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날이었다. 친구가 놀러왔고, 그 친구와 맛있기로 소문난 고기집에 점심으로 자투리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고, 예쁜 카페도 가기로 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김녕성세기해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첫째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냥 응가가 마려워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은 응가를 두번이나 하고 묽은변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얼굴이 퀭해진 아이. 아침엔 분명 평소와 같았는데 한두시간만에 눈이 푹 꺼지고 기운이 없다. 일단 서울집에서 가져온 매실액을 두숟갈 먹이고 길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보였는데 고기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 수가 확연히 적다. 동생이 말을 걸고 장난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오빠 *** 놀이하자!" 
"......오빠는 안할래......"
헉... 처음 들어보는 대화다. 정말 심상치 않다. (우리집 첫째는 먹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 빼고는 계속 떠드는 아이다.)

고기집에 내려 앞마당도 둘러보고 할 때는 또 좀 쌩쌩해서 안심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시켰는데... 밥을 못먹는다!!!! 그리고 눈이 더 푹 꺼졌다. 고기를 못먹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1인분도 넘게 먹는 녀석인데. 일단 친구와 나와 둘째는 아주 잘 먹었다. 나머지 사람이라도 잘 먹고 건강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 너무 더웠는데 이 녀석은 춥다고 했다. 비치타올을 차에서 꺼내 둘러줬다. 한참 기운없이 앉아있더니 밥을 먹겠다고하고 먹는데 1/4그릇 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먹으니 에너지가 다시 생겨 벌레도 잡고 동생이랑 까르르 웃기도 한다. 계속 머리를 짚어보는데 다행히 열은 없다. 카페를 가서도 키즈코코아를 다 마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 논다. 아침에 설사한 것이 힘들어 잠시 기운이 없었나보다 싶어 안심이 됐다.

그리고 김녕. 
이날은 정말이지 물놀이를 위한 날씨같았다. 바람 잠잠, 햇볕 쨍쨍. 튜브를 빌렸고 우리는 모래도 파고 파도도 타고 정말정말 잘 놀았다. 제주살이 3주차에 이렇게 물놀이를 재밌게 한 날은 처음이었다. 김녕에 물때도 좋아서 멀리멀리 걸어도 얕았고 중간에 땅이 또 생겨서 거기서도 모래를 팠다. 24시간 제주에 놀러온 내 친구는 돌고래처럼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보는 내가 뿌듯할 정도로 물에서 둥둥 잘 놀았다. ㅋㅋㅋㅋ 나와 아이들은 달리기도 하고 높은 파도(지만 수심은 내 엉덩이 정도)에 맞서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4시쯤 집으로 가려는데 멘도롱장이 열렸다. 제주와서 날씨 때문에 한번도 못만난 멘도롱장이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스치듯 안녕. 엉엉.

집에 왔는데 아까 아프던 녀석이 다시 아프다. 배도 아프고 덜덜 떤다. 열을 재보니 38.2도. 열이 나니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 끙끙 소리를 낸다. 얼른 씻겨 눕혀 해열제를 먹였다. 원래 공항까지 데려다주려 했던 친구는 저녁까지만 먹고 헤어졌고, 나는 집에 와 쌀죽을 끓였다. 아플땐 흰죽이지. 축 쳐져 있던 녀석은 열이 내리니 조금 살아났고 죽을 먹자 조금 더 에너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꾸룩꾸룩했고 응가도 한 번 더 했다. 밤에 열이 더 오르진 않을런지, 장염인지, 단순배탈인지, 감기인지 모르겠지만 잘 자고 괜찮아지길 빌었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아이가 아프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짚어보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아니야 내탓이 아니야'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제주에 와서 평소 잘 안먹던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었나? 어제 낮잠을 더 잤어야 하나? 아침마다 빵을 먹여서인가? 어제 먹은 해물칼국수가 별로였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얻은 결론은 피로누적이다. 이 녀석은 서울에서 밤9:00~9:30에 잠이 들고 아침7:30~8:00에 일어난다. 그러던 녀석이 운동량은 세배 이상이 됐고 매일 아침 6:30~7:30에 일어난다. 기본 수면부족이고 정말 쉬지 않고 놀아댄다. 3주내내. 피로누적은 결국 배탈을 불러왔다.

적당히 놀아야겠다. 나도 아이들도. 하지만 우린 열흘밖에 안남았는데... 흑흑...

자꾸 파보니 재밌다는걸 나도 깨달았다.
이제 호흡이 척척
바다를 온몸으로 즐기는 아이

 

카페도 즐길 줄 아는 아이(면 좋겠다)
뷰가 좋았던 고기집
내 친구와 아이들(너네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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