나 모든 잘못들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밉고 싫은데 보고싶은 뭐 그런거.


지금도 '아빠'하면 떠오르는 내 유년시절 기억들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잡고 밖을 내려다보며 아빠 차가 오나안오나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억, 몇 밤 자면 온다는 말에 매일 몇 밤인지 세어보던 기억...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무언가의 '결핍'으로 남아서 나는 항상 마음이 모자라고 허전한채 살고있다.

매 순간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결핍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인생에 있어 아빠의 부재.

아빠가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이런 것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결핍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런 결핍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싫은데 꾸역꾸역 같이 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크고 작게 다투더라도 잘 풀고 살면서, 어느 정도 져 주기도 (내 성격에)접기도 하면서 살아보겠단 얘기다.


보통 남들에게 친정아빠란 든든한 존재인 것 같던데(없어서 모름), 나에게 아빠란 열두살 소녀의 아빠 정도로 남아 항상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아. 그게 애들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부모 각자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단 거다.

특히 애들이 커서 중학생쯤 되면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 어떤 아빠가 되어야할지 나에겐 평가할 모델 조차 없는 거다.


여튼...

무방비 상태로 드라마에 당했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활동가들이 수시로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꾼다.  (2) 2014.03.10
나 요새 뭐 하나  (0) 2014.03.01
아빠  (0) 2014.01.27
완벽에 대한 강박  (0) 2014.01.22
떠다니는 나의 마음  (0) 2014.01.21
내가 지나온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  (0) 2014.01.20

요새 뜻하지 않은 곳에서 깨달음을 많이 얻네.

오늘은 페북 댓글 수다에서 깨달음.


맞춤법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잘 하려고 하다가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

더 생각해 보니 비단 맞춤법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전반에 대해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다.


어떤 거냐면...

난 내가 못하는 걸 남들 앞에 보이는게 정말 싫다.

잘하는 것만 보이고 싶다.

그래서 조금 해보고 내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안해버린다.

노력해봐야 못 할 것은 그냥 버리고 가는 거다.


대학시절 율동패 앞에서 춤 안췄고, 노래패 앞에서 노래 안했다.

다행히 풍물은 잘 쳐서 풍물패는 계속 할 수 있었네;;;

근데 그 와중에 연기는 가능한 안했다.

못하니까 쪽팔려서.


청년회 들어가 노래울에서 노래연하는데 처음엔 참 많이 힘들었다.

못하는거 계속 해야되니까.

그나마 음치는 아니어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었네...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걸까.

왜이리 삶을 피곤하게 살게 됐을까.


집안일도, 육아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냥 좀 대충해도 되고 가끔 밥 좀 안해도 되고 그런건데.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밀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그러고보니 상담해주던 분이 그랬지.

좀 틀리면 어때요, 좀 잘못하면 어때요, 사람이 어떻게 맞는 일만 하면서 사나요?

그리고 당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으로 화가 나도 이성적으로 화낼 상황이 아니면 화를 내지 못하고 참았다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화를 내도 정당한 상황이면 그간 모았던 화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문제였지.

내 기분은 나쁜데 내 속은 곪고 있는데 이게 지금 정당한가 아닌가 부터 머리로 계산하고 있는.


그래도 상담받고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직 멀었구나.

애 둘 낳고 헐렁하게 살면서 많이 나아졌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팍팍하게 살고 있었구나.


나의 이런 강박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힘들고 답답할텐데.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힘들겠구나.


다시 한 번 내려놓아보자.

대충 살려고 노력해보자.

(사실 연초부터 올해 무슨 일을 벌일지 계획을 짜느라 머리가 복잡했었음)


아... 나 뭐 이리 어렵게 사냐.

대충 사는 것도 마음 먹어야 되는거냐;;;;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요새 뭐 하나  (0) 2014.03.01
아빠  (0) 2014.01.27
완벽에 대한 강박  (0) 2014.01.22
떠다니는 나의 마음  (0) 2014.01.21
내가 지나온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  (0) 2014.01.20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1) 2014.01.08

겨울을 타는지 마음이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집중도 잘 안되고 몸 컨디션도 계속 별로고.

금요일 새벽에 끔찍한 악몽으로 시달린 이후로는 더 별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인지 내 마음도 불확실하게 흔들리기만 한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집안일. 끊임없는 육아.

생각은 많은데 집중해서 되질 않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섞여 결론도 없이 머리를 헤집어 놓기만 하는 꼴이다.


현실의 벽이 느껴지는 서른여섯을 맞이하고 있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0) 2014.01.27
완벽에 대한 강박  (0) 2014.01.22
떠다니는 나의 마음  (0) 2014.01.21
내가 지나온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  (0) 2014.01.20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1) 2014.01.08
내 이름은 엄마가 아닙니다  (0) 2013.12.11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한동안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연말을 연말인지 모르고 연초를 연초인지 모르고 지나갔다.

(물론 육아에 치여 실감하지 못한 것도 있다. 달력의 날짜가 아가들에겐 무의미 하니까.)


그렇게 한달즈음을 보내고 있는데 어제오늘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몇 년 전과 맞닥뜨렸다.

모든 것의 출구가 보이지 않던 시절.

평생 그렇게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낼 것 같이 나를 감싸고 있던 무거운 기운들.


탈출하는 방법은 한방에 문을 닫고 모든 것을 끝내는 것과, 출구가 어디일지 모르지만 문을 찾아 조금씩 움직여 보는 것 두가지.

당시에는 내가 무슨 힘으로 움직였는지 깨닫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다 스스로 깨달았다.

책임감.

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힘들게 짓눌렀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빌어먹을 책임감이다.

내가 캄캄한 터널을 지나게 된 이유는 나의 먼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지만, 내 삶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건 책임감과 정당성 뭐 그런 도덕적인 것들 이었다.

(실제 도덕적인 인간도 아니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 삶을 돌아보고 내 과거를 떠올리게 되다니.

이상한 행운이기도, 기회이기도 하다.


여튼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엄청난 책임을 가진 자리에 있으니.

향후 십여년 간은...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듯 살아보는 걸로.

사실 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도를 닦아보는 걸로.

(이미 박지안에 의해 꽤 도를 닦았다...)


어둡고 긴 시간을 지낸 기억은 이제 곱씹을 때마다 나를 다시 살게끔한다.

힘든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슬퍼하고 잘 털고 잘 돌아오길.

그 시기가 추후 인생에 도움되는 시기가 될 터이니.



*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 그 말 진짜 싫었는데 나이 먹을 수록 그 말 만큼 변치 않는 진리는 없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벽에 대한 강박  (0) 2014.01.22
떠다니는 나의 마음  (0) 2014.01.21
내가 지나온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  (0) 2014.01.20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1) 2014.01.08
내 이름은 엄마가 아닙니다  (0) 2013.12.11
6번째 결혼기념일  (0) 2013.11.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