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달째 하고 있는 잡지 기자 일은 분명 매력이 있는 일이다.
기사 쓰기 힘드네, 어투가 입에(손에?) 붙질 않네, 지면 기획하기 힘드네 어쩌네 해도...
뭔가를 기획하고 쓰고 완성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일은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일하며 한계도 자주 느낀다.
그건 어쩌면 이 일에 늦게 들어선 건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20대에 시작해 10년을 굴렀을 바닥에서 다른 업계에서 날아와 10년의 간극을 따라잡을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글이야 쓸 수록 늘고 점점 톤도 맞춰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영영 이렇게 언저리를 맴돌다 사라져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비슷한 그런 감정.

5년의 공백과, 시간을 내 마음대로 온전히 쓸 수 없는 아이 엄마로서의 내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5년전 나의 바닥에서 구르며 쌓았던 경험들이 이제는 뒤떨어진 것이거나, 그 업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등 쓸모없는 것이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일면 맞고 일면 틀린 생각이라는걸 알지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인가보다.)

지나간 결정, 지나간 선택에 대해 나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다.
실제로 깊이 고민해서 결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후회하지 않으려고 늘 자기 합리화를 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 조건에 동동거리며 쫓기는 내 모습을 볼 때면 과거의 나의 선택들이 모두 최선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어쨌건 나는 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 내 인생에 중요할지도 모르는 결정 하나를 했다.
잡지사를 관둔다.
그리고 다른 일을 시작한다.
평범한(?) 사무직이고 사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회계와 관련된 업무여서 걱정도 된다.

이 일이 나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성취감도 주지 않을 수 있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고민끝에 결정한 것은 애초 나의 목표로 가기 위해선 이 선택이 나을 것 같아서다.
잡지에 뛰어드려고, 기자질 다시 하려고 했던게 아니니까.

5년전 언론노조를 그만둘 때도 사실...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발전 없이 하루하루 버티며 조직에서 소모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 아니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5년이 지나고 다른 일을 하는데도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그런 두려움을 떨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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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할 기간이 얼마가 될 지 모르는 일을 내일부터 시작하게 됐다. 

허울 좋은 프리랜서란 개념은 실적이 별로이거나 사업자체가 엎어지면 언제든 백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라는 긴 세월의 벽을 깨고 나서려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리스크를 안고 가지만 그 또한 내 운명이려니 하며 가보는 수 밖에. 


아까 낮에... 내일 있을 미팅 준비를 하느라 맥북을 열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내 삶의 대부분이 어린이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묘했다. 

(각종 폴더 구성 및 즐겨찾기 리스트들...)

딱 열면 조합관련 페이지와 문서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세팅을 바꾸고 있노라니... 슬며시 모드전환 되는 내가 보였고 분명 내 모습인데 참 낯설었다. 

근데 한편으론 두려웠다.
업무로 모드전환 하는 것 만큼 내 사람들과도 모드전환이 될까봐.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내 사람들.
돈과도 바꾸지 않은... 구질하고 질척한 관계들이 이어지는 사람들.

다른 쪽으로도… 너무 오랜만에 역할을 바꾸려니 쉽게 되질 않는다.
지긋지긋했던 엄마노릇 주부노릇을 막상 놓으려니 아쉽다.
너무 긴 시간 엄마로 아내로만 살았더니 마치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이 일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든다.

암튼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맨몸으로 거리에 내쫓기는 기분이 든다.
아직 어린이집에 등원조차 하지 못한 라은이를 보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아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내일은 오겠지.
나가보자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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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쩌면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건... 

2004년 가을, 나의 진로를 고민하며 토익점수와 학점을 평균으로만 맞추면 당시 우리학교 우리과 학생이면 눈감고도 들어갈 수 있다던 S전자 LCD공장을 포기하고 특이한 선택(돈벌이는 되지 않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일)을 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일런지도 모른다.


무슨얘기냐 하면... 결국 가치관의 문제인데.


지난 일주일간 나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북아현동에 있는 공동육아위탁 구립 어린이집에서 지안, 라은 모두 입소순서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2. 집주인이 처음엔 전세를 올려달란 자세를 살짝 취하더니 집을 내놓기로 결정했단다.


그리고 내가 처한 객관적 상황은 이러하다.

1. 지금 이 집으로 들어오며 이미 대출은 더이상 안된다.

2. 용산 아파트 전세가 2년차이 7~8천이 올랐다.

3. 3월에 라은이가 등원하기 시작하면 (공동육아어린이집이므로...) 조합비를 한달 대략 7~80만원 내야 한다. 현재는 3~40만원.

4. 나는 지금 구직 중이다. 이제 내가 안벌면 생활이 어렵다.

5. 공부한답시고 사이버대학에 등록금도 냈다.


한마디로...

이미 돈이 없고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저렴하고 교육관도 우리집과 맞는 구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고 때마침 이사도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미쳤는지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왜 가기 싫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 내가 찾은 답은...

1. 지금 우리 조합에 불만이 없다. -> 옮겨도 불만은 없을거다.

2.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다. -> 떠날땐 아쉽지만 거기 가도 좋은 사람은 생기겠지.

3. 많은 것을 개선하고 만들어 놓았는데 마무리하고 싶다. -> 나 말고도 능력자 많다.

4. 지안, 라은이에게 좋은 곳이다. -> 나들이는 북아현동이 훨씬 좋을거다. 모래놀이장도 있고 시설도 더 안전하고 깨끗하다.

5. 북아현동 동네가 맘에 들지 않는다. -> 마당딸린 주택에 가면 만족스러울거다.


아 뭐지?

나름 분석해서 찾은 답인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다 아닌거...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 몇에게 물었다.

내가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근데 왜 이 사람들... 왜 남는게 더 좋은거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지... -_-;;;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어려워서 답을 못냈으니까.

내가 여기 남는 것이, 이 조합에서 사는 것이 80만원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인지. 그걸 누가 답할 수 있겠나.

그래도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냥 마음가는대로만 선택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험해서... 나중에 현실의 어려움이 나를 덮쳤을 때 내 선택을 후회하거나 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외면하고 팽개치게 될까봐.


공동육아어린이집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만난 것 처럼 보여도 천차만별이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만났지만 아이를 위한 것이 먹거리인지, 학대당하지 않는 것인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인지, 생태교육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속에서 내가 '저는 이 공동체가 우리 아이들과 저에게 정말 소중해서 월80만원을 포기했어요.'라고 한다면 분명 정신나간 짓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밖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그런 얘길 하겠지만.

(아, 내 성격 때문에 직접 말해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일주일간 밤잠 설쳐가며, 그런데 중간중간 회의도 하며, 낮이고 밤이고 사람을 계속 만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의 이 행동을 두고 같이 사는 박씨는 '적당히 해라'라고 표현했다. 나도 안다. 내가 미쳤나보다.)

그러니까 나의 행동들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덜 후회하기 위해' 내 선택의 이유와 근거를 구축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얻은 답은 이렇다.

1.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2. 그렇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맞다.

3. 어차피 돈 때문에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돈 때문에 흔들리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은 남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내 삶에서 부의 축적이 목적은 아니므로... 그랬다면 공동육아 따위 기웃거리지 않았겠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안이와 라은이를 어떤 학교에 보낼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더불어... 생활고에 쪼들리지 않게 3월 적응기간이 끝나면 바로 취직을 하도록 애써야겠다.


긴 고민의 시간은 정말 괴로웠지만... (이사장 노릇 하는 것 보다 열배는 힘들었다... 정말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니 아주 홀가분하다.

이제 다시 의욕넘치는 나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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