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을 위한 육아휴직 본격 2개월차.

(그런데 사실 진짜 휴직자로서 온전히 시간을 보낸건 3주차에 접어드는 것 같다. ㅠㅠ)


휴직 1-2주차엔 토실군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겠단 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해 집에 와서 장기도 두고 오목도 두고 했지만... 매번 짜증으로 마무리됐다.

내가 그렸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ㅠㅠ

3-4주차엔 그 짜증의 근원이 뭘까 고민했고 몸이 힘들어 짜증을 내는 것 같아 일찍 재웠다.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자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듯 했으나 다시 시작된 짜증.

그럼 이건 뮈지...


내가 이러려고 육아휴직을 냈나 자괴감이 들 무렵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매주 수요일 방과후로 배드민턴을 하고 오는데 그 날은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온다. 그리고 돌봄교실에서 운동하고 온 날도 신나게 집에 온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집에 오는 길 뛰어 놀기.

나는 할 일이 거의 없고 넓은 공터나 놀이터에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물론 엄마아빠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쉬운 일)

단 10분이라도 놀고 들어온 날은 훨씬 더 평온하고, 뛰어놀고 들어온 시간이 길 수록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다는 4-5주차의 교훈을 얻고 남은 육아휴직 기간 되도록 조금 일찍 가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재밌고 신기한 새로운 것을 배워도 여덟살 아이들이 좀이 쑤시는 걸 참고 한 자리에 앉아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시간,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에게 내가 힘이 되는 선에서 충분히 놀 수 있게 도움을 주는게 지금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충분히 놀고 쉬어야 인생이 즐겁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도 충분히 놀고 쉬어야지!

오늘 최고로 게으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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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개봉 일주일 전, 이 영화 시나리오 쓴 사람이 나의 지인이라는 것을… 그녀의 전화를 받고 알게됐다.
알고보니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전화해서 질문했던 것들… 문자 보내서 물어본 것들… 이 이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마치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떠오른 기억들.
신문사 윤전기에 대해, 언론사 사무실 담배에 대해, 프레스센터에 대해, 기자 대화에 대해… (아는거 1도 없는 나에게 ㅋㅋㅋ)
그러고 보니 심지어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에게 7~80년대 기타반주로 화려하게(?) 시작하는 노래 추천도 받았다.

아무튼.
봤다.


80년 5월의 광주를 모르지 않지만, 영화가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지 큰 방향은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운동권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떠올렸을 질문. 
'내가 광주에 살았더라면 나는 그들처럼 싸울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과 마주치자,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의 어느 날이 기억났다.
행정대집행이 시작되어 대추분교가 무너지고 연행자가 발생했다.
항의하기 위해 대추리로 가는 길 자체가 험난했다.
평택역에 내려 버스를 탔지만 버스는 중간까지 밖에 가지 않았고 나와 일행은 택시를 탔다.
대추리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집입 할 수 있는 통로가 수시로 변경됐고, 그 때마다 문자메세지가 전달됐다.
몇 번이나 택시의 진행방향을 틀고서야 대추리 먼 발치에 도착했고 골목과 논두렁을 굽이굽이 걷고 또 걸어서(혹은 뛰어서) 마을에 도착할 수있었다.

해질무렵에야 마을에 들어섰는데 짧막한 집회가 끝나자 해가 지기 시작했고, 병력은 기다렸다는 듯 마을 골목으로 진입했다.
우리는 삼삼오오 민가로 숨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 집 담벼락에 십여명의 사람들과 숨었다.
깜깜한 밤 저벅저벅 전경들의 군화발 소리는 소름끼쳤고 담벼락 너머로 줄지어 지나가던 둥글고 반짝거리는 헬멧은 정말 무서웠다.
나는 그 날 절대 잡히면 안되는 신분의 당시 남자친구를 내보내기 위해 잡히면 안되는 무리들(공무원, 군 복무 중인 사람들)과 함께 기자들에 묻어서 빠져 나왔다. 
(현재 남편을 비롯해 함께 그곳에 갇혔던 사람들은 새벽무렵까지 숨어있다가 택시를 타고 나왔다고한다.)
그 때의 마음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지금 동지들을 두고 비겁하게 도망가고 있다…'

최루탄과 화염병 세대가 아니었던 나에게 집회는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도심집회는 늘 열린 공간에서 이뤄졌고 때때로 경찰들과의 충돌이 있었지만 몸으로 미는 몸싸움이고 방패로 찍는 놈들이 있었지만 거긴 서울 한복판이고 기자들이 있었다.
(물론 내가 제일 앞줄이 아니어서 무섭지 않았기도 했겠지)
그런데 대추리에서의 그 기억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무서웠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미 투쟁하는 삶을 접은 지금 나에게 앞선 저 질문은 전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며 그 질문은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여전히 용기가 없다.
그래서 80년 광주를 보며 내내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그리고… 당시 계엄군으로 복무했던 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람을 미친듯이 때리고 총을 쏘던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이런 저런 마음과 생각이 뒤섞여 떠오르면서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영화 본 뒤 하려고 했던 것들은 하지 못했고 그 마음을 털기 위해 좀 걸었다.
그런데 마음이 아직 안털렸나보다.
역시 정돈되지 않는 영화 후기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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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부터였을 것 같다.
엄마가 홀로 경제활동을 하며 가장노릇을 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치킨집.

나는 엄마가 치킨집을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본인 친구들에게도 (당연히) 전혀 알리지 않았고, 내게도 친구들에게 그런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도 이해는 했고, 지금도 이해한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
날 때 부터 부자집 큰딸로 자라 결혼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뭔지 모르고 살았던, '사모님' 소리만 듣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치킨집 사장이라니.

아무튼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자존심을 나라도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낮에... 참으로 힘들고 끝이 없을 것 같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 길을 지나는데 재밌게도 그 자리엔 아직도 치킨집이 있었다.
치킨이 잘 팔릴 것 같은 위치는 정해져있는건가. ㅋㅋㅋ
근데... 나름 '청담동' 치킨집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뭐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심지어 결혼하고나서도 남편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던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ㅋ
나에게도 그때가 어찌나 즐겁지 않은 시절이었는지... 삼성동에 살던 시절 내가, 내 생활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와 만나 마주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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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날짜가 지나서 그제이긴 하지만) 이명수 선생님의 북콘서트 - 제목은 이명수/정혜신/김제동의 삼색토크 - 를 다녀왔다.

업무 반 자의 반으로 간 행사였는데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 제목과 당일 이야기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크게 깨우친 대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을 보라. 이 사람의 개별성에 집중하라."

사실 정혜신 선생님이 들었던 예는 딸이 클럽가서 놀다가 아침에 들어와도 꼭 데리러 나간다... 는 얘기였다.

그게 자식일 때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으나(우리집 애들은 7세 5세...) 남편으로 치환해보면 진짜 말이 안되는 얘기다.

상상만으로도 빡치는데 본질이라니.

그 사람의 개별성이라니.


아무튼 (때마침) 오늘 그는 술을 마셨고...

얘기를 한참 하다가 내가 싫어하는 대화패턴에 들어섰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그 때 대체 저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너의 개별성에 내가 집중해주마 마음먹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더 해봐야지.


그리고 어제 얘기중에 크게(?) 반성했던 대목은.

이명수 선생님이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10년째 주말마다 냉면집에 같이 가준다는 대목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짝꿍은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가자면 늘 간다.

반대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자발적 자상함과 표현하는 따뜻함이 없는 그가 나는 늘 불만이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 줄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늘 메뉴를 정할때 의견을 내지 않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걸 맞춰준거였다.

그는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는 취향도 없고 귀찮아서 그런거지'라고 나의 잣대로 평가했다.

아... 깊이 미안해진다.


10년간 살아보니 괜찮은 구석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의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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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첫째의 영유아검진이 있었다.

양쪽 눈 시력차가 꽤 커서 안과검진을 받아보라고 해서... 어제 안과에 갔다.


1.

시력검사.

생각한 것 보다 시력 차가 더 커서 한쪽눈이 약시가 생겼다고 한다.

한쪽 눈이 덜 보이니 잘 보이는 눈 시신경이 더욱 발달하고, 덜 보이는 눈의 시신경은 점점 일을 안하는 것.

사람의 몸은 참 대단해.


아무튼 그래서 시력교정(그 차이를 줄이는 것)을 위해 안경을 써야 하고, 가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안경은 덜 보이는 눈을 잘 보이게 해서 그 눈을 더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가림치료는 잘 보이는 쪽 눈을 가려서 덜 보이는 눈을 한동안 많이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안경을 쓰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야 한다.


일곱살에 안경이라니.

그리고 안경을 앞으로 평생 써야 하다니.

30년 넘게 안경을 쓰고 싶었지만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쓸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모두 시력이 좋아서 우리 아이가 눈이 나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들이 다칠거나 불편해질 리스트에 다리나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다든지, 어디가 찢어진다든지, 치아 교정을 해야한다든지 이런 경우의 수는 있었지만 정말 한 번도 안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림치료라니.

눈 한쪽에 계속 뭘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애들이 놀리지는 않을지, 불편해서 온갖 짜증을 남들에게 부리지는 않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

색각검사.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갈색, 회색을 비슷하게 본다는 것은 이미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 질문에 표현력 좋은 우리 아들은 그 색들이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 설명했고, 그 설명을 통해 '아, 이 아이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하는 바로 그 검사 카드.

동글동글 버블무늬의 바탕에 버블무늬로 이어진 숫자를 읽는 그 카드를 같이 봤다.

나와 같은 숫자로 읽는 카드가... 단 한 장도 없었다.


아이가 색각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내 눈 앞에서 전혀 다른 숫자를 읽고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없다고 말하고 내 눈에 빈 카드에서 숫자를 읽어내는 것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이상의 아픔이었다.

'네가 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네 눈에 보이는 색은 온통 회색이기도 하고 그 회색 안에서 차이를 느끼기도 하는구나...'


3.

내가 지금 너무 속상한 것은 시력 자체가 낮아서도 아니고, 특정 색을 감지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을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경을 쓰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1도 알지 못하고, 색 인지능력이 남들보다 높은 나는 일부 무채색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가진 너에게 내가 어떤 것을 해줘야 할지, 그걸 모르겠다.

그게 가장 나를 아프게 한다.


더 큰 불편함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고작 이 두개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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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지 몇주째...
마음에 들지 않는 몇개의 집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세시쯤 왔는데 애들이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고 놀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니 이 시간이 되도록 애들이 점심도 안먹고 있는게 말이나 돼?"라고 버럭 말했다.
(사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물론 애들은 늦은 오전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진 않았겠으나 점심은 언제 먹고 낮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화가 났다.

그렇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애들은 낮잠을 잤고 엄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곤 엄마는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서운했노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길 "보임이도 집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예요. 집도 잘 안구해지고 속상하니까 그랬죠.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화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

2년마다 반복되는 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실 그것은 '집'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집을 얻을 경제력의 부재'에 대한 스트레스다.
2년에 7~8천만원씩 오르는 전세를 당연히 부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그런 사이클을 살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왜 그런지도 잘 파악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좋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
잘 알아주지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차라리 둔한 남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10년만에 깨달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구나.'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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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시각이지만 도저히 후기를 남기지 않을 수 없어 맥북을 열었다.
아시테지축제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하는 국내 최대 아동청소년공연예술 축제다.
쉽게 말하면 국내외 가족극(아동극)중 좋은 작품들을 몰아서 하는 거다.

아무튼 올해는 극단 '이야기꾼의책공연'이 하는 <별별왕>과 극단 '하땅세'의 <오버코트>를 봤다.


무대연출이나 연기 스토리의 탄탄함에서는 <별별왕>이 전혀 뒤지지 않았지만 추천연령 5세 이상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꽤나 집중해야 따라갈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 존재해서 라은이에겐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라은이는 '무섭다'고 아주 간략히 공연평을 남겼다.
심지어 마지막에 박수칠 때가 제일 재밌었다고.
(공연이 끝나서 즐거웠던 것....)
나는 개인적으로 북으로 기본 리듬을 깔고 국악풍의 음악이 좋았다.
현장 효과음 아주 흥미로웠다.
그게 이 극단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오버코트>를 봤는데 추천연령 3세 이상.
라은이도 지안이도 보는 내내 깔깔거리면서 봤다.
그런데 나도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아코디언 할아버지(그렇지만 이 공연에선 아코디언을 연주하지 않으심)가 나왔고, 노래를 곁들인 극 이어서 신났다.
(이쯤에서 다시금 '뮤지컬'이라며 립씽크를 시전한 짜증나는 구름빵이 생각난다. 아오...)
핀마이크 없이 쌩 목소리로 대사하고 노래하는 공연... 아 좋다.
게다가 프로젝터를 이용해 실제 소품과 배우와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화면으로 연출한 부분에서 아이들은 신기해서 어쩔줄 몰랐다.
나는 그들의 창의력에 어쩔줄 모르고.
적절한 배경음, 연주, 대사가 많이 않고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 어린 연령대도 즐길 수 있는 내용, 신기술(프로젝터) 접목까지.
라은이도 이 공연엔 "재밌었어!!!"라고 후한 평을 남겼다.

올해도 여전히 즐거웠던 아시테지.
그리고 즐거웠던 하땅세.
오버코트는 애들이랑 또 보고 싶은 작품이다.

* 새로 개관한 아이들극장은 객석배열부터 화장실까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어서 좋았다. 음향/조명시설도 좋더라.
* 처음 가본 드림아트센터도 비교적 새시설이어서 좋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이용 방석은 아이들에게 불편하다. 포토존이 없는 좁은 로비도 아쉽다.
* 공연 연출, 시설 이런거 신경 안쓰고 제발 공연만 즐기다 왔으면... ㅜㅜ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집에서 흥얼거리는데 가사가 심상치 않다.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노란 빛이 햇볕처럼 눈이 부시네

잔등이 후꾼후꾼, 땀이 배인다
아가 아가 내려라, 꽃 따 주께

아빠가 가실 적엔 눈이 왔는데
보국대, 보국대, 언제 마치나

오늘은 오시는가 기다리면서
정거장 울타리의 꽃만 꺾었다


아... 이렇게 슬픈 노래라니.
보국대는 분명 일제시대 강제징용...
이걸 애들한테 설명하자니 참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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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카세트테잎_1. 015B  (0) 2014.12.16

이 글의 제목은 원래 'dyson v8 absolute 일주일 사용 후기'였다.
그런데 글을 비공개 미완성 시킨채로 한달이 지나버려서 제목 변경... ㅜㅜ
아무튼 다시 써본다.

워낙 다이슨에 대한 사용기는 넘쳐나서...
좋은 후기는 파워블로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쓴다. 



장점

1. 기동성
역시나 무선의 최대 강점은 빨리 청소기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애들이 뭘 먹다 흘렸을 때 재빨리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이게 구입이유의 첫번째이기 때문에 만족한다.
애들 있는 집 강추x100.

2. 저소음
다이슨 다른 모델을 써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집에 있는 엘지 싸이킹보다 조용하다.
애들 재우고 청소하느라 정전기 부직포를 엄청 썼었는데 이제 그럴일이 없다.
한밤중에 청소해도 잠귀 어두운 우리집 박씨들은 모를만한 소음이다.
이웃에게도 피해 없다.

3. 모터헤드
누군가의 후기에 있다.
아내에게 선물하기 위한 사용법이던가... 정확한 문장이 기억안나지만 아무튼 그런 식의 제목을 가진 유튜브 동영상이다.
다이슨 V8은 흡입력이 핵심이 아니다. 미세먼지도 걸러주는 헤파필터는 다이슨 공통 기능이고.
(유선은 흡입력이 핵심...)
모터헤드, 이 녀석은 다이슨을 작동시키면 헤드에 달린 융 재질의 롤러가 돌아간다.
대부분 마루 혹은 장판 생활을 하는 한국인에게 최적의 헤드인 것이다.
각종 먼지, 작은 부스러기, 머리카락 이런 녀석들을 롤러로 깔끔하게 한올한올 잡아내고 그 뒤 흡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니 당연히 그냥 흡입만 하는 무선 청소기와는 성능이 다른 것이다.
모터헤드가 없는 무선 다이슨은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을 감히 해본다.
(그럴거면 뽐뿌의 누군가의 후기마냥 그냥 에르고라피도 서너개 사는게 낫다.)


단점

1. 무게
무겁다.
안무겁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참고로 나는 워낙 뼈대가 얇고 근력이 없으며 출산 후 특히 손목이 약해진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다)
애들이 과자부스러기 흘려서 후루룩 쓸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30평형대 아파트를 청소하고 있노라면 절반쯤 청소했을 때 손목이 조금 아프다.
나름 한달 써보니 약간의 요령이 생긴다.
다이슨 자체에 무게를 전가하는 요령, 그리고 청소 중간 바닥의 물건을 주울 일이 없게 만드는 요령.
무슨 말인고 하니 청소 중 바닥에 장난감을 치운답시고 무거운 본체를 들고 무리해서 허리를 숙일때 손목이 90도로 꺾이게 되는데 그 때 하중을 가장 많이 받는다.
바닥의 물건들은 박남매를 시켜 미리 다 치우거나(미안) 발로 밀어버리고 있다.

2. 먼지통
먼지통이 훤히 보여서 좋다.
그런데 그걸 비울때 먼지가 좀 날린다.
물론 그건 모든 청소기가 그렇다.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3. 도킹스테이션
우리집은 3개월 후 이사를 가야해서 도킹스테이션 설치를 못했다.
바닥에 본체를 놓고 충전하고 있는데... 아 없어보이고 너저분하다.
에르고라피도는 그런거 없이도 혼자 잘 서있는데, 다이슨 이 녀석 까다롭기는.


결론

블랙프라이데이 아마존 핫딜 + 배대지 무료배송 이벤트로 관부가세 포함 70만원 이하의 가격에 구입한다면 쓰는 내내 뿌듯하고 심지어 청소가 기다려지고 신나게 되는 마법의 아이템이다.
(내가 바로 그 능력자)
예쁜 컬러와 세련된 바디의 훌륭한 아우라는 말하면 입아프다.
하지만 국내가 130만원을 주고 산다면 그건 좀...
내가 생각하는 이 제품의 합리적인 가격 마지노선은 80만원이다.


나는 다이슨 무선청소기를 구입하기 위해 1년반을 기다렸다.
(V6를 사려고 1년동안 벼르던 중 V8이 출시됐다.)
2015년 블프에 V6를 덜컥 사지 못한건 내가 이게 그냥 가지고 싶은건지, 진짜 필요한건지 나름의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던거고 (1년이 지나도 사고 싶으면 그건 필요한거다라는 판단) 결과적으로는 배터리 성능 더 좋고 조금 더 조용한 V8을 사게됐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

다들 심사숙고하시고 매년 11월 마지막주 아마존 핫딜을 노리시길...
(그 때 맞춰 국내 쇼핑몰도 세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가 어른이 되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젠 내가 산타'라는 사실이다.

이제 더이상 나를 위한 산타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줘야 하는 것.

그런데 올해는 그게 진짜 어른이라는 걸 깊게 실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둘째 녀석은 '아기'에 불과해서 '선물'이란게 뭔지도 몰라서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첫째 녀석은 엄마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서 필요해서 사려고 했던 것 혹은 엄마가 평소에 사주고 싶었던 것을 선물로 받고싶어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간 우리집 첫째가 받고 싶다고 했던 수많은 선물 리스트 중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본다.

(정말이지 한달동안 매일 다른 품목을 얘기함)

- 사람 몸에 닿기만 해도 그 사람은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마법지팡이 (호그와트냐)

- 광산 (광산으로 이사를 사야하나)

- 광산에서 캔 금은보화

- 해치 뿔로 만든 요술지팡이 (호그와트 가야겠네)

- 우주로 갈 수 있는 로케트 (우리집 NASA)

- 온 세상 모든 걸 벨 수 있는 큰 칼 (무섭게 이런걸 왜)

-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리즈 (뭐든지 뚫는 창 등등)


뭐 이런 것들...

듣다 듣다 기가차서 "산타할아버지도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만 선물로 주실 수 있어"했더니 "산타할아버지는 이런거쯤은 다 만들어~"라며 자신있어한다.

열심히 설득해보았으나 최종 선택지는 크리스마스 전전날 정해졌는데 '광산에서 캔 다이아몬드' -_-

결혼반지에서 빼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럴순 없었고... 아무튼 최선을 다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된 보석 모양을 사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2월 23일에 무려 반차를 내고 코엑스몰을 뒤졌다.

인테리어 소품파는 무지, 자라홈, 코즈니 등을 뒤졌지만 실패.

12월 24일 애들 낮잠시간을 이용해 혼자 아이파크몰을 갔다.

주차하는데 한시간...(우리집에서 걸어가도 20분이면 가는 곳을 이게 무슨 개삽질...)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5~6층 인테리어 관련 매장을 또 샅샅이 뒤졌다.

없다.................


결국 둘째가 (엄마의 계략에 의해) 받고 싶은 컵을 두 개 사가지고 귀가.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남편과 나는 머리를 싸맸다.

'산타가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았다'며 실망할까봐 전전긍긍.


집에 있는 수경재배용 플라스틱 투명 돌멩이를 둘이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 식물을 키우려고 고이 간직한 예쁜 유리병도 꺼냈다.

그런데 우리 지안이가 어떤 아이인가... 관찰력의 왕, 기억력의 왕.

이게 우리집 어딘가에 있었던 물건이라는 걸 눈치챌 것 같았다.

알아채면 또 이걸 어쩌나 우리부부는 다시 전전긍긍.


새벽1시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을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를 쓰면서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의 선물을 준비하며 이렇게 정성을 들여본 적이 있던가.

값비싼 것을 주기 위해 하는 노력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노력.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받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이렇게 기쁜일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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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2/3)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200만이었다고 한다.

매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엄마집에 갔다가 나오는게 늦어져서 (이날 나는 집회장소와 집과의 거리가 집회 참여동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음) 10시 조금 넘어 시청역에 내려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본대회는 이미 종료.

아주 편하게 - 처음으로 - 사람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광화문 광장을 지나 청와대쪽으로 향했다.

차벽 한 번 보고 올 요량으로.


광화문 사거리, 광화문, 영추문을 지나 저 멀리 차벽의 끝이 보인다.

그동안 맨날 사람에 치여 만나길 포기했던 차벽이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데... 막상 차벽 앞 열걸음 정도까지 다가가자 나는 긴장했다.

정확히는 내 몸이 긴장했다는 것을 내가 알아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차벽 근처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소리도 지르고 구경도 하고 다시 돌아가는 시민들.

해맑고 즐거워 보이는 그 사람들은 나랑 뭐가 다르지?


아, 저 차벽이 물대포를 쏘는 바로 그 장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의 차이인가?

물대포를 맞아보거나 눈앞에서 보지 못한 것의 차이인가?

아무튼 나는... 금방이라도 물을 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이다.


이상야릇한 마음을 안고 뒤돌아 오는데 경찰에서 해산 방송을 한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데모하며 그렇게 다정한 해산 방송은 처음 본다.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시민 여러분. 신고된 집회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런데 내가 듣던 말투는 강하고 명령조의, 빈정거리거나 협박하는 말투였는데... 이 날 내가 들은 말투는 애인인 줄... -_-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편과 나는 깔깔 웃으며 경복궁 길을 돌아서 나왔다.


경찰이 무섭지 않은 200만의 시민들.

이것은 평화집회의 힘인가, 쪽수의 힘인가, (경찰에 맞아본 적 없는)경험의 부재인가.

매주 집회에 참가할 수록 의문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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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150만 집회에 다녀왔다.

처음 100만이 모였다고 할 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이라고 하기엔 넓지만)에 모인 것이 신기하기만 했고 그저 신이 났다.

그런데 150만이 모인 집회에서는 마음이 달랐다.


시청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온통 가족들이었다.

중학생 쯤 되어보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

눈시울이 뜨거웠다.

토요일 저녁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밥을 먹고 있어야 할 시간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프레스센터 앞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프레스센터 앞마당을 보니 언론조노 깃발이 보인다.

그래, 내가 저런 조직에 있었지... 괜히 실실 웃으며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이슬' 노래가 들린다.

'누군가 만든 영상을 보고 있나 보군'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광장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광판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이럴수가, 양희은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훌쩍,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음원으로만 함께 부르던 노래를 진짜 사람이 부르고 있다니.


너무 많은 사람에 지쳐갈 때 쯤... 행진이 시작됐다.

광화문사거리-종각-안국동-경복궁 쪽으로 걸어갔는데... 종각역을 지날 때 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2008년에도 참 세상 달라졌다고 느꼈는데, 이건 정말 뭔가 싶었다.

집회에서 소녀시대 노래도 나오고,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도 나왔다.

신기하다. 이게 뭐지.


집회 때 마다 전경 앞에서 후덜덜하고 1001, 1002, 1003을 만나면 쫄던 시절도 생각났다.

워낙 달리기가 느려 동뜨는 집회 때마다 긴장하고, 뛰다뛰다 안되면 '지나가던 시민' 코스프레하던 것도 생각났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부시 방한 반대 투쟁... 2001년인지 2002년인지 겨울... 동대문까지 뛰어갔네.)

글 쓰다보니 99년 학교 정문앞에서 날아오던 돌을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때는 정말 그냥 지나가던 학생시절...)

언론노조 있던 시절에도 우리가 금속처럼 피터지게 싸우고 옥쇄투쟁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언론스럽게 문화제하고 집회하고 그렇게 살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들었던 생각.

그래봐야 내가 데모했던 건 2000대로 접어들어서 였으니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물론 대추리에서 야밤 담벼락에 쪼그리고 숨었던 살벌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꽃병도 파이도 모르는 세대다.

80년대 가투했던 선배들을 생각하면 명함은 커녕 이름 꺼내기도 민망하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도로를 걷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런 세상은 정말 우리가 조금씩 싸워서 얻어낸 세상일까?

투쟁했던 선배들, 그리고 우리세대가 만들어낸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그래서 이제 누가 대통령 하는거야?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운동권 저 변두리에서도 잔챙이, 잠깐 발 담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는 모르겠다.


누구의 프레임대로 가고 있다느니, 지금 저들은 뒤에서 거래를 한다느니, 100만명은 휘둘리고 있다느니 참 말 많다.

민중에게 답이 있다? 그것도 나는 모른다.


되게 상투적인 표현인데 격변의 시대.

모두들 처음 겪는 이 시대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만큼이나 도무지 모르겠는 글이 되어 버렸다.

내 마음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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