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이 이사한다.

2004년인가? 이사간 지금 집.

이사간 이후 그 동네에서 살았다는게 무색할 정도로 잠만 잤던 공간이어서 아무런 정이 없었는데 막상 이사한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다.


2004년에 갈 때에도 하던 일이 잘 안되서 있는 돈에 맞춰 멀리 간건데...

이번에도 일이 잘 안되면서 작은 집으로 가는 거라서 마음이 좋지 않다.


어쨌거나 짐정리를 좀 돕고... (사실상 나 말고 남편씨가 거의 다;;;) 마지막 남아있던 내 짐인... 카세트 테잎을 정리했다.

친정집이 이사가지 않고 천년만년 살았다면 계속 거기 두었겠지만 이사가며 버림당하게 될 내 추억들이기에... 사진을 찍어두고 꼭 가져와야할 녀석들만 챙겼다.


정말 아끼는 앨범들만 꽂은 1면.

그리고 중간중간 내 손조차 오그라드는 앨범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들었던 나머지 면들.

고이 가져온 녀석들에 대한 설명은 이번주 내내 조금씩 해야지.

반갑다, 내 추억들.







난 매우 정치적인 성향이 뚜렷하고 사람을 정치적인 성향으로 판단하는 등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나... 내 아이들에게 그것을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규정하고 싶진 않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는 일은 도둑을 잡고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에게 '경찰은 사실 정당한 집회를 보장하지 않고 불법채증을 일삼는 등정권의 하수인일 뿐이다'라고 설명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훌륭한 경찰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집단이 훌륭하지는 않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지안이에게 따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 우리집은 아이들과 TV를 보지 않기에 더더욱 얘기를 꺼낼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언젠가 한 번 촛불집회 장소 앞을 지나가면서 집회자리에 잠깐 앉아있긴 했지만 촛불이랑 놀다 온 것이 다였다.
4~5월에 한참 수시로 눈물을 후두둑 흘릴때 왜냐고 물으면 "엄마가 좀 슬퍼서"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노란리본모양 브로치(무슨 의미인지 알고 단 것은 아니고 그냥 아침에 내 화장대에 있는 걸 보고 달아달라고 하기에 달아줬다)를 달고 간 지안이가 저녁에 하원하며 담임선생님에게 "나 이거 달았어~"하고 자랑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지안이에게 "지안이 그거 무슨 뭔지 알아?"라고 물었고 지안이는 "뭔데?"라고 되물었다.


"얼마전에 큰 배가 사고가 나서 바다에서 가라앉았어. 근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해서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왜 죽었어?"
"배가 뒤집어졌는데 너무 빨리 가라앉았어"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에 다~ 빠졌어?"
"응. 그래서 그 사람들을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뜻에서 다는 리본이야."
"그런데 왜 사고가 났어?"
"음... 배가 너무 낡아서..."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데 머리속이 엉키고 마음이 일렁였다.
네살배기 아들에게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지 않은 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죽은 사람들이 꽃다운 고등학생이었다고, 그들은 어른들이 만든 통제와 획일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그냥 그렇게 물속에서 죽어갔다고 얘기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길거리에서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조금 살만해 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뒤숭숭한 마음을 주섬주섬 수습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묻는다.
"엄마. 바다에 배가 뒤집어져서 사람들이 빠졌는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했어?"
"어...어? 어... 그랬대..."
한 번 들은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쿵...

문장구사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엄청 좋은 이 네살짜리 아들에게...
나는 이 세상의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살며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날 때, 아이들에게 얼만큼을 알려줘야 하는 걸까.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알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시간도 늦었고해서 그냥 잘까 하다가...

오늘은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뭘 쓰기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지나치게 계획적인 나는 일상도 늘 계획을 세운다.

일주일 단위로 잘라서 매주 일요일 저녁즈음 요일별로 집안일과 다른일들을 분류하고

매일 저녁에는 그 다음날 일을 오전, 오후, 저녁, 밤으로 배치한다.


오늘 몸도 마음도 무척 힘이 들었다.
힘들다고 느낀건 5시무렵.
내가 오늘 계획했던 일을 대부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미 시간이 늦어서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종일 일을 했다.)
주말을 자기 좋을대로 즐기고 허비한 사람에 대한 짜증과 분노였을 수도 있겠다.
오늘 내 계획대로 하지 못한 것엔 내 잘못이 전혀 없었으니까.

모르겠다.
그냥 내일 걱정 안하며 지금 당장이 즐거운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건지.
늘 내일에 대비하며 살아서 기복없이 사는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아, 어찌됐건...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
내가 화가 난 것은 너의 즐거움 때문에 늘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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