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제주에서 날이 좋으면 뭐다? 바다다.
하지만 오늘도 피로를 누적할 순 없기에... 그렇다면 오늘은 일찌감치 바다에 놀러나갔다가 오후에 낮잠을 자기로 마음먹고 무려 10시반부터 가까운 함덕으로.

시간이 이르고 날이 추웠는데도 놀랍게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쨍한 햇볕을 보고 다들 밖으로 나왔나보다. 바위 옆에 짐을 놓고 튜브를 빌렸다. 오늘은 두개. 그동안 모래만 파고 소라게만 잡으며 물놀이에 소극적이던 첫째가 자기도 물놀이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 뭐 쿨하게 두개 빌리자.

그리고 바로 바닷물로 풍덩! 그런데 둘째가 돌을 밟아서 발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따라 나도 돌이 많이 밟힌다. 아직 만조에 가까워서 수심이 깊어서 오래 놀지 못하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발이 계속 아프다고 하기에 봤더니 아이고... 발바닥이 돌에 꽤 많이 찍혔다. 물놀이 시작 10분 만이다. 첫째는 열심히 모래를 파기 시작했고 나는 망연자실... 보호자는 나 혼자 뿐인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우리 집에 가야겠어."

모래 파던 첫째도, 다친 당사자인 둘째도 거의 울먹이다시피 "왜?"라고 묻는다.
"동생이 많이 다쳤어. 이 발로는 물놀이를 할 수 없어..."
청천벽력 날벼락에 첫째가 속상한 건 알겠는데 다친 니가 왜 울려고 하니 이놈아... 심지어 자기는 다쳐도 놀 수 있다며 안된다고 하는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바닥에 박혀있는 모래를 쳐다봤다. '이 발로는 안돼...'

일단 모래라도 빼야했기에 해수욕장 상황실로 데려갔다. 응급처치를 해주신 분들이 정말 친절했다. 무서워하지 않도록 어쩐 처치를 할 지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아프지 않게 모래를 잘 제거했다. 그리고 약을 발라주시는데 내가 물었다. "이제 이 어린이는 물놀이는 못하겠죠?" 그런데 왠걸. "방수밴드 붙여드릴게요" 둘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ㅋㅋㅋㅋ 나도 덩달아 안심이 된다. 10분만에 집에 가야하는 상황을 이 녀석들에게 설명하고 슬픔을 함께하자니 엄두가 안났었는데 천만 다행이다. 방수밴드에, 자가점착식 붕대로 한 번 더 보호해서 밴드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양말을 씌두면 더 좋다기에 근처 편의점에서 판타롱 스타킹을 사서 신겼다. 모래가 들어갈 틈이 없는 철벽방어! 룰루랄라 다시 바다로 향했다.

사실 물놀이 신발이 있었다. 발을 보호하긴 하지만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매번 모래를 씻어내느라 더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애들이 신기 싫어했다. 물론 모래를 맨발로 밟는 촉감이 좋았던 이유가 더 크고. 하지만 바다에선 꼭 신발을 신기로... 이만했기에 망정이지 찢어지기라도 했으면... 아... 끔찍...

12시반쯤 되었을까? 햇볕은 여전히 쨍한데 바람이 계속 불어 추웠다. 파도도 엄청 타고 셋다 정말 재밌게 놀긴 했지만 아이들 몸이 슬슬 떨려서 집으로 들어왔다. 씻고 밥먹고 낮잠모드... 오전에 마신 홍차+커피티라미수로 인해 나는 20분 밖에 잠을 못잤는데 이녀석들은 3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더 자면 저녁을 먹을 수 없기에 깨웠는데 더 자고 싶다고... ㅋㅋㅋㅋ

집 근처로 나가 저녁을 먹고 마트에 들러 집에 온 훈훈한 하루. 이제 한밤만 자면 아이들에겐 아빠가, 나에겐 짝꿍이 온다. 벌써 3주가 지났구나.

곱게 물든 봉숭아물
먹기 너무 귀여웠던 저녁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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