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날씨에 민감하다. 왜냐면 아이는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나가기 때문에. 출근하고 나서 날이 생각보다 더워도 미안하고 추워도 미안하다. 그래서 매일 일기예보를 챙겨듣고 보고 앱으로도 확인하는 편인데 제주에 오고 나서 예보를 확인하되 신뢰하지 않는다.

오늘도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잔뜩 흐리기에 (다행히 비는 안옴) 뭘 하나... 고민하다가 오름에 가기로 결정했다. 근데 아침에 돌린 빨래가 좀 늦어지고 여기 마을안에 있는 코인세탁소의 건조기가 이게 건조기인지 찜기인지 모를 성능을 보이는 바람에 더 늦어져서 애초 예상시간보다 한시간반 가까이 늦어졌다. 그러는 사이 구름사이로 해가 나고 기온이 올라간다. 이럴수가. 날씨가 이러면 바다에 가야지!!!! 제주살며 터득한건 계획이고 뭐고간에 날이 맑을때 바다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오늘은 간단히 짐을 싸서 출발. 가는길에 있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도 포장. 신난다. 행선지는 소박한 김녕성세기해변. 김녕의 가장 큰 메리트는 해변과 수돗가가 가깝고 수돗가와 주차장이 가까워서 마지막에 짐을 나르기에 쉽다는 것.

해는 나는데 바람은 정말 세다. 김녕 해안가에 설치된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선풍기인양 뱅글뱅글 돌아가는 날씨였다. 언제나처럼 애들은 구덩이를 파고 모래언덕을 만들었다. 첫째는 옆 바위에서(이것도 김녕의 장점) 소라게와 고동을 잔뜩 잡아왔고 둘째는 오빠의 작업지시에 따라 착착 움직였다. 오늘은 나도 모래를 좀 팠다. 아니 근데 이거 재밌잖아! 파고파고 또 파고. 애들이 왜 제주에서 내내 모래만 팠는지 알겠다. 그리고 바다에도 풍덩... 춥지 않았더라면 더 들어갔겠지만 조금 놀다보니 너무 춥고, 물 밖으로 나와도 바람이 세서 추웠다. 해가 쨍쨍할때가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햇볕을 맞았다. 몸 좀 말리려고...ㅋㅋㅋ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세상 좋더라. 해수욕 뒷마무리에 대한 생각은 애써 잊었다. (그동안 이 걱정에 항상 심란...) 

오늘의 깨달음은, 사진을 찍으면 바다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 사진찍기 위해선 손을 더럽힐 수 없는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어떻게 바다에서 논단 말인가... 사진을 포기하고 놀고 있으니 참 좋더라. 중간중간 애들이 자기작품(모래성)을 사진찍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내 손을 보여주며 "찍을수가 없어"라고 설명하느라 좀 귀찮았지만. 그리고 모래놀이도 자꾸 하니 실력이 늘더라는 것. 요령도 생기고 모래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도 점점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는지 아주 그럴싸한 것들을 빨리 만들어내더라. 물에 휩쓸려가도 슬퍼하지 않고 잽싸게 새로 구덩이를 판다.

3시가 넘어가니 추워서 놀기 힘들지경이 되고 얼른 수돗가에서 몸을 헹구고 다시 집으로 출발. 주차장에서 데워진 차가 따뜻하니 좋을 지경이었다. 

몸은 힘들지만 역시 바다놀이가 재밌어.
그나저나 사진을 보니 맨날 똑같아 보이네 ㅋㅋㅋㅋㅋ

오밤중에 컵 닦다가 문득 깨달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1. 흔한 바다
아직까지 바닷가에 가면 신나게 놀지만 이제 해안도로쯤은 애들에겐 심드렁한 존재. 서울에선 한강다리만 지나도, 강변북로만 달려도 한강이라며 서로 보겠다고 다투더니 배가 불렀구만.

​2. 집밥의 소중함
서울서는 주말에만 한두번 외식을 하다보니 외식하자면 환호성을 지르더니 제주와서 잦은 외식에 어떤 메뉴를 말해도 감흥이 없고 집에서 맨밥에 프랑크소시지 구워주니 너무 맛있다고 신난 아이들.
그러길래 엄마가 밥해줄때 고마운줄 알아.

​3. 알쓰
원래 술을 잘 못마시지만... 그래도 맥주 500 두잔은 마셨는데, 보름간 퓨어하게 살았더니 300에도 취한다.
아놔.
서울가면 이제 치맥 못하겠네.

​4. 섬사람 운전
아무데나 정차, 아무데서나 유턴, 1차선으로 주행... 제주 살며 익힌 운전방식이다. 다른건 시골길이라 그렇다쳐도 이 섬은 왜 모두 1차선으로 달리고 2차선은 비워두는 걸까.
아무튼 입도 첫날은 차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렌트카 운전하는거 보면 속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섬사람들은 모두 나를 추월해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밤새 비가 왔는데 아침에도 비가 왔다. 그리고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날씨 앱을 열어보니 시간당 40mm의 비가 온다고 한다. 서울에서 비가 많이 온다고 느낄때 18-20mm 정도다.

어젯밤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비자숲힐링센터에 점심밥과 실내놀이터를 예약해두었다. 후기들을 검색해보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몸을 쓰고 싶은 마음과 우리집 책벌레의 책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코스다. 비자림 바로 옆이어서 공기도 좋고, 아이들 놀이터도 목재로 되어 있고 식사도 한살림 쌀을 쓴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

비 오는 걸 감안해서 좀 일찍 집을 나섰는데 산간도로를 올라서니 비가 더 온다. 차 사고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본 적이 없는데(일단 비가 많이 오면 겁나서 차를 안타기도 하니까...) 최대 속도로 올리니 적당한 정도다. 차 속도는 시속 40km. 슬슬슬 기어간다. 급하지 않으니까. (비자숲힐링센터의 원래 이름은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다. 아토피, 천식 등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같다. 아... 여기로 취직하고 싶었다. 너무 좋은 곳...)

점심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름은 문화공간이던가? 강화마루가 깔려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하고 창 밖을 바라 볼 수 있는 자리도 있고(카페처럼) 피아노도 있더라. 어린이들을 위한 좌식 공간도 있는데 그곳엔 보드게임이나 퍼즐도 있었다. 책도 출판사에서 기증한 듯한 모두 새책들이었고, 간행물도 꽤 있었다. 아... 너무 만족!!! 마음이 급해진 우리집 책벌레는 빨리 읽고 새로 고르고를 반복했고, 둘째는 나랑 피아노도 치고 구경하다가 책을 여러권 읽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시간.
점심시간... 많은 블로그에서 밥 맛있다는 얘길 읽었는데... 정말 맛있다. 급식 식판 같은 곳에 밥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밥 먹으러 또 오고 싶은 곳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애들도 다들 와구와구. 밥 먹는 곳 이름이 '냠냠뇸뇸식당'이었는데 이름대로였다.
그리고 1시가 되어 기다렸던 실내놀이터로 갔는데 우리 애들은 7세 이상이어서 다랑이놀이터로. 그물로 짜여져있는 몸을 쓸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거기서 매달리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2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놀았다. 아무래도 이런 실내놀이터는 유아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6세 이하가 노는 방엔 사람이 빼곡하던데 여긴 널널... 그 큰 공간을 다른 아이 한명 보태서 세명이서 놀았다. 나는 들고간 김연수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어서 뿌듯! 아이들은 알차게 놀고 다시 책읽는 공간으로 올라가 책 읽고 마무리. 

비가 좀 잦아들면 집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잦아들지 않아 집으로 왔는데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에 신발과 바지 모두 젖어버렸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서 그 많은 물방울이 옆으로 날리는데 피할 길이 없다. 다 젖었다며 징징 거리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서 탑승 완료.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만만치 않게 왔고 시야확보가 되는 속도로 슬슬 왔다.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지날 때 마다 뒷자리의 녀석들은 신이 났고 나는 차 하부청소가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던 집에 오는 길.

내일은 비가 좀 안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뭐하지...

나도 어린이면 놀고 싶었던 놀이터.

비가 온다.
생각해보면 비가 안오는 날이 더 적었던 것 같다. 이 섬에 도착했을때도 비가 왔다. 

오늘 아침엔 사실 비가 안왔다. 어젯밤에 부슬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엔 해가 나려해서 신이 나서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점심에 동네로 고기국수를 먹으러 나갔는데 국수를 먹는 사이 비가 쏟아진다. 아... 빨래건조대를 얼른 집으로 들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 일정도 꼬인다. 사실 바닷가 카페에 가서 나는 책을 읽고 애들은 놀면 되겠다 싶었는데 비라니... 국수를 후루룩 먹고 들어와서 빨래를 구출하고(하지만 이미 꽤 젖었더라. 엉엉) 뭐할지 애들에게 물으니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집에서 그림그리고 색종이 접고 싶다 한다. 둘이 정해보라고 했더니 둘째가 얼른 의견을 바꾼다. 대체로 뭐하고 놀지에 대해서는 둘째가 접는 편이고, 뭘 먹을지에 대해선 첫째가 접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비가 오면 가야겠다고 염두에 둔 곳이다.

돌문화공원에서도 화산에 대한 설명과 제주도가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해서 나오는데 영상이 좀 올드하고 관리가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돌문화공원은 박물관보다도 주변 환경이 더 좋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잘 관리되고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적절한 수준이었다. 영상도 깔끔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4D 영화관이었는데 20분 길이의 짧은 영화였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와 제주의 오백장군 설화가 함께 나오는 이야기인데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지만 4D체험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어릴적 좋아했던 롯데월드의 다이나믹씨어터가 생각났는데 우리집 애들은 의자가 덜덜 거릴때 마다 때로는 무서워 하면서 아주 스릴있게 봤다. 마지막 코스에서 VR체험도 있었는데 애들은 신기방기... ㅎㅎㅎ 세계자연유산을 보러 갔다가 첨단 과학을 체험하고 왔다. 비가 안왔더라면 둘러보기 좋게 산책코스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하지만 비가 안왔더라면 여길 안왔겠지. ㅋㅋㅋ

오후에 밖으로 나오니 비가 좀 잦아든다. 그렇다면 포기했던 바닷가 카페를 좀 다시 가볼까? 구름속을 헤치고 안개등과 라이트를 모두 켜고 슬슬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구름지대를 지나고 나니 삼나무길이 나온다. 아... 여기로구나... 베어지고 있는 비자림로... 즐비하던 삼나무가 어느순간 뚝 끊어지며 한쪽이 휑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휑하다. 때마침 밖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첫째가 묻는다.

"엄마, 제2공항보다 삼나무라는데 무슨 말이야?" 
"제2공항을 지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잖아. 그런데 여기는 좁은 길이지. 그래서 차가 더 많이 다닐 수 있도록 이 키크고 멋진 오래된 삼나무를 베어버리고 있어."
"그 공사하는 사람을 내가 다 베어버릴게!"
"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그럼 공항을 사람도 없고 나무도 없는데에 지으면 되잖아."
"공항을 짓는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건데,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이 많은데 공항을 짓는게 좋겠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면 되지."
"대통령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나중에 국회의원 되서 이거 공사한 사람들 다 나무 다시 심으라고 할거야."
밑도끝도 없이 국회의원이라니....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바닷가로 향했다.

이 카페는 자그마치... '제주 아이와 카페'로 검색해서 찾은 카페다. 그 중 카페에서 바다가 보이면서도 해변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어서 어른은 쉬고 아이는 지겹지 않은 그런 곳!!! 다행히(?) 비가 와서 사람이 붐비지 않았고 육지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허니버터브레드와 차와 사과쥬스를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깨달음. 나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혹시 문에 손이 끼이지 않을까, 돌에서 넘어지지 않을까 등등 계속 조마조마.......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피곤한 사람인건가. 이렇게 또 자기성찰의 섬에서 하나를 깨닫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다와 카페를 몇번씩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바다 보며 차 마시고 바람을 실컷 쐬니 마음이 좋다. 바다가 피곤한 줄 알았는데 나는 모래사장이 피곤했던 거였구나. ㅋㅋㅋㅋㅋㅋ 모래사장은 모래가 묻어서 싫으니까... (으앙 피곤한 나 자신...) 잠깐의 바다구경으로 허한 마음을 충전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그리고 차린건 별거 없지만 두 녀석 다 잘 먹는 양배추찜과 함께 집밥으로 마무리.

그래. 오늘도 즐거웠다. :)

손님이 다녀가고 나서 제주엔 다시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비는 불규칙적으로 오다 그치다를 반복했는데 신기하게 지인이 방문한 기간동안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 더 신기하게 그가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간 순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도 했고, 4일간 빠듯하게 관광객 모드로 놀았던 우리는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늦잠을 잤다. 아무래도 옆방으로 바로 달려가 놀자고 조를 사람이 없으니 깊이 잔 것 같았다. 6시반이면 일어나던 첫째는 7시반에 일어났고 둘째는 심지어 8시반이 되도록 쿨쿨 잤다. 나도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챙겼다.

오늘은 집순이모드로 동네 우체국에 들러 둘째가 단짝친구에게 쓴 엽서를 서울로 보내고, 조천읍도서관에 갔다. 블로그 검색해보니 육지에서 쓰던 대출카드로 가능하다기에 방문했는데 너른 주차장을 보니 제주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자체는 아담했고 창이 많은 도서관이라 표지색이 바랜 책들이 꽤 있었다. 서울의 도서관은 창이 너무 없어서 답답할 지경인데 창이 많으니 이런 단점도 있구나 싶었다. 유아동 책은 따로 모여있어서 초등학생인 첫째는 스스로 책을 골라와서 읽었고, 아직 글을 술술 읽진 못하는 둘째는 제목을 보고 책을 골라와 내가 읽어줬다. 나는 신간코너에가서 책을 골랐고 김연수 장편소설과 이슬아의 책을 득템. 대출은 1인당 5권까지 되고, 육지에서 쓰던 대출카드를 가져오면 제주로 이관해준다. 다시 육지로 돌아가서는 육지로 이관하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찬가게와 하나로마트를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가기 전 예약취사, 빨래는 예약세탁 해놓으니 모든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면 나는 무척 기쁘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뭔지 새삼 또 깨닫게 된다.

오늘은 집에 있기로 마음먹은 날이기에 둘째는 낮잠을 자고 첫째는 수학공부를 좀 했다. 학교에서 곱셈을 배우고 있을텐데 우리도 조금 해봤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면서 어렵다고 한 적이 없는데 배우지 않고 혼자 풀어보려니 어려웠던 모양이다. 몸을 배배꼬고 책 좀 보고 다시풀면 안되겠냐고 한다. 처음엔 나도 엄마모드로 '조금 더 해봐'라고 하다가 20여년전 경험을 살려 과외선생님 모드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첫째가 수학문제를 푸는 사이 나는 빌려온 책을 후루룩 읽었다. 그래, 나 제주에 와서 책 좀 읽고 싶었어.

낮잠 자는 둘째 옆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두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도 많이 피곤했구나. 낮잠 자고 일어나서 보기로 약속한 토이스토리3를 틀었다. (이걸 보려고 서울집에서 hdmi케이블을 챙겨왔다...) 극장에서 아이들과 4편을 보기 위한 준비...ㅋㅋㅋ 소문처럼 후반부에 눈물이 주루룩... 엉엉 고마웠어 나의 장난감들.

저녁을 먹고 세수하고 자려는데 씻을 준비를 하던 둘째 녀석이 오빠랑 웃긴 얘기를 하다가 바닥에 쉬를 했다. 화가 났다. 이 녀석은 깔깔 거리다 자주 오줌을 지리곤 하는데 제주에 와서는 그게 너무 심했다. 차에서도 찔끔, 집에서도 찔끔. 집에서는 그나마 나은데 차에서 그러면 대책이 없어진다. 가까운 10분 이내 거리면 집에 돌아오면 되지만 30분 넘는 거리에 나가서 그러면 나는 패닉과 카오스의 상태가 되어 분노가 휘몰아친다.

이런 일이 일주일째 반복이 되니 더더욱 화가 났다. 두 녀석이 차에 떠들다 웃기 시작하면 나는 긴장이 되기 시작하고 왠지 이쯤이면 오줌을 쌀 것 같은 단계가 되면 경고한다. "이제 웃기는 얘기는 그만하자. 쉬 쌀거 같은데?" 이런 나의 부드러운 경고를 들을 턱이 있나.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계속 낄낄 거린다. 두번 세번 더 얘기하지만 내 얘기는 귓등으로 듣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둘 중 하나인데 ①화를 내며 둘의 대화를 중지시키고 다행히 참사는 막는다. ②결국 참사가 벌어지고 나는 화를 낸다. 뭐든 나는 화를 내는 엄마가 된다.

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왜 나는 화가 나는가, 왜 나는 뭐든 화내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보니 너무 슬펐다. 이러려고 온게 아닌데. 나는 잘 놀고 싶은데. 나도 웃기만 하고 싶은데. 나는 왜 애들이 깔깔거리기 시작하면 긴장하고 화를 내야 하는가. 두 녀석을 다 씻기고 나서 결국 나는 눈물이 났고 "엄마도 웃는 엄마 좋은 엄마 하고 싶어. 그런데 화를 내야 쉬를 안싸거나, 쉬를 싸서 화를 내게 돼. 맨날 화내는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엉엉엉" 고백했다. 내가 울자 첫째는 엄마가 속상해서 자기도 속상하다며 울었고, 둘째는 엄마가 화를 내서 속상하고 화를 내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며 울었다. 셋이 모두 엉엉 울게 된 제주의 밤.

나는 왜 화가 나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오줌을 싼 후 내가 맡아야 하는 노동의 양이 많아져서인지, '예측되지 않은' 불상사가 싫은지, 일곱살이 되었음에도 쉬를 싸는 자식이 못마땅해서인지, 여러번 주의를 줬으나 내 말을 허투루 듣는 녀석들 태도가 맘에 안드는건지, 매일 반복되는게 지겨워서인지, 이 상황에 출구가 없어서인지... 모두 다 인지. 모르겠다 나도. 확실한건 난 이 상황이 싫다. 그리고 벗어나고 싶다. 대체 왜 나는 이 문제로 매일 화내는 엄마로 변신해야 하는가. 

내일은 바닷가 카페로 가야지. 나는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마음의 평온을 찾아야지. 내 마음의 소용돌이는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따라가봐야지.

목요일에 놀러왔던 지인이 서울 가는 날이다. 어제 저녁부터 이모가 간다고 서운해하던 아이들은 마지막 날인지라 더 많이 놀고 싶다.

오늘 첫번째 코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흘분교. 이모랑 꼭 가고싶다고 해서 시소도 타고 정글짐도 오르고 그네도 타고 축구도 했다. 바람이 엄청 불고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첫째는 축구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교문이 하루종일 열려있는 학교. (사실 '문'이 없다) 시간만 되면 닫히고 드나들 때 마다 출입기록을 쓰고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 서울의 학교는 얼마나 삭막한가. 두번째 왔지만 여전히 선흘분교는 매력있다.

함덕에서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멘도롱장이 이번주는 김녕에서 열린다고 해서 오늘 물놀이는 급하게 김녕으로 수정. 난 워낙 김녕이 좋으니까 괜찮아! 점심무렵 물놀이를 시작해 놀다가 멘도롱장에서 구경하고 집에 들어오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잔뜩 흐리던 하늘이 개고 햇볕이 쨍 나는게 물놀이하기 진짜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김녕에 도착하자 바람이바람이... 텐트를 치는 것도 어렵고 무사히 텐트를 치고 줄로 매어놓았지만 놀아도놀아도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모래를 파고 또 파고. 추우니 물에 못들어가서 정말 모래만 계속 파서 한라산 모양의 모래성을 완성했다. ㅋㅋㅋㅋㅋㅋ 부산이 고향이어서 어릴적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아주아주 많이 했다는 지인 덕에 아이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성을 만들었다. 아무리 땅을 파고 놀아도 너무 한적한 바닷가가 수상해서 인스타를 살펴보니 강풍으로 멘도롱장은 취소. 아놔. -_- 멘도롱장 날짜에 맞춰 바다에 가느라 맑은날 못놀았는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금요일에 바다에 갈걸!!! 

얼른 집에 돌아와 씻고 월정리 구경. 월정리는... 성수동 같았다. 골목골목 가정집들은 거의 음식점이나 커피숍, 소품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해안도로에는 쇼핑몰도 생겼다. 상업의 손길은 얼마나 뻗어나가려나... 덕분에(?) 예쁜것도 꽤 사고 많은걸 구경해서 신났지만, 삼청동이나 연남동처럼 변하지말기를. 변해도 조금 천천히 변하기를. 근데 그것도 그냥 내 욕심이겠지.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 날이 맑았더라면 해질녘 하늘이 진짜 예뻤을텐데 아쉽다. 이모와의 마지막 한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퀴즈를 내던 우리집 녀석들. 그치. 나도 이모랑 삼촌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헤어질 때 마다 가지말라고 울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 자는 사이에 몰래 집에 가기도 했었지. ㅎㅎㅎ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 역시 있던 사람이 가는건 누구라도 허전한 일이다. 그것도 나흘을 거의 함께 했더니 더더욱. 찾아왔던 이가 서울로 떠나자 비로소 내가 여기 살고 있구나 싶다. 비록 한달살이지만 여행자와 사는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다르구나. 나는 내일부터 다시 제주에서의 삶을 살아야지.

공항가는 길. 야자수가 있는 저녁 길을 보고 있노라니 괌인지 제주인지.

절물휴양림은 내가 제주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좋아해서 가고 또 가도 좋은 그런 곳. 지인이 한 번도 안가봤다기에 아이들과 또 방문. 삼나무 숲은 여전했고 제주 특유의 식물들이 주는 남도의 느낌도 여전히 좋았다. 데크가 잘 깔려서 애들과 다니기에 좋고(어른이 걷기엔 좀 아쉬움이 있지만) 중간중간 평상도 많아서 간식 먹기도 좋고. 두세시간 숲에서 놀고 걷고 했는데 날씨도 선선하고(선선해서 오히려 움직이지 않으면 추울 정도) 공기도 워낙 좋아서 숲에서 나오는데 몸이 가뿐했다. 애들이 좀 커서 3시간반짜리 코스도 함께 다녀오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까마귀가 많아서 둘째의 장기인 까마귀소리 따라하기도 하고(정말 똑같다), 숲 한가운데 그네도 타고, 질경이를 따서 풀씨름도 하고, 고사리가 진짜 많다고 감탄도 했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오늘의 수확(?)은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숲에서 풀 먹는 녀석을 만난 것! 숲길을 한참 걷는데 풀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길래 걸음을 멈추고 뚫어져라 쳐다보니 갈색 털의 몽실몽실한 녀석이 오물오물거리고 있다. 그녀석은 사람에 대해 적절한 긴장과 친근감을 가지며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걸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지만, 무리하게 걷다 지쳐 본 어제의 경험을 떠올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우린 반짝 놀고 집에 돌아갈 관광객모드는 지양하자. 들어오는 길에 함덕에 잠시 들렀는데 상시적으로 있는 해변의 가게들 중 헤나를 하는 곳이 있어서 모두 헤나 한개씩. 모두 인생 첫 헤나였는데 7세, 9세에 인생 첫 헤나라니 아이들이 부러웠다. 너희들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렴.

여행자가 되어 돌아다녀보니 내가 그동안 제주에 살러 온게 맞구나 싶었다. 지인과 함께 여행자 모드로 이틀째 살아보니... 아이고 힘들어. 오늘은 아주 먼 곳,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대각선 반대편) 네비게이션 찍으니 1시간 10분 정도 나왔지만 실제 운전해서 가보니 한시간 반정도 걸리더라. 허리가 아팠다.

방주교회는 독특한 건축물이라고 해서 가본 곳. 교회가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싶었다.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는데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십자가 등 종교적인 것을 과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 있다면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애들은 '엄마 재미없어~ 지루해~'라고 했지만 교회 언저리에 가볼 기회가 없는 우리에겐 재밌는 경험이었다.

카멜리아힐은 제주에 여러번 오면서도 처음 알게 된 곳. 영어 이름이라 뭔가 느낌이 있는데 한자로는 '동백원'인 동백 수목원이다. 동백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수국축제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 때! 20대 청년들이 정말 많았고 인스타에 감성사진, 인생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천지였다. '아...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노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꽃이 정말 예쁘고 공원 전체를 공들여 꾸며놓은 것이 느껴졌다. 다만 날이 더워 둘째는 2/3 지점에서 방전. 한참을 벤치에 앉아 쉬고 누워 쉬다가 한라봉쥬스 하나를 사줬더니 급속충전된 아이처럼 팔팔해졌다. 역시 아이들과는 더 쉬엄쉬엄 가야하는데... 첫째는 어른처럼 거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카페소리 방문. 표선쪽에 있을 때 가보고 안덕면에서는 처음 가본다. 몇년 만인가... 역시나 음악소리는 좋았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폴 앨범을 틀어주셔서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오리와 개들을 구경했고, 카페 안의 고양이의 마음을 사려 노력했다. 하지만 토리와 메이(고양이들)는 '내가 너희들하고 꼭 놀아줘야 되냐...'는 표정으로 조금 얼굴을 보여주다 구석으로 들어갔다. 특히 첫째의 넘치는 사랑을 고양이들은 도도하게 외면하고 사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애들은 해먹에도 누워보고 동물들과도 놀아보고... 나는 귀가 즐거운 음악을 듣고... 좀 더 쉬다 오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기에 주섬주섬 출발. 오는 길이 멀긴 멀더라.

애들은 차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방전. 그래도 씻기고 약속한 루미큐브도 하고 아빠랑 영상통화도 시켜주고 모든 미션 클리어. 보람찬 하루였네!

제주에 온지 사나흘 정도 지난 기분인데 아홉째날이라니. 시간이 다 어디갔지?

오늘은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하여 아주 오랜만에 아침에 분주했다. 아침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고 치카해라, 옷입어라, 응가했니?를 반복하는 분주한 서울의 아침같았다. 일주일만에 서두르는 아침을 맞이해보니 서울살이 참 팍팍했다 싶다. 서울에선 아침이고 저녁이고 빨리해라, 늦는다, 안하니 이런 말들을 열번씩 했어야 하니까.

결국 우리는 제주살이 타임으로 예상 출발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는데 다행히(?) 제주시에 안개가 자욱해서 비행기가 한시간이나 제주상공을 맴돌다 내렸다. 결국 비간이 비슷했네? ㅋㅋㅋ 사람을 마중하러 제주공항에 가는데 일주일 남짓 살았지만 어쩐지 정말 제주에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먼길 우리집에 오는 사람을 데리러 가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문득 칠레에 갔을때 마중나왔던 친구가 생각났다. 제주에 한달 살아도 이럴진대 지구반대편에서 몇년을 산다면 어땠을까.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공항에서 지인을 만나 첫번째로 데려간 곳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이다. 첫번째 방문지로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제주라면 바다지'하며 갔는데 그간 두명이던 어린이가 세명이 된 줄... 며칠전 바지를 홀딱 적셔본 우리집 애들은 최대한 조심하며 놀았는데(물론 한놈은 젖었다...) 제주에 갓 내린 어른하나는 옷이 젖고...ㅋㅋㅋㅋㅋ 바닷가 놀이는 늘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점심으로 간 전복집은 30분이나 대기가 있었는데 근처 바위에서 소라게 찾고, 고동 찾고, 게를 찾다보니 30분이 홀딱 갔고 심지어 둘째는 여기서 계속 놀고 싶다고 했다. 거긴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닷가였는데... 해녀가 되고 싶다더니 정말 그런 것인가. 근데 나도 모래 많은 해변보다 돌 사이에서 뭐 찾는게 더 재밌었다.

성산 근처 소품샵에 들러 구경하고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제주메뉴를 먹으러 도착. 웃겼던건... 여름 프리퀀시를 모아서 비치타올을 받는게 있었는데 서울에서 프리퀀시를 다 모은 지인은... 서울 모든 매장에서 품절이어서 못받았다고 울적해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이 스벅에 비치타올이 있다??!?!??! 게다가 검색해보니 제주에도 오로지 이 지점에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퀀시 모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받으러 오진 않았나보다. 우리는 그렇게 흡족하게 상품도 수령하고 차도마시고 잘 쉬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혼인지. 이곳은 또 다른 친구가 추천해준 곳인데 제2공항이 건립되면 사라질 곳이라고 해서 갔다. 수국이 잔뜩 피었고 작고 예쁜 연못이 있었는데 이름처럼 혼인하는 곳이라고. 여기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예쁘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체 개발이 뭐길래 공항따위를 지으려고 이런 걸 밀어버린단 말인가. (해결하라 정부... 제주는 도지사 잘 좀 뽑고... 역시 우리 녹색당을 뽑아야해.) 해가 엄청 쨍쨍해서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내일부터는 꼭 긴팔 옷을 가지고 다녀야겠단 교훈을 얻었다. 애들은 공벌레도 잡고 각종 벌레도 잡고 올레길 리본도 찾고(올레길 2코스더라) 나무도 구경하며 놀았다.

제주에 온 이후로 가장 먼 길을 온거라서 집에 돌아오는데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모두 취침. 운전하는 나만 못잤는데 일주일째 시끄러운 상태로 운전하는 게 지긋지긋하던 차에 조용히 음악감상하며 제주 산간길을 지나 집에 왔다. 귀가 평화로운게 이렇게 좋은건데... 좀 덜 떠들면 안되겠니 어린이들아?

무난한 하루였지만... 둘째녀석이 차에서 오빠랑 깔깔거리며 웃고 놀다가 카시트까지 젖도록 오줌을 싸서 아주 분노게이지가 가득찬 채로 하루를 마무리. 저녁먹으러 나간 길에 그렇게 되어 다시 집에 돌아오니 8시.... 결국 저녁밥을 9시에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 대체 일곱살인데 왜 오줌을 싸는거야!!!!!!!

애들에게 자주 화가 나는 것이 온전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모자식도 사람관계의 하나일 뿐. 아이들도 나에게 잦은 짜증을 냈다. 역시 낮잠이 답인건가. 하지만 서울을 떠나 이 먼곳에 살러 온 것은 후회 없도록 활활태워 놀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닌가. 무얼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가. 아무튼 오늘의 안녕을 위해 나는 또 하루를 되돌아보고 기록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고 실외, 실내 모두 아이들과 가기에 좋다기에 산책하고 싶어 갔다. 아침에 날이 좀 흐렸는데 그래서 아주 쾌적하고 적당한 일조량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은 좀 오랜 코스가 될 것 같아 각자 간식(과자, 귤, 물 등)과 모자를 배낭에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많은 블로그 후기에 도착하면 작은 숲길을 지나 너른 잔디밭을 만나는데 애들이 뛰기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이들은 잔디밭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잔디밭을 보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짜증은 발견됐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첫째가 나이도 많고 남자아이여서 빠르다보니 출발시간에 5초 핸디캡을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자 자꾸 동생이 이겼다. 자신이 제안한 규칙인데 지게 되니 속상하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서 달리는 거리를 길게 늘렸더니 둘째가 졌고, 이 녀석도 졌다고 짜증을 낸다. 아놔. 이것들이... "이렇게 달리기를 하니까 둘 다 속상하다. 둘 다 속상한 놀이는 그만하고 그럼 박물관 들어가자!"라고 신나게 제안을 했더니 둘째가 "그냥 달리기 할래..."란다. 하지만 곧 둘 다 또 짜증을 내고... 일단 참고 박물관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엄마, 5초를 너무 늦게 셌잖아~(짜증)"
"(일단 참는다)엄마는 시계보고 셌어."
"아니이~ 하나아, 두울, 세엣 이렇게 했잖아. 하나, 둘, 셋, 넷 해야되는데."
"(인내심 끝)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뭐가 아니야? 시계보고 했다잖아. 시계가 내 맘대로 가? 전세계 공통으로 모든 사람이 시계로 시간을 재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아아~~"
"그러니까 뭐가 아니냐고."

그렇다. 인내심의 바닥을 만났고 나는 아이들에게 "너(첫째)는 엄마가 시간 재는게 맘에 안들고, 너(둘째)는 박물관 가는게 맘에 안드니까 너희 둘이 하고 싶은거 여기서 실컷 해. 엄마는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 돌에 앉아서 쉬고 풍경 보다가 집에 갈거니까. 하고 싶은거 다 하면 다시 여기로 와. 아무데도 안가고 있을게."라고 선언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박물관 가자..."
"아니 엄마는 지금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들을게. 난 그냥 쉴거야. 말도 안걸면 좋겠어."

내가 가자고 할땐 싫다더니 막상 알아서 놀라고 했더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다. 대체 왜... 일단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다른 돌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내 할일을 했다. 등 뒤 돌에 있던 녀석들은 발로 바닥을 차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거리기도 하고 부스럭거린다. 한참을 쉬고 기분이 좀 나아져서 나는 일어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들은 슬그머니 따라와 옆에서 걷는다.

"엄마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지금 안듣고싶어."
"엄마 기분 풀렸어?"
"아니 아직."

그렇게 약간은 서먹한 사이로 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은 주로 화산지형의 돌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주의 생성부터 시작해 지구의 내부(멘틀, 외핵, 내핵) 구조 설명, 그리고 화산폭발의 과정, 제주도가 어떻게 생겨난 섬인지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사랑하는 지구과학 얘기를 이렇게 애들과 사이 안좋은 채로 와서 보다니. 아깝다. 원래 지구의 역사나 지층에 대해 더 신나게 내가 설명할거였는데. 아 슬퍼...

박물관은 주로 돌을 전시해두었고 마그마가 식으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돌들은 정말 예뻤다. 간간히 무서워 보이는 애들고 있었고, 귀여운 고래를 닮은 애들도 있었다. 자연의 신비... 그리고 이걸 찾아낸 사람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애들은 그저 신나서 이건 곰을 닮았느니, 이건 뱀을 닮았느니 뭘 닮았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교래자연휴양림과 붙어있어서 일부 구간은 숲길인데 그 숲길이 정말 좋았다. 예전에 절물휴양림을 아주 기분좋게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제주의 다른 숲도 가봐야겠다. 아이들도 숲길을 좋아했고 한껏 수다도 떨고 첫째는 제주도 책에서 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뽐냈다.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3시간은 있어야 한댔는데... 우리는 중간에 싸우기도 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3시간을 둘러봐도 다 보지 못했다. 막판엔 셋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가고싶다고 하소연 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장봐서 집에 온 소박한 오후. 2시간이 넘게 앞마당에서 다른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어쩜 이렇게 매일 물총놀이만 하고 싶어할까...) 장볼때 사온 빵을 간단히 먹고 하루를 마무리. 내일은 우리 서로 짜증내지 말자. 사이좋게 지내자.

어제 저녁 문득 '오일장이 언제지?'하며 검색했더니 바로 오늘! 
정말 오랜만에 제주오일장에 구경갔다. 거의 십년만인거 같은데... 많이 정비됐고 많이 신식(?)이 되어 깔끔한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구경하는 재미는 좀 없었다. 오늘의 최고 소득은 '오일장돈까스'였는데 무려 5천원... 사실 첫째랑 나는 순대국밥이나 멸치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먹기싫다고 확실히 의사를 밝힌 둘째녀석 때문에 돈까스로 결정. 아니 얘야... 너는 서울에서도 돈까스를 먹고먹고 또 먹는 아이잖니.

그런데. 이 집 돈까스 무려 생고기(냉동아님)를 쓰는데다가 소스도 직접 만들어서 정말 맛있고 기름도 깔끔하고 대만족... 제주 도착하자마자 함덕 근처에서 먹었던 흑돼지 돈까스 13,000원이었는데 그거보다 열배는 맛있었다. 애 둘과 나는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식당을 나오며 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부끄럽잖아...) 오늘은 사장님과 꼭 눈을 맞추고 "잘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순대도 사고, 찐옥수수도 사고, 어린이 갈옷도 사고, 대장간 물건들(서울에서 못보니까)도 구경하고 엄청 많이 걸어다니다가 지쳐서 집으로... 운전하고 집에 오는데 졸리더라. 너무 졸려서 껌을 씹었을 정도. 오자마자 나는 거실에 쓰러져 잠이들었고 어린이들은 신나게 떠들며 놀았다.

저녁무렵 간식 먹고 우리 셋이 슬슬 나들이한 곳은 선흘분교. 무척 예쁘다는 제보를 어젯밤에 받았던지라 슬슬 가봤다. 정말 마을 안쪽 깊숙히 있는 작은 학교였는데 사진으로 본 것 보다 아기자기하고 정말 이 학교에 보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우리집 녀석들도 시소, 그네, 정글짐, 구름사다리, 미끄럼틀 등 학교라면 어디든 있는 시설들을 이용하며 즐거워했고(ㅋㅋㅋ), 잔디구장과 달리기 트랙에서도 놀았다. 뒷편 텃밭도 구경하고 오리, 토끼등 키우는 동물들도 구경했다.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말걸기 어려워하는 첫째는 먼 발치에서 선흘분교 아이들의 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이들이 다 가고나서야 공을 차기 시작했다. 축구 못하는 엄마와, 축구를 좋아하지만 운동신경 없는 아들, 축구를 좋아하는 딸 셋이 공놀이를 하니 은근 수준이 맞았다. 축구라니... 서울에선 그냥 아빠에게 맡기면 되는 종목인데 이게 무슨일이람. 그래도 넓은 잔디구장에서 공을 뻥 차니 재밌더라. :) 그렇게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길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폴라포를 사먹으니 그렇게 꿀맛일 수가.

+ 오늘의 깨달음 : 애들은 안자도 나는 낮잠을 자자

제주에 와서 나의 정체성을 자꾸만 확인한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집에 있기로 마음 먹은 날. 오전에 빨래도 두 번 돌리고 애들 광장에서 놀 동안 잠시 장도 봐오고(맛있는 빵과 반찬, 그리고 복숭아를 왕창샀더니 기분이 매우 좋아짐) 집에서 점심 먹고 낮잠자고 저녁도 집에서 먹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더니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그렇다. 
나는 집순이였다.
밖에 나가 지치고 힘든 몸을 끌고 들어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콕 박혀 먹고 자고(때론 귀찮아서 먹지도 않고) 책보고 영화보고 음악듣고 뒹굴뒹굴뒹굴뒹굴하면 충전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너무 신난 나머지 나도 잊고 내 체력도 잊고 칠렐레팔렐레 놀러다녔더니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질뻔한 상황까지 온 거다. 정확히는 사이가 나빠지는게 아니라 방치겠구나...

원랜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빌려오고 하려고 했는데 마침(?) 낮잠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주룩주룩. 비예보가 전혀 없던 날인데 비가 오는걸 보니 역시 제주날씨는 일기예보가 무의미하다.

둘째녀석이 아침부터 눈이 가렵다고 해서 보니 다래끼가 나려고 했었던지라 안과에 다녀왔다. 6시반까지 진료하는 병원이라 6시에 접수 마감일테니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는데(병원까지 8킬로) 6시5분... 매정한 간호사에게 최대한 불쌍해보이도록 사정해본다. 서울에선 이런 일엔 자존심도 있고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쿨하게 돌아섰을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 진료시간이 6시반이라 마감인건 알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지금 20분 넘게 걸려서 겨우 왔거든요. 조천읍에서 온거라... 한번만 안될까요?" 
오늘 나의 의상도 한몫했는데 다리에 일광화상을 입어 너무 화끈거리고 아팠기에 인견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바지의 비주얼은 고쟁이에 가까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어필이었는지, 사연 어필이었는지, 패션 어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간호사가 접수를 해주는데 주민등록상 주소를 적어야 한다. 음... '서울시 XX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서울사람이라고 물르진 않겠지. 에라 모르겠다.

약을 한봉다리 타서 집에 도착. 호박, 양파, 버섯, 두부 잔뜩 넣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에 슥슥 비벼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하루를 마무리. 애들도 흡족 나도 흡족. 별거 아닌 된장찌개에 이토록 찬사를 보내는 우리 셋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집밥이 주는 매력이, 힘이 있지. 

충전 잘 했으니 내일은 제주오일장 가야지! 신난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서 사진도 없는 포스팅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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