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첫째의 몸상태를 체크해본다. 다행히 열은 없고 아직 배는 안아프다고 한다. 아침밥으로는 다시 흰죽을 먹였다. 오늘은 오전까지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중간중간 둘째는 집과 광장을 들락날락했고 오빠는 부러웠지만 어제 아팠던걸 알기에 자기도 몸을 조심한다. 

소소하게 집에서 밥을 했다. 흰쌀밥을 좀 질게 하고 한살림에서 사두었던 아욱된장국을 아주 제대로 된 타이밍에 꺼내어 데웠다. 배탈에는 된장국이지. 뱃속이 편해지는 건강한 밥상을 먹으며 우리가 그간 노느라 김밥으로 때우고 대충 먹었던 몇몇 날을 반성한다.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고작 며칠이었는데!!!!) 그리고 혹시 몰라 매실액을 한 번 더 먹였다. 

오후에는 마을 아이들의 물총놀이가 약속된 시간이다. 물총놀이를 이주전부터 기다리던 녀석들이라 아침부터 들떠 있었고, 첫째 녀석은 특히 '아프면 못한다'는 말에 자기 몸을 잘 챙겼던 것이다. ㅋㅋㅋ아이들이 앞마당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몇몇 엄마들은 물총놀이에 동참했다. 나는 애들에게 미리 말해두었던 대로 마을 안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여기서 나는 난데 없는 자기성찰을 하게 됐는데, 물총놀이에 합류한 사람들과 카페에 둘둘씩 도란도란 얘기를 하던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물을 맞으며 노는 것에도 흥미가 없고 한달살이 하며 만나는 이웃과 소소한 사는 얘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가 없다. 서울에서 넘치는 관계와 넘치는 대화에 질려서 제주로 한달살이하러 왔으며, 워낙에 좁은 사람들과 깊게 만나는 성향이라 누가 말을 걸까봐 피하는 사람... 이었다. 카페에 혼자 앉아 내가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오랜 벗에게 편지를 쓰는게 내가 시간을 소중히 쓰는 방법이다. 아이와 한달살이를 하면 어른들과의 대화에 목마르다고 하는데 나는 귀가 고요한 시간에 목마르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있으니 물리적으로 귀가 힘들다. 아침에 새소리 들으며 보사노바 음악을 잔뜩 듣고 싶다.

아무튼... 녀석들은 두시간 동안 물총놀이 삼매경(심지어 우리집 남매가 제일 마지막 멤버)이었고, 나는 집안일을 마치고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책을 읽고 편지를 썼다. 서로 흡족한 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우체국에 들러 서울로 등기우편을 하나 보내고(둘째의 편지) 나는 캐나다로 국제우편을 하나 보낸다. 등기우편이 국제우편 가격의 3배다. 음... 비행기값도 그러면 좋을텐데.

장보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가 동네 초등학교로 축구하러 간단 정보를 입수한 첫째녀석이 은근 자기도 축구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날 닮은 이녀석이 친구를 먼저 사귀고자 하는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단 학교로 향했다. "너 오늘 살살 놀아야해. 힘들면 또 배탈날거 같아서 엄마 너무 걱정돼..."라고 무의미한 다짐을 받고 학교에 도착. 녀석은 축구공처럼 튀어나간다. 나는 나름 흥미진진한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싶었지만 지루해하는 둘째와 그네도 타고 동네산책도 했다.

동네산책을 하다 깨달았는데 모든 돌담 아래 봉숭아가 피었다. 생각해보면 나 어렸을 적엔 아파트라도 골목골목 들꽃처럼 봉숭아가 자라서 여름마다 물들였는데. 이제 서울에선 보기 힘든 꽃이됐다. 제주에선 흔하디흔한 봉숭아를 우리는 신이나서 구경하고 예쁜 잎과 예쁜 꽃을 골라 잘 따서 소중히 가져왔다. 얼마만의 봉숭아 물들이기인지... 두근두근하다. 옛날엔 백반으로 했는데 몸에 안좋단 얘기가 있어서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소금으로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김에 서울로 올라갈 때 봉숭아를 잔뜩 따다주기로 약속도 했다.

축구는 1부 리그가 끝나고 2부 리그가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이 녀석이 또 아프면 큰일이기에 잘 어르고 달래서 철수. 같이 놀던 친구들이 왜 가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어서 "어제 배탈이 나서 아팠어. 열도 나도 약도 먹고. 그래서 오늘은 이제 쉬러 갈게~"라고 쐐기를 박고 퇴장... 미안하다. 나도 얘가 더 놀아서 실컷 놀았단 생각이 들면 좋겠어... ㅠㅠ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쇠한 기력도 보충하고 배탈난 사람에게 어울릴 전복죽을 먹기로 결정. 지도에 별표해둔 집을 찾아갔는데 세상에... 그 유명한 구좌리 전복집보다 훨씬 맛있었다. 양념맛이 아니라 재료고유의 맛을 살린 적절한 간이 되어 있었다. 전복도 더 크고 싱싱하고 쫄깃... 게다가 가격도 몇천원 저렴... 아픈 녀석을 위해 전복죽을 포장해가고 싶었는데 포장용기가 없단다. 그래서 다음에 냄비를 가져와 사가기로 사장님과 협의... 내일 아침에 당장 가고 싶다.

일찌감치 집에 와서 쉬려고 했는데 아뿔싸. 아까 봉숭아를 따왔지... 얼른 돌을 주워다가 잎과 꽃을 빻아서 준비. 20~30분이면 할 줄 알았던 봉숭아 물들이기는 무려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아이들의 손이 이렇게 작은 줄 몰랐다. 삐질삐질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애들 손에 봉숭아를 올리고 랩을 감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너희들이 응가도 혼자 닦고 목욕도 혼자 해서 이제 다 컸구나~ 했는데 손을 보니 아직 아기네..."
"(둘째)우리가 다 큰 줄 알았어?"
"응... 그런 줄 알았는데 손이 정말 작구나..."
깜깜한 밤에 제주에서 너희들 손에 꽃잎을 올리고 비닐을 감고 실로 동여매고 있노라니 왠지 코끝이 찡해온다. 아기들이였는데... 내가 몰랐네...

나의 아기들아. 내일 아침엔 아프지 말고 일어나자.
그리고 손끝엔 예쁜 봉숭아물이 들어있길. :)

매일 이 카페에서 우아한 시간을 보낼 줄 았았는데...
물총놀이 삼매경
캐나다로 간 고래
정글짐 꼭대기에 오르기
전복 먹고 힘내라!
"이 밑엔 뭐가 있지?" "따개비!"
하루의 마무리는 봉숭아 물들이기

즐거운 날이었다. 친구가 놀러왔고, 그 친구와 맛있기로 소문난 고기집에 점심으로 자투리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고, 예쁜 카페도 가기로 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김녕성세기해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첫째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냥 응가가 마려워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은 응가를 두번이나 하고 묽은변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얼굴이 퀭해진 아이. 아침엔 분명 평소와 같았는데 한두시간만에 눈이 푹 꺼지고 기운이 없다. 일단 서울집에서 가져온 매실액을 두숟갈 먹이고 길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보였는데 고기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 수가 확연히 적다. 동생이 말을 걸고 장난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오빠 *** 놀이하자!" 
"......오빠는 안할래......"
헉... 처음 들어보는 대화다. 정말 심상치 않다. (우리집 첫째는 먹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 빼고는 계속 떠드는 아이다.)

고기집에 내려 앞마당도 둘러보고 할 때는 또 좀 쌩쌩해서 안심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시켰는데... 밥을 못먹는다!!!! 그리고 눈이 더 푹 꺼졌다. 고기를 못먹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1인분도 넘게 먹는 녀석인데. 일단 친구와 나와 둘째는 아주 잘 먹었다. 나머지 사람이라도 잘 먹고 건강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 너무 더웠는데 이 녀석은 춥다고 했다. 비치타올을 차에서 꺼내 둘러줬다. 한참 기운없이 앉아있더니 밥을 먹겠다고하고 먹는데 1/4그릇 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먹으니 에너지가 다시 생겨 벌레도 잡고 동생이랑 까르르 웃기도 한다. 계속 머리를 짚어보는데 다행히 열은 없다. 카페를 가서도 키즈코코아를 다 마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 논다. 아침에 설사한 것이 힘들어 잠시 기운이 없었나보다 싶어 안심이 됐다.

그리고 김녕. 
이날은 정말이지 물놀이를 위한 날씨같았다. 바람 잠잠, 햇볕 쨍쨍. 튜브를 빌렸고 우리는 모래도 파고 파도도 타고 정말정말 잘 놀았다. 제주살이 3주차에 이렇게 물놀이를 재밌게 한 날은 처음이었다. 김녕에 물때도 좋아서 멀리멀리 걸어도 얕았고 중간에 땅이 또 생겨서 거기서도 모래를 팠다. 24시간 제주에 놀러온 내 친구는 돌고래처럼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보는 내가 뿌듯할 정도로 물에서 둥둥 잘 놀았다. ㅋㅋㅋㅋ 나와 아이들은 달리기도 하고 높은 파도(지만 수심은 내 엉덩이 정도)에 맞서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4시쯤 집으로 가려는데 멘도롱장이 열렸다. 제주와서 날씨 때문에 한번도 못만난 멘도롱장이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스치듯 안녕. 엉엉.

집에 왔는데 아까 아프던 녀석이 다시 아프다. 배도 아프고 덜덜 떤다. 열을 재보니 38.2도. 열이 나니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 끙끙 소리를 낸다. 얼른 씻겨 눕혀 해열제를 먹였다. 원래 공항까지 데려다주려 했던 친구는 저녁까지만 먹고 헤어졌고, 나는 집에 와 쌀죽을 끓였다. 아플땐 흰죽이지. 축 쳐져 있던 녀석은 열이 내리니 조금 살아났고 죽을 먹자 조금 더 에너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꾸룩꾸룩했고 응가도 한 번 더 했다. 밤에 열이 더 오르진 않을런지, 장염인지, 단순배탈인지, 감기인지 모르겠지만 잘 자고 괜찮아지길 빌었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아이가 아프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짚어보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아니야 내탓이 아니야'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제주에 와서 평소 잘 안먹던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었나? 어제 낮잠을 더 잤어야 하나? 아침마다 빵을 먹여서인가? 어제 먹은 해물칼국수가 별로였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얻은 결론은 피로누적이다. 이 녀석은 서울에서 밤9:00~9:30에 잠이 들고 아침7:30~8:00에 일어난다. 그러던 녀석이 운동량은 세배 이상이 됐고 매일 아침 6:30~7:30에 일어난다. 기본 수면부족이고 정말 쉬지 않고 놀아댄다. 3주내내. 피로누적은 결국 배탈을 불러왔다.

적당히 놀아야겠다. 나도 아이들도. 하지만 우린 열흘밖에 안남았는데... 흑흑...

자꾸 파보니 재밌다는걸 나도 깨달았다.
이제 호흡이 척척
바다를 온몸으로 즐기는 아이

 

카페도 즐길 줄 아는 아이(면 좋겠다)
뷰가 좋았던 고기집
내 친구와 아이들(너네 잘 어울린다)

이틀 연속 물놀이에, 낮잠 없이 산 날이 며칠째인지... 오늘은 쉬는 날로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한참을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집에서 점심먹고 낮잠. 낮잠 자고 일어나 이른 저녁으로 동네에서 유명한 해물칼국수(무려 칼국수 팔아서 빌딩을 지은 집)를 먹고 도서관, 마트, 빵집을 들러 귀가. 마치 육지에서의 평범한 토요일처럼 보냈다.

하지만 저녁 일정이 좀 독특했는데, 공항으로 친구를 데리러 갔다가 함덕 바닷가에서 수제버거집으로... 밤9-10시에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콜라를 와구와구 먹고 들어왔다.

내일은 제주에 24시간 체류하는 친구와 놀아야지!


공항가는 길. 해질녘 하늘이 예뻐서 신호대기에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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