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되어 돌아다녀보니 내가 그동안 제주에 살러 온게 맞구나 싶었다. 지인과 함께 여행자 모드로 이틀째 살아보니... 아이고 힘들어. 오늘은 아주 먼 곳,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대각선 반대편) 네비게이션 찍으니 1시간 10분 정도 나왔지만 실제 운전해서 가보니 한시간 반정도 걸리더라. 허리가 아팠다.

방주교회는 독특한 건축물이라고 해서 가본 곳. 교회가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싶었다.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는데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십자가 등 종교적인 것을 과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 있다면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애들은 '엄마 재미없어~ 지루해~'라고 했지만 교회 언저리에 가볼 기회가 없는 우리에겐 재밌는 경험이었다.

카멜리아힐은 제주에 여러번 오면서도 처음 알게 된 곳. 영어 이름이라 뭔가 느낌이 있는데 한자로는 '동백원'인 동백 수목원이다. 동백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수국축제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 때! 20대 청년들이 정말 많았고 인스타에 감성사진, 인생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천지였다. '아...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노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꽃이 정말 예쁘고 공원 전체를 공들여 꾸며놓은 것이 느껴졌다. 다만 날이 더워 둘째는 2/3 지점에서 방전. 한참을 벤치에 앉아 쉬고 누워 쉬다가 한라봉쥬스 하나를 사줬더니 급속충전된 아이처럼 팔팔해졌다. 역시 아이들과는 더 쉬엄쉬엄 가야하는데... 첫째는 어른처럼 거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카페소리 방문. 표선쪽에 있을 때 가보고 안덕면에서는 처음 가본다. 몇년 만인가... 역시나 음악소리는 좋았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폴 앨범을 틀어주셔서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오리와 개들을 구경했고, 카페 안의 고양이의 마음을 사려 노력했다. 하지만 토리와 메이(고양이들)는 '내가 너희들하고 꼭 놀아줘야 되냐...'는 표정으로 조금 얼굴을 보여주다 구석으로 들어갔다. 특히 첫째의 넘치는 사랑을 고양이들은 도도하게 외면하고 사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애들은 해먹에도 누워보고 동물들과도 놀아보고... 나는 귀가 즐거운 음악을 듣고... 좀 더 쉬다 오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기에 주섬주섬 출발. 오는 길이 멀긴 멀더라.

애들은 차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방전. 그래도 씻기고 약속한 루미큐브도 하고 아빠랑 영상통화도 시켜주고 모든 미션 클리어. 보람찬 하루였네!

제주에 온지 사나흘 정도 지난 기분인데 아홉째날이라니. 시간이 다 어디갔지?

오늘은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하여 아주 오랜만에 아침에 분주했다. 아침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고 치카해라, 옷입어라, 응가했니?를 반복하는 분주한 서울의 아침같았다. 일주일만에 서두르는 아침을 맞이해보니 서울살이 참 팍팍했다 싶다. 서울에선 아침이고 저녁이고 빨리해라, 늦는다, 안하니 이런 말들을 열번씩 했어야 하니까.

결국 우리는 제주살이 타임으로 예상 출발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는데 다행히(?) 제주시에 안개가 자욱해서 비행기가 한시간이나 제주상공을 맴돌다 내렸다. 결국 비간이 비슷했네? ㅋㅋㅋ 사람을 마중하러 제주공항에 가는데 일주일 남짓 살았지만 어쩐지 정말 제주에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먼길 우리집에 오는 사람을 데리러 가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문득 칠레에 갔을때 마중나왔던 친구가 생각났다. 제주에 한달 살아도 이럴진대 지구반대편에서 몇년을 산다면 어땠을까.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공항에서 지인을 만나 첫번째로 데려간 곳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이다. 첫번째 방문지로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제주라면 바다지'하며 갔는데 그간 두명이던 어린이가 세명이 된 줄... 며칠전 바지를 홀딱 적셔본 우리집 애들은 최대한 조심하며 놀았는데(물론 한놈은 젖었다...) 제주에 갓 내린 어른하나는 옷이 젖고...ㅋㅋㅋㅋㅋ 바닷가 놀이는 늘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점심으로 간 전복집은 30분이나 대기가 있었는데 근처 바위에서 소라게 찾고, 고동 찾고, 게를 찾다보니 30분이 홀딱 갔고 심지어 둘째는 여기서 계속 놀고 싶다고 했다. 거긴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닷가였는데... 해녀가 되고 싶다더니 정말 그런 것인가. 근데 나도 모래 많은 해변보다 돌 사이에서 뭐 찾는게 더 재밌었다.

성산 근처 소품샵에 들러 구경하고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제주메뉴를 먹으러 도착. 웃겼던건... 여름 프리퀀시를 모아서 비치타올을 받는게 있었는데 서울에서 프리퀀시를 다 모은 지인은... 서울 모든 매장에서 품절이어서 못받았다고 울적해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이 스벅에 비치타올이 있다??!?!??! 게다가 검색해보니 제주에도 오로지 이 지점에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퀀시 모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받으러 오진 않았나보다. 우리는 그렇게 흡족하게 상품도 수령하고 차도마시고 잘 쉬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혼인지. 이곳은 또 다른 친구가 추천해준 곳인데 제2공항이 건립되면 사라질 곳이라고 해서 갔다. 수국이 잔뜩 피었고 작고 예쁜 연못이 있었는데 이름처럼 혼인하는 곳이라고. 여기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예쁘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체 개발이 뭐길래 공항따위를 지으려고 이런 걸 밀어버린단 말인가. (해결하라 정부... 제주는 도지사 잘 좀 뽑고... 역시 우리 녹색당을 뽑아야해.) 해가 엄청 쨍쨍해서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내일부터는 꼭 긴팔 옷을 가지고 다녀야겠단 교훈을 얻었다. 애들은 공벌레도 잡고 각종 벌레도 잡고 올레길 리본도 찾고(올레길 2코스더라) 나무도 구경하며 놀았다.

제주에 온 이후로 가장 먼 길을 온거라서 집에 돌아오는데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모두 취침. 운전하는 나만 못잤는데 일주일째 시끄러운 상태로 운전하는 게 지긋지긋하던 차에 조용히 음악감상하며 제주 산간길을 지나 집에 왔다. 귀가 평화로운게 이렇게 좋은건데... 좀 덜 떠들면 안되겠니 어린이들아?

무난한 하루였지만... 둘째녀석이 차에서 오빠랑 깔깔거리며 웃고 놀다가 카시트까지 젖도록 오줌을 싸서 아주 분노게이지가 가득찬 채로 하루를 마무리. 저녁먹으러 나간 길에 그렇게 되어 다시 집에 돌아오니 8시.... 결국 저녁밥을 9시에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 대체 일곱살인데 왜 오줌을 싸는거야!!!!!!!

애들에게 자주 화가 나는 것이 온전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모자식도 사람관계의 하나일 뿐. 아이들도 나에게 잦은 짜증을 냈다. 역시 낮잠이 답인건가. 하지만 서울을 떠나 이 먼곳에 살러 온 것은 후회 없도록 활활태워 놀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닌가. 무얼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가. 아무튼 오늘의 안녕을 위해 나는 또 하루를 되돌아보고 기록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고 실외, 실내 모두 아이들과 가기에 좋다기에 산책하고 싶어 갔다. 아침에 날이 좀 흐렸는데 그래서 아주 쾌적하고 적당한 일조량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은 좀 오랜 코스가 될 것 같아 각자 간식(과자, 귤, 물 등)과 모자를 배낭에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많은 블로그 후기에 도착하면 작은 숲길을 지나 너른 잔디밭을 만나는데 애들이 뛰기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이들은 잔디밭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잔디밭을 보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짜증은 발견됐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첫째가 나이도 많고 남자아이여서 빠르다보니 출발시간에 5초 핸디캡을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자 자꾸 동생이 이겼다. 자신이 제안한 규칙인데 지게 되니 속상하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서 달리는 거리를 길게 늘렸더니 둘째가 졌고, 이 녀석도 졌다고 짜증을 낸다. 아놔. 이것들이... "이렇게 달리기를 하니까 둘 다 속상하다. 둘 다 속상한 놀이는 그만하고 그럼 박물관 들어가자!"라고 신나게 제안을 했더니 둘째가 "그냥 달리기 할래..."란다. 하지만 곧 둘 다 또 짜증을 내고... 일단 참고 박물관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엄마, 5초를 너무 늦게 셌잖아~(짜증)"
"(일단 참는다)엄마는 시계보고 셌어."
"아니이~ 하나아, 두울, 세엣 이렇게 했잖아. 하나, 둘, 셋, 넷 해야되는데."
"(인내심 끝)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뭐가 아니야? 시계보고 했다잖아. 시계가 내 맘대로 가? 전세계 공통으로 모든 사람이 시계로 시간을 재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아아~~"
"그러니까 뭐가 아니냐고."

그렇다. 인내심의 바닥을 만났고 나는 아이들에게 "너(첫째)는 엄마가 시간 재는게 맘에 안들고, 너(둘째)는 박물관 가는게 맘에 안드니까 너희 둘이 하고 싶은거 여기서 실컷 해. 엄마는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 돌에 앉아서 쉬고 풍경 보다가 집에 갈거니까. 하고 싶은거 다 하면 다시 여기로 와. 아무데도 안가고 있을게."라고 선언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박물관 가자..."
"아니 엄마는 지금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들을게. 난 그냥 쉴거야. 말도 안걸면 좋겠어."

내가 가자고 할땐 싫다더니 막상 알아서 놀라고 했더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다. 대체 왜... 일단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다른 돌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내 할일을 했다. 등 뒤 돌에 있던 녀석들은 발로 바닥을 차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거리기도 하고 부스럭거린다. 한참을 쉬고 기분이 좀 나아져서 나는 일어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들은 슬그머니 따라와 옆에서 걷는다.

"엄마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지금 안듣고싶어."
"엄마 기분 풀렸어?"
"아니 아직."

그렇게 약간은 서먹한 사이로 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은 주로 화산지형의 돌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주의 생성부터 시작해 지구의 내부(멘틀, 외핵, 내핵) 구조 설명, 그리고 화산폭발의 과정, 제주도가 어떻게 생겨난 섬인지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사랑하는 지구과학 얘기를 이렇게 애들과 사이 안좋은 채로 와서 보다니. 아깝다. 원래 지구의 역사나 지층에 대해 더 신나게 내가 설명할거였는데. 아 슬퍼...

박물관은 주로 돌을 전시해두었고 마그마가 식으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돌들은 정말 예뻤다. 간간히 무서워 보이는 애들고 있었고, 귀여운 고래를 닮은 애들도 있었다. 자연의 신비... 그리고 이걸 찾아낸 사람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애들은 그저 신나서 이건 곰을 닮았느니, 이건 뱀을 닮았느니 뭘 닮았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어서 일부 구간은 숲길인데 그 숲길이 정말 좋았다. 예전에 절물휴양림을 아주 기분좋게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제주의 다른 숲도 가봐야겠다. 아이들도 숲길을 좋아했고 한껏 수다도 떨고 첫째는 제주도 책에서 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뽐냈다.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3시간은 있어야 한댔는데... 우리는 중간에 싸우기도 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3시간을 둘러봐도 다 보지 못했다. 막판엔 셋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가고싶다고 하소연 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장봐서 집에 온 소박한 오후. 2시간이 넘게 앞마당에서 다른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어쩜 이렇게 매일 물총놀이만 하고 싶어할까...) 장볼때 사온 빵을 간단히 먹고 하루를 마무리. 내일은 우리 서로 짜증내지 말자. 사이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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