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의 상태나 마음을 표현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고 때로는 음악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고로 나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떨고 차마시고 술자리에 '있는' 것(나라고 안마시고 싶겠냐마는. 주량이 거의 바닥이라;;;)도 좋지만 정말 깊은 생각이나 마음은 정리된 글이 편하다.
대부분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동패턴은 어릴때 만들어지기 마련이라서... 아마 나는 사춘기 시절 친구들에게 쉽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닫았기 때문에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나에게 인터넷 공간은(PC통신 시절 포함)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이었고(해방구한 표현을 쓰려다 버렸다 ㅋㅋㅋ) 또한 내 마음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유니텔을 거쳐 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지금은 블로그까지 오게 됐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고 하니... 늦은 밤 모니터 앞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는게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답답하단 말을 하려고.
그말인 즉슨. 요새 내 머리속을 정리해야겠는데 잘 안된다는 거.

시간은 마구 흐르고 생각할 시간과 수단은 녹록치 않고.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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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다.

어버이날에만 꼴랑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하듯 스승의 날에만 꼴랑 은사님을 떠올리는 이 얄팍한 양심.

 

그나마도 지금 난 스승의 은혜에 대한 글을 쓰려는 건 아니고... ㅋㅋ

대학에 온 후 '아니, 이 선생님이!'라며 배신감(?ㅋㅋ)이 들었던 사건이 두개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고2 때 생활관 가는 버스 안.

어쩌다보니 난 담임 옆자리에 앉게 됐다.

그리고 다들 그러하듯, 버스안에서는 노래시키기가 한창이었다.

근데 지목한 친구가 노래를 못하거나 빼거나 시간을 끌거나 그럴때면 으레 짜증이 나기 마련.

그때 우리 담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노래는 이러하다.

"이번 판은 나가립니다~ 다음판을 기대하세요~ 다음판도 나가리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 노래를 가르쳐주다말고 혼자 당황하며 재빨리 다른 가사로 대체하던 우리 담임의 얼굴을 ㅋㅋㅋ

그렇다.

나름 우리 담임은 국어교사였던 것이다. ㅋㅋㅋ

차마 고2 여학생들에게 대놓고 "이빨몽창 뽑아버려요"란 가사를 가르쳐줄 순 없지 않은가! ㅋㅋㅋ

 

두번째 사건도 노래에 얽힌 얘기.

고2 때(공교롭게도 같은 해네?) 풍물반 1학년 신입생 환영회 자리.

신입생을 환영하는 의미로 풍물반 담당선생님이 우리에게 불러준 노래는...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애틋한 연인의 아픔을 그린 듯한 생전 처음들어보는 노래.

대학에 들어와보니 이 노래는 '직녀에게'.

통일을 그리는 노래가 아닌가.

아 선생님... 전교조이신건 알았지만 이런 노래를 불러주시다니 진정 멋지십니다~

 

두분은 이제 서문여고에 안계시지만...ㅋㅋ

스승의 날이면 꼭 생각난다.

아, 결혼식 주례를 서주신... 한 분께는 낮에 꼭 전화드려야지. ^^

 

 

앞에 이야기에 이어서... 쓰고 싶지만 시간이 오래됐으므로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부분부터 ㅋㅋ

서청체육대회 얘기를 써야 하지만 잠시 미루고(그냥 제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름 중요한 사건이었으므로 나중에 잠시 다루겠다.) 노래모임에 들어간 얘기를 해야겠다.

 

당시 청년회에는 글, 노래, 민족, 시사, 역사, 영화, 풍물모임 이렇게 7개의 소모임이 있었다.

그때 회칙상 민애청 회원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소모임을 선택해야 했으므로 민애청 가입만큼이나(혹은 그 이상) 고민스러운 것이 모임 선택이었다.

물론 모임간 이동은 자유롭다는 회칙이 있었으나 회칙은 회칙일 뿐... 사람을 이길 수는 없기에 모임을 옮기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고로,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더 맞다. -_-;

 

내가 고민했던 모임은 노래, 시사, 풍물.

풍물은 내가 고등학교 때 부터 했고,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풍물패였으며 '나름' 상쇠출신, 의장출신(에헴!)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고민이었다.

시사는 대학시절 내내 딴따라로 살다보니(게다가 남들보다 늦게 시작) 무식한 것이 계속 걸려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에 관심이 있었고...

노래는... 아아 노래...

풍물갈래라면 누구나 출범식 혹은 통축 등 문예판에서의 설움을 기억할 것이다. 노래패들은 목 상하면 안된다고 늘 따뜻한데서 재우고 연습도 늘 실내... 그러나 풍물패는 늘 땡볕에 연습하고 당일 판에서도 무거운거 나르고 온갖 몸빵... 근데 결과물을 보면 늘 뽀대는 노래패가 제일인 그런 슬픈 사연!!!

 

여튼 그래서 세개 모임 고민중...

풍물모임은 그닥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아니 이건 나만의 생각이다 ㅋㅋ), 시사모임은 윤희오빠랑 성천오빠가 너무도 어려운 단어로 대화해서 포기...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

라고 말은 했지만...ㅋㅋ 당시에는 나름... 문예운동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문예를 버리고 싶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가장 컸다.

활동을 하고 싶은데 기왕이면 문예모임이면 좋겠다는 그런...

결과적으로 노래모임은 나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했고. ^^

 

그래서 시작한 노래모임.

내가 9월 즈음 정회원이 되었으니 그해 겨울 첫 정기공연 준비에 들어갔는데...

기존 회원들은 이미 충분히 입을 맞춰온데다가 나같은 쌩초짜가 들어온 경우가 별로 없어서 나도 어렵, 노래울도 어렵... 뭐 그랬던 것 같다.

일단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는게 태반이었고(얕은소리 깊은소리는 양반이지... 음을 막으라질 않나 들어올리라질 않나... 뭐래 -_-) 정말 어떻게 소리를 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_-

 

2006.3.7 어느 연습날. 포스터는 나의 작업물;;;

 

남들(?)은 노래울에 오면 사람에 적응하느라 힘들고(나랑 비슷한 인간들이 모여있다고 보면 됨 ㅋㅋ) 노래가 어려워 힘들다고 하는데 난 앞에껀 전혀. 음하하하

그리고 연습자체가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았던게 뭐 공연은 풍물이나 노래나 공연 앞두고 연습 주구장창 주말반납은 기본이라서 별로 이상하지도 않았다.

단지. 정말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게 어려웠다.

높고 얇고 작은 목소리는...아아아 힘들다.

 

생각해보면 2006년 전후로는 거리공연도 참 많았던 것 같다.

각종 소규모 집회, 작은 출범식 등등... 투덜대긴 했어도 참 좋은 경험들이었는데.

 

 

8회(2006) - 나무 숲을 만나다

 

9회(2007) - 숲이 나무에게

 

11회(2009) - 안녕하세요

 

12회(2010)- 일상다반사

 

13회(2012) - 겨울의 끝

 

나름 정기공연은 2006, 2007, 2008(응? 사진 어딨지?), 2009, 2010, 2012 6번이나 했다.

오호라...

6회공연 가수다 ㅋㅋㅋ

 

그 중 가장 재밌었던 공연은 11회 공연.

대표 첫해 공연이기도 했고 그만큼 하고 싶었던게 많기도 했다.

아, 물론... 재밌었단 기준은 '끝나고 보니' 그랬다는 거다.

준비과정이 가장 짜증나는 공연이기도 했다. -_-

 

노래모임은 중독성이 있다.

공연은 두말할 것 없이 마약 이상의 중독성이 강한 녀석이고

성질 더러운(것 같은) 사람들도 은근 중독성이 있다.

물론 그게 다 공연준비 하며 몇달간 볼꼴 못볼꼴 다보고 욕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짜증내고 하며 생긴 미운 정이지만;;

 

그래서 소모임 체계를 해산하고 청년회를 정리하는 것이 더욱 아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연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이 인간들을 만나서 서로 갈구지 못한다는 아쉬움.

(얼른 계를 하자니까...ㅋㅋㅋ)

 

 

 

 

 

 

이 앳된 박인규 사진은 덤 ㅋㅋ 이 귀연 홍탱이는 뽀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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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아무렇게나 시작해서 대충 쓸 글이 아닌데...

차일피일 미루며 머리속에서만 글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있다보니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일단 시작한다.

뭐... 쓰다가 날이 길어질 수도 있고 여느때처럼 한번에 뚝딱 써내려갈 수도 있겠지.

(아무래도 쓰다보니 시리즈로 가야할 듯)

 

2012년 4월 14일자로 민애청 활동을 정리했다.

그래... 말그대로 활동을 정리해보자... 내 방식대로.

 

내가 민애청에 들어간 것은 2005년 9월 경.

민애청이란 조직을 알게 된 것은 2004년 12월 겁나 추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때 여의도에서 칼바람 맞으며 조은성과 취재하다가 조은성의 소개로 알게 됐고, 당시 프로메테우스 (나름)기자 생활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머리속에만 담아두고 있다가 2005년 5월에 아마도 첫 만남을 가진 듯 하다.

 

첫 만남장소는 숙대입구역 10번출구 쭈꾸미집이었고 나온사람은 내 친구 조은성, 당시 회확부장 이선영, 그리고 풍물모임 김수정 언니. (지금 고백하건데 안그래도 낯가리는 나에게 수정언니는 너무 벅찬 사람이었다. ㅋㅋㅋ)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윤희오빠와 유경언니가 민애청에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고, 사실 학교 다닐 시절 둘과 친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애문연 선배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음, 믿을만 하군'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선영이는 나에게 내 동기로 오는 신입회원 중 조인성 닮은 한살 어린친구가 있다하여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정보는 이후... "대체 누가 조인성이냐!!!"며 나의 분노를 샀다. ㅋㅋㅋㅋ

내가 아무리 준환이를 좋아하고 예뻐해도... 아닌건 아닌거다. -_-++

 

당시 192기 동기들은 모두 5명.

나, 준환, 재화언니, 진영오빠, 지현언니.

재화언니는 회적정리 후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것 같고(생각해보니 민변 일자리 내가 밀어넣었...;;;), 진영오빠는 아직도 부산에서 선생님 하고 있나 모르겠고(내 결혼식에 와서 너무 놀랐다. 고마워요 오빠 ㅠ_ㅠ), 그리고 지현언니는 아직도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그 당시에는 마음이 불편하고 아쉽고 했는데 지금은 전혀...-_-)

당시 우리 기수는 참 시끄럽고 잘뭉쳐다니고 요란했었는데 이래저래 지금은 '우리' 준환이만 남았다.

(훌륭한 이준환은 회장도 했다.)

 

이건 193기 예비회원 상견례 사진인데 재화언니 빼고 192기가 다 나온 사진. 홍준, 나, 진영오빠, 근영언니, 풍물모임 언니 이름 뭐더라?, 지현언니, 준환

 

192기 졸업수련회는 사실... 졸업수련회를 가장한 서청 체육대회 대비 합숙이었다.

체육대회 전날로 수련회 날짜를 잡아 1박을 시킨후 아침 출석시간에 맞춰 모조리 차량이동한다는 무시무시한 택.

게다가 낮엔 발야구, 밤에 응원연습까지... 잔인한 인간들...

여튼 나는 졸업시험에 당당히 1등을 했다.(이거슨 지하철 4호선의 힘. 오이도에서 숙대입구 오는 1시간 15분 동안 공부한 결과 ㅋㅋㅋ)

아, 그리고 그땐 신입회원에게 수호천사라는 이름으로 기존 회원들이 청년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가 있었는데 내 수호천사는 효식오빠와 재희언니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고맙고 좋은 언니오빠들...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

 

그럼 다음 얘기는 서청 체육대회로...(당시 인상적인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따로 다루기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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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뭘 잘 못버린다.
특히 추억이 있거나 기록이 될 만한 물건들은 더더욱.

근데 오늘... 아가에게 내어줄 공간이 필요해 책꽂이를 정리하면서 내 어린 날의 기억들을 들춰보며 눈물을 머금고(정말로...) 많은 것들을 버렸다.
그 중 몇개는 사진으로 남겼고 남기지 못한 것들은 아마 기억에서도 잊혀지겠지.

이승환의 드림팩토리 소식지, 넥스트 화보집, 중고등학교 교지, 학급소식지, 서문축제 각종 브로셔, 화학과 전공서적, 맘에 드는 기사가 있어 보관한 씨네21&한겨레21.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주워올까 망설여질 정도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인데...
아이를 낳고보니 아이에 대한 기록과 추억을 남기기에도 벅차서 내 어린시절의 조각들을 버리게 되는구나.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들의 기록을 위해 본인들의 추억을 물건들을 버린 것이 있겠지.


음... 집이 넓었으면 안버렸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 서글프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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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당한다는 것이 아니라...ㅋㅋ(시국이 시국인지라...)

2004년도에(맞나? 2003년도인가? 아...어쩌다 내 기억력이 ㅠ_ㅠ) 내가 정말 예뻐하던 한 새내기가 나에게 글을 남겼다.
언니가 멋있고 언니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그 친구는 자연대 새내기였는데 율동패를 조금하고 한학기를 다니다가 재수를 마음먹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잘키워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ㅋㅋ)

그리고 오늘 내 방명록에 남겨진 비밀글.
그당시 들었던 얘기들(지금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졌을, 아마 아주 허접했을 교양들 ㅋㅋ)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본인은 아주 달랐을 거란 말.
그래서 고맙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2000년이나 2004년이나 내가 부족하고 허접하기는 매한가지였으며 지금도 그리 많이 발전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그들이 최근 나의 삶을 보며 '아, 저 선배는 역시 이런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라며 좋게 생각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다시금 긴장하게 한다.

대학시절 운동한답시고 뛰어다닐 무렵.
정말 멋진 선배들도 많았고 존경하는 선배도 있었다.
(물론 '뭐 저런게 운동판에 있냐'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졸업하고 세월이 지나 지금 그들을 보니... 학교때 말했던 것들이 다 뻥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돈벌기'가 목표인 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이름을 알리진 못했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사는 것.
그게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닐까?
지켜보고 있다.
후배들이, 벗들이.
어디에선가, 언제라도.

시간을 공유했던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삶을 똑바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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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을까?
'난 좋은 엄마가 될테야'라고 마음먹진 않을테지만 누구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 최선이란 것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중요도가 다를 뿐.

오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나는 좋은 엄마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엄마'란 절대 기준은 없으니 애매하겠지만.

내가 까탈스럽게 구는건 '먹는 것'과 '기저귀'다.
그건 아주 철저히 내 기준에서 최우선으로 삼는 거라서...

이유식은 생협에서 파는 농축산물(유기농 채소, 유기농 쌀, 무항생제 육류)로만 만들고 분유는 로하스인증(이걸 철썩같이 믿는건 아니지만 나름의 자기 위안)된 것만 먹인다.
1등급 한우보다 중요한건 그 소가 자란 환경과 그 소가 먹는게 무엇인가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각종 농약과 항생제 등이 이후에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에 최대한 멀리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기저귀는 천기저귀.
그건 예전에 구구절절 설명했기 때문에 패스.
2011/09/09 - [육아/생각보다 쉬운 천기저귀] - 나는 왜 천기저귀를 쓰게 되었나

근데... 이런 것이 아이에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보다 더 창의적으로 놀아주고 더 공감해주는게 우선일 수도 있고, 더 많은 배울 기회를 주는게 좋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혹은 엄마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 위해 자기 일을 열심히 하거나 자기 공부를 하는게 좋을 수도 있단 생각.

일단, 나는 창의적으로 놀아주진 못한다.
휴일에 남편씨가 지안이랑 놀아주는 걸 보며 늘 느낀다.
'아, 저렇게 놀아줄 수도 있구나'
창의적으로 놀아주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남편씨는... 그래서 지안이가 정말 좋아한다.
(아빠만 퇴근하고 집에 오면 꺅꺅 소리를 지르며 빛의 속도로 기어간다. 괘씸한 놈 -_-)
나름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있는데 능력이 부족하다.
역시 어릴 땐 나가 놀았어야 하나보다. -_- (나는 집귀신)

공감은 잘 해주고 있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지안이에게 물어보자니 그도 좀 어렵고...ㅋㅋㅋ
현재는 자아를 찾거나 내 일을 하고 있진 않아서 그건 나중에라도 꼭 보여줘야겠단 생각.

여튼 그리하여... 나는 내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아이에게 좋은 영향일지는 모르겠다.
아니, 오늘에서야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공부잘하는 아들은 필요없는데, 감정이 풍부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으며 타인과 소통을 잘 하는 아들이 됐으면 좋겠다.
(음... 이게 더 어렵겠군...)
아, 꼭 예체능에 능한 사람이면 좋겠다!!!

덧. 요새 글을 워낙 안쓰다보니 늘 애초에 의도한 바와는 다른 끝맺음이 된다. 용두사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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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11년 11월...
그렇다.
컴퓨터를 제한적인 시간에만 쓸 수 있는 환경에 귀차니즘, 그리고 공연준비로 인해 이제서야 올리는 결혼기념일 사진.
쩝...

 

이 메뉴는 이미 페이스북을 통해...
더운야채와 구운통감자를 곁들인 갈릭소스스테이크와 크램차우더스프.
라고 자랑한 바 있는 메뉴.
물론 내가 다 만들었다.(아, 스프는 빼고)

그리고 가족사진.
완전 초췌한 우리부부와 이유없이 신난 지안이. ㅋㅋ
집에 있던 차림으로 찍은 없어뵈는 사진이지만 기록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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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겁나 거창하다.
뭐 대단한건 아니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조규찬 노래가 흘러나오고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깊숙히 거실로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참 좋더라.
그래서 '아, 좋다...'라고 음악을 감상하려는 찰나 10개월 아들램이 "오~떼떼떼"하는 옹알이와 함께 위험한 곳으로 올라가고 있어서 좌절...
그래서 아이를 낳고 난 후 내가 할 수 없게 된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뭐 그런 얘기.

1.
나홀로 맛집 탐방

나의 훌륭한 취미이자 임신기간 내내 했던 것인데 이제 할 수가 없다.
굳이 지안이를 데리고 가자면 갈 수 도 있겠으나 모든 엄마들은 알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밥먹으러 나가면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애를 봐주면 모를까 내가 혼자 애를 봐야 하는 상황이면 밥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_-;;
어린이집 보내면 다시 가능해지겠지.

2.
남편씨와 영화관람


임신기간 내내 들었던 얘기가 아니던가!
"이제 영화는 한동안 못보니 많이 보러다녀"
설명이 필요 없으니 패스

3.
남편과 함께 하는 무언가의 뒷풀이

둘 중 하나는 애와 함께 들어와야 하고 조금 불공평하게도 술을 더 즐겨하고 많이 마시며 그래서 술자리에서 환영받는 남편씨가 대체로 남는다.
아니, 술 못먹는다고 술자리가 싫은건 아닌데!!!
여튼 노래울 공연 뒤풀이가 아기 낳고 처음으로 둘이 함께 한 뒤풀이였다.
아...어찌나 즐겁던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절로 신나더라. -_-

4.
정리

집안이 난장판이다.
지안이가 노는 공간은 그러려니 해도...그외의 공간을 치울 시간이 없다.
애기가 잘 땐 조용히 해야되서 못하고 깨어 있을 땐 내가 있는데로 기어와서 할 수가 없다. -_-
구석구석 쌓여있는 짐들.
정리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물건들.
아아... 애기 낳기 전엔 잠도 안올 만큼 너저분한데 그냥 포기했다.
이래서 애 있는 집은 너저분하구나...ㅠ_ㅠ

5.
음악


하루종일 대화 불가능한 애기랑 있으니 사람의 언어를 잊을 지경이어서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주로 91.9에 고정인데 오전에는 매우 내 취향의 노래들이 나오고 낮에는 좀 별로...저녁 6시부터 다시 들을만한 음악이 나온다.
여튼, 난 등하교 출퇴근시에 늘 mp3나 cdp를 헤드폰을 통해 듣고 다녔는데 그걸 못하니 답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인생의 낙인데 이건 뭐 할 수가 없으니...
전에 한번 거실 스피커에 연결해 음악을 틀었는데 각종 시끄러운 장난감 소리에 묻혀 들을 수가 없었다. 쩝.
그래도 이제 차를 샀으니 운전할 때는 들을 수 있겠지!
(신치림 앨범을 사자!!)

6.


책만 펼치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지안이.
당최 읽을 수가 없다.
애기 잘 때는 책 따위 읽을 시간 없다.
나 밥먹고 이유식 만들고 기저귀 개고 잠시 쉬기도 빠듯하다.
책 욕심은 많아서 안읽은 책도 잔뜩인데...과연 내가 저것들을 언제 읽을 수 있을까...
못 다 읽은 '닥치고 정치'는 채 10페이지도 안남았는데...


덧.
글을 쓰고 보니 아이, 아기, 애기가 혼재되어 있구나. 아 몰라 귀찮아 그냥 살자.
(이런 태도도 애 낳고 새로 생긴 태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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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까지 모유를 먹였으니 약 6개월간 모유수유를 했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1년은 채우지 못했지만 장하다.

그간의 얘기를 해보자...

아가를 낳고...꼬박 이틀간 물 외에 다른 것을 먹이지 않았다.
수수팥떡아이사랑에서 교육받은대로... 태변을 완전히 밖으로 내보내기 전 까지 말이다.
원래 엄마젖이 아이를 낳은지 3일째 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실 그 전에 뭘 먹지 않아도 아가에겐 아무런 이상이 없는게 정상이지 않을까?
분유가 없던 시절에도 애는 컸으니까.

하여간, 젖이 빨리 돌게 하기 위해 배고파 우는 아가에게 계속 젖을 물렸다. 48시간 동안.
첫날은 보리차와 설탕물만 조금 먹고도 잘자고 잘싸던 아가...둘째날이 되자 배고파서 우는 목소리가 힘이 하나도 없다.
너무도 불쌍하게 울었다. 흑... ㅠ_ㅠ
조리원 원장님에게 모유수유의 의지를 밝히고 상의한 끝에... 아직 소변도 잘 보고 탈수 증상은 없으니 걱정하진 않아도 되지만 더 굶기다가 분유만 먹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해서 48시간을 채우고 분유를 조금 먹였다.
다행히 그 이후에 모유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가와 내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ㅎㅎ

젖을 계속 물려야 양이 늘어난다기에 정말 계속 물렸다.
낮엔 분유도 안줬다.
(보통 초기엔 혼합수유를 한다. 양이 부족하니까.)
수유실에서 40분씩 먹이고 방에 돌아오면 10분있다 또 전화가 온다. 애기 배고프다고.
조리원 기간 내내 조리를 하는지 수유를 하는지 모르게 무리하게(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게) 하다가 몸살도 나고...
몸살이 나니 젖 양은 줄고...(이래서 미련하다고 하는거 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쉬엄쉬엄 하며 내가 편히 쉬었어야 양이 더 빨리 늘었을 거다.

그리고 집에 와서.
집에 와서도 초반에 양이 부족했는지 아가는 자주 보챘다.
하지만 태열끼 때문에 분유를 많이 먹이고 싶지 않았다.
혹시 알레르기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2개월까지 밤에는 분유를 한번 줘서 푹 자게 재우고 낮엔 계속 물렸다.
그러니 얼추 양이 맞았고 백일쯤에는 아가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4개월차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체중 60%로 태어난 아가가 10%가 되었단다.
헉.
배고픈데 참고 놀았던 우리 아가.
다시 혼합수유로...(이 때 부터는 본격적인 혼합수유)

5개월이 되고 6개월이 되자 우리 토실이는 점점 놀고 싶다.
엄마에게 매달려 긴시간 젖을 먹는게 지겹다.
먹다가도 옆에서 소리가 나면 돌아보기 바쁘고 얼른 먹고 도망가기 바쁘다.
(특히 외출해서는 절대 젖을 물지 않았다. 구경할게 많으니까 -_-)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양도 줄고...
게다가 6개월차에 이가 6개가 났다.
잇몸으로 물어도 아플만큼 힘센 아가가 이로 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웠다.

그리하여 자의반 타의반(타의...는 아가 니 맘이자나!)으로 6개월까지 먹이고 모유수유 중단.
사실 양이 턱 없이 부족하게 줄어든 것을 알고 있었으나(엄마는 안다...) 끊고 싶지 않았다.
모유수유 한 엄마들은 다 알겠지만 그 작은 것이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입을 오물오물, 볼을 실룩실룩하며 먹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돌이 되어도 쉽사리 젖을 끊지 못하는 엄마들도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 때는 애가 자꾸 찾아서 떼기 어렵기도 하지만 아이와 나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모유수유를 끝내면 외출도 자유롭고(모유수유하면 애가 먹지 않으면 가슴이 불고 아프다. 시간맞춰 유축기로 짜줘야 하는데 이게 심리적 압박이 장난 아니다. 어딜 나가기만 하면 불안하다.)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그 '오물거리는 입'과 '실룩거리는 볼'을 못본다니 너무 서운했다.

젖을 끊던 마지막 주.
하루에 4번 수유하던 것을 점점 줄였다. (어짜피 밤에는 젖병으로 줬다. 잘 자라고.)
하루 2번, 1번 이렇게 차츰 줄였다.
아...마지막 날이었던가...
이틀만에 젖을 물리려 아가를 안았는데...
보통때 같으면 허겁지겁(먹여본 사람들은 이것도 무슨 표현인지 알 거다 ㅋㅋ) '헙~'하며 딱 무는데... 이 녀석 고작 24시간 안먹었다고 내 가슴을 그냥 멀뚱하게 바라보는게 아닌가!!!
아 이 배신감.
6개월간 하루 10~4번 먹었던건데 이렇게 단숨에 잊다니...
멀뚱하게 바라보던 아가는 조심스레 입으로 할짝 핥아보더니 안심이 되었는지 먹기 시작했다. -_-

그 (나에게만) 충격적인 경험을 마지막으로 토실이는 모유를 그만 먹게 됐다.
얼마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을 들이밀었더니 이녀석... 빤히 쳐다보더니 손으로 만지기만 할 뿐 입을 대진 않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먹고 살았던 밥줄을 이미 잊은지 오래...ㅎㅎㅎ
서운하더라.

하지만 나는 이동의 자유와 먹거리 선택의 자유(각종 불량식품들을 먹을 기회)를 얻었으니...
그리고 모유를 먹이지 않아도 아가는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고 있으니 괜찮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 6개월간 정말 몸이 힘들었다.
몸이 축난다는 표현은 이런때 쓰는거구나 싶을 정도로.
남자들과 모유수유 안해본 사람들은 정말 모를 수 밖에 없다.
뭔가 몸 깊은 곳에 누군가 빨때를 꽂아 내 진액을 쭉쭉 빨아먹는 느낌이랄까...
그 결과 살이 쭉쭉 빠진다.
사람들이 날 볼 때 마다 살빠져서 좋겠다, 아들이 효자다 뭐 이딴 얘기들을 하는데 살빠진게 전혀 기쁘지 않다.
왜냐? 정말 이건 힘들어서 빠진거니까.
주변에 모유수유맘이 있다면 몸보신이라도 시켜주길...

글을 여러날에 걸쳐 나눠 쓰다보니 정리도 안되고 핵심도 없지만.
그냥 한번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이랬었구나... 하고 볼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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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생일이었다.
토실이 태어난 후 첫 생일.
남편씨의 생일은 안타깝게도 산후조리원에서...미역국은 나만 실컷 먹었고 ㅋㅋㅋ

여튼 아가와 맞는 첫 생일이어서 사실 정신이 좀 없는 바람에 생일기분이 안났었다.
그러나...
그날 마련한 남편의 이런저런 소소한 이벤트로 하루가 매우 해피했다.
물론, 아가와 보냈기 때문에 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게 정신은 없었다;;;

페이스북에 남긴 그날의 소회는 이러하다.

 
인생의 팔할은 자랑질.
오늘의 자랑질은 생일편.

토실이가 평소보다 한시간이나 일찍 깨서 6시반 기상과 응가. 우울한 하루를 시작하나 싶었으나 남편씨가 토실이랑 놀아줘서 난 9시반까지 취침. 일어나서 남편씨가 끓여준 소고기 미역국으로 아침식사.
(진정 내가 끓인 것 보다 맛있어서 기쁘고도...좌절스러웠다 ㅠ_ㅠ)
...
평생 처음으로 꽃배달을 받아봤으며(이거 소원이었는데 이제 됐음 ㅋㅋ) 점심으로 '달'에 가서 인도음식 얌냠. 미치도록 맑은 날씨에 어울리게 정독도서관 산책하고 광화문-프레스센터 도심산책. 오늘 천사모드 토실이는 밥먹는 내내 착했고 밖에서도 착한 아기 연기를 훌륭히 마쳤다. ㅋㅋ

오늘의 외출이 힘들었는지 토실이는 목욕 후 먹자마자 기절한듯 잠들었고, 즐거운 생일은 슬슬 마무리되고 있다. 아아 행복하고나~


여튼, 정독도서관이 가을을 맞아 아름답길래 사진을 좀 찍었다.
평일이라 도서관도 휴관이고 사람도 너무 없고 해서 원래 찍으려 했던 가족사진은 못찍었다.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ㅠ_ㅠ)

엄마~ 생일축하해~


이건 토실이가 해맑게 나와서 ㅋㅋ


아빠와 똑같이 입 앙다물고 ㅋㅋ



애풍연 20주년 행사를 한다고 한다.
내가 11기 의장이었으니...벌써 10년 전 일이다.
헛! 10년 전!!!
내 기억속 풍연 의장시절은 마치 3-4년 전 같은데 10년이나 흐르다니...정말 세월이 무상하다.

내 인생을 (운동권으로) 바꿔놓은 몇몇의 사건들이 있다.
서문여고 시절 풍물반(동아리 같은 것)에 들어가 이철호 선생님을 만난 것이 그러하고...
대학 새내기시절 미터(새내기미리배움터)가서 풍물패 시간에 갔던 것이 그러하고...
단과대 풍물패에 들어간 것이 그러하고...
2000년도 애풍연 가을굿 상쇠를 한 것이 그러하고...
2001년에 애풍연 의장을 한 것이 그러하다.
이 중 경중을 가리자면... 이철호 선생님을 만난 것과 풍연 의장을 한 것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되겠다.

그저 두드리고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나에게 '사람'의 소중함과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한 곳이 풍연이었다.
(아, 정확하게는 10기 애문연이라 하자 ㅋㅋ)
이렇게 말하니 너무 거창한데 ㅋㅋ

여튼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됐던 소중한 경험.
평생 가장 치열했고 가장 사건이 많았던 시절.
내 젊음과 청춘을 함께 했던 조직.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출발선이기도 한 애풍연의 20주년을 벗들과 함께 기뻐하러 10월 8일, 간만에 애국한양으로 달려가야겠다.
(모든 일정 참가하고픈 마음 굴뚝같으나, 집에는 5개월 토실이가...ㅠ_ㅠ)



음...
당시의 갖은 사건들을 나열하고픈 욕망이 꿀렁대지만 참아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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