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날짜가 지나서 그제이긴 하지만) 이명수 선생님의 북콘서트 - 제목은 이명수/정혜신/김제동의 삼색토크 - 를 다녀왔다.

업무 반 자의 반으로 간 행사였는데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 제목과 당일 이야기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크게 깨우친 대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을 보라. 이 사람의 개별성에 집중하라."

사실 정혜신 선생님이 들었던 예는 딸이 클럽가서 놀다가 아침에 들어와도 꼭 데리러 나간다... 는 얘기였다.

그게 자식일 때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으나(우리집 애들은 7세 5세...) 남편으로 치환해보면 진짜 말이 안되는 얘기다.

상상만으로도 빡치는데 본질이라니.

그 사람의 개별성이라니.


아무튼 (때마침) 오늘 그는 술을 마셨고...

얘기를 한참 하다가 내가 싫어하는 대화패턴에 들어섰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그 때 대체 저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너의 개별성에 내가 집중해주마 마음먹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더 해봐야지.


그리고 어제 얘기중에 크게(?) 반성했던 대목은.

이명수 선생님이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10년째 주말마다 냉면집에 같이 가준다는 대목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짝꿍은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가자면 늘 간다.

반대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자발적 자상함과 표현하는 따뜻함이 없는 그가 나는 늘 불만이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 줄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늘 메뉴를 정할때 의견을 내지 않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걸 맞춰준거였다.

그는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는 취향도 없고 귀찮아서 그런거지'라고 나의 잣대로 평가했다.

아... 깊이 미안해진다.


10년간 살아보니 괜찮은 구석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의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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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첫째의 영유아검진이 있었다.

양쪽 눈 시력차가 꽤 커서 안과검진을 받아보라고 해서... 어제 안과에 갔다.


1.

시력검사.

생각한 것 보다 시력 차가 더 커서 한쪽눈이 약시가 생겼다고 한다.

한쪽 눈이 덜 보이니 잘 보이는 눈 시신경이 더욱 발달하고, 덜 보이는 눈의 시신경은 점점 일을 안하는 것.

사람의 몸은 참 대단해.


아무튼 그래서 시력교정(그 차이를 줄이는 것)을 위해 안경을 써야 하고, 가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안경은 덜 보이는 눈을 잘 보이게 해서 그 눈을 더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가림치료는 잘 보이는 쪽 눈을 가려서 덜 보이는 눈을 한동안 많이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안경을 쓰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야 한다.


일곱살에 안경이라니.

그리고 안경을 앞으로 평생 써야 하다니.

30년 넘게 안경을 쓰고 싶었지만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쓸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모두 시력이 좋아서 우리 아이가 눈이 나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들이 다칠거나 불편해질 리스트에 다리나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다든지, 어디가 찢어진다든지, 치아 교정을 해야한다든지 이런 경우의 수는 있었지만 정말 한 번도 안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림치료라니.

눈 한쪽에 계속 뭘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애들이 놀리지는 않을지, 불편해서 온갖 짜증을 남들에게 부리지는 않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

색각검사.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갈색, 회색을 비슷하게 본다는 것은 이미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 질문에 표현력 좋은 우리 아들은 그 색들이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 설명했고, 그 설명을 통해 '아, 이 아이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하는 바로 그 검사 카드.

동글동글 버블무늬의 바탕에 버블무늬로 이어진 숫자를 읽는 그 카드를 같이 봤다.

나와 같은 숫자로 읽는 카드가... 단 한 장도 없었다.


아이가 색각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내 눈 앞에서 전혀 다른 숫자를 읽고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없다고 말하고 내 눈에 빈 카드에서 숫자를 읽어내는 것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이상의 아픔이었다.

'네가 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네 눈에 보이는 색은 온통 회색이기도 하고 그 회색 안에서 차이를 느끼기도 하는구나...'


3.

내가 지금 너무 속상한 것은 시력 자체가 낮아서도 아니고, 특정 색을 감지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을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경을 쓰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1도 알지 못하고, 색 인지능력이 남들보다 높은 나는 일부 무채색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가진 너에게 내가 어떤 것을 해줘야 할지, 그걸 모르겠다.

그게 가장 나를 아프게 한다.


더 큰 불편함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고작 이 두개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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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지 몇주째...
마음에 들지 않는 몇개의 집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세시쯤 왔는데 애들이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고 놀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니 이 시간이 되도록 애들이 점심도 안먹고 있는게 말이나 돼?"라고 버럭 말했다.
(사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물론 애들은 늦은 오전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진 않았겠으나 점심은 언제 먹고 낮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화가 났다.

그렇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애들은 낮잠을 잤고 엄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곤 엄마는 저녁에 전화를 해서는 서운했노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길 "보임이도 집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예요. 집도 잘 안구해지고 속상하니까 그랬죠.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화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

2년마다 반복되는 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실 그것은 '집'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집을 얻을 경제력의 부재'에 대한 스트레스다.
2년에 7~8천만원씩 오르는 전세를 당연히 부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그런 사이클을 살고 있다.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왜 그런지도 잘 파악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좋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
잘 알아주지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차라리 둔한 남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10년만에 깨달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구나.'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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