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생각해보면 비가 안오는 날이 더 적었던 것 같다. 이 섬에 도착했을때도 비가 왔다. 

오늘 아침엔 사실 비가 안왔다. 어젯밤에 부슬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엔 해가 나려해서 신이 나서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점심에 동네로 고기국수를 먹으러 나갔는데 국수를 먹는 사이 비가 쏟아진다. 아... 빨래건조대를 얼른 집으로 들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 일정도 꼬인다. 사실 바닷가 카페에 가서 나는 책을 읽고 애들은 놀면 되겠다 싶었는데 비라니... 국수를 후루룩 먹고 들어와서 빨래를 구출하고(하지만 이미 꽤 젖었더라. 엉엉) 뭐할지 애들에게 물으니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집에서 그림그리고 색종이 접고 싶다 한다. 둘이 정해보라고 했더니 둘째가 얼른 의견을 바꾼다. 대체로 뭐하고 놀지에 대해서는 둘째가 접는 편이고, 뭘 먹을지에 대해선 첫째가 접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비가 오면 가야겠다고 염두에 둔 곳이다.

돌문화공원에서도 화산에 대한 설명과 제주도가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해서 나오는데 영상이 좀 올드하고 관리가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돌문화공원은 박물관보다도 주변 환경이 더 좋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잘 관리되고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적절한 수준이었다. 영상도 깔끔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4D 영화관이었는데 20분 길이의 짧은 영화였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와 제주의 오백장군 설화가 함께 나오는 이야기인데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지만 4D체험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어릴적 좋아했던 롯데월드의 다이나믹씨어터가 생각났는데 우리집 애들은 의자가 덜덜 거릴때 마다 때로는 무서워 하면서 아주 스릴있게 봤다. 마지막 코스에서 VR체험도 있었는데 애들은 신기방기... ㅎㅎㅎ 세계자연유산을 보러 갔다가 첨단 과학을 체험하고 왔다. 비가 안왔더라면 둘러보기 좋게 산책코스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하지만 비가 안왔더라면 여길 안왔겠지. ㅋㅋㅋ

오후에 밖으로 나오니 비가 좀 잦아든다. 그렇다면 포기했던 바닷가 카페를 좀 다시 가볼까? 구름속을 헤치고 안개등과 라이트를 모두 켜고 슬슬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구름지대를 지나고 나니 삼나무길이 나온다. 아... 여기로구나... 베어지고 있는 비자림로... 즐비하던 삼나무가 어느순간 뚝 끊어지며 한쪽이 휑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휑하다. 때마침 밖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첫째가 묻는다.

"엄마, 제2공항보다 삼나무라는데 무슨 말이야?" 
"제2공항을 지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잖아. 그런데 여기는 좁은 길이지. 그래서 차가 더 많이 다닐 수 있도록 이 키크고 멋진 오래된 삼나무를 베어버리고 있어."
"그 공사하는 사람을 내가 다 베어버릴게!"
"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그럼 공항을 사람도 없고 나무도 없는데에 지으면 되잖아."
"공항을 짓는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건데,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이 많은데 공항을 짓는게 좋겠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면 되지."
"대통령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나중에 국회의원 되서 이거 공사한 사람들 다 나무 다시 심으라고 할거야."
밑도끝도 없이 국회의원이라니....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바닷가로 향했다.

이 카페는 자그마치... '제주 아이와 카페'로 검색해서 찾은 카페다. 그 중 카페에서 바다가 보이면서도 해변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어서 어른은 쉬고 아이는 지겹지 않은 그런 곳!!! 다행히(?) 비가 와서 사람이 붐비지 않았고 육지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허니버터브레드와 차와 사과쥬스를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나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혹시 문에 손이 끼이지 않을까, 돌에서 넘어지지 않을까 등등 계속 조마조마.......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피곤한 사람인건가. 이렇게 또 자기성찰의 섬에서 하나를 깨닫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다와 카페를 몇번씩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바다 보며 차 마시고 바람을 실컷 쐬니 마음이 좋다. 바다가 피곤한 줄 알았는데 나는 모래사장이 피곤했던 거였구나. ㅋㅋㅋㅋㅋㅋ 모래사장은 모래가 묻어서 싫으니까... (으앙 피곤한 나 자신...) 잠깐의 바다구경으로 허한 마음을 충전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그리고 차린건 별거 없지만 두 녀석 다 잘 먹는 양배추찜과 함께 집밥으로 마무리.

그래. 오늘도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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