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온전한 하루.
제주를 떠나는 내일은 아침나절 내내 한달 동안 살았던 집을 정리하는 날일테니 아마도 정신이 없겠지. 그렇다면 제주에서의 마지막 온전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못한 것들을 몰아서 해볼까? 하지만 좀 더 차분하게 그간 우리가 했던 것 중 또 하고 싶었던 것을을 떠올려보며 한 번 더 가볼 곳을 두개 정도 고르면 어떨까? 이 정도로만 고민하고 아침밥 먹는 애들과 얘기를 나눴다. 너희는 어떤게 좋겠어?
"좋았던 걸 또 하는게 좋겠어!"
그렇다면 우리가 좋았던 것은 뭐가 있을까. 박물관도 갔었고 바다에도 갔고, 절물휴양림, 만장굴, 선흘분교, 오름도 갔었는데 각자 좋았던 곳을 두개씩 고르기로 했다. 첫째는 오름과 절물을 골랐고, 둘째는 바다와 절물을 골랐다. 나는 바다와 선흘분교를 골랐다. 짝꿍은 바다와 절물을 골랐다. 그래서 투표결과는 바다와 절물휴양림. 바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김녕성세기 해변. 어디부터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첫째가 절물부터 가자고 한다. 바다는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복잡하니까. 오... 똘똘한데? ㅋㅋㅋ
간식을 싸가지고 절물로 향했다. 간식은 냉장고에 남아있던 오메기떡 세알을 챙기고, 달걀 세알을 삶아서 챙기고. 남은 과자들과 귤들을 챙겼다. 그런데 오후에 갈 바다 짐까지 싸야하니 너무 바빴다. 아침 일찍 서둘렀으나 결국 11시 출발. 아이들과 움직이면 아무리 서둘러도 11시에 집을 나서게 되는구나. ㅠㅠ
지난번 절물에 왔을때는 서늘해서 추울 정도였는데 오늘은 습도가 높고 더웠다. 숲 한가운데 있으면 그나마 바람이 불때 시원한 감이 있는데 햇볕이 쬐는 길은 너무 더웠다. 온몸이 끈끈해지는 기분. 숲은 상쾌하려고 오는건데 아우... 제주의 여름을 마지막 날에서야 제대로 알게 됐다. 역시 가을에 와야되나봐... 그래도 절물의 삼나무는 아름다웠고 숲길은 포근했다. 두 번째 오는건 그것대로 맛이 있어서 아이들은 '지난 번엔~'하며 첫번째 방문을 기억했고 소소하게 달라진 것과 여전히 같은 것들을 말하느라 바빴다. 지난번에 너무 추워서 못했던 족욕장에 가서 발도 담갔다. 얼음장같이 찼지만 이래서 발을 담그는구나... 싶게 시원했다. 여름은 이런데서 보내는거지. 중간중간 나오는 쉼터에서 소소하게 간식 먹고 고리던지기도 하고 놀고 알차게 숲을 즐겼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일단 가장 가까운 눈에 보이는 밥집에 들어가 밥을 먹으며 이후 동선을 짜본다. 원래 김녕에 가려고 했으나... 절물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승마체험' 글씨를 보고 아빠가 오면 말타러 가기로 한 걸 기억해낸 남매들로 인해 계획변경. 그럼 내친김에 말도 타고 카약도 타자!
찾아보니 애들이 좋아할 승마체험장이 있었다. 옛날 승마장들이 주로 말을 타고 승마를 배우는 것이었다면, 여긴 먹이주기 체험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고 부모와 아이가 시원하게 말을 한 번 타보는 경험을 하는 곳. 이런게 장사지... 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비싼 값에 사진을 판단 글을 블로그에서 봤는데 '막상 보면 안 살 수가 없어요'란 말을 보고 불길했다. 뭔지 너무 알겠는 그런 느낌... 사진 결과물은 역시... 이렇게 좋은 렌즈로 이렇게 예쁘게 애들을 찍어줬는데 안살 부모가 어딨어! 흑흑... 샀다. 전혀 강매하지 않았고 아무런 압박도 하지 않았고 단지 사진만 보여줬는데 그게 최고의 상술이었으며 알면서 샀다. 우리 추억을 돈주고 사자. 의미 있어! ㅋㅋㅋ
마지막 여행지는 하도리. 여긴 우리 부부가 아주 예전부터 좋아하던 곳이다. 철새도래지가 옆에 있고 하도리는 물이 빠지면 정말 가도가도 바닷물이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곳이다. 드디어 카약 탑승! 예상은 했지만 애 둘을 데리고 카약을 타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배 하나에 탈 수 없어 두개를 묶었더니 더더욱 ㅋㅋㅋㅋ) 속도감이 나서 쭉쭉 가야 재밌을텐데 마침 바람이 세서 어른 둘이(사실 내가 0.5인분의 힘...) 바람을 이기고 가려니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30분 탔기에 망정이지 1시간 탔으면 쓰러졌을 듯 ㅋㅋㅋ
카약에서 내려 마지막 바다놀이를 했다. 나는 바닷물이 찰랑한 모래에 앉아 제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고, 첫째는 아빠랑 돌 틈에서 뭘 잡느라 바빴고, 둘째는 물놀이 모래놀이를 했다. 날이 더워 6시 넘어서도 바닷가엔 사람이 많았고 우리도 그렇게 거의 7시가 되도록 바다에서 놀았다. 이날 바다에서 가장 아쉬운 사람은 나였다. 그냥 그렇게 계속 앉아있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함덕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집과 미리 사두었는데 비가 너무 오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 날에... 스파클러 200개를 샀더니 아주 원없이 신나게 반짝거리고 놀았다. 반짝반짝. 우리의 한달도 그렇게 반짝거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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