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이 집에 오고 맞은 아침. 뭔가 다를 줄 알았지만 전혀 다르지 않았고 우리집 아이들은 여느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놀거리들을 찾아 놀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가 일어나자 침대에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달라붙어있었다는 것. 다행이다... 나한테 다닥다닥 붙어있는게 아니라서. ㅋㅋㅋㅋ

오후에 어린이집 친구 가족이 온다고 해서 오전에 뭘 할까 궁리하다가...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오기 시작해서 만장굴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굴=실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로 아주 큰 오판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는데 굴 내부에 물이 떨어지고 기온이 추우니 조심해서 둘러보라는 안내를 한다. 굴 입구로 들어서는데 굴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복장이 대부분 비옷을 입었거나 우산을 썼다. 왜지...??

들어가보니 정말 추웠다. 밖은 25도인데 안은 11~15도였다. 굴 내부는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여기가 화산섬이고, 이 동굴은 화산 동굴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제주도에 홍수가 없는 것도 놀라운 배수능력 때문인데 왜 그런 생각은 못했을까... 십여년전 만장굴에 왔을 때는 맑은 날이어서 그냥 축축한 정도였다고 기억했는데 지구과학을 더 공부했어야 한다. 우리는 비옷은 당연히 없었고 반팔에 반바지로 굴로 들어가 덜덜 떨어야 했다. 춥고 비오는 굴을 들어갔다 오느라 고생은 했지만 제주도 도착했을 때부터 동굴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첫째는 내내 즐겁고 신나있었다. 나오는 길에 물 웅덩이를 밟아서 기분이 좀 상하긴 했지만 동굴 내부의 용암흔적들을 보며 아주 만족했다. 그래, 누구라도 만족했으면 된거지. 암튼 이 춥고 고생한 것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야 다음에(아마도 10년? ㅋㅋㅋ) 만장굴에 또 가게되면 비옷을 입거나 외투를 입거나 준비를 하겠지. 분명 생각나지 않을테니까. ㅠㅠ

집으로 돌아와 옆 숙소에 묵을 다른 가족을 기다렸다. 내내 비가 올 기세여서 어딜 놀러나가진 못하겠고. 낯선 친구들과 3주 동안 이곳에서 놀던 아이들은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나자 무척 기뻐했다. 특히 단짝친구가 놀러온 둘째는 서로 꼭 껴안았다. 비오는 김에 물총놀이를 시작해 한바탕 놀았다.

우리가 이곳에 온 첫날이 기억났다. 그날도 비가 왔고 비오는데 노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첫째가 흥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지. "엄마, 나도 놀아도 돼?" 이 곳은 도시 아이들에게 그런 해방감을 주는 곳이다. 비가 오면 집에만 있거나 실내에 있는게 아니라 비=물총놀이인 곳. 아이들은 몸이 좀 추워질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 대망의 봉숭아 물들이기. 어제 비오기 전 미리 따두었던 봉숭아꽃과 잎을 서울에서 가져온 다이소 절구에 콩콩 찧고 이번엔 소금이 아닌 명반을 넣어 봉숭아물을 준비했다. 어린이들이 무려 네명이어서 사십개의 손가락... ㅎㄷㄷ... 어른이 여럿 달라붙으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역시 콩알만한 사십개의 손톱을 물들이는 건 한시간 쯤 걸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요 녀석들 모두 예쁘게 물들면 뿌듯하겠지!

맨날 큰오빠들에게 밀려 못올라왔던 고지를 점령
예쁜 손톱을 기대하는 올망졸망한 뒷통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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