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날씨에 민감하다. 왜냐면 아이는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나가기 때문에. 출근하고 나서 날이 생각보다 더워도 미안하고 추워도 미안하다. 그래서 매일 일기예보를 챙겨듣고 보고 앱으로도 확인하는 편인데 제주에 오고 나서 예보를 확인하되 신뢰하지 않는다.
오늘도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잔뜩 흐리기에 (다행히 비는 안옴) 뭘 하나... 고민하다가 오름에 가기로 결정했다. 근데 아침에 돌린 빨래가 좀 늦어지고 여기 마을안에 있는 코인세탁소의 건조기가 이게 건조기인지 찜기인지 모를 성능을 보이는 바람에 더 늦어져서 애초 예상시간보다 한시간반 가까이 늦어졌다. 그러는 사이 구름사이로 해가 나고 기온이 올라간다. 이럴수가. 날씨가 이러면 바다에 가야지!!!! 제주살며 터득한건 계획이고 뭐고간에 날이 맑을때 바다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오늘은 간단히 짐을 싸서 출발. 가는길에 있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도 포장. 신난다. 행선지는 소박한 김녕성세기해변. 김녕의 가장 큰 메리트는 해변과 수돗가가 가깝고 수돗가와 주차장이 가까워서 마지막에 짐을 나르기에 쉽다는 것.
해는 나는데 바람은 정말 세다. 김녕 해안가에 설치된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선풍기인양 뱅글뱅글 돌아가는 날씨였다. 언제나처럼 애들은 구덩이를 파고 모래언덕을 만들었다. 첫째는 옆 바위에서(이것도 김녕의 장점) 소라게와 고동을 잔뜩 잡아왔고 둘째는 오빠의 작업지시에 따라 착착 움직였다. 오늘은 나도 모래를 좀 팠다. 아니 근데 이거 재밌잖아! 파고파고 또 파고. 애들이 왜 제주에서 내내 모래만 팠는지 알겠다. 그리고 바다에도 풍덩... 춥지 않았더라면 더 들어갔겠지만 조금 놀다보니 너무 춥고, 물 밖으로 나와도 바람이 세서 추웠다. 해가 쨍쨍할때가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햇볕을 맞았다. 몸 좀 말리려고...ㅋㅋㅋ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세상 좋더라. 해수욕 뒷마무리에 대한 생각은 애써 잊었다. (그동안 이 걱정에 항상 심란...)
오늘의 깨달음은, 사진을 찍으면 바다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 사진찍기 위해선 손을 더럽힐 수 없는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어떻게 바다에서 논단 말인가... 사진을 포기하고 놀고 있으니 참 좋더라. 중간중간 애들이 자기작품(모래성)을 사진찍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내 손을 보여주며 "찍을수가 없어"라고 설명하느라 좀 귀찮았지만. 그리고 모래놀이도 자꾸 하니 실력이 늘더라는 것. 요령도 생기고 모래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도 점점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는지 아주 그럴싸한 것들을 빨리 만들어내더라. 물에 휩쓸려가도 슬퍼하지 않고 잽싸게 새로 구덩이를 판다.
3시가 넘어가니 추워서 놀기 힘들지경이 되고 얼른 수돗가에서 몸을 헹구고 다시 집으로 출발. 주차장에서 데워진 차가 따뜻하니 좋을 지경이었다.
몸은 힘들지만 역시 바다놀이가 재밌어.
그나저나 사진을 보니 맨날 똑같아 보이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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