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처럼 옮는 활동가들의 우울증.

꼭 활동가들이라 우울증이 감기처럼 옮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감기처럼 옮기 마련인데 활동가들은 대개 삶이 비슷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장시간 한 공간에서 사니까 그런 일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하고.


몇년 전 노조에 있을 때...

공개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남들이 보기엔 100% 우울증인데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감정이 널을 뛰고 늘 인생이 어둡고 칙칙해 보이고 실제로 가정생활도 원만치 않고 대인관계도 별로인.

그래서 같이 일하면 내가 다 짜증이 치밀고 복장이 터지는.


근데 그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조금씩 분명 우울증을 앓고 있다.

나 또한 옮았는지 자생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분노를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고, 어느 순간 혼자 있을 때면 정말 그 무엇도 하고 싶지않은 무기력의 끝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퍼뜩 정신이 들었던 계기는...

건강검진에 정신건강 관련 항목 질문에 답을 할 때 였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삶은 여기서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등의 항목에 '예'라고 체크했을 때다.

분명 그 항목은 작년엔 "아니 뭘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묻고 그래?" 하며 비웃었던 항목이다.

그 외에도 내가 '예'라고 대답했던 것에는 '강이나 호수를 보면 들어가보고 싶다' 따위의 질문도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당시에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도 깨닫지 못했으니까.

매일 얼굴보는 사람도 물론 몰랐고.


여튼 몇년을 집에서 보내면서 내가 과연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많이 고민했다.

애초에 일을 그만둔 이유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했던거니까.

(미술사 공부도 정말 하고 싶지만 그건 더 나이들어서 해도 되고...)

내가 찾은 것 중에 하나는 활동가들을 상대로 수시로 상담을 하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결국 모든걸 등지겠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을 마음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신경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분명 있었고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런데 이게 활동가들에겐 정말 필요한건데.

매일 일상이 '싸움'인 것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수시로 상담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하지만 비용이 문제.

정말 해보려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조금 알아봤는데...

공부하는데 경제적 비용도 엄청 들고 시간도 엄청 들고.

우리집은 내가 벌어야 하는 구조이지 더 쓸 수 있는 구조는 아니고.

애가 둘이 되었으니 시간도 한정적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사무실에서 전화라도 받아줄텐데.

뭐... 가장 최고는 이런 사업을 벌일 후원자를 만나는 것인데...

(나도 공부 좀 시켜주고 ㅋㅋ)


이런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갖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당이나, 민주노총이나...

(그럴리가 있겠냐마는...)


하여간 노동당 부대표의 부고를 접하고 작년부터 내가 꿈꾸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어디 학비 지원해 줄 키다리 아저씨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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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감기처럼 옮기도 한다.
물론 감기처럼 자연치유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다.
그건 우울증은 정신질환이고 정신병이란 이상한 낙인 때문에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병을 키우기 때문일게다.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가볍게 혹은 무겁게 나타나는데 공통점은 그걸 알게된 사건이 근본적 원인이 아니란 거다.
결국 내 안에 깊숙히 숨어있는 애써 기억하려하지 않는 기억들이 문제인 거다.
그것들과 용감하게 마주보느냐(뭐 찌질하게 마주하기도 한다 ㅋㅋ) 끝내 숨기느냐가 우울증을 탈출하느냐 마느냐가 되는 것이다.

상담의 성패도 마찬가지.
나를 얼마나 바닥까지 볼 결심이 섰느냐가 중요한 거다.

여튼... 무슨 말이 하고팠냐면...
본인이 우울증인 것 같은 사람도,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가 있는 사람도 상담받길 권한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훨씬 전염성이 강하다.
나의 마음이 상대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함께 앓게 되는 거니까...
그의 불안과 긴장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지는 거니까.

그런데 웃긴건 이런 얘기를 쓰고 있는 나조차도 상담받던 시절에 선뜻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아 두려워서.
지금 생각해보니 쓰잘데기 없는 우려였지만 그당시 모든 자신감을 잃었던 나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자기 몸 못돌보는(사실은 안돌보는) 운동권들.
제발 마음 좀 돌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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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nooe)님을 알게된건 어느날 제 블로그에 달린 트랙백이었습니다.
http://boimi.net/81#trackback163451
바로 이것이었죠.

누에님의 블로그에 가보니 이런저런 읽을꺼리들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법을 공모한다는 포스트를 읽었죠.
[공모]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법
그 즈음 한참 우울의 나락을 헤매던 때여서 댓글을 슬며시 달았는데 제가 당첨(?)된 것이죠.
하하

그래서 누에님이 엽서를 보내주셨다 하여 이제나 저제나 우체통을 들락거리며 주시했는데...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우체통에 프랑스 파리에서 온 우편물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잘못 넣었군' 하며 받는 이를 봤더니...'달님'이라고 떡하니 ㅋ
그래서 보낸 사람을 다시 확인했더니 nooe!!!!


아...
누에님이 '열심히 날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던게 정말 '날아오는' 것이었군요.
이렇게 멀리서 올줄 몰랐습니다 정말.
그래서 더욱 반갑고 기뻤어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뜯어보았습니다.
자끄 프레베르의 사진.
모니터로 볼때랑은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뭔가 묘한 기운의 엽서예요.


그래서 괜시리 하루종일 설레고 두근두근 했답니다. 헤헤
게다가 파리라니...
유럽여행 다녀온 후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었던 도시...
왠지 누에님 덕에 이웃 도시 같아졌어요. ㅋㅋ
부산이나...제주? ㅋㅋ

그리고 '당연히' 국내에 계실껄로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했지요.
무한한 인터넷의 공간에서 이런 협소한 사고방식이라니...ㅎㅎ

또 우울의 나락에 빠질때면...
멀리서 공감해준 누에님을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소통'을 일깨워준 누에님.
감사해요 진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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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해지지 못하는 나를 보며...
감정의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필요하면 켰다가, 감정이 컨트롤 되지 않을때 살포시 꺼두는거다.

그러다가 생각이 더 나아가...
on/off 뿐 아니라 기능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음향콘솔처럼 필요한 것만 컸다켰다 할 수 있으며 gain과 음의 밸런스까지 조정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콘솔.

아주 기쁜 마음을 맘껏 누리고 싶을땐 다른 감정은 꺼두고 기쁜마음의 gain을 최대치로 올리고...
평소에는 무난하게 조정해주고...
누군가에게 화를 낼땐 '인정' 채널은 좀 죽여놓고...
혹은 바쁠때 특정한 사건에 대해 꺼놓는거.
그게 생각 안나면 마음의 평정도 오고 좋을텐데...
(마음의 콘솔이 아니라 기억의 콘솔이 필요한 걸까? -_-;;)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우울증 따위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크고, 기분에 따라 컨디션이 너무도 달라지는 극단적인 나도 사라지겠지.
특정한 일에 신경끄는거...난 왜 그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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