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흔한 바다 아직까지 바닷가에 가면 신나게 놀지만 이제 해안도로쯤은 애들에겐 심드렁한 존재. 서울에선 한강다리만 지나도, 강변북로만 달려도 한강이라며 서로 보겠다고 다투더니 배가 불렀구만.
2. 집밥의 소중함 서울서는 주말에만 한두번 외식을 하다보니 외식하자면 환호성을 지르더니 제주와서 잦은 외식에 어떤 메뉴를 말해도 감흥이 없고 집에서 맨밥에 프랑크소시지 구워주니 너무 맛있다고 신난 아이들. 그러길래 엄마가 밥해줄때 고마운줄 알아.
3. 알쓰 원래 술을 잘 못마시지만... 그래도 맥주 500 두잔은 마셨는데, 보름간 퓨어하게 살았더니 300에도 취한다. 아놔. 서울가면 이제 치맥 못하겠네.
4. 섬사람 운전 아무데나 정차, 아무데서나 유턴, 1차선으로 주행... 제주 살며 익힌 운전방식이다. 다른건 시골길이라 그렇다쳐도 이 섬은 왜 모두 1차선으로 달리고 2차선은 비워두는 걸까. 아무튼 입도 첫날은 차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렌트카 운전하는거 보면 속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섬사람들은 모두 나를 추월해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밤새 비가 왔는데 아침에도 비가 왔다. 그리고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날씨 앱을 열어보니 시간당 40mm의 비가 온다고 한다. 서울에서 비가 많이 온다고 느낄때 18-20mm 정도다.
어젯밤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비자숲힐링센터에 점심밥과 실내놀이터를 예약해두었다. 후기들을 검색해보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몸을 쓰고 싶은 마음과 우리집 책벌레의 책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코스다. 비자림 바로 옆이어서 공기도 좋고, 아이들 놀이터도 목재로 되어 있고 식사도 한살림 쌀을 쓴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
비 오는 걸 감안해서 좀 일찍 집을 나섰는데 산간도로를 올라서니 비가 더 온다. 차 사고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본 적이 없는데(일단 비가 많이 오면 겁나서 차를 안타기도 하니까...) 최대 속도로 올리니 적당한 정도다. 차 속도는 시속 40km. 슬슬슬 기어간다. 급하지 않으니까. (비자숲힐링센터의 원래 이름은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다. 아토피, 천식 등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같다. 아... 여기로 취직하고 싶었다. 너무 좋은 곳...)
점심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름은 문화공간이던가? 강화마루가 깔려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하고 창 밖을 바라 볼 수 있는 자리도 있고(카페처럼) 피아노도 있더라. 어린이들을 위한 좌식 공간도 있는데 그곳엔 보드게임이나 퍼즐도 있었다. 책도 출판사에서 기증한 듯한 모두 새책들이었고, 간행물도 꽤 있었다. 아... 너무 만족!!! 마음이 급해진 우리집 책벌레는 빨리 읽고 새로 고르고를 반복했고, 둘째는 나랑 피아노도 치고 구경하다가 책을 여러권 읽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시간. 점심시간... 많은 블로그에서 밥 맛있다는 얘길 읽었는데... 정말 맛있다. 급식 식판 같은 곳에 밥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밥 먹으러 또 오고 싶은 곳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애들도 다들 와구와구. 밥 먹는 곳 이름이 '냠냠뇸뇸식당'이었는데 이름대로였다. 그리고 1시가 되어 기다렸던 실내놀이터로 갔는데 우리 애들은 7세 이상이어서 다랑이놀이터로. 그물로 짜여져있는 몸을 쓸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거기서 매달리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2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놀았다. 아무래도 이런 실내놀이터는 유아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6세 이하가 노는 방엔 사람이 빼곡하던데 여긴 널널... 그 큰 공간을 다른 아이 한명 보태서 세명이서 놀았다. 나는 들고간 김연수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어서 뿌듯! 아이들은 알차게 놀고 다시 책읽는 공간으로 올라가 책 읽고 마무리.
비가 좀 잦아들면 집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잦아들지 않아 집으로 왔는데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에 신발과 바지 모두 젖어버렸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서 그 많은 물방울이 옆으로 날리는데 피할 길이 없다. 다 젖었다며 징징 거리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서 탑승 완료.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만만치 않게 왔고 시야확보가 되는 속도로 슬슬 왔다.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지날 때 마다 뒷자리의 녀석들은 신이 났고 나는 차 하부청소가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던 집에 오는 길.
목요일에 놀러왔던 지인이 서울 가는 날이다. 어제 저녁부터 이모가 간다고 서운해하던 아이들은 마지막 날인지라 더 많이 놀고 싶다.
오늘 첫번째 코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흘분교. 이모랑 꼭 가고싶다고 해서 시소도 타고 정글짐도 오르고 그네도 타고 축구도 했다. 바람이 엄청 불고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첫째는 축구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교문이 하루종일 열려있는 학교. (사실 '문'이 없다) 시간만 되면 닫히고 드나들 때 마다 출입기록을 쓰고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 서울의 학교는 얼마나 삭막한가. 두번째 왔지만 여전히 선흘분교는 매력있다.
함덕에서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멘도롱장이 이번주는 김녕에서 열린다고 해서 오늘 물놀이는 급하게 김녕으로 수정. 난 워낙 김녕이 좋으니까 괜찮아! 점심무렵 물놀이를 시작해 놀다가 멘도롱장에서 구경하고 집에 들어오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잔뜩 흐리던 하늘이 개고 햇볕이 쨍 나는게 물놀이하기 진짜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김녕에 도착하자 바람이바람이... 텐트를 치는 것도 어렵고 무사히 텐트를 치고 줄로 매어놓았지만 놀아도놀아도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모래를 파고 또 파고. 추우니 물에 못들어가서 정말 모래만 계속 파서 한라산 모양의 모래성을 완성했다. ㅋㅋㅋㅋㅋㅋ 부산이 고향이어서 어릴적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아주아주 많이 했다는 지인 덕에 아이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성을 만들었다. 아무리 땅을 파고 놀아도 너무 한적한 바닷가가 수상해서 인스타를 살펴보니 강풍으로 멘도롱장은 취소. 아놔. -_- 멘도롱장 날짜에 맞춰 바다에 가느라 맑은날 못놀았는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금요일에 바다에 갈걸!!!
얼른 집에 돌아와 씻고 월정리 구경. 월정리는... 성수동 같았다. 골목골목 가정집들은 거의 음식점이나 커피숍, 소품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해안도로에는 쇼핑몰도 생겼다. 상업의 손길은 얼마나 뻗어나가려나... 덕분에(?) 예쁜것도 꽤 사고 많은걸 구경해서 신났지만, 삼청동이나 연남동처럼 변하지말기를. 변해도 조금 천천히 변하기를. 근데 그것도 그냥 내 욕심이겠지.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 날이 맑았더라면 해질녘 하늘이 진짜 예뻤을텐데 아쉽다. 이모와의 마지막 한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퀴즈를 내던 우리집 녀석들. 그치. 나도 이모랑 삼촌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헤어질 때 마다 가지말라고 울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 자는 사이에 몰래 집에 가기도 했었지. ㅎㅎㅎ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 역시 있던 사람이 가는건 누구라도 허전한 일이다. 그것도 나흘을 거의 함께 했더니 더더욱. 찾아왔던 이가 서울로 떠나자 비로소 내가 여기 살고 있구나 싶다. 비록 한달살이지만 여행자와 사는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다르구나. 나는 내일부터 다시 제주에서의 삶을 살아야지.
여행자가 되어 돌아다녀보니 내가 그동안 제주에 살러 온게 맞구나 싶었다. 지인과 함께 여행자 모드로 이틀째 살아보니... 아이고 힘들어. 오늘은 아주 먼 곳,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대각선 반대편) 네비게이션 찍으니 1시간 10분 정도 나왔지만 실제 운전해서 가보니 한시간 반정도 걸리더라. 허리가 아팠다.
방주교회는 독특한 건축물이라고 해서 가본 곳. 교회가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싶었다.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는데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십자가 등 종교적인 것을 과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 있다면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애들은 '엄마 재미없어~ 지루해~'라고 했지만 교회 언저리에 가볼 기회가 없는 우리에겐 재밌는 경험이었다.
카멜리아힐은 제주에 여러번 오면서도 처음 알게 된 곳. 영어 이름이라 뭔가 느낌이 있는데 한자로는 '동백원'인 동백 수목원이다. 동백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수국축제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 때! 20대 청년들이 정말 많았고 인스타에 감성사진, 인생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천지였다. '아...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노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꽃이 정말 예쁘고 공원 전체를 공들여 꾸며놓은 것이 느껴졌다. 다만 날이 더워 둘째는 2/3 지점에서 방전. 한참을 벤치에 앉아 쉬고 누워 쉬다가 한라봉쥬스 하나를 사줬더니 급속충전된 아이처럼 팔팔해졌다. 역시 아이들과는 더 쉬엄쉬엄 가야하는데... 첫째는 어른처럼 거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카페소리 방문. 표선쪽에 있을 때 가보고 안덕면에서는 처음 가본다. 몇년 만인가... 역시나 음악소리는 좋았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폴 앨범을 틀어주셔서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오리와 개들을 구경했고, 카페 안의 고양이의 마음을 사려 노력했다. 하지만 토리와 메이(고양이들)는 '내가 너희들하고 꼭 놀아줘야 되냐...'는 표정으로 조금 얼굴을 보여주다 구석으로 들어갔다. 특히 첫째의 넘치는 사랑을 고양이들은 도도하게 외면하고 사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애들은 해먹에도 누워보고 동물들과도 놀아보고... 나는 귀가 즐거운 음악을 듣고... 좀 더 쉬다 오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기에 주섬주섬 출발. 오는 길이 멀긴 멀더라.
애들은 차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방전. 그래도 씻기고 약속한 루미큐브도 하고 아빠랑 영상통화도 시켜주고 모든 미션 클리어. 보람찬 하루였네!
오늘은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하여 아주 오랜만에 아침에 분주했다. 아침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고 치카해라, 옷입어라, 응가했니?를 반복하는 분주한 서울의 아침같았다. 일주일만에 서두르는 아침을 맞이해보니 서울살이 참 팍팍했다 싶다. 서울에선 아침이고 저녁이고 빨리해라, 늦는다, 안하니 이런 말들을 열번씩 했어야 하니까.
결국 우리는 제주살이 타임으로 예상 출발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는데 다행히(?) 제주시에 안개가 자욱해서 비행기가 한시간이나 제주상공을 맴돌다 내렸다. 결국 비간이 비슷했네? ㅋㅋㅋ 사람을 마중하러 제주공항에 가는데 일주일 남짓 살았지만 어쩐지 정말 제주에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먼길 우리집에 오는 사람을 데리러 가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문득 칠레에 갔을때 마중나왔던 친구가 생각났다. 제주에 한달 살아도 이럴진대 지구반대편에서 몇년을 산다면 어땠을까.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공항에서 지인을 만나 첫번째로 데려간 곳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이다. 첫번째 방문지로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제주라면 바다지'하며 갔는데 그간 두명이던 어린이가 세명이 된 줄... 며칠전 바지를 홀딱 적셔본 우리집 애들은 최대한 조심하며 놀았는데(물론 한놈은 젖었다...) 제주에 갓 내린 어른하나는 옷이 젖고...ㅋㅋㅋㅋㅋ 바닷가 놀이는 늘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점심으로 간 전복집은 30분이나 대기가 있었는데 근처 바위에서 소라게 찾고, 고동 찾고, 게를 찾다보니 30분이 홀딱 갔고 심지어 둘째는 여기서 계속 놀고 싶다고 했다. 거긴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닷가였는데... 해녀가 되고 싶다더니 정말 그런 것인가. 근데 나도 모래 많은 해변보다 돌 사이에서 뭐 찾는게 더 재밌었다.
성산 근처 소품샵에 들러 구경하고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제주메뉴를 먹으러 도착. 웃겼던건... 여름 프리퀀시를 모아서 비치타올을 받는게 있었는데 서울에서 프리퀀시를 다 모은 지인은... 서울 모든 매장에서 품절이어서 못받았다고 울적해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이 스벅에 비치타올이 있다??!?!??! 게다가 검색해보니 제주에도 오로지 이 지점에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퀀시 모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받으러 오진 않았나보다. 우리는 그렇게 흡족하게 상품도 수령하고 차도마시고 잘 쉬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혼인지. 이곳은 또 다른 친구가 추천해준 곳인데 제2공항이 건립되면 사라질 곳이라고 해서 갔다. 수국이 잔뜩 피었고 작고 예쁜 연못이 있었는데 이름처럼 혼인하는 곳이라고. 여기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예쁘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체 개발이 뭐길래 공항따위를 지으려고 이런 걸 밀어버린단 말인가. (해결하라 정부... 제주는 도지사 잘 좀 뽑고... 역시 우리 녹색당을 뽑아야해.) 해가 엄청 쨍쨍해서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내일부터는 꼭 긴팔 옷을 가지고 다녀야겠단 교훈을 얻었다. 애들은 공벌레도 잡고 각종 벌레도 잡고 올레길 리본도 찾고(올레길 2코스더라) 나무도 구경하며 놀았다.
제주에 온 이후로 가장 먼 길을 온거라서 집에 돌아오는데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모두 취침. 운전하는 나만 못잤는데 일주일째 시끄러운 상태로 운전하는 게 지긋지긋하던 차에 조용히 음악감상하며 제주 산간길을 지나 집에 왔다. 귀가 평화로운게 이렇게 좋은건데... 좀 덜 떠들면 안되겠니 어린이들아?
무난한 하루였지만... 둘째녀석이 차에서 오빠랑 깔깔거리며 웃고 놀다가 카시트까지 젖도록 오줌을 싸서 아주 분노게이지가 가득찬 채로 하루를 마무리. 저녁먹으러 나간 길에 그렇게 되어 다시 집에 돌아오니 8시.... 결국 저녁밥을 9시에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 대체 일곱살인데 왜 오줌을 싸는거야!!!!!!!
애들에게 자주 화가 나는 것이 온전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모자식도 사람관계의 하나일 뿐. 아이들도 나에게 잦은 짜증을 냈다. 역시 낮잠이 답인건가. 하지만 서울을 떠나 이 먼곳에 살러 온 것은 후회 없도록 활활태워 놀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닌가. 무얼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가. 아무튼 오늘의 안녕을 위해 나는 또 하루를 되돌아보고 기록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고 실외, 실내 모두 아이들과 가기에 좋다기에 산책하고 싶어 갔다. 아침에 날이 좀 흐렸는데 그래서 아주 쾌적하고 적당한 일조량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은 좀 오랜 코스가 될 것 같아 각자 간식(과자, 귤, 물 등)과 모자를 배낭에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많은 블로그 후기에 도착하면 작은 숲길을 지나 너른 잔디밭을 만나는데 애들이 뛰기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이들은 잔디밭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잔디밭을 보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짜증은 발견됐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첫째가 나이도 많고 남자아이여서 빠르다보니 출발시간에 5초 핸디캡을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자 자꾸 동생이 이겼다. 자신이 제안한 규칙인데 지게 되니 속상하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서 달리는 거리를 길게 늘렸더니 둘째가 졌고, 이 녀석도 졌다고 짜증을 낸다. 아놔. 이것들이... "이렇게 달리기를 하니까 둘 다 속상하다. 둘 다 속상한 놀이는 그만하고 그럼 박물관 들어가자!"라고 신나게 제안을 했더니 둘째가 "그냥 달리기 할래..."란다. 하지만 곧 둘 다 또 짜증을 내고... 일단 참고 박물관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엄마, 5초를 너무 늦게 셌잖아~(짜증)" "(일단 참는다)엄마는 시계보고 셌어." "아니이~ 하나아, 두울, 세엣 이렇게 했잖아. 하나, 둘, 셋, 넷 해야되는데." "(인내심 끝)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뭐가 아니야? 시계보고 했다잖아. 시계가 내 맘대로 가? 전세계 공통으로 모든 사람이 시계로 시간을 재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아아~~" "그러니까 뭐가 아니냐고."
그렇다. 인내심의 바닥을 만났고 나는 아이들에게 "너(첫째)는 엄마가 시간 재는게 맘에 안들고, 너(둘째)는 박물관 가는게 맘에 안드니까 너희 둘이 하고 싶은거 여기서 실컷 해. 엄마는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 돌에 앉아서 쉬고 풍경 보다가 집에 갈거니까. 하고 싶은거 다 하면 다시 여기로 와. 아무데도 안가고 있을게."라고 선언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박물관 가자..." "아니 엄마는 지금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들을게. 난 그냥 쉴거야. 말도 안걸면 좋겠어."
내가 가자고 할땐 싫다더니 막상 알아서 놀라고 했더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다. 대체 왜... 일단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다른 돌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내 할일을 했다. 등 뒤 돌에 있던 녀석들은 발로 바닥을 차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거리기도 하고 부스럭거린다. 한참을 쉬고 기분이 좀 나아져서 나는 일어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들은 슬그머니 따라와 옆에서 걷는다.
"엄마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지금 안듣고싶어." "엄마 기분 풀렸어?" "아니 아직."
그렇게 약간은 서먹한 사이로 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은 주로 화산지형의 돌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주의 생성부터 시작해 지구의 내부(멘틀, 외핵, 내핵) 구조 설명, 그리고 화산폭발의 과정, 제주도가 어떻게 생겨난 섬인지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사랑하는 지구과학 얘기를 이렇게 애들과 사이 안좋은 채로 와서 보다니. 아깝다. 원래 지구의 역사나 지층에 대해 더 신나게 내가 설명할거였는데. 아 슬퍼...
박물관은 주로 돌을 전시해두었고 마그마가 식으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돌들은 정말 예뻤다. 간간히 무서워 보이는 애들고 있었고, 귀여운 고래를 닮은 애들도 있었다. 자연의 신비... 그리고 이걸 찾아낸 사람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애들은 그저 신나서 이건 곰을 닮았느니, 이건 뱀을 닮았느니 뭘 닮았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어서 일부 구간은 숲길인데 그 숲길이 정말 좋았다. 예전에 절물휴양림을 아주 기분좋게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제주의 다른 숲도 가봐야겠다. 아이들도 숲길을 좋아했고 한껏 수다도 떨고 첫째는 제주도 책에서 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뽐냈다.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3시간은 있어야 한댔는데... 우리는 중간에 싸우기도 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3시간을 둘러봐도 다 보지 못했다. 막판엔 셋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가고싶다고 하소연 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장봐서 집에 온 소박한 오후. 2시간이 넘게 앞마당에서 다른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어쩜 이렇게 매일 물총놀이만 하고 싶어할까...) 장볼때 사온 빵을 간단히 먹고 하루를 마무리. 내일은 우리 서로 짜증내지 말자. 사이좋게 지내자.
어제 저녁 문득 '오일장이 언제지?'하며 검색했더니 바로 오늘! 정말 오랜만에 제주오일장에 구경갔다. 거의 십년만인거 같은데... 많이 정비됐고 많이 신식(?)이 되어 깔끔한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구경하는 재미는 좀 없었다. 오늘의 최고 소득은 '오일장돈까스'였는데 무려 5천원... 사실 첫째랑 나는 순대국밥이나 멸치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먹기싫다고 확실히 의사를 밝힌 둘째녀석 때문에 돈까스로 결정. 아니 얘야... 너는 서울에서도 돈까스를 먹고먹고 또 먹는 아이잖니.
그런데. 이 집 돈까스 무려 생고기(냉동아님)를 쓰는데다가 소스도 직접 만들어서 정말 맛있고 기름도 깔끔하고 대만족... 제주 도착하자마자 함덕 근처에서 먹었던 흑돼지 돈까스 13,000원이었는데 그거보다 열배는 맛있었다. 애 둘과 나는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식당을 나오며 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부끄럽잖아...) 오늘은 사장님과 꼭 눈을 맞추고 "잘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순대도 사고, 찐옥수수도 사고, 어린이 갈옷도 사고, 대장간 물건들(서울에서 못보니까)도 구경하고 엄청 많이 걸어다니다가 지쳐서 집으로... 운전하고 집에 오는데 졸리더라. 너무 졸려서 껌을 씹었을 정도. 오자마자 나는 거실에 쓰러져 잠이들었고 어린이들은 신나게 떠들며 놀았다.
저녁무렵 간식 먹고 우리 셋이 슬슬 나들이한 곳은 선흘분교. 무척 예쁘다는 제보를 어젯밤에 받았던지라 슬슬 가봤다. 정말 마을 안쪽 깊숙히 있는 작은 학교였는데 사진으로 본 것 보다 아기자기하고 정말 이 학교에 보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우리집 녀석들도 시소, 그네, 정글짐, 구름사다리, 미끄럼틀 등 학교라면 어디든 있는 시설들을 이용하며 즐거워했고(ㅋㅋㅋ), 잔디구장과 달리기 트랙에서도 놀았다. 뒷편 텃밭도 구경하고 오리, 토끼등 키우는 동물들도 구경했다.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말걸기 어려워하는 첫째는 먼 발치에서 선흘분교 아이들의 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이들이 다 가고나서야 공을 차기 시작했다. 축구 못하는 엄마와, 축구를 좋아하지만 운동신경 없는 아들, 축구를 좋아하는 딸 셋이 공놀이를 하니 은근 수준이 맞았다. 축구라니... 서울에선 그냥 아빠에게 맡기면 되는 종목인데 이게 무슨일이람. 그래도 넓은 잔디구장에서 공을 뻥 차니 재밌더라. :) 그렇게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길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폴라포를 사먹으니 그렇게 꿀맛일 수가.
제주에 와서 나의 정체성을 자꾸만 확인한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집에 있기로 마음 먹은 날. 오전에 빨래도 두 번 돌리고 애들 광장에서 놀 동안 잠시 장도 봐오고(맛있는 빵과 반찬, 그리고 복숭아를 왕창샀더니 기분이 매우 좋아짐) 집에서 점심 먹고 낮잠자고 저녁도 집에서 먹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더니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그렇다. 나는 집순이였다. 밖에 나가 지치고 힘든 몸을 끌고 들어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콕 박혀 먹고 자고(때론 귀찮아서 먹지도 않고) 책보고 영화보고 음악듣고 뒹굴뒹굴뒹굴뒹굴하면 충전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너무 신난 나머지 나도 잊고 내 체력도 잊고 칠렐레팔렐레 놀러다녔더니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질뻔한 상황까지 온 거다. 정확히는 사이가 나빠지는게 아니라 방치겠구나...
원랜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빌려오고 하려고 했는데 마침(?) 낮잠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주룩주룩. 비예보가 전혀 없던 날인데 비가 오는걸 보니 역시 제주날씨는 일기예보가 무의미하다.
둘째녀석이 아침부터 눈이 가렵다고 해서 보니 다래끼가 나려고 했었던지라 안과에 다녀왔다. 6시반까지 진료하는 병원이라 6시에 접수 마감일테니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는데(병원까지 8킬로) 6시5분... 매정한 간호사에게 최대한 불쌍해보이도록 사정해본다. 서울에선 이런 일엔 자존심도 있고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쿨하게 돌아섰을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 진료시간이 6시반이라 마감인건 알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지금 20분 넘게 걸려서 겨우 왔거든요. 조천읍에서 온거라... 한번만 안될까요?" 오늘 나의 의상도 한몫했는데 다리에 일광화상을 입어 너무 화끈거리고 아팠기에 인견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바지의 비주얼은 고쟁이에 가까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어필이었는지, 사연 어필이었는지, 패션 어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간호사가 접수를 해주는데 주민등록상 주소를 적어야 한다. 음... '서울시 XX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서울사람이라고 물르진 않겠지. 에라 모르겠다.
약을 한봉다리 타서 집에 도착. 호박, 양파, 버섯, 두부 잔뜩 넣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에 슥슥 비벼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하루를 마무리. 애들도 흡족 나도 흡족. 별거 아닌 된장찌개에 이토록 찬사를 보내는 우리 셋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집밥이 주는 매력이, 힘이 있지.
충전 잘 했으니 내일은 제주오일장 가야지! 신난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서 사진도 없는 포스팅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김녕성세기 해변에서 바지가 홀랑 젖는 바람에 아쉽게 집에 돌아온 둘째는 눈을 뜨자마자 바닷가 타령이다. 그런데 아침에 날씨가 너무 쌀쌀했다. 마을 광장에 아무도 나와 놀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오후에 날이 따뜻해지면 가자고 달래놓았는데... 그래도 입이 댓발 나왔다.
그러던 중 날이 점점 미지근해진다. '오, 이런 기세면 오후엔 덥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자!"를 외치고 이것저것 채비해서 나선다. 두번째 바다행이지만 역시 어른 혼자는 버겁다. 짝꿍과 있을 때는 나는 짐을 싸며 여러가지를 지시하고 그는 몸을 움직이면 됐다. 하지만... 내가 짐도 싸고 내가 몸도 움직이고 내가 잔소리도 해야하는 삼중고. "바다 가고 싶어? 그럼 이거 해야해."를 백번쯤 말한 뒤에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나도 수영복을 입고, 새로산 팝업 텐트를 개시하는 날이었다!(무려 제주로 배송!) 차 출발 직전 어젯밤 검색해두었던 김밥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넣고 김밥집으로 출발.(깁밥 싸는 시간과 출발시간을 맞춘 이 피곤한 인생...) 김밥집에 정차 3분만에 수령, 김녕성세기해변으로!
도착한 김녕은 역시 한산했다. 함덕에서 느낀 돗데기 시장 느낌도 없었고 매점도 달랑 하나, 해변가에 무수한 상업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캬... 파라솔은 낡았고 대여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아이 좋아... 당당하게 텐트를 펴고 자리를 잡고 김밥부터 와구와구. 마음이 급한 첫째는 거의 쑤셔넣다시피 먹어서 체할까봐 걱정될 정도였고 밥먹기 느리기로 소문이 자자한 둘째도 빨리빨리 오물오물 먹고 모래로 가버렸다. 돗자리 하나 안깔린 해변에 혼자 당당히 텐트를 꺼내 앉아있노라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살짝 걱정이 됐었는데 역시 첫댓글의 중요성... 옆에 나란히나란히 텐트가 펼쳐지고 돗자리도 쭉쭉 깔린다.
녀석들은 제주 해변의 모래질 연구에 나선 사람들처럼 모래를 파고파고 또 판다. 함덕에서는 사람들 기세에 눌려 쭈구리처럼 잘 못파더니 김녕에 오자 아주 자신있고 대범하게 토목공사에 나선다. 이것이야말로 대운하...
토목공사를 마치자 슬슬 물로 들어가본다. 수심이 얕아서 가도가도 다리가 다 잠기지 않을 정도의 바다. 첨벙첨벙 거리다가 첫째 녀석은 소라게 발견!!! 그때부터 시작된 해양생물 탐구는 두시간도 넘게 이어졌다. (지질학에서 생물학으로 옮겨감)
나는 텐트로 돌아왔는데 왔다갔다한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돌아오지 않는다. 텐트에서 너무 지겨워서 잠깐 졸기도 하다가 '내가 여기서 읽으려고 책을 가져왔었지...'하고 후회를 했으나... 애 둘과 이 많은 짐(옷, 신발, 수건, 모자, 썬크림, 먹을거)을 챙겨나오면서 책을 빠뜨린건 어쩌면 당연하단 생각도 들었다.
너무 지루해서 바다로 나갔다. 둘째도 따라오고 우리 둘이 재미나게 노는 것 같아보이니 첫째도 따라온다. 수영복을 입고 나서긴 했지만 해수욕 마무리를 시킬 생각을 하니 아득해져서 나는 허벅지까지만 담갔다. 그런데 이 대범한 녀석들... 엄마를 떠나 멀리멀리 다른 아저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간다. 깊이로 따지면 어린이들 허리 정도의 깊이지만 거리로는 아주 멀었는데... 본인들의 모험과 성공이 그렇게 재밌고 신났는지 몇번이고 나한테 왔다가, 멀리 갔다가를 반복한다. '아 아쉽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 지금만 사는 사람이었으면 내 삶이 더 즐거웠을까...'등을 생각하며 고뇌에 잠겼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멀리서 손을 흔들어줬다. (이때는 몰랐는데 고뇌에 잠기는 동안 내 뒷다리는 일광화상...)
점점 쌀쌀해지는 4시 언저리. 철수할 시간. 사실 이 과정이 하기 싫어 바다에 오기 싫다. 모래덩어리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래를 털고 신발을 씻고 옷을 벗기고 모래를 털고 옷을 입히고 젖은 옷을 챙기고 닦았던 수건을 챙기고 젖은 신발을 챙겨서... 집에 오기. 몇번 욱하는 고비가 있었지만 오늘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지. 몸은 고된데 뿌듯하긴 했다. 돌아오는 길 해안도로에 있는 멋진 카페에서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고 싶었지만... 참자. 너네랑 가봤자 시끄럽고 돈 아깝다. 나중에 혼자 와야지.
집에 돌아와 간식먹고 목욕하고 보니... 나도 첫째도 다리에 일광화상을 입었다. 둘째만 긴바지 래쉬가드. 그리고 셋 다 발등에도 화상. 잠시 집에서 놀고 있으라 하고 후딱 함덕 올리브영에 가서 알로에겔을 사왔다.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사실 제주 도착 첫날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하루종일 내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다. 아이들과의 시간, 나만의 시간이 확실히 분리되는 것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제주에 한달 살러 와보니 아이들과의 시간은 서울보다 몇 배 더 즐거운데 내 시간이 없다. 아이들끼리 잠시 노는 시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근무 중 대기시간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근무시간이란 얘기다. 지금 몸이 쉬고 있어서 휴게시간 같지만 언제 고객이 올지 모르는 마트 계산대의 캐셔같은 위치. 잠자는 시간 빼고 내 시간이 없는 5일이 너무 힘들었다.
이걸 왜 갑자기 오늘 깨달았냐고? 올리브영에 혼자 출입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문에 치이지 않게 잡아줘야 하는 동행인이 없고, 주차장에 차가 올까 두리번 거리며 "손잡아!"외치지 않을 때도 깨달았다. '아... 좋다...' 서울이 널리고 널려 발에 채일 것 같은 올리브영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뒷자리가 고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오는데 귀가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내가 필요한건 이거였구나.
무계획으로 살아보는 숙제에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되 완벽히 분리되어 나만의 시공간을 구축하는 방법 만들기. 제주에 온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분명 아니었다. 닷새를 아이들을 위해 살았더니 삶의 질이 하락했다. 이제 나를 위해 움직이겠다!!!!!
아는 사람은 아는데... 나는 아주 계획적이다. 그 이유는... 계획이 있는 것이 나를 마음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계획이 안지켜져서 때론 괴롭기도 하지만 계획이 없어서 느끼는 괴로움보다 어그러지는 괴로움이 작다. 게다가 어그러질 것에 대비해여 계획을 여러개 세우기 때문에 보통은 예상범위 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된다.
그런데... 제주에 오면서 세웠던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었거니와... 무계획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다음날 오전 일정과 밥먹을 장소를 검색하고 있다. 그게 내 마음의 안정을 주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살아봤다. 물론 큰 동선과 일정은 존재했지만, 네비게이션의 목적지 없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거나(애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할 수 있었다) 가다가 궁금한데에 정차해서 충분히 둘러본다거나(이것도 만족도 높음) 이런 일들. 아주 조그만 변화였지만 즐거웠다. 한달을 이런 순간들로 채워나가야지.
한달 사는 동안 이 마을에서 요가 클래스가 있다기에 신청했다. 요가라니 대체 몇년만인지... 필라테스도 하는 몸이니 요가쯤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아주 난이도 있는 동작들을 시키는 바람에 온몸이 당기고 쑤셨다. 엄마가 요가하는걸 창문너머로 본 꼬맹이들은 신기해했고 이런 모습을 보는게 참 좋구나 싶었다. 엄마 역할 말고 엄마의 (너희들이 없는) 일상.
집에서 점심을 차려먹었다. 반찬은 소시지였는데 난 귀찮아서 택한 메뉴, 애들은 너무 좋아하는 메뉴여서 윈윈.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조기구이... 짐을 싸면서 생선용 밀폐용기을 챙겼다. ‘내가 무슨 생선을 거기까지 가서...’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보내놓고 후회했는데 도착 첫날 마을 할머니께서 애들이랑 튀겨먹느라며 세마리 주고 가셨다. 통 없었으면 어쩔뻔... 선견지명인가.
제주 와서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활동량이 서울의 2-3배인데 잠을 안자니 둘째는 확실히 짜증과 슬픔이 늘었다. 첫째는 피곤하니 동생을 놀린다. (무슨 마음이냐 이놈아) 2시간 가량 자니 둘다 온순해져서 나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 이제 낮잠 자주 자야지!!!
오후 일정은 동문시장. 구경도 하고 반찬거리 등등을 사러갔는데... 좀 실망. 군것질꺼리도 애들이랑 먹기엔 적절하지 않았고 반찬가게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깻순나물, 달걀말이를 샀다.) 오메기떡과 천혜향쥬스, 귤, 백설기 등을 사서 마무리. 둘째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시내에 나간김에 한살림도 들렀다. 꼭 사려던건 씨리얼이었는데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곰국도 사고 뭘 많이ㅜ샀다. 근데 한살림 있는 동네... 되게 비싸보이더라.
아무튼 귀가하여 고기가 먹고싶다던 둘째의 소원을 들어주려했으나... 애들은 물총놀이에 홀려 저녁은 대충 옥수수랑 떡으로 때우겠다며 앞마당에서 놀기 시작했다. 체력이 고갈된 나도 뭐 나쁘지 않았다. 밤산책까지 하고 긴긴 하루는 마무리.
함덕에 내가 몇번째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첫째 녀석 18개월에 함덕 잔디밭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던 기억, 둘째 네살/첫째 여섯살에 캠핑카라반에서 하루 잔 기억이 있는 곳이다. 다행히 두 녀석 모두 캠핑카에서 잔 기억은 가지고 있어서 해변을 기억하는 것 같진 않지만 왠지 반가워해줬다.
둘째날이라 아침에 나는 아주 뭉기적 거리고 있었고(첫날 너무 힘들었어...) 애들은 새 집과 마을 구석구석을 익히고 노는 중이었다. 물론 둘만의 놀이도 제주집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그래서 느즈막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함덕해변 앞 해녀김밥집에서 전복김밥을 먹고(맛있었는데 가성비는 좀...) 해변에 나갔는데 글쎄... 6월 말인데 해수욕장 개장! 게다가 사람도 많아!!!!
사람들과 파라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돗자리를 주섬주섬 깔았고, 애들은 모래 삽을 들고 모래로... 터전에서 갈고 닦은 삽질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땅파기에 돌입. 열심히 파고파고 또 팠는데 안타깝게도 밀물이어서 나중에는 물에서 놀았다. 둘째는 용감하게 튜브타고 싶다고 했고, 내가 수영복을 입지 않아 다음에 수영복 입고 같이 튜브타고 놀기로 했다. 내가 수영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까지 본격 해수욕 시즌인지 몰랐지;;;
그렇게 낮에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왔더니 저녁차리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3분짜장을 데워 먹었다. 저녁을 먹다 문득, 평소보다 두세배는 움직이는 우리가 평소보다 절반 정도만 먹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야 괜찮지만 애들은 영양실조 되는게 아닌지... 노는 에너지를 조금 아껴 먹는데 사용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은 둘째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