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드라마스페셜.

남의 기억과 추억과 마음을 헤집어 놓고 난리...


유년기 내내 나에게 아빠란 항상 보고싶은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릴적 한참 건설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아빠는 포크레인을 몇 대 운영하는 사장이었고 현장마다 나가 기사들을 체크하느라 늘 지방출장이었다.

(물론 집에 잘 오지 않는 것이 꼭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건 좀 더 커서였다.)

건설업을 접은 다음에도 아빠의 직장은 지방이었고 그래서 집에는 주말에나 오셨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이후, 나는 아빠를 몇년에 한번씩 볼 수 있었고 결혼한 후에야 겨우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빠는 평생 '보고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설명하기 좀 어려운 감정인데... 정말 사랑해서라거나 모든 잘못들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밉고 싫은데 보고싶은 뭐 그런거.


지금도 '아빠'하면 떠오르는 내 유년시절 기억들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잡고 밖을 내려다보며 아빠 차가 오나안오나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억, 몇 밤 자면 온다는 말에 매일 몇 밤인지 세어보던 기억...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무언가의 '결핍'으로 남아서 나는 항상 마음이 모자라고 허전한채 살고있다.

매 순간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결핍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인생에 있어 아빠의 부재.

아빠가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이런 것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결핍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런 결핍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싫은데 꾸역꾸역 같이 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크고 작게 다투더라도 잘 풀고 살면서, 어느 정도 져 주기도 (내 성격에)접기도 하면서 살아보겠단 얘기다.


보통 남들에게 친정아빠란 든든한 존재인 것 같던데(없어서 모름), 나에게 아빠란 열두살 소녀의 아빠 정도로 남아 항상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아. 그게 애들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부모 각자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단 거다.

특히 애들이 커서 중학생쯤 되면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 어떤 아빠가 되어야할지 나에겐 평가할 모델 조차 없는 거다.


여튼...

무방비 상태로 드라마에 당했네.




요새 뜻하지 않은 곳에서 깨달음을 많이 얻네.

오늘은 페북 댓글 수다에서 깨달음.


맞춤법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잘 하려고 하다가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

더 생각해 보니 비단 맞춤법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전반에 대해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다.


어떤 거냐면...

난 내가 못하는 걸 남들 앞에 보이는게 정말 싫다.

잘하는 것만 보이고 싶다.

그래서 조금 해보고 내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안해버린다.

노력해봐야 못 할 것은 그냥 버리고 가는 거다.


대학시절 율동패 앞에서 춤 안췄고, 노래패 앞에서 노래 안했다.

다행히 풍물은 잘 쳐서 풍물패는 계속 할 수 있었네;;;

근데 그 와중에 연기는 가능한 안했다.

못하니까 쪽팔려서.


청년회 들어가 노래울에서 노래연하는데 처음엔 참 많이 힘들었다.

못하는거 계속 해야되니까.

그나마 음치는 아니어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었네...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걸까.

왜이리 삶을 피곤하게 살게 됐을까.


집안일도, 육아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냥 좀 대충해도 되고 가끔 밥 좀 안해도 되고 그런건데.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밀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그러고보니 상담해주던 분이 그랬지.

좀 틀리면 어때요, 좀 잘못하면 어때요, 사람이 어떻게 맞는 일만 하면서 사나요?

그리고 당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으로 화가 나도 이성적으로 화낼 상황이 아니면 화를 내지 못하고 참았다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화를 내도 정당한 상황이면 그간 모았던 화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문제였지.

내 기분은 나쁜데 내 속은 곪고 있는데 이게 지금 정당한가 아닌가 부터 머리로 계산하고 있는.


그래도 상담받고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직 멀었구나.

애 둘 낳고 헐렁하게 살면서 많이 나아졌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팍팍하게 살고 있었구나.


나의 이런 강박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힘들고 답답할텐데.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힘들겠구나.


다시 한 번 내려놓아보자.

대충 살려고 노력해보자.

(사실 연초부터 올해 무슨 일을 벌일지 계획을 짜느라 머리가 복잡했었음)


아... 나 뭐 이리 어렵게 사냐.

대충 사는 것도 마음 먹어야 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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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타는지 마음이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집중도 잘 안되고 몸 컨디션도 계속 별로고.

금요일 새벽에 끔찍한 악몽으로 시달린 이후로는 더 별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인지 내 마음도 불확실하게 흔들리기만 한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집안일. 끊임없는 육아.

생각은 많은데 집중해서 되질 않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섞여 결론도 없이 머리를 헤집어 놓기만 하는 꼴이다.


현실의 벽이 느껴지는 서른여섯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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