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할 기간이 얼마가 될 지 모르는 일을 내일부터 시작하게 됐다. 

허울 좋은 프리랜서란 개념은 실적이 별로이거나 사업자체가 엎어지면 언제든 백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라는 긴 세월의 벽을 깨고 나서려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리스크를 안고 가지만 그 또한 내 운명이려니 하며 가보는 수 밖에. 


아까 낮에... 내일 있을 미팅 준비를 하느라 맥북을 열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내 삶의 대부분이 어린이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묘했다. 

(각종 폴더 구성 및 즐겨찾기 리스트들...)

딱 열면 조합관련 페이지와 문서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세팅을 바꾸고 있노라니... 슬며시 모드전환 되는 내가 보였고 분명 내 모습인데 참 낯설었다. 

근데 한편으론 두려웠다.
업무로 모드전환 하는 것 만큼 내 사람들과도 모드전환이 될까봐.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내 사람들.
돈과도 바꾸지 않은... 구질하고 질척한 관계들이 이어지는 사람들.

다른 쪽으로도… 너무 오랜만에 역할을 바꾸려니 쉽게 되질 않는다.
지긋지긋했던 엄마노릇 주부노릇을 막상 놓으려니 아쉽다.
너무 긴 시간 엄마로 아내로만 살았더니 마치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이 일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든다.

암튼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맨몸으로 거리에 내쫓기는 기분이 든다.
아직 어린이집에 등원조차 하지 못한 라은이를 보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아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내일은 오겠지.
나가보자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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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쩌면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건... 

2004년 가을, 나의 진로를 고민하며 토익점수와 학점을 평균으로만 맞추면 당시 우리학교 우리과 학생이면 눈감고도 들어갈 수 있다던 S전자 LCD공장을 포기하고 특이한 선택(돈벌이는 되지 않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일)을 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일런지도 모른다.


무슨얘기냐 하면... 결국 가치관의 문제인데.


지난 일주일간 나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북아현동에 있는 공동육아위탁 구립 어린이집에서 지안, 라은 모두 입소순서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2. 집주인이 처음엔 전세를 올려달란 자세를 살짝 취하더니 집을 내놓기로 결정했단다.


그리고 내가 처한 객관적 상황은 이러하다.

1. 지금 이 집으로 들어오며 이미 대출은 더이상 안된다.

2. 용산 아파트 전세가 2년차이 7~8천이 올랐다.

3. 3월에 라은이가 등원하기 시작하면 (공동육아어린이집이므로...) 조합비를 한달 대략 7~80만원 내야 한다. 현재는 3~40만원.

4. 나는 지금 구직 중이다. 이제 내가 안벌면 생활이 어렵다.

5. 공부한답시고 사이버대학에 등록금도 냈다.


한마디로...

이미 돈이 없고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저렴하고 교육관도 우리집과 맞는 구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고 때마침 이사도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미쳤는지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왜 가기 싫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 내가 찾은 답은...

1. 지금 우리 조합에 불만이 없다. -> 옮겨도 불만은 없을거다.

2.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다. -> 떠날땐 아쉽지만 거기 가도 좋은 사람은 생기겠지.

3. 많은 것을 개선하고 만들어 놓았는데 마무리하고 싶다. -> 나 말고도 능력자 많다.

4. 지안, 라은이에게 좋은 곳이다. -> 나들이는 북아현동이 훨씬 좋을거다. 모래놀이장도 있고 시설도 더 안전하고 깨끗하다.

5. 북아현동 동네가 맘에 들지 않는다. -> 마당딸린 주택에 가면 만족스러울거다.


아 뭐지?

나름 분석해서 찾은 답인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다 아닌거...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 몇에게 물었다.

내가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근데 왜 이 사람들... 왜 남는게 더 좋은거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지... -_-;;;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어려워서 답을 못냈으니까.

내가 여기 남는 것이, 이 조합에서 사는 것이 80만원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인지. 그걸 누가 답할 수 있겠나.

그래도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냥 마음가는대로만 선택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험해서... 나중에 현실의 어려움이 나를 덮쳤을 때 내 선택을 후회하거나 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외면하고 팽개치게 될까봐.


공동육아어린이집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만난 것 처럼 보여도 천차만별이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만났지만 아이를 위한 것이 먹거리인지, 학대당하지 않는 것인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인지, 생태교육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속에서 내가 '저는 이 공동체가 우리 아이들과 저에게 정말 소중해서 월80만원을 포기했어요.'라고 한다면 분명 정신나간 짓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밖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그런 얘길 하겠지만.

(아, 내 성격 때문에 직접 말해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일주일간 밤잠 설쳐가며, 그런데 중간중간 회의도 하며, 낮이고 밤이고 사람을 계속 만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의 이 행동을 두고 같이 사는 박씨는 '적당히 해라'라고 표현했다. 나도 안다. 내가 미쳤나보다.)

그러니까 나의 행동들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덜 후회하기 위해' 내 선택의 이유와 근거를 구축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얻은 답은 이렇다.

1.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2. 그렇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맞다.

3. 어차피 돈 때문에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돈 때문에 흔들리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은 남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내 삶에서 부의 축적이 목적은 아니므로... 그랬다면 공동육아 따위 기웃거리지 않았겠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안이와 라은이를 어떤 학교에 보낼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더불어... 생활고에 쪼들리지 않게 3월 적응기간이 끝나면 바로 취직을 하도록 애써야겠다.


긴 고민의 시간은 정말 괴로웠지만... (이사장 노릇 하는 것 보다 열배는 힘들었다... 정말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니 아주 홀가분하다.

이제 다시 의욕넘치는 나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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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이 이사한다.

2004년인가? 이사간 지금 집.

이사간 이후 그 동네에서 살았다는게 무색할 정도로 잠만 잤던 공간이어서 아무런 정이 없었는데 막상 이사한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다.


2004년에 갈 때에도 하던 일이 잘 안되서 있는 돈에 맞춰 멀리 간건데...

이번에도 일이 잘 안되면서 작은 집으로 가는 거라서 마음이 좋지 않다.


어쨌거나 짐정리를 좀 돕고... (사실상 나 말고 남편씨가 거의 다;;;) 마지막 남아있던 내 짐인... 카세트 테잎을 정리했다.

친정집이 이사가지 않고 천년만년 살았다면 계속 거기 두었겠지만 이사가며 버림당하게 될 내 추억들이기에... 사진을 찍어두고 꼭 가져와야할 녀석들만 챙겼다.


정말 아끼는 앨범들만 꽂은 1면.

그리고 중간중간 내 손조차 오그라드는 앨범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들었던 나머지 면들.

고이 가져온 녀석들에 대한 설명은 이번주 내내 조금씩 해야지.

반갑다, 내 추억들.







난 매우 정치적인 성향이 뚜렷하고 사람을 정치적인 성향으로 판단하는 등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나... 내 아이들에게 그것을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규정하고 싶진 않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는 일은 도둑을 잡고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에게 '경찰은 사실 정당한 집회를 보장하지 않고 불법채증을 일삼는 등정권의 하수인일 뿐이다'라고 설명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훌륭한 경찰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집단이 훌륭하지는 않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지안이에게 따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 우리집은 아이들과 TV를 보지 않기에 더더욱 얘기를 꺼낼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언젠가 한 번 촛불집회 장소 앞을 지나가면서 집회자리에 잠깐 앉아있긴 했지만 촛불이랑 놀다 온 것이 다였다.
4~5월에 한참 수시로 눈물을 후두둑 흘릴때 왜냐고 물으면 "엄마가 좀 슬퍼서"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노란리본모양 브로치(무슨 의미인지 알고 단 것은 아니고 그냥 아침에 내 화장대에 있는 걸 보고 달아달라고 하기에 달아줬다)를 달고 간 지안이가 저녁에 하원하며 담임선생님에게 "나 이거 달았어~"하고 자랑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지안이에게 "지안이 그거 무슨 뭔지 알아?"라고 물었고 지안이는 "뭔데?"라고 되물었다.


"얼마전에 큰 배가 사고가 나서 바다에서 가라앉았어. 근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해서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왜 죽었어?"
"배가 뒤집어졌는데 너무 빨리 가라앉았어"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에 다~ 빠졌어?"
"응. 그래서 그 사람들을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뜻에서 다는 리본이야."
"그런데 왜 사고가 났어?"
"음... 배가 너무 낡아서..."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데 머리속이 엉키고 마음이 일렁였다.
네살배기 아들에게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지 않은 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죽은 사람들이 꽃다운 고등학생이었다고, 그들은 어른들이 만든 통제와 획일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그냥 그렇게 물속에서 죽어갔다고 얘기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길거리에서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조금 살만해 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뒤숭숭한 마음을 주섬주섬 수습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묻는다.
"엄마. 바다에 배가 뒤집어져서 사람들이 빠졌는데 경찰도 가고 소방관도 가고 군인도 갔는데 못구했어?"
"어...어? 어... 그랬대..."
한 번 들은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쿵...

문장구사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엄청 좋은 이 네살짜리 아들에게...
나는 이 세상의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살며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날 때, 아이들에게 얼만큼을 알려줘야 하는 걸까.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알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시간도 늦었고해서 그냥 잘까 하다가...

오늘은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뭘 쓰기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지나치게 계획적인 나는 일상도 늘 계획을 세운다.

일주일 단위로 잘라서 매주 일요일 저녁즈음 요일별로 집안일과 다른일들을 분류하고

매일 저녁에는 그 다음날 일을 오전, 오후, 저녁, 밤으로 배치한다.


오늘 몸도 마음도 무척 힘이 들었다.
힘들다고 느낀건 5시무렵.
내가 오늘 계획했던 일을 대부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미 시간이 늦어서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종일 일을 했다.)
주말을 자기 좋을대로 즐기고 허비한 사람에 대한 짜증과 분노였을 수도 있겠다.
오늘 내 계획대로 하지 못한 것엔 내 잘못이 전혀 없었으니까.

모르겠다.
그냥 내일 걱정 안하며 지금 당장이 즐거운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건지.
늘 내일에 대비하며 살아서 기복없이 사는게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아, 어찌됐건...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
내가 화가 난 것은 너의 즐거움 때문에 늘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보름가까이 너무 힘들었다. 
워낙에 유리멘탈이기도 하지만 특히 남의 슬픔에 쉽게 감정이입하는 사람이라(진짜 유치한 드라마나 애니도 주인공이 울면 같이 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게 버거웠다. 

그래서 5월에 들어서면서는 뉴스를 끊었다. 
사랑하던(!) 손석희씨도 끊었다. 
페이스북에 걸린 링크기사들도 왠만하면 누르지 않았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부던히 노력했다. 
내가 살 수가 없어서. 

근 한 달이 걸렸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어떤 일에도 집중이 안되고 중간중간 감정이 널을 뛰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사람에겐 그게 가장 위험하다. 
내 감정을 아이들이 받아야 하니까. 

어쨌건 나는 돌아왔다. 
나는 뻘소리도 할 것이고, 맛있는 거 먹은거 자랑도 할 것이고, 가끔 다른 사람 흉도 볼 것이고, 자주 애들 사진을 방출할 것이다. 
늘 그랬듯 끊임없이 떠들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모든걸 잊은 것은 아니다.
더이상 분노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운운하며 나의 일상을 말하는데 죄책감 느끼게 하지 마라.
(온라인 공간이 늘 주장만 하고 늘 엄숙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지칠지 생각해보라.)

나는 수다도 떨고 때로는 주장도 하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것이다.
내가 당신과 같이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쟤 이제 별로야’라고 생각한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냥 날 앞으로 안만나면 된다.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냐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한 달 동안 나름의 자기검열 때문에 짜증이 났으니까.
내가 이런 얘길 떠들면 저사람이 날 변했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이런거 했다고 하면 저들은 날 철없다 생각하겠지?
등등.

다른 사람 시선이나 평가따위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남의 이목이 걱정됐다.
다 내 멘탈이 불안정한 탓이었겠지만.
남이 날 어떻게 보면 어떤가.
난 그냥 난데.
언제부터 내가 남들 시선 의식하며 살았다고.

여튼 난 내 방식대로 내 삶을 살아야지.
한 달.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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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처럼 옮는 활동가들의 우울증.

꼭 활동가들이라 우울증이 감기처럼 옮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감기처럼 옮기 마련인데 활동가들은 대개 삶이 비슷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장시간 한 공간에서 사니까 그런 일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하고.


몇년 전 노조에 있을 때...

공개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남들이 보기엔 100% 우울증인데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감정이 널을 뛰고 늘 인생이 어둡고 칙칙해 보이고 실제로 가정생활도 원만치 않고 대인관계도 별로인.

그래서 같이 일하면 내가 다 짜증이 치밀고 복장이 터지는.


근데 그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조금씩 분명 우울증을 앓고 있다.

나 또한 옮았는지 자생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분노를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고, 어느 순간 혼자 있을 때면 정말 그 무엇도 하고 싶지않은 무기력의 끝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퍼뜩 정신이 들었던 계기는...

건강검진에 정신건강 관련 항목 질문에 답을 할 때 였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삶은 여기서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등의 항목에 '예'라고 체크했을 때다.

분명 그 항목은 작년엔 "아니 뭘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묻고 그래?" 하며 비웃었던 항목이다.

그 외에도 내가 '예'라고 대답했던 것에는 '강이나 호수를 보면 들어가보고 싶다' 따위의 질문도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당시에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도 깨닫지 못했으니까.

매일 얼굴보는 사람도 물론 몰랐고.


여튼 몇년을 집에서 보내면서 내가 과연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많이 고민했다.

애초에 일을 그만둔 이유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했던거니까.

(미술사 공부도 정말 하고 싶지만 그건 더 나이들어서 해도 되고...)

내가 찾은 것 중에 하나는 활동가들을 상대로 수시로 상담을 하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결국 모든걸 등지겠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을 마음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신경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분명 있었고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런데 이게 활동가들에겐 정말 필요한건데.

매일 일상이 '싸움'인 것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수시로 상담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하지만 비용이 문제.

정말 해보려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조금 알아봤는데...

공부하는데 경제적 비용도 엄청 들고 시간도 엄청 들고.

우리집은 내가 벌어야 하는 구조이지 더 쓸 수 있는 구조는 아니고.

애가 둘이 되었으니 시간도 한정적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사무실에서 전화라도 받아줄텐데.

뭐... 가장 최고는 이런 사업을 벌일 후원자를 만나는 것인데...

(나도 공부 좀 시켜주고 ㅋㅋ)


이런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갖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당이나, 민주노총이나...

(그럴리가 있겠냐마는...)


하여간 노동당 부대표의 부고를 접하고 작년부터 내가 꿈꾸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어디 학비 지원해 줄 키다리 아저씨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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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별로다.

내가 부당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 구조조정으로 누군가를 그만두게 만드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산다'와 비슷하게 '조합이 살아야 모두 산다'고 주장해야 하다 뭔가 계속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기분.


게다가 오늘은...

혹시 우리 내부에 누군가 정보를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면서 나의 과거를 미워하게 됐다.

편 가르고, 그는 어느 그룹인가 계산하고.

마치 정파가 뭔지 뒤를 캐는 것 처럼.

사람사는 세상은 다 이런건가 아님 내가 유독 그런 바닥에서 살아왔던 걸까.


예전엔, 항상 내(혹은 우리) 주장을 할 때 상대방은 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맞는' 것을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에는 그저 의견이 다른 우리편만 있을 뿐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늘 듣는이의 감정을 보살펴야 한다.

이게...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인가 대체.


날 아는 사람은 알텐데... 난 저런 사람이 아니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선 감정을 살피지만 일에 있어선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때론 사적인 관계에서도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말한다.)

여지를 두지 않는 편이며 상대의 감정은 내 알 바 아니다.

난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아.

어렵다.

차라리 싸우는 편이 낫겠다.

싸우는게 지긋지긋해서 도망쳐온 나인데.

싸우지 않는 건 더 어렵다.

고작 14가구 모여있는 조합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며칠 전 술 취한 친구놈의 "아는 사람이 왜이래?"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내가 요새 뭐 하나 싶다. 


이놈의 드라마스페셜.

남의 기억과 추억과 마음을 헤집어 놓고 난리...


유년기 내내 나에게 아빠란 항상 보고싶은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릴적 한참 건설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아빠는 포크레인을 몇 대 운영하는 사장이었고 현장마다 나가 기사들을 체크하느라 늘 지방출장이었다.

(물론 집에 잘 오지 않는 것이 꼭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건 좀 더 커서였다.)

건설업을 접은 다음에도 아빠의 직장은 지방이었고 그래서 집에는 주말에나 오셨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이후, 나는 아빠를 몇년에 한번씩 볼 수 있었고 결혼한 후에야 겨우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빠는 평생 '보고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설명하기 좀 어려운 감정인데... 정말 사랑해서라거나 모든 잘못들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밉고 싫은데 보고싶은 뭐 그런거.


지금도 '아빠'하면 떠오르는 내 유년시절 기억들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잡고 밖을 내려다보며 아빠 차가 오나안오나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억, 몇 밤 자면 온다는 말에 매일 몇 밤인지 세어보던 기억...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무언가의 '결핍'으로 남아서 나는 항상 마음이 모자라고 허전한채 살고있다.

매 순간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결핍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인생에 있어 아빠의 부재.

아빠가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이런 것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결핍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런 결핍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싫은데 꾸역꾸역 같이 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크고 작게 다투더라도 잘 풀고 살면서, 어느 정도 져 주기도 (내 성격에)접기도 하면서 살아보겠단 얘기다.


보통 남들에게 친정아빠란 든든한 존재인 것 같던데(없어서 모름), 나에게 아빠란 열두살 소녀의 아빠 정도로 남아 항상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아. 그게 애들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부모 각자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단 거다.

특히 애들이 커서 중학생쯤 되면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 어떤 아빠가 되어야할지 나에겐 평가할 모델 조차 없는 거다.


여튼...

무방비 상태로 드라마에 당했네.




요새 뜻하지 않은 곳에서 깨달음을 많이 얻네.

오늘은 페북 댓글 수다에서 깨달음.


맞춤법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잘 하려고 하다가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

더 생각해 보니 비단 맞춤법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전반에 대해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다.


어떤 거냐면...

난 내가 못하는 걸 남들 앞에 보이는게 정말 싫다.

잘하는 것만 보이고 싶다.

그래서 조금 해보고 내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안해버린다.

노력해봐야 못 할 것은 그냥 버리고 가는 거다.


대학시절 율동패 앞에서 춤 안췄고, 노래패 앞에서 노래 안했다.

다행히 풍물은 잘 쳐서 풍물패는 계속 할 수 있었네;;;

근데 그 와중에 연기는 가능한 안했다.

못하니까 쪽팔려서.


청년회 들어가 노래울에서 노래연하는데 처음엔 참 많이 힘들었다.

못하는거 계속 해야되니까.

그나마 음치는 아니어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었네...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걸까.

왜이리 삶을 피곤하게 살게 됐을까.


집안일도, 육아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냥 좀 대충해도 되고 가끔 밥 좀 안해도 되고 그런건데.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밀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그러고보니 상담해주던 분이 그랬지.

좀 틀리면 어때요, 좀 잘못하면 어때요, 사람이 어떻게 맞는 일만 하면서 사나요?

그리고 당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으로 화가 나도 이성적으로 화낼 상황이 아니면 화를 내지 못하고 참았다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화를 내도 정당한 상황이면 그간 모았던 화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문제였지.

내 기분은 나쁜데 내 속은 곪고 있는데 이게 지금 정당한가 아닌가 부터 머리로 계산하고 있는.


그래도 상담받고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직 멀었구나.

애 둘 낳고 헐렁하게 살면서 많이 나아졌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팍팍하게 살고 있었구나.


나의 이런 강박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힘들고 답답할텐데.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힘들겠구나.


다시 한 번 내려놓아보자.

대충 살려고 노력해보자.

(사실 연초부터 올해 무슨 일을 벌일지 계획을 짜느라 머리가 복잡했었음)


아... 나 뭐 이리 어렵게 사냐.

대충 사는 것도 마음 먹어야 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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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타는지 마음이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집중도 잘 안되고 몸 컨디션도 계속 별로고.

금요일 새벽에 끔찍한 악몽으로 시달린 이후로는 더 별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인지 내 마음도 불확실하게 흔들리기만 한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집안일. 끊임없는 육아.

생각은 많은데 집중해서 되질 않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섞여 결론도 없이 머리를 헤집어 놓기만 하는 꼴이다.


현실의 벽이 느껴지는 서른여섯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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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한동안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연말을 연말인지 모르고 연초를 연초인지 모르고 지나갔다.

(물론 육아에 치여 실감하지 못한 것도 있다. 달력의 날짜가 아가들에겐 무의미 하니까.)


그렇게 한달즈음을 보내고 있는데 어제오늘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몇 년 전과 맞닥뜨렸다.

모든 것의 출구가 보이지 않던 시절.

평생 그렇게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낼 것 같이 나를 감싸고 있던 무거운 기운들.


탈출하는 방법은 한방에 문을 닫고 모든 것을 끝내는 것과, 출구가 어디일지 모르지만 문을 찾아 조금씩 움직여 보는 것 두가지.

당시에는 내가 무슨 힘으로 움직였는지 깨닫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다 스스로 깨달았다.

책임감.

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힘들게 짓눌렀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빌어먹을 책임감이다.

내가 캄캄한 터널을 지나게 된 이유는 나의 먼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지만, 내 삶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건 책임감과 정당성 뭐 그런 도덕적인 것들 이었다.

(실제 도덕적인 인간도 아니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 삶을 돌아보고 내 과거를 떠올리게 되다니.

이상한 행운이기도, 기회이기도 하다.


여튼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엄청난 책임을 가진 자리에 있으니.

향후 십여년 간은...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듯 살아보는 걸로.

사실 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도를 닦아보는 걸로.

(이미 박지안에 의해 꽤 도를 닦았다...)


어둡고 긴 시간을 지낸 기억은 이제 곱씹을 때마다 나를 다시 살게끔한다.

힘든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슬퍼하고 잘 털고 잘 돌아오길.

그 시기가 추후 인생에 도움되는 시기가 될 터이니.



*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 그 말 진짜 싫었는데 나이 먹을 수록 그 말 만큼 변치 않는 진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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