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스물다섯째날: 나에게 제주는
밤새 폭풍우가 몰아쳤고 아침에도 비는 계속됐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아는 그 '비'의 수준.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오늘 떠나는 친구와 '그래도 제주에 왔으니 바다는 가야지!'하며 함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가는 길에 비가 완전히 그친다. 오호... 바람이 좀 불지만 오히려 바람 셌던 날들보다 괜찮았고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안나왔으면 어쩔뻔했어. 천만 다행이야!
바닷가에서 노는 애들을 바라보며 오후에 뭐할까 궁리하다가(어른 다섯, 애들 넷, 세 가정) 엄마들끼리 카페에 가기로 급결정. 점심을 먹고 우리는 카카오택시를 타고 월정리로 향했다. 선흘에서 월정리로 간게 이미 여러번인데... 내가 운전 안하니까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름도 예쁘고 하늘도 예쁘고 나무도 예쁘다.
월정리에 도착해서 원래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cafe stay salty다.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ㅋㅋㅋ 근데 창가 자리는 만석이기도 했고 옆에도 모던하고 깔끔한 곳이 있어서 들어갔다. 바다뷰로 자리를 잡고 차와 케익을 먹고 있노라니... '아, 내가 이러려고 제주에 왔었지...' 싶었다. 이렇게 여유있게 바다보며 하염없이 아무생각 안하고 싶었는데, 나는 한달을 어떻게 지낸거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 시간은 끊임없이 내가 어떤걸 좋아하고 어떤걸 싫어하는지 알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3주만에 짝꿍을 만났을 때도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됐지만, 반대로 서울에서의 일상 중 어떤면을 싫어했었는지도 알게 됐다. (도착한지 이튿날 오전에 바로 깨달음) 아이들의 행동도 내가 싫어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됐고, 나는 애들과 뭘 하며 놀 때 즐거운지 알게됐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됐으며 나에게 지나친 고요함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됐다. 내가 얼마나 계획적인 인간이며, 그걸 작게 어길 때는 기쁘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완벽한 동선에 물개박수치며 좋아하고 쓸모없는 움직임을 싫어한다. 낮이든 밤이든 일정시간 나만의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러명이 방문한 날에도 그랬다. 누군가가 찾아오는게 반가운 일이긴 했지만 여러사람이 만족할만한 일정을 짜는게 나에겐 즐겁지 않았으며, 가족의 여행은 오롯이 우리만일때 더 좋았다. 하루종일 붙어있는건 부담스럽고 서로의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좋다. 물론 나랑 함께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ㅋㅋㅋㅋ 아무튼 그와 나의 다른 점도 새삼 복습했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아직 며칠 남았지만... 제주에 다시 오고 싶은지 나에게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다시 오고 싶다. 다음에 다시 오면 첫째주에 했던 아이들과의 시행착오를 안할거고 어떻게 살면 더 좋을지 알겠다. 물론 몸은 또 힘들겠지만 그래도 더 즐거울 방법을 알 것 같다.
쉬려고 온 이곳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알게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게 휴식의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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