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오면 하기로 한 여러가지 것들 중 오름오르기가 있었다. 아빠가 온 이후에 태풍도 함께 오는 바람에 오르지 못했다가 비가 그친 첫 날 오름에 갔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아부오름. 아이들과 오르기 쉬운 오름이고 동쪽에 있는 곳으로 주변 여럿의 추천이 있었다.
아부오름에 도착하니 아래엔 소가 여러마리 있다. 신나서 소 옆에서 사진도 찍고 소 얼굴도 보고 그 옆 송아지도 보고 하는데 갑자기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소가 다가온다. "무서워..." 둘째가 사색이 되어 나에게 나가오고 사실 나도 너무 무서웠지만 내색하고 있지 않다가 짝꿍에게 속삭인다. "나도 너무 무서워..." ㅜㅜ 소를 피해 오름에 본격적으로 오른다. 경사가 가파르다더니 으앗 예상보다 가파르다. 계속 이렇다면 둘째는 못갈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싶을 때 쯤 정상이 보인다. "다 왔다! 저기다!"라고 하자 "힘들어..."를 호소하던 녀석도 힘을 낸다. 끝에 오르자마자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어서 아이들을 격려한다. (나 스스로도 힘을 내본다)
오름 자체가 힘들다기 보다는 태풍의 영향으로 이틀간 거의 물폭탄이 떨어져서 땅이 젖어있는데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하니 땅의 모든 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름 둘레길(뭐라고 불러얄지...)에 서 있는데 습식사우나에 서 있는 기분. 지면에서 뜨끈한 수증기가 올라와 마치 찜통 위의 만두 같다.
그래도 숲길도 지나고 고사리도 보고, 공벌레도 보고, 나비도 보고, 꽃도 보고, 버섯도 보고 온갖것들을 구경하고 말도 걸며 걸으니 즐거웠다. 첫째는 "엄마, 여기 풀들이 우리한테 인사하는 것 같아. '안녕~안녕~' 이렇게 몸을 흔들어."라는 예쁜 말을 남겼고 둘쨰는 "엄마, 새들이 우리가 반가워서 인사하나봐."라고 거들었다. 온갖 새들이 예쁜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내가 너희의 그런 예쁜 마음을 만나고 예쁜 말을 들으려고 오름에 온거구나. 나도 너무 좋다 요 예쁘고 귀여운 녀석들아.
반바퀴쯤 돌았을까... 숲이 사라지고 오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형으로 접어든다. 아... 이것이 오름이구나... 감탄도 잠시... 무더위와 다시 만난다. 지열과 함께 수증기는 올라오고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어른도 아이도 땀이 주루룩 흐른다. 중간에 웨딩촬영하는 커플을 둘이나 만났는데 한복입은 팀은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다. 얼마나 더울까. (다음에 오름에 온다면 난 꼭 서늘한 날 와야지...)
오름을 돌며 먹기 위해 김밥을 사와서 중간중간 쉬며 먹다가 다 돌면 먹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더위에 김밥이고 뭐고... 시원한 걸 마시고 싶어졌다. 점심시간이지만 점심이고 뭐고 카페로카페로... 지나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서니 예쁘고, 시원하고, 친절하시다. 우리집 두 녀석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짝꿍은 아아, 너무 힘들었던 나도 평소에 마시지 않던 커피를 주문한다. 나는 연유커피 샷은 한개만.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 넷은 가게의 얼음물을 다 마셔버릴 정도로 너무 더운 날이었다. (우리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름에도 물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마시는 집...)
더위가 가시고... 우리가 향한 곳은 김녕! 나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바다로 아빠와 함께 가본다. 날이 좋기도 하고 멘도롱장이 열리는 날이라 주차장이 거의 만차다. 처음 왔을땐 열대도 없었는데. ㅎㅎㅎ
추위를 타서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짝꿍은 일단 텐트를 지켰고, 나는 이렇게 습하고 더운날 하는게 물놀이지... 라고 생각하며 아이들과 물에 들어갔다.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는 모래사장에 앉아 첨벙거리다가 조금 추워져서 텐트로 돌아가서 바톤터치. 아빠와 아이들은 바위로 온갖 것들을 잡으러 떠나고 나는 아주 마음편히 누워서 쉰다. 아니 내가 이러려고 바다에 왔는데...
그동안 제주바다는 너무 추웠다. 제주의 이상기온 탓도 있었겠지만 가끔 있던 기온이 높은 날도 바람이 세서 너무 추웠다. 아이들은 아무리 길어야 세시간 놀았고 보통은 한시간반~2시간 정도 되면 둘째가 추워서 몸을 덜덜 떨어서 부랴부랴 집에 가야했다. 주차장에 세워서 찜통이 된 차에 타서는 셋이 모두 "아~ 너무 따뜻하다~"라면서 창문도 열지 않고 집까지 갔다.
그런데 이날은 물놀이를 위한 날 같았다. 바람이 없고 적당히 해가 나와서 물에 들어갔다가 추워지면 젖은 몸으로 밖에 나왔고 아무리 나와 있어도 춥지 않았다. 짝꿍은 미역던지기 놀이나 해양동물 채집 등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과 놀았고 아이들도 오랜만에 바다에서 까르르 거리며 아빠와 놀았다. 지켜보던 내가 다 뿌듯하고 즐거웠다. 마음도 따뜻했다.
제주 내려온 첫째주부터 기다렸던 멘도롱장도 드.디.어. 구경했다. 제주에서만 입을 것 같은 원피스도 하나 사고, 보자마자 '아니 이건 원래 내껀가?' 싶었던 손뜨개 모자도 샀다. 둘째를 위한 예쁜 머리띠도 샀다. 군것질꺼리도 사먹었는데 소떡꼬치와 보말떡볶이, 한라봉쥬스를 먹었다. 물놀이도 하고 쇼핑도 하고... 두시 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우리는 여섯시가 되어서야 밥시간 때문에 정리했다. 물론 해수욕장 폐장 시간이기도 했고. ㅋㅋㅋㅋ
이렇게 흡족한 물놀이를 하고 싶었는데... 서울 갈 날 며칠 앞두고 하루라도 잘 놀아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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